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500년 도읍지이며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이미 중세 고려의
(개인적으로 발해 신라 체재의 연장으로 금 고려 시대도 남북국 시대의 연장
으로 불러도 무난할 것으로 파악됨. 실제 파고 들면 금나라는 신라인 황제와
고구려인의 연합국 성격이 매우 짙음) 4경의 하나로 중시된 곳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서경 역시 중시했고 이미 천년 수도로 유
럽의 최대 도시인 로마 이상의 규모와 국제적 대도시였던 전통적 동경(서라
벌)과 함께 남경으로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 고려의 토착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남경인 지금의 서울
을 수도로 천도하면서 본격적인 조선의 중심 도시로 거듭나게 됩니다.
물론 서울은 단순히 중세 고려시대 뿐 아니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본격
발굴되여 학계에서 10여년의 연구를 통해 백제 한성 500년 시대의 수도였음
이 가시화 되어지고 있음.
즉 이미 기원전 18년 부터 기원후 475년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
지 500여년의 백제 수도로 풍납토성의 성벽 둘레는 3.5킬로로 연 100만명을
동원해야 가능한 규모로 4,5세기경에는7,80만에 이르는 국제적 규모의 대도
시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문명의 특징은 서토의 왕조와는 달리(서토는 평지에
조성된 정방형 형태) 평시 업무는 평지성 외에 유사시를 대비한 산성
을 배후로 두는 것이 전통적 방식으로 이런 산성은 다른 나라에서 요새적 규
모의 작은 형태의 성격과는 달리 전시에 그 일대의 백성을 수용하고 생활하
면서 정사를 추진할 수 있는 도시형 형태로 상당한 규모로 조성되는 등 성곽
의 나라, 고도의 산성 기술을 구축한 게 특징입니다.(우리는 평지형 성곽
규모도 상당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말.)
백제는 이런 평지형 풍납토성 외에 배후 산성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크기들
이 몇곳 존재하며 평지성으로 한때 풍납토성과 더불어 백제의 중심 도성으
로 추정되었던 몽촌토성도 존재합니다.( 성곽의 전체둘레는 2,285m이며 총
면적은 21만 6,000㎡이지만, 외성을 합할 경우 총면적은 30만 2,500㎡에 달
함)
즉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미 2천여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임을 새
삼 알았으면 하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선은 경복궁을 주궁궐으로 해서 동궁에 창덕궁과 서궁으로 경희궁을
두고 창경궁과 경운궁(덕수궁)을 수시로 활용하면서 연결된 공간의 5궁 체
재의 규모로 가히 도시급 크기임. 서구인이 자금성의 크기와 위용에 놀랬다
고 하지만 실상 조선의 이런 연결된 5궁의 규모는 자금성을 능가한다는 사
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되더군요.>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의 안학궁이
나 발해의 상경용천부의 건축물들은 7대 불가사의라는 타지마할를 능가할
뿐 아니라 당대 서토의 도성 건물을 능가하는 동아시아 최대급의 위용을 보
여 줌.)
경희궁은 일제 시대 일제에 의해 가장 철저하게 파괴된 대표적 궁
궐로 현재 크기의 3배에 달했음(조선 궁궐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
림.)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창경궁+경운궁(본래는 연계된 구조임.)
43만㎡+ 43만㎡+ 23만㎡ +21만㎡+6만㎡ (아래 단위는 생략)
=136만㎡
자금성 면적
72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