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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4 00:23
[세계사] 영국판 태조 이성계, 사자심왕 리처드 1세.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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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역사사 최고의 용장이자 영국 역사상 믿을 수 없는 전적의 최강 인강병기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이다.

리처드 1세는 왕이였지만 항상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부하들과 함께 몸을 사리지 않고 맹렬히 싸웠는데 이슬람측 최고의 명장이었던 살라딘의 기세등등한 군대도 리처드 1세가 나타나기만 하면 허무하게 무너졌다.

말도 안 되는 숫적 열세로 무쌍을 찍고 그 담대함은 고려의 척준경을 떠올리게 만든달까. 심지어 살았단 시기도 비슷하다.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용맹하고 그 전투력이 대단했는지 리처드가 말을 타고 싸우다 말이 화살에 맞아 리처드가 낙마하자

벌떡 일어나 칼 하나 쥐고 이슬람 병사들을 썰어버렸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살라딘은 비록 적대 국가의 왕이었지만 질 좋은 말 두 필을 부하를 통해 리처드에게 전해준다..

리처드와 살라딘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사신이나 편지를 통해서 교류했다고 한다. 리처드와 살라딘은 서로를 향해 가장 훌륭한 군주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1191년에 있었던 케사레아 전투에선 리처드가 이끄는 프랑크 군의 후방, 그런데 살라딘이 매복시켜놓은 투르크군이 후방에 있던 부르고뉴 공작의 병력을 공격했다.

후방에 있던 아군이 처참하게 매복당해 죽어나가는 걸 알아채자마자 리처드는 "이런 이교도 놈들!!! 거기 가만히 있거라

내 지금 말을 타고 달려가서 너희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깨부시겠다!!!!!"라고 고함치며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투루크군들을 박살을 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용맹했던 투르크군들을 기가 질려버렸고 혼비백산하다가 도망칠 뿐이었다.



「그것을 본 리처드는 당장 구조에 나섰다. 그러고는 벼락같은 고함을 치며 투르크군에게로 달려들어 좌우에서 그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투르크군은 우물쭈물할 틈도 없이 옛날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마카의 얼굴을 보고 사방천지로 도망친 것처럼 리처드 왕의 얼굴을 보자 혼비백산, 머리 없는 투르크군의 시체 몇 구를 우리 손에 남겨놓고 산꼭대기까지 줄행랑쳤다. - 《편력기》」



리처드 1세의 초인적인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르수프 전투-.





「아군이 혼란에 빠진 것을 알자 리처드 왕은 말에 박차를 가해 속도 한번 늦추지 않고 날듯이 구호기사단까지 도착해 원조 부대로 데리고 간 부하들을 그곳에 풀어놓았다. 그러고는 투르크군을 밀치고 나아가 담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앞에서 적들은 양옆으로 픽픽 쓰러져갔다. 그렇게 그는 홀로 맹렬하게 투르크군을 밀어붙이며 적을 쓰러트렸고 그의 칼 끝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쪽을 공격하든 그는 자신을 위한 공간을 널찍이 확보한 가운데 사방으로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가 마치 낫으로 곡식을 베듯 적병의 머리를 계속 내려치며 가증스런 종족을 분쇄해나가자, 자기 동료들의 죽어가는 모습에 놀란 적병들은 전보다 더 넓은 공간을 그에게 만들어주었다.


(중략)

위풍당당한 키프로스 말 위에 앉아 있던 리처드 왕은 자신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언덕으로 올라가 투르크 군을 만나는 족족 요절을 냈다. 적군들이 그의 앞에서 쓰러지면 투구들도 함께 쨍그랑거렸고,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그의 칼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이날 그의 공격이 얼마나 맹렬했던지 투르크 군은 곧 불가항력적인 그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군에게 무조건 길을 내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3번의 전투가 더 치뤄졌는데 살라딘은 온힘을 다해 맞서 싸웠지만 전세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십자군은 700명의 사상을 냈고 살라딘의 군사는 7천 명이 전사하는 대패를 당했다.

편력기에 따르면 살라딘이 총공세를 한 번 더 펼쳤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리처드는 단 15명의 부하만을 거느리고

적들에게 돌격했고 적들의 본거지로 밀어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파 전투-




1192년 살라딘은 야파 오새를 침공하는데

이때 십자군이 얼마나 맹렬하게 저항했는데 무슬림 역사가들마저 감동을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을 떠나려 했던 리처드는 야파가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에 그분의 도움으로 내 할 일을 끝내리라"라고 소리치며 군대를 소집해

야파로 달려갔다고 한다.

