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석사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랫글에서 말씀하셨죠.
삼국시대 당시 인구도 가장 적고 후기를 제외하면 영토도 가장 적은 나라가 신라였습니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 수밖에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문헌상, 생활유적을 토대로 검토해봐도 6세기 말에 이르면 신라의 인구가 고구려의 인구의 필적하거나 더 많았고, 백제보다는 훨씬 많았습니다)
먼저 문헌상으로
고구려의 경우
멸망 당시 69만호로 350만이었습니다(중국 당서기록)
백제 멸망 당시 24만호(대당평백제국비명)
백제가 멸망전에 낸 군사는 고작 3만여명. 지방군사와 왕궁수비병까지해서 4만명~5만명 내지였다는건데
국가멸망총력전 때도 총인구의 1/20 밖에 동원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임(고구려는 반농반목이라 다름)
24만호 곱하기 5 = 140만 = 최대 군사력 6~7만(멸망전시)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 초~중엽)에 경주인근 호구수가 약 18만호. 대략 80만명이는데 겨우 70~80년전 백제의 총인구가 140만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7세기로 돌아와서 ~ 논해보자면
백제 멸망전 당시 신라가 낸 군사수는 5만명이었고, 돌궐-고구려-백제-일본이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경주인근+동, 동남 해안선 방어에 만단위의 군사는 투입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국경인근에도 최소 5~8만의 군사가 배치되었다는 것을 감안할때
신라는 멸망전이 아닌 시기에도 최소 12만이상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8년 후 고구려 멸망전 당시 신라는 20만의 군대를 냅니다. 일본이 백강에 3만의 원군을 투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신라가 해안선을 비워놨을리도 없고, 백제치안이 완벽하게 잡히지도 않은데다가 백제지역에서 당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신라는 25만이상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정리해보자면 백제 멸망전 당시 신라의 인구는 360~480만(군대 곱하기 30 or 40), 고구려 멸망전 당시 신라의 인구는 최소 500만.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고구려 분묘는 연구가 잘되어있으나 생활유적에 대한 연구는 아직 완벽하지 못한 상황이고, 그 연구결과마저도 중국과 북한에서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당서의 기록으로 인구를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백제 신라는 고고학 연구가 상당히된 상태입니다.
생활유적중에서도 국가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爐, 즉 철기생산유적입니다. 신라는 6세기에 이르어서 양산인근에 대규모 제철단지를 건설하게 되는데(그전에도 있었음) 그 규모가 백제의 제철단지와 비교가 안될 정도입니다. 최근에 충북 음성에서 진행한 제철복원실험도 갔다와서 배웠는데, 제철에 드는 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그 유지비 또한 엄청났습니다. 그러한 제철시설을 다수 보유한 신라의 국력이 약했을까요?
아래에 있는 글을 쓴 의도가 무슨 말인지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하대에 신라가 갑자기 팽창하였던 것도 사실이고,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책을 따르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신라가 갑자기 팽창하였다고는 하지만 6세기~7세기에이르는 대략 100년의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그 영토를 유지했는데 순간적으로 강해졌다고 보긴 어려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