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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9 01:41
[한국사] 아래 글에 대해서 의견 적어봅니다
 글쓴이 : 그만혀
조회 : 1,362  

고고학 석사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랫글에서 말씀하셨죠.
삼국시대 당시 인구도 가장 적고 후기를 제외하면 영토도 가장 적은 나라가 신라였습니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 수밖에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문헌상, 생활유적을 토대로 검토해봐도 6세기 말에 이르면 신라의 인구가 고구려의 인구의 필적하거나 더 많았고, 백제보다는 훨씬 많았습니다)

먼저 문헌상으로

고구려의 경우
멸망 당시 69만호로 350만이었습니다(중국 당서기록)
백제 멸망 당시 24만호(대당평백제국비명)

백제가 멸망전에 낸 군사는 고작 3만여명. 지방군사와 왕궁수비병까지해서 4만명~5만명 내지였다는건데
국가멸망총력전 때도 총인구의 1/20 밖에 동원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임(고구려는 반농반목이라 다름)
24만호 곱하기 5 = 140만 = 최대 군사력 6~7만(멸망전시)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 초~중엽)에 경주인근 호구수가 약 18만호. 대략 80만명이는데 겨우 70~80년전 백제의 총인구가 140만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7세기로 돌아와서 ~ 논해보자면

 백제 멸망전 당시 신라가 낸 군사수는 5만명이었고, 돌궐-고구려-백제-일본이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경주인근+동, 동남 해안선 방어에 만단위의 군사는 투입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국경인근에도 최소 5~8만의 군사가 배치되었다는 것을 감안할때
신라는 멸망전이 아닌 시기에도 최소 12만이상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8년 후 고구려 멸망전 당시 신라는 20만의 군대를 냅니다. 일본이 백강에 3만의 원군을 투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신라가 해안선을 비워놨을리도 없고, 백제치안이 완벽하게 잡히지도 않은데다가 백제지역에서 당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신라는 25만이상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정리해보자면 백제 멸망전 당시 신라의 인구는 360~480만(군대 곱하기 30 or 40), 고구려 멸망전 당시 신라의 인구는 최소 500만.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고구려 분묘는 연구가 잘되어있으나 생활유적에 대한 연구는 아직 완벽하지 못한 상황이고, 그 연구결과마저도 중국과 북한에서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당서의 기록으로 인구를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백제 신라는 고고학 연구가 상당히된 상태입니다.
생활유적중에서도 국가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爐, 즉 철기생산유적입니다. 신라는 6세기에 이르어서 양산인근에 대규모 제철단지를 건설하게 되는데(그전에도 있었음) 그 규모가 백제의 제철단지와 비교가 안될 정도입니다. 최근에 충북 음성에서 진행한 제철복원실험도 갔다와서 배웠는데, 제철에 드는 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그 유지비 또한 엄청났습니다. 그러한 제철시설을 다수 보유한 신라의 국력이 약했을까요?
 
아래에 있는 글을 쓴 의도가 무슨 말인지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하대에 신라가 갑자기 팽창하였던 것도 사실이고,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책을 따르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신라가 갑자기 팽창하였다고는 하지만 6세기~7세기에이르는 대략 100년의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그 영토를 유지했는데 순간적으로 강해졌다고 보긴 어려울 듯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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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밥c 16-12-09 11:40
   
먼저 문헌상으로

고구려의 경우
멸망 당시 69만호로 350만이었습니다(중국 당서기록)
백제 멸망 당시 24만호(대당평백제국비명)




  백제의 인구수에 대해서 금석문(대당평백제국비문)을 예로 드셨는데,

 사실 그 금석문에는 인구수가 적혀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인구수는 얼마로 적혀있는가를 보면, 24만호 620만명이라고 적혀있죠.


, 백제 멸망시의 인구는 자료에 따라 달리 기재되어 다소 혼란스러운 편인데, 그중 비교적 주목되는 자료로서는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당나라가 백제 땅에 5개의 도독부를 설치할 당시 37주(州), 250현(縣)에 모두 24만호(戶), 620만 명이 살았다고 적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제의 인구와 사회구조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60715&cid=40942&categoryId=33375



 그렇다면 정사인 당서는 백제의 가구수을 얼마로 적었는지를 보면, 76만호입니다.

  모두 37군(郡), 2백성(城)에 호구(戶口)는 76만이었다.

 http://egloos.zum.com/snakeoil/v/816800 (구당서 , 동이열전 , 백제전 , 본문번호 8번문단중)

 
 그렇다면 삼국유사에는 얼마로 나와있을까요.

  백제말 76만호입니다.

, 당나라 현경 5년(660), 곧 의자왕 재위 20년에 신라의 김유신이 소정방과 함께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백제국은 전에 5부가 있어 37군 2백여 성 76만 호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09635&cid=49243&categoryId=49243
     
그만혀 16-12-09 12:32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의 백제 호구수를 인정하지 않고있습니다. 76만호나 되었다면 의직과 계백이 3만명도 안되는 군사를 이끌고 외적을 막으러 갔을리가 없습니다.
 여러 사서에 적혀있기는 하지만 76만호면 백제가 멸망전 당시에도 20만 가량의 군사를 낼수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옳은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대당평백제국비문에 620만명이라 적혀있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24만호라는 것을 인용해오면서 620만명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럼 한호에 대략 26명이나 있게 되는데.. 노예제 사회에서도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게다가 8세기 초 호당 인구수를 보여주는 신라촌락문서에서 한호당 4.5~5.2라고 이미 밝혀진지 오래인 것으로 보아 대당평백제국비문을 따르되 인구수를 따르지 않은겁니다
          
그만혀 16-12-09 12:41
   
백제에 200여개의 성이 있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 성안에서 출토되는 주거지는 만단위를 넘기지 못합니다.. 근 10년간 백제의 또다른 중심지가 예산-서산-당진, 익산지역으로 밝혀져서 많은 고고학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거기서 수만에 다다르는 주거지가 발견되지는 못했습니다.
 76만호라고한다면 최소 350만~400만이었다는겁니다. 모든 성에 사람이 살았다고 해도 한 서에 최소 1~2만의 사람이 상시거주했었어야하는데 그러한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큰도시로 추정되는 일부지역뿐입니다.. 게다가 200여개의 성이라해도 전시에만 사용되고, 제사용으로 사용되는 소규모성들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성당 인구는 2만이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분석한 유적들로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24만호 140~150만설을 따르고 있는 입장이구요. 그보다 더 낮았을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흑요석 16-12-09 11:54
   
고구려 멸망 전 신라의 인구가 최소 500만이라고요? ㅡㅡ;;;
     
그만혀 16-12-09 12:47
   
군사로 보았을시 그정도는 됩니다.. 한호당 1명을 차출하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것은 조선 후기(17세기. 임란이후)에나 정착된 제도입니다. 조선 전기만해도 2~3호의 편호에서 1명의 정을 두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심지어 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초까지도 편호 징병제를 따르고 있었는데, 900년 전에는 그것보다 더 군사를 뽑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1/20을 최대 징병이라 보는 것이구요.
고구려 멸망전 당시 20만군사가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500만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흑요석님께서 20만군사가 사실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500만이 되긴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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