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태종때부터 다져두었던 왕권이 강력하였던 시기라 왕이 주체가 되어 여러 문화적, 과학적 시설이나 계획등을 별 무리없이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인재들이배출되었죠..
그들은 왕의 명령을 받거나 혹은 독자적으 조선의 주체적이고 명나라와는 차별되는 문화연구에 집중하였고 결국 예술, 경제, 군사, 과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지요..
따라서 이와같이 조선의 주체적인 문화가 창출되고 발전된 가운데 고려시대때부터 번창하던 벽란도를 통해 이국문화(아라비아나 왜, 송 등)들이 전파되어 오고 있는데 당연히 그들은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었죠.. 급기야 그 교류수가 많아지자 조정에서는 큰 위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세종은 벽란도에 이질문화금지령을 내리고 번창하던 벽란도무역은
점점 쇠퇴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세종은 굳이 외래문화의 수용없이도 이미 독자적으로 조선특유의 문화창출에 대해 자부심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였을 가능성이 높고요..
또는 외래문화가 현재 잘 정리해놓은 이념체제나 제도에 대하여 찬물을 끼얹혀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걱정을 가져 마침내는 이질문호금지령을 내리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