당시 야파에는 소수의 기독교 병력이 수비 중이었고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이때 리처드와 그의 군사들은 함선에 타고있었는데 수비대가 있던 요새에 접근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슬림 군사들의 함선 소리의 수많은 깃발 때문에 구조 요청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수비대가 항복을 구걸하기로 마음 먹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일 때 사제 한 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리처드의 함선까지 헤엄쳐 갔고

영국군이 사제를 갑판으로 끌어올리자 사제는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한다.

"왕이시여! 우리 병사들은 지금 전하의 구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저 도살자들의 칼날에

쓰러져가고 있나이다. 마치 도살을 기다리는 양들처럼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있습니다. 수비대는 전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한

그 자리에서 죽고 말 것입니다!."

이에 리처드가 노하여 소리쳤는데 가히 짧고 명확하다.

"당치도 않다!!!."


사제를 통해 수비대의 구조가 절실하다는 것을 안 리처드는 전속력으로 야파 요새로 돌진하는데

심지어 배가 정박하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어 자신이 평소에 휘두르는 그 유명한 덴마크 도끼를 휘두르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무슬림 병사들을 닥치는대로 찍고 베어버렸다고 한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무슬림 군대는 순식간에 와홰되어 버리고 야파 해안가는 영국군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선박용 신발만 신은 채 겨우 8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야파 요새 안에 있던 무슬림 병사들을 모조리 격파했다.

전투 직후 살라딘이 보낸 의전관 아부 바르크가 도착하는데 그를 향해 리처드가 웃으며 물었다고 한다

"하하, 당신들의 그 전능하신 술탄은 어째 내 모습만 보고도 도망치신 거요? 세상에 나는 갑옷은 고사하고 싸울 준비도 없이 
선박용 신말만 신고 있었는데 말이오? 대체 살라딘은 왜 동망을 갔던 거요?"


과장 안 하고 이때 리처드는 단 3필의 말을 이끌고 공격을 감행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건 기독교 쪽 역사가, 그리고 무슬림 쪽 역사가

모두 동일하게 인정하는 사실이다. 

야파 요새가 리처드의 공격에 허무하게 빼앗기는 걸 봄 무슬림 역사가는 리처드를 보고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살라딘은 6만 2천명의 병사들로 끝내 야파 요새를 점령하지 못 했고 고작 리처드 1세 한 명의 공격으로 야파 요새를 도로 빼앗긴다.

야파에서 크게 패한 살라딘은 8월 5일 새벽에 야퍄를 향해 7천 병력을 이끌고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때 리처드 왕은 겨우 기사 54명, 기마병 15명, 보병 2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게다가 무너진 성벽도 보수하지 못 해 그곳에 목책을 치고 방어를 할 정도로 열세였다.


이 전투 때 리처드 1세의 대한 기록이 모두 후덜덜하다.

「마침내 리처드는 쇠뇌병들을 앞쪽으로 내보내 사라센 기병대를 향해 일제히 화살을 퍼붓도록 했다. 그러자 창병들은 쇠뇌병들이 지나갈수 있도록 자신들이 앉아 있는 사이로 길을 내주었고, 이어서 공격에 박차를 가한 결과 마침내 전투는 적의 궤멸로 막을 내렸다. 퇴각의 순간 리처드는 15명의 말 탄 기사와 함께 돌격해 그 비할 데 없는 용맹함으로 사라센 군을 덮치며 좌우로 칼을 휘둘러 그들의 머리를 쪼개고 사지를 절단냈다.」

도저히 리처드 1세가 이끄는 영국군을 몰아낼 수 없었던 살라딘의 투르크군은 결국 퇴각을 결정하자

리처드 1세는 그 즉시 15명의 기마병과 추격을 시작하고 철저한 학살을 시작한다. 

