"일본말과 발음 비슷한 우리말은 모두 개명해야 하나?"
"닭도리탕이 일본어란 증거, 어디에도 없어!"
걸그룹 아이돌 태연을 좋아하는 필자는 몇해 전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있었다. 태연양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방송에 부적합한 용어는 쓰지 않으려 노력했고 게스트가 잘못 말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짚어서 제대로된 말로 고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방송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느낄 수 있어서 필자는 더욱 태연양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게스트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던 그녀는 게스트가 닭도리탕 이라고 말하자 아, 닭볶음탕, 탕볶음탕! 이라고 말하며 황급히 정정했다. 그러자 닭도리탕이라고 말한 게스트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 재빨리 네, 닭볶음탕이요.라고 정정했다. 필자는 닭볶음탕이 일본어 닭도리탕의 순화 용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역시 닭도리탕이다. 그래서 닭도리탕이 일본어임을 알고 난 뒤로는 닭도리탕 이란 말 대신 닭볶음탕이라는 순화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어릴적부터 닭도리탕 이란 말이 입에 붙어서 그런지 순화어를 사용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에도 닭도리탕을 검색하면 닭볶음탕의 잘못 이라고 나오고 방송에서도 닭도리탕이란 말은 금지어가 되어버린 만큼 필자 역시 닭도리탕 이란 말은 버려야 했다. 더구나 일본어라고 하지 않는가.
<네이버 국어사전 검색 결과 닭도리탕은 명백히 일본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닭도리탕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닭도리탕이 일본어라면 닭도리탕이라는 음식도 실은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음식이란 말인가?
필자가 아는 한 일본 전통 음식에는 닭도리탕과 비슷한 음식조차 없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니 국립국어원이도리가 일본어이므로 도리를 볶음으로 대체해서 닭볶음탕 이라는 순화용어를 말들었다는 것이다. 새 또는 닭을 일본어로 도리 라고 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해석이다. 필자도 이 건에 대해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닭도리탕의 그 도리는 도려내다는 우리말로 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다 라는 의미의 우리말 도리다 에서 뜻이 어원이란 것이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설이었는데 국립국어원이 일방적으로 일본어로 단정지어버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라는 근거는 희박하다. 음식 이름의 전체도 아닌 일부에 일본말을 쓴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굳이 일본말로 본다면 닭새탕이나 닭닭탕이라는 어법에 맞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명칭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사전에도 나오는 ‘외보도리’를 용례로 제시한다. 외보도리는 오이를 잘게 썰어서 소금에 절여 기름에 볶아 만든 음식을 뜻한다. 조선 말에 나온 <해동죽지>는 평양의 명물로 도리탕(桃李湯)을 소개하고 있다. ‘닭을 뼈째 한 치 길이로 잘라 향신료를 섞어 반나절 동안 삶아 익힌 닭곰국’(鷄 )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일본말에 도리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본말과 발음이 같은 우리 용어는 다 바꿔야 한단 말인가.
사실 순우리말은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많다. 일본어와 발음이 많이 다른 우리말은 실은 순우리말이 아니라 한자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우리민족과 언어적으로 유사한 만주족의 언어에서 개(강아지)를 아키리 라고 발음했으며 이것은 고대 고구려시대 때부터 내려온 말임에도 왠지 일본어로 느껴진다. 할아버지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 하나시 역시 순우리말 이라고 하기엔 발음이 일본어 스럽다. 일본어의 뿌리가 고대 고구려와 백제어이며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와 중국 한자어의 조합이란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딱딱한 표준어에는 한자어가 많고 구수한 지방 사투리는 얼핏 일본어같은 단어가 많은 것은 아닐까?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음식 닭도리탕, 그런데 하루아침에 일본어라는 오명 속에 닭볶음탕 이라는 우스꽝스런 새 이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