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자러가기 전 몇 자 적고 갑니다.
많은 논쟁이 결국 상호 이해 없이 갈등과 적대로 끝나는 이유 중 하나가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논쟁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동이족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 논쟁의 기저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놓여 있습니다.
민족이 뭐고 민족주의란 뭔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가 대단히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민족반역자, 매국노들이 득세하고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고 아직까지도 그런 점이 해소되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문적인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nationalism이고 이는 대단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집니다.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 집단의 이익을 밟아도 무방하다는 사상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2차대전 나치가 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인종적 박해를 가했기 때문에 이런 뉘앙스는 굉장히 강해집니다. 이후 정치학에서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두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민족주의는 실재 하지만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다소 이상한 주장입니다.
민족주의는 일종의 정치이념이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로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이란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사회과학에서 민족이라는 단어는 다소 모호합니다. 혈연적, 문화적(특히 언어적) 지역적 공통점을 가진 공동체 집단, 혹은 이런 공통점을 가지거나 자신들이 한 집단에 속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가진 집단이라고 묘사하곤 하는데 이게 대단히 모호하고 뭘 어떻게 정의해도 예외적인 케이스가 등장하거든요. 예를 들어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언어도 다르고 심지어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오로지 종교적 신념으로 한민족으로 엮어서 아프리카유대인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킨 적이 있어요.
이런 판국에 한 민족도 아니고 모호하게 일컬어지던 '동이족' 이라는 단어를 엮어서 그걸 우리나라 민족 전체의 역사적 경험으로 대입시키려고 하니 웃기는 이야기로 들리게 되는 겁니다.
민족주의는 대부분의 경우 해로운 정치적 신념입니다(많은 경우 내셔널리즘은 쇼비니즘과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제국주의가 약소국가를 침범할 때 민족주의는 이와 맞서 싸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방어적 수단으로서의 정치신념을 '해방적 민족주의"라고 규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보야 할 것은 결국 민족주의라는 것이 좋든 나쁘던 정치적 이데올로기라는 겁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 역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새로운 중화민족주의를 만들어서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되겠죠. 민족을 넘어서는 중국이라는 내셔널리즘을 만들고 여기에 소수민족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시도 아닌가요?
여기에 대응한다고 우리가 다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동이족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적절할까요? 현실성도 없지만 논리적으로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 서구 역사학의 nationalism이 우리나라사람이 흔히 말하는 민족주의와 그대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혹은 동아시아에서의 민족은 nation이 아니라 거의 ethnic group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도 일본처럼 쇼비니즘에 가깝게 발전하거나, 여기서 환단고기류의 확산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경우처럼 내쇼날리즘에 가까운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한곳에 산 집단으로서의 공동체의식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M. 헤르쯔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공동체의식을 확산적(혹은 공격적)민족주의와 구분하여 나치오니스무스(nationismus)라고 정의했습니다. 내셔널리즘과 비슷한 확산적, 공격적 민족주의를 나치오날리무스(nationalimus)라고 하여 이 두 가지는 명백하게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민족주의 논쟁이 끝없이 뺑뺑이 도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민족주의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인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를 환빠의 미친짓 정도로 치부할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겁니다. 두 개념을 좀 나누어서 생각하면 그나마 생산성 있는 논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