심지어 전투 도중 리처드가 탄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리처드가 낙마하자 무쌍을 찍는 리처드의 모습에 감동한 살라딘은 "저렇게 용감한 용사가 땅바닥에서 싸워서는 안 될 일"이라며 

아랍의 우수한 말 2필을 보내주었고 리처드는 정중히 말들을 받아 싸움을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리처드 1세 이 양반은 사람이 맞나? 할 정도의 기록이 있는데

리처드 1세가 정신 없이 싸우고 있던 도중 살라딘의 투르크군이 후방으로 기습하여 요새를 점령하려 하자

이를 재빠르게 눈치 챈 리처드가 그 즉시 말머리를 돌려 그를 뒤따르던 단 15명의 가사와 함께 적들을 분쇄했다.

거의 혼자서 전투를 쥐락펴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영국측이 과장이나 왜곡을 하여 기록을 한 게 아닌 것이

이는 무슬림측의 편력기 뿐 아니라 살라딘의 서기관이었던 '바하 앗 딘'도 인정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 무쌍을 찍던 

척준경과 이성계가 겹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ㅎㄷㄷ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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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16-12-24 02:15
   
풉~ 동양이나 서양이나...
꼬랑지 내리고 열라게 도망치던 놈들이 말은 많아...

먼저 살라딘...
살라딘의 생애의 대부분은 부족 통합에 힘을 썼습니다. 십자군과의 전쟁은 얼마 안되요.
부족 통합에 몇번의 실패가 있었을뿐, 십자군과의 전쟁에서는 패한 적이 없어요.

특히 예루살렘 포위작전때, 십자군의 대부분은 몸값을 내고 몸만 빠져 나갔고, 가난한 봉건 귀족은 굶어 죽었음.
리처드는 몸값을 내고 빠져 나간 사람중에 하나...


리처드를이성계에 비교 하다니..
리처드는 원균 정도가 적당!! 원균도 억울해 하겠다...
     
Joker 16-12-24 02:24
   
저도 타샤님이 알고 계신 내용과 비슷하게 알고 있습니다.
리처드는 과대평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살라딘은 상당히 과소평가되어 있는 편이죠.
          
TheCosm.. 16-12-24 05:29
   
리처드에 관한 전쟁 기록은, 서구의 기록자들만이 아니라 이슬람의 기록자들도 공통되게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왕국의 몰락과 함께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십자군을 이끌고 선전하였던 리처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미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사상의 과대평가가 아니라, 미화된 이미지나 각색된 이야기가 대중설화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오히려 리처드 왕에 대한 평가는 조금만 제대로 파고들면 매우 극단적입니다. 전쟁이 장수이자 지휘자로서는 최고였지만, 왕으로서는 그 의무를 어느 것하나 온전하게 수행한 것이 없다라고 표현이 공공연하게 언급되닌깐요.

반면 살라딘이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슬람 측의 문제였습니다. 리처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만큼 서구에서도 살라딘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가 비록 비약이 따르더라도 대단했던 인물. 십자군 전쟁 전반에서 이슬람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혈통에 대한 문제, 십자군 전쟁 시기에 보여주었던 융통성있던 사고가 되려 당대의 강경 이슬람 성직자들과는 갈등을 빗었다는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다수 차지하고 있습니다.
     
흑요석 16-12-24 02:34
   
반박하고 싶은 게 있거나 까고 싶은 게 있으시면 좀 논리적으로 하셔야죠;;

제가 국내 사이트 중 네이버랑 가생이를 제일 많이 애용하는데 (가생이를 그만큼 좋아하고 애용함)

가생이에서, 특히 동아게는 역사적 해외 인물에겐 좀 과도하게 부정적이고 배타적이더군요.

제가 리처드 1세가 이성계보다 뛰어나다고 한 적도 없고, 반대로 이성계를 깍아내린 적도 없고 (본인은 이성계를 세종대왕과 함께 역대 조선의 군주 중 가장 좋아함)

단순히 영국의 태조 이성계라고 비교한 건데 풉풉 거리시면서 비꼬시는 게 참 ㅡㅡ

살라딘이 대단한 인물임은 저도 역사책을 많이 읽어본 바 잘 아는 사실이고

그 위대하고 존경받았던 살라딘이 아낌 없이 칭송한 게 리처드 1세였습니다.

