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추모왕>
북부여에서 내려와 졸본을 장악한 추모왕은 졸본을 거점으로 비류국과 행인국, 북옥저등을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2대 유리왕>
추모왕에 이어 왕이 된 유리왕은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선비와 양맥 그리고 현도군에 속해있었던 고구려현을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3대 대무신왕>
대무신왕은 북쪽으로는 동부여를 공격하여 동부여의 왕이였던 대소를 전사시키고 동쪽으로 구다국과 개마국을 점령하였으며 남쪽으로 최리의 낙랑국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5대 모본왕>
모본왕은 북쪽으로 동부여를 완전히 병합하였고 서쪽으로 지금의 북경인근인 북평과 상곡, 어양, 태원 등지를 공격하여 위엄을 과시했다. 영토를 크게 넓힌 모본왕은 자만에 빠져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폭정을 하다가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남쪽의 낙랑국은 고구려가 어려운 틈을 타 한나라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로부터 독립을 했다.
<6대 태조왕>
모본왕에 이어 왕이 된 태조왕은 동쪽으로 동옥저와 갈사국, 조나등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서쪽으로 현도군 등지를 공격해 요동을 넘어 요서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한나라가 고구려가 점령한 현도를 공격할 때 동부여는 한나라를 도와 고구려의 속국에서 벗어난다. 또한 고구려가 한나라의 요동군을 공격할 때 동부여가 한나라를 도와서 고구려군을 깨뜨려버린다. 이후로 고구려와 동부여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9대 고국천왕>
태조왕 이후 고구려는 상황이 안좋아졌다. 수성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고 폭정을 하다 신하들에 의해서 쫒겨나고 신대왕이 추대되었다. 이후 신대왕이 둘째 왕자인 남무를 태자로 책봉하자 첫쨰 왕자였던 발기가 반란을 일으키고 요동태수 공손강에게 투항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고구려는 영토를 넓히기 보다는 국가의 기틀을 다듬는데 노력을 기울었고 이 상황에 을파소와 같은 명재상이 나와 국가는 안정되었다.
<11대 동천왕>
고국천황 다음으로 왕이 된 신상왕은 도읍을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옮겼고 이후 왕이 된 동천왕은 위나라가 점령한 서안평을 점령하였고 이에 분노한 위나라는 관구검을 보내 환도성까지 침입하여 환도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동천왕은 쑥대밭이 된 환도성을 더이상 도읍으로 삼기 어렵다 생각하여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떄 신라와 전쟁을 해 이겼다고 한다
<13대 서천왕>
서천왕은 숙신이 변방을 침입해 백성들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자 분노하여 숙신의 중심지였던 단로성의 추장을 죽이고 숙신 주민 600여가를 부여의 남쪽으로 이주시켜 살게했다.(사실 숙신의 위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모르겠습니다.)
<15대 미천왕>
서천왕 다음 왕이 된 봉상왕이 폭정을 하자 신하들에 의해 왕이 폐되고 미천왕이 새 왕으로 추대된다. 미천왕은 북쪽으로 모용선비를 공격하고 남쪽으로는 낙랑국에서 분리된 대방국을 공격하였다. 미천왕 3년에 왕은 3만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현도군을 공격해 포로 8천여명을 사로잡았고 12년에는 서안평을 점령하고 14년에는 낙랑군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16대 고국원왕>
고국원왕시기 나라는 어려워진다. 서쪽으로 전연이 쳐들어와 요동땅을 잃고 만다. 그 후 왕은 평양의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를 재건할 기회를 노리나 남쪽에 백제가 쳐들어와 왕은 백제군에게 죽고 말았다.
<19대 광개토왕>
고국원왕 이후 어려원진 나라를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다시 기틀을 다졌고 그 후 왕이 된 광개토왕은 이를 기반으로 서쪽으로 후연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후 398년에는 숙신과 거란까지 진격하여 영토를 확자앴다. 그 후 북쪽으로 동부여를 공격하여 64개의 성을 함락시켜 통합시키고 남쪽으로 동예를 넘어 백제를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가야까지 진출하여 김해가야를 도륙해냈으며 왜를 격퇴시켰다. 이후 고구려는 신라를 속국으로 삼는다. 이 때 현재 북경일대인 유주에까지 관리를 파견하여 간접적으로 통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20대 장수왕>
광개토왕 다음으로 왕이 된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쪽으로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여 땅을 넓혔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지두우까지 진출하였고 서쪽으로 북연의 수도를 점령하고 멸망시켰다. 이후 북위를 포함한 북조와 송이 고구려의 눈치를 볼 만큼 고구려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22대 안장왕>
장수왕 이후 신라와 백제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계속 공격해와 장수왕때의 영토를 상당부분 잃었다. 단 서쪽으로 현재의 조양일대를 공격하여 요서에 영향력이 있음을 과시하였다.
<25대 평원왕>
평원왕시기 고구려는 내부사정으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남쪽에서 신라가 공격해왔다. 또 이때 돌궐과 북주가 침입해왔으니 격퇴시켰다. 이후 고구려는 북만주일대와 연해주일대의 지배권을 강화한다(온달장군도 이 때 사람이다)
<26대 영양왕>
이후 고구려는 중원의 신흥강국인 수나라와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고구려는 을지문덕을 포함한 명장들의 덕으로 수나라의 침입을 모두 격퇴시켰다. 그리고 남쪽으로 신라를 공격하였다.
<28대 보장왕>
이후 고구려의 내부사정은 굉장히 어려웠다. 귀족들은 서로 권력다툼을 일으켰고 이 상황에서 연개소문이 보장을 옹립하여 스스로 대막리지의 자리에 올랐다. 그 후 당나라와 신라는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연개소문이 있을 당시 다 격퇴시킨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죽은 뒤 내부분열로 인해 고구려는 멸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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