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송나라 기록도 있고
당시 아라비아 이탈리아 등 백인들도 있고
구 백제계 유민들 포함
이민족 들도 상당수;;;
고려말 추정인구는 550여만 => 유입인구는 20/550 = 3~4% 전체인구대비 추정 (몽골 여인 20만 불포함)
ps /
고려시대 개경의 인구는 약 50만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 잘 나가는 도시들의 인구가 3만~ 10만 정도인 것을 생각할 때 매우 큰 도시였던 것 같다.
50만이 넘는 이 대도시는 극동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였다. 당시 중국의 송니라, (1) ____ 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뿐 아니라 이슬람교를 믿는 아라비아 상인들도 집단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 많았다. |
특히, 고려에서는 서경에서 10월 15일, 개경에서 11월 15일에 종합적 종교문화 행사이자 축제인 (2) ____를 시행했는데, 이 때 국제 상인들이 공식적으로 초청받아서 상업을 하고, 고려의 이름을 널리 홍보하기도 하였다. 외국인 상인들은 예성강 하구에 있었던 (3) ______라는 항구를 통해서 공식 무역을 전개하였다. 이 곳은 무역과 상업을 위해 큰 시장이 열린 곳이기도 했고, 나라의 각종 세금과 특산물을 개경으로 옮기는 통로이기도 했다.
특히 장사를 잘하는 유명한 개성 상인들을 (4) _____ 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말로는 <가게쟁이>라고도 한다. <가게쟁이>라는 말이 변해서 <깍쟁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는데, 깍쟁이라는 말은 장사를 매우 잘하는 얄미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깍쟁이들과 장사를 마친 아라비아 상인들은 고려라는 이름을 서쪽에 알리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우리 나라를 고려라는 발음으로 <코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어로는 코레, 독일어로는 코레아, 러시아어로는 까레야, 아랍어로는 코리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