그리고 그냥 리처드 1세가 싫어서 밑도끝도 없이 까시는 건지 살라딘이 너무나도 좋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패한 전쟁 있습니다 ㅡㅡ;;; 왜 없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

살라딘은 아주 뛰어난 용장이었지만 패한 적은 당연히 있어요. 인터넷만 뒤져봐도 나오는데 무슨 살라딘이 십자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무슨 리처드를 원균이랑 비교해도 원균이 억울해 한다뇨? ㄷㄷ 조선 역사상 최악의 졸장으로 평가받는 원균을;;

이슬람측 기록에도 리처드 1세가 대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리처드가 풉풉 소리 들을만한 인물인가요 객관적으로?

제가 지금까지 동아게에 (잡게 포함) 글을 올리고 댓글들을 보며 느낀 건데 특히 서양에 관한 글들이라면 본인은 언급하지도 않았던 동양 국가 (특히 우리나라)를 언급하며 우리와 비교하면 별 거 아니다, 또는 ~시대까지만 해도 진짜 수준 낮았다 등등

서양 관련 글만 올리면 병적으로 동양과 비교하며 깎아내리기 바쁨. 심지어 잡게에서였나? 당나라 (서양은 아니지만 어쨌든 외국)의 전통 의상 관련 글을 올렸더니 어느 미친넘은 다짜고짜 "어쩌라는 건지?" 라고 댓글을 달던데, 진짜 할 말이 없더군요.

앞으로는 그냥 동양권 국가들, 특히 역대 한민족 국가들만 올려야겠음. 그러면 침을 튀기며 대단하다, 멋지다 등등의 댓글만 달리니 분위기는 좋더군요.

본 글은, 리처드 1세의 놀라웠던 전투 기록을 모아서 올린 거고, 이슬람측 기록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객관적인 그의 업적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저 리처드 1세의 대단했던 전투력을 마치 태조 이성계와 같다고 한 것 뿐이지

그 누구도 깎아내린 적도 없고요.
     
자기자신 16-12-24 02:38
   
근거가지고 하시는게 어떨렸지요 반대로 영국인이 근거없이 우리나라 조선태조이성계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면 좋나요?
     
그노스 16-12-24 03:24
   
흑요석님께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역사를 충실히 올려 주시는 가생이의 몇 안되는 분이신데 비아냥 거리실 것 까지야 있나요.

이성계는 일시적이지만 고구려 시대의 요동성까지 수복했고, 리처드는 가장 중요한 목표인 예루살렘을 결국 수복 못했으니 개인적으로 그들을 동급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리처드가 원균 수준이라...
음...원균이 뭐했더라.

리처드가 예루살렘 공략 실패 후 귀국길에 오르다가 사이가 안좋았던 오스트리아공 레오폴트 5세에게 사로잡혀 유폐되었고 하인리히 6세에게 넘겨져 15만 마르크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대사건이 있었지만, 님말씀처럼 예루살렘 공략때 리처드가 몸값을 내고 풀려난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살라딘이 서구사에서 저평가된 인물이 맞고, 요즘 그에 대한 서구의 재평가 움직임이 타당하다고 보지만, 살라딘이 패배한 적이 없다는 것은 옳은 사실이 아닙니다.
1177년 11월 25일에 벌어졌던 유명한 몽기사르(Montgisard) 전투에서 보두앵 4세가 불과 수천을 이끌고 살라딘의 대군을 물리쳤는데, 살라딘은 대병력 중의 무려 9할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공격하는 측에게 일반적으로 불리하다는 공성전이 아니라 회전을 벌이다가 당한 패배였습니다.

참고로 살라딘이 그 당시의 일반적인 기독교인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관대한 인물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도 수틀리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카이로에서 시아파 반대자들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하틴 전투에서 나온 대량의 기독교 포로들을 냉혹하게 학살했습니다.
          
