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블로그 중에,
'8.일본군의 서울 점령 (1904년)' 라는 그림을 보면 러일전쟁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조선, 서울 남대문을 통해 대규모 일제군 대열이 입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선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면 르 쁘띠 파리지엔(Le Petit Parisien) 이 왜 여기에선 서울 그림에 남대문을 그려놓았을까요.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 가 방문한 서울 그림의 주변 환경이 중국스러운것은, 그 당시 종종 동양 각국의 세세한 사정을 구분못했던 서양인들의 단순 오류로 보입니다.
세번째 그림,
'당시 대죠션은 세계 16강에 들었으며 천연자원이 풍부한 황금제국이었다. “당시 외국인 여행가들은 조선을 ‘동물의 왕국’ ‘출판의 왕국’ ‘황금제국’ 등으로 불렀으며 고종임금을 세계적인 갑부라고 칭하였다'
16명의 황제들의 이름이 의자들에 한자로 씌어있고, 중국인의 그림이라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중국에 알려진 각국의 황제들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1903년도의 그림이라 밝히고 있는데, 대한제국(1807~1910년)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고종황제가 저 중국인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굳이 세계 16열강으로 꼽혀서가 아니라요.
'1893년에 조선은 최초로 미국시카고박람회에 참가하였죠...세계 47개국이 참가해 자국의 전통 문화재와 상품을 진열했지요. 조선의 전시관은 급하게 참석했기 때문에 규모는 작았으나 상품은 세계적 수준의 전통 수공예품으로 인기가 높았답니다...미국은 대조선의 태극 마크를 행사장의 중요한 상징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지요. 미국이 노리는 것은 바로 조선의 황금이었습니다'
...라고 박인수 저자께서 소개하시는데 실상은,
후에 고종이 정경원을 불러 물었다. "우리나라 물품을 보고 뭐라 하더냐?" "우리 물품을 처음 보기 때문에 구경하는 사람이 복잡하게 모여들어 응대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고종실록' 1893년 11월 9일)
하지만 현지 반응은 달랐다. 전시실이 25평에 불과해 미국 신문들은 "장난감 같다"고 평했다. 일본 전시실 크기는 조선의 40배가 넘었다. 시카고 박람회를 참관한 윤치호는 작고 초라한 우리 전시관을 본 뒤 "가슴이 메었다"고 일기에 썼다.
지명 까지는 안 바랍니다. 적어도 국명에 관한 것은 학자들이 밝혀야 한다고 보는데 정말 한심해요.
진秦과 신라가 국명이 같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고 진과 신, 금과 청이 같고요. 그리고 조선이란 국명 역시 신라와 같아요. 조선의 조는 아침이 아니라 시작 또는 처음이고 선을 한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선을 없어도 되는데 차남이나 서자라는 말을 만들려고 붙인 말 입니다. 신라도 신이 처음이라는 뜻이고 라는 아我라는 뜻으로 쓰인 것 입니다. 그래서 신라와 조선도 같은 뜻으로 본 뜻은 차자, 서자, 사생아 또는 양자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환웅이 서자가 되는 것이고 김알지는 사생아 진시황은 사생아가 되는 것 입니다. 실제로 그런 상태가 아니데도 말입니다. 그런것은 몽골전설이나 유럽 그리고 투르크 에서도 보이는 아주 흔한 패러다임 입니다.
결국 신라. 진나라. 신나라. 금나라. 청나라와 조선이라 국명은 같은 것 입니다. 최소산 이런 국명에 대한 의혹은 풀어져야 하는데 이건 뭐...
환쟁이 환쟁이 하는 애들 보면 그런 어투로 우리 역사까지 왜곡해서 임라일본부설 주장하고 동북공정 지지하는 쪽바리 논리들을 주장하는 애들이 그런 말을 쓰죠..
또라이는 또라이일뿐.. 저 또라이를 빌미로 환쟁이 운운하면서 식민사관 안빨아대면 다 환쟁이다 이런 더 심각한 주장을 하는 또라이들이 문제입니다.
그냥 대한민국 고대사는 무조건 환쟁이로 몰아서 없애려는 부류들..
그들의 주장은 사료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그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존재하고.. 중국사서와 우리 역사서 모두가 단군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지만..
환단고기 하나만 놓고서 증명할수 없는것이네 신화네 어쩌네 하는것이지..
천문학으로 과학적인 증명도 되었고..
유적과 유물도 나오는데 신화라니...
지금은 오래된 고대역사지만 삼한시대 삼국시대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란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