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군대도 비록 강하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걸어 갈 때에 서로 길을 양보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미루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니 이르기를 동방의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이다.
지난해에 동이족 사절이 중국에 다녀가는 행차를 보았는데 그 의식과 용채가 대국사람 같았다.
-공빈의 "동이열전"
구이(九夷)는 동이이고 동이는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공자가 가서 살고자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 청나라의건륭제가 1000명의 역사학자들과 10년을 걸려 만든 백과사전 "사고전서" 출제
요즘 사학자들중 다수는 고조선을 부인합니다. 설사 있었어도 부족국가 수준의 국가
라고 주장하죠. 근데 공자와 공빈을 보면 이게 틀렸다는걸 알수있습니다.
1. 일단 공빈의 기록을 보면 고조선인들은 길을 비켜줬다고 합니다. 부족국가 촌락에 길이 있었을까요? 걍
천막 사이사이 넓게 있는 통로들을 길이라고 부를순 없고 설령 맞다 한들 인구도 없는
그런 부락에서 길을 비켜줘야할만큼 길에 사람들이 깔리지도 않았을겁니다. 즉
고조선에는 인구밀도가 상당한 도시가 있었음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추가로 공빈의
동이열전은 기원전 250년경 책입니다. 고조선의 역사를 위만때나 되어서야 인정하는
바보짓은 그만해야합니다.
2. 남녀가 따로 거쳐했답니다.즉 여러 방이 있거나 한 가구당 여러 집채를 소유했다고 볼수있죠.
즉 고조선인들은 천막이나 움집이 나닌 더 발달된 주거 형태에서 살았던게 아닐까요. 움집은 넓어도 원룸인데
여기서 남녀가 따로 거처? 말이 안되죠.
3. 공자가 살고싶어했다. 일단 고조선인들의 성품은 공통되게 어질고 순한걸로 표현되어있습니다. 근데 사실
고조선같이 척박하고 추운 만주에서 온순하고 어진 민족성을 가지긴 힘듭니다. 유목민족들 처럼 우락부락하고
쌈박질을 즐겨야 말이되죠. 근데 오히려 인구가 어질단건 그 대규모 인구의 인품을 바로잡아줄 정신적
지주, 인물등이 뚜렷히 있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로 성직자, 스님, 이런 사람들이죠. 한마디로 고조선또한
일종의 예수, 부처, 공자같은 대 철학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고조선은 문자가 없었고
자료가 적어 알려지지 않았을뿐.
걍 제 생각이고 반론도 환영입니다. 태블렛으로 썻더니 좀 글이 개판인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