TheCosm.. 16-12-24 05:42
   
둘을 마냥 비교하기는 애매하지만, 리처드 1세는 본 국에서 수백km떨어진 문화/식생/환경이 전혀 판이한 세계로 원정을 떠난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이 몇 차예 걸쳐 이루어지고, 그만큼 많은 것들이 알려졌었다고 해도 그 만큼 먼 거리로 원정을 떠나는 것은 전쟁사에서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흑요석 님이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을 빗대어 표현하신 것 같고, 성을 공략하러 간다는(갔었다는) 부분적인 사실만을 갖고 많은 분들이 상황이 전혀 판이한 두 인물을 비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살리딘의 학살에 관하여서는, 비록 몇 차례의 대규모 학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를 기준으로 볼 때'에 매우 관대한 인물이라는 평가입니다. 살라딘은 자신의 군대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라도, 상대의 항복 요청이 있을 시 상당히 자주 응하였고. 오히려 이러한 점때문에 십자군이 시간을 벌 때에 살라딘에게 거짓 항복 요청을 반복하여 이용했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정적, 항복을 거부하거나 자신을 모욕한 자에 대해서는 살라딘만 아니라 그 어느 인물도 풀어주는 경우는 없었고, 하틴 전투의 경우. 먼저 살라딘을 욕보였던 르노와 이를 감싸던 왕이자 지휘자인 뤼지냥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틴 전투에 참전한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을 방위하는 주요 병력이었던 만큼, 왕국을 무너트리는 데에 있어 이들을 풀어주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노스 16-12-24 07:49
   
네, 사실 대다수가 찬성했던 예루살렘 공략도 리처드 스스로가 합리적으로 반대했다는 점에서 그 당시 정세와 아군-적군의 역량을 냉철히 판단했던 그를 높이 평가합니다.

저도 발제글에 대한 타샤님의 댓글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 것이지만 제 짧은 논평이 부족하다고 보셔서 굳이 이성계와 리처드를 더 논해야 한다면,

이성계의 경우에 그 당시 요동이 고려의 안방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분명 쉽지만은 않았던 원정이었던 것이 맞고(본국으로부터의 보급도 끊김), 리처드는 상대적으로 장거리 원정이었지만 그 당시 제해권을 장악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게서 보급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리처드는 국왕으로서 전 영국군을 통솔할 권한과 함께, 프랑스군과 원정지에 남아있던 십자군 잔여 세력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성계는 장군으로서 요동 지역을 거의 고려군의 역량만을 가지고 공략하려고 했던만큼, 저는 이성계를 높이 평가합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다양한 적들(북원의 나하추, 홍건적, 왜구, 여진족)과 싸워 대승을 거두기도 했고, 자신의 지지파를 철저히 끌어모으고, 반대파도 포용하려 노력했으며, 혁명적인 전제개혁으로 민생안정에 주력한 이성계.

용맹함을 매력으로 많은 이들이 따랐으나 그의 특유의 오만함으로 인해 여기 저기 불필요한 적을 만들다가 한때 같은 편이었던 자에게 군주의 신분으로 사로잡혀 국민 세금으로 15만 마르크의 몸값까지 지불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적과 싸우기 바쁘다가 말년에는 약속대로 다시 성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다른 전투에서 전사한 리처드.
(참고로 15만 마르크의 가치란, 잉글랜드 연수입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고, 몇년 뒤 4차 십자군때 33500 명의 병력을 수송하고 1년간 9000 필 이상의 말을 먹일 비용으로 8만 5천 마르크가 계산된 것을 보시면...)

장군의 신분으로 장군답게 싸우다가 왕답게 죽은 이성계

왕의 신분으로 장군답게 싸우다가 장군답게(?) 죽은 리처드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제 생각과는 별도로 개개인의 견해를 존중합니다.

살라딘의 경우에 말씀드렸듯이 그는 당대의 십자군보다 '비교도 안되게 관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단 통속적인 견해처럼 살라딘이 학살과 거리가 멀은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하틴 전투의 경우 그 책임은 십자군에게 있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정설이므로 저도 평소 공감합니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틴 전투에 참전한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을 방위하는 주요 병력이었던 만큼, 왕국을 무너트리는 데에 있어 이들을 풀어주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에 공감하지만, 주요 지휘관들은 그렇다쳐도 나머지는 노예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학살을 했지요.
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각이 만약 학살을 정당화할 근거가 된다면, 이슬람에 대한 십자군의 학살들도 정당화 되어야겠지요.
그 동안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긴 했지만, 십자군의 기존 목표가 이슬람 세력을 예루살렘 주변부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었으니까요.
애당초 십자군이 성지로 오지 않았다면 모두에게 좋았겠지만...

전 어느 세력의 학살이 옳으냐 그르냐를 말씀드렸던 것이 아니라, 양 진영 모두에 학살이 있었다는 팩트를 말씀드렸던 겁니다.
                    
