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자 폐지론
명치 5년(1872) 주미공사 모리 아리노리 후일의 문경부가 일본은 무역입국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세계무역을 주름잡고 있는 영어국민의 말을 국어로 채용하지 않고서는 일본 문명의 진부는 불가능 하다
1890년(명치 23년) 중의원으로 첫 당선된 그후 25회 연속 당선의 오자키 이쿠오도 한자 망국론을 펴면서
영어나 에스페란토어를 국어로 채용할것을 거듭 주장
1946년 일본 대표 문호로 추앙 받는 시가나오야 는 일본의 국어처럼 불완전하고 불편한것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래의 일본은 진정한 문화국이 될수 있는 희망은 없다 면서
프랑스어를 국어로 채용할것을 월간지 '개조' 4월호에 기고
언어 사회 학자 스즈키 다카오 게이오 대학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슬람 인도 중국등 오랜 문명은 설혹 영양실조로 육체는 보잘것 없이 되도 문명을 파는 일은 없다
그런데 독자적인 문명을 가꾸어 본적도 없고 언제나 그때 그때 앞서가 있는 외국 문명을 마치
자동차의 부품이라도 바꾸는듯 들여왔던 일본은 극단적인 말을 갖자는 의견이 나올수도 있는것이다
일본은 부품 교환형 문명. 장기 이식형 문명.이기 때문에 자국어(한자) 폐지론도 나오는 반면
정신적으로는 스스로 식민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대국으로 세계에 군림하게 된 일본은 이제 한자를 약식화한 가나문자를 '외래문화의 일본화'로
자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나 일본 스스로의 고유문자가 없다는 것은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참을 수 없는 문화적 콤플렉스였다.
18세기 에도 중기 이후 국학이 진흥되면서 한자 도래이전 상고시대 때부터
일본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일었던 것은 그 콤플렉스의 발로일 것이다.
중국의 한자 폐지론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노신(魯迅)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고 걱정했다
중국의 현대문학가이며 역사학자 궈모뤄는 중국도 표음문자를 도입해야 문맹을 퇴칠할수 있다 했다
신해혁명 무렵, 중국의 국음통일준비위원회는 한자를 없앤다면 어떤 문자를 도입해서 사용해야 좋을지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외국 선교사 게일이 한글을 권유했다.한글만큼 뛰어난 문자는 없었다.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글을 채용할 수도 없었다. 이른바 '중화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중국도 조선처럼 문자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인민일보 1958년 1월10일자
표음 문자를 도입해야 문맹을 퇴칠할수있다 인민일보 1964년 5월3일자
조선문자 속성 식자법 인민일보 1956년 4월 21일자
중국의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주은래)는 중국도 조선처럼 문자를 개혁해야 한다 라고 했으며
중국의 역대 주석중 2대 류사오치 주석은 조선에 사람을 보내 문자를 배워야 합니다 라고 어문연구자들에게
서한까지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