TheCosm.. 16-12-24 08:28
   
저도 그노스 님의 말씀처럼, 어느 쪽의 우열이나 옳고 그름 등을 다루기 위해 글을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상당히 동의하면서, 동시에 처음 본 글을 발제하신 흑요석 님의 생각이 다른 분들에게 그 이상으로 해석되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리처드나 이성계나 두 사람 모두 한 시대에 보기 드물만큼 전쟁터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무용이라는 면에서 빗대어 표현한 것이, 두 인물을 비교하는 형태로 잘못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습니다. 특히 위에서처럼 극단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내뱉는 분들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였고 말이죠.

학살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그노스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1차 십자군 전쟁 당시 안티오크에서 도시민들을 학살한 십자군의 행태를 시작으로 하든, 본격적인 십자군 이전에 대규모로 성지를 향해가던 무지한 양민을 학살한 이슬람의 행태를 시작으로 하든. 십자군 전쟁에서 어느 쪽도 학살을 하였다는 것에선 자유로울 수가 없고,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TheCosm.. 16-12-24 05:24
   
전반적으로 십자군 전쟁사를 완전무지하게 몰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서 참담합니다.
살라딘의 생애에서 전반부는 부족통합. 정확히는 십자군에 대항하는 단결된 이슬람 세력의 결집, 후반부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반복한 십자군과의 전쟁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양 쪽 다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살라딘이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도 패배한 적이 있었고, 자신이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휘하에서 자잘하게 벌여진 무수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전술적인 패배를 경험한 적은 많습니다.

또한 리처드가 예루살렘 포위작전 때 몸값을 내고 빠져나갔다니, 애초에 리처드는 예루살렘 함락 이후, 이를 수복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사람인데. 예루살렘 탈출할 때 돈을 냈다는 이야기는 시간순서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예루살렘 왕국 붕괴 때와 그 이후 리차드가 포함된 십자군 참전을 혼동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이런 기본적인 사실배경조차 완벽하리만치 무지하면서, 아는 체 평가하고 낮잡아 다루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댓글을 작성하신 건지, 생각을 갖고 작성하신건지부터 의문스럽습니다.

게다가 원균이라니, 우리나라 장수를 높게 평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타국의 장수나 왕을 이런 식으로 폄하하다니. 이런 극단적이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역사를 편협하게 다루는 것은 지극히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양해야할 행위입니다.

역사를 무엇때문에 보시는 것입니까? 타국을 폄하하고 자국을 올려세우기 위한 자기만족, 자기위안용 역사인겁니까? 정말 참혹하기 그지없네요.
sonicyouth 16-12-24 07:46
   
알기로는 인성이 쓰레기로 알고 있어요. 노르망디귀족들중에 자기에게 반대하던 귀족들 죽이고 그 처와딸을 강/간하고 창녀로도 팔고,영국왕이면서 영어는 한마디도 못해서 평생 영국땅 밟아본게 3번이라던가 그렇고.... 그것도 세금 뜯으러 갔다고 하더군요. 단지 싸움 잘하는 왕일뿐 그마저도 알고보면 뻥이 좀 있죠.
타샤 16-12-24 11:12
   
사자왕 리처드의 생애에 대해 알아 볼까요?

우선 왕위 등극... 아버지를 이기고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는 글쎄요. 이방원에게 양위한건 맞지만 패했다고 보기엔 좀 그렇죠?

치국 리처드는 잉글랜드 왕이지만, 놀만디 공의 후예로 잉글랜드에는 별로 산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잉글랜드 경영엔 거의 무관심했죠. 오죽하면 리처드의 유해는 (분리 되어 안장) 프랑스 땅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영어 한마디도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프랑스어를 썼죠.
(제가 늘상 말하던 정복자나 왕이 한국인이면 그게 한국사냐... 라고 묻는말 있죠? 리처드는 프랑스인에 가깝습니다. 그럼 잉글랜드 역사가 프랑스 역사가 될까요?)

또한 십자군 나간답시고 매관 매직까지 해댄걸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 런던도 팔 수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런 인물을 이성계와 비교합니까?

이성계의 집이 일본(혹은 만주 혹은 중원)이고,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하면서 한국을 점령하고 매관 매직하고 한성까지 넘길 수 있는 그런 인물인가요?

사자왕이라는 별칭은 그의 외모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물론 용맹함을 노래하는 서사시도 적진 않습니다만, 별칭을 획득한 시기로 볼때 아버지와 싸울때의 용맹함이겠지요.(리처드 왕의 외모를 평할때 사자갈기와 같은 금빛 금발에 장대한 키... 체구.. 로 표현합니다.)


살라딘과의 전쟁... 키프로스 점령이야 뭐 먼 섬이니까 대규모 원정대가 점령하면 끝입니다. 우리나라도 자주 대마도 정벌을 했었고... 그게 일본을 점령한건 아니잖습니까?
살라딘은 포로들에 대해 관용을 많이 베푼 인물이지만 리처드는 달랐죠.
매관 매직까지 하던 그 리처드는 점령에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포로에 대해서는 매관 매직을 하던 경험을 살려 몸값을 받고 팔았고, 몸값이 없으면 죽였습니다.

사실 이런 십자군의 만행 덕에 수니파(비교적 관용적이지 않은)가 탄생했다고 하니.. 오늘날 IS 는 리처드왕이 심어놓은 씨앗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그도 그런 몸값의 욕심에 포로가 되었고, 그 몸값을 대느라 또다시 그가 방문한적이 거의 없는 잉글랜드 국민만 착취 당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원균도 억울해 하지 않겠습니까?

칠천량 해전(원균이 대패하고 도망친 그 해전) 에서 조차 원균에게 패한 왜군이 없을것 같습니까?
거기서 도망쳤으니 한두명 정도의 왜군은 물리쳤을겁니다. 그래야 도망치죠!
따라서 그런 조그마한걸 과장하면 원균도 이순신 못지않은 명장이 될겁니다.
리처드왕 쪽에 편협된 서사시 몇구를 가져와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 같아 댓글을 단겁니다.

사실 풉~ 소리도 아깝죠.
그리고 이런 비아냥의 대상은 흑요석님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편중된 내용에 대한 비아냥이죠.
단지 흑요석님은 그걸 인용해 온것 아닙니까? 흑요석님이 직접 보고 평가한것도 아닌데, 왜 글쓴이에 대한 비아냥으로 생각하시는지?
     
첼파 16-12-25 00:54
   
댓글달면 글 못지우나요?
영국 왕실에서 존왕 이후로 존이라는 이름을 안쓰는 이유를 모르시나보네요.
다른 왕이름은 2세 3세 있어두 존이라는 이름은 오직 한명이거든요
그 이유가 존왕이 존나 무능해서 인건데 그거 말구두 읽다보니 너무 터무니 없는 말이 많네요
웃다 갑니다 ㅋㅋㅋ
타샤 16-12-24 11:34
   
제 경우 그렇지만. 리처드왕에 대한 호감은 아마도 로빈훗이나 흑기사 같은 그 당시 소설에서 기인된게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그 소설들 조차 사실을 호도하는게 있죠.
뭐 소설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존왕이 리처드의 부재를 틈타 반란을 일으킨건 소설에서도 자주 나오고요. 소설에서는 악의 축에 속합니다.
그리고 존왕의 학정과 리처드의 선정 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이건 천국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싶어요.

천국에 가본적 없으니, 천국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거 말입니다.
사실 리처드는 잉글랜드에서 정치란걸 한적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 존 대신 리처드가 오면 잘할거다.. 라는 막연한 기대감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삭제된 역사가 있죠.

잉글랜드의 셔우드 숲 도적이 탄생한건(로빈훗과 그 일당들...) 오직 리처드왕이 자신의 십자군 원정비를 마련하느라 매관 매직했던 것, 세금을 과하게 부과한것  말입니다.

오히려 존이 더 선정에 가깝고 리처드가 학정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잉글랜드를 망가뜨리고 갔다가, 마지막에 완전히 잉글랜드를 도산시켜가며(몸값을 내야 하니) 돌아온게 리처드왕입니다.


이런 왕을 어떻게 이성계와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말로 IMF를 이겨냈더니... 국민들의 사치 때문에 망가진 국가를 일으켜 세운 새누리당... 이라는 역사책을 만들려는 국정 교과서 팀과 뭐가 다릅니까?
TheCosm.. 16-12-24 12:51
   
위의 타샤 님께서 리처드에 대한 역사를 지극히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게다가 중세 유럽에 대한 이해는 물론 십자군 전쟁 배경과 전반적인 지식에서 미흡하시다는 것 역시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 잉글랜드. 사실 중세만 아니라 이후에도 영어를 못하는 잉글랜드 왕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앙주/플랜테저넷 왕가, 튜더 왕가 등에서 영어를 아예 못하거나 유창하게 말못하는 왕은 몇 번이나 있었죠. 당시 중세 왕가의 계승과 혈통 상에 따라 출생하고 자란 지역과 대치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는데. 자국어를 못한다고 비난하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이지, 당 대에는 큰 흠이 될 수 없었습니다.(무엇보다 프랑스어가 영어보다 귀족과 왕가에서 더 널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리처드의 십자군에 대한 열의가 지나치고, 본래부터 왕으로서 제대로된 통치도 못하였다는 건 사실입니다. 워낙 유명하거든요. 매관매직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흑요석 님이 올리신 글이 리처드와 이성계를 비교하는 글이었습니까? 게다가 글 내용 전반이 전투와 전쟁에 관련된 무용인데. 이러한 전장에서의 무용을 두고 견주어봄직한 인물로 언급된 것에는 하등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비교처럼 받아들이시고 글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분쟁으로만 몰고가시는 타샤 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사자왕이라는 별칭은 없습니다. '사자심왕'입니다. 그의 용모를 두고 사자왕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사자와 같은 용기(마음)을 가졌다고하여 라이언하트. 우리 말로 사자심왕이라 부른 것입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잘못알려진 '사자왕'이라는 별칭과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걸 더하셔서 껴맞추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키프로스는 이슬람 세력권이 아니었습니다. 키프로스의 영주는 기존 영주와 예루살렘 왕국을 잃고 도주한 뤼지냥로 몇 차례 바뀌었을 뿐. 십자군 원정에서 주요 정복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엉뚱한 글과 지식을 보셨길래 여기서 키프로스가 나온 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포로와 학살, 인신매매는 당 대에 리처드만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이 이루어진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리처드가 민간인을 대규모로 학살하였다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리처드의 원정 경로는 대체로 옛 예루살렘 왕국의 빼앗긴 요새와 성을 다시 공략하는 탈환전이었고, 이 와중에 이슬람 포로들을 살해하거나 인신매매한 것은 사실이나 이전 십자군 원정처럼 양적인 면에서 동등할 만큼 학살을 저지르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살라딘과는 자주 협상과 편지를 주고 받았고, 포로들을 학살하더라도 살라딘 군이 포로의 몸값 지급을 미루고 군을 재정비하려하였기에 더 이상 몸값을 기다릴 수 없어 학살한 경우가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학살했던 예입니다.

그리고 수니파... 아니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이상한 정보로 이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슬람 세계가 분열되어 갈라진 것은 십자군의 여파도 분명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후계문제에서 출발한 것은 아주 약간의 상식만 있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비교적 관용적이지 않은? 도대체 얼마나 엉터리로 배우셨고 생각없이 들으셨으면 수니파의 성격을 이렇게 단정지으십니까? 수니파는 이슬람 세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종파입니다. 말 그대로 '대다수'입니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종파란 말입니다. 도대체... 참... 한심하다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리처드에 대한 기록이 불과 서사시 몇 줄...소설...? 정말 타샤 님은 역사에 대해서 전혀 완벽하게 무지를 뛰어넘어 망상의 영역까지 날아가신 것 같아서 정말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란하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리처드의 대한 기록은 당시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였던 서기들과 문장관 등이 남긴 것과 무엇보다! '역사 편찬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이슬람 세계만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뛰어난 역사가로 알려진 '이븐 할둔'이 남긴 기록을 포함한 당대의 이슬람 기록관들의 기록을 포함하여 전해지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에 대한 사실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참...

리처드 왕에 대한 미화나 설화들이 많이 남은 건 말씀하신 부분대로인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로 남아서 전해진 게 아닙니다. 역사와 별개로, 당 대에 그러한 설화와 민담이 있었던 것 뿐입니다.

리처드가 왕으로서 최악으로 평가받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런 겉핧기 식의 평가를 내리는 과정에서 타샤 님이 참고하신 것들은 하나같이 어린애들 동화나 인터넷에 나도는 출처없는 글들과 타샤님 본인의 망상에서 기인하는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일 뿐입니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이 글은 아무리 봐도 전장에서의 무용이 주된 초점입니다. 무용이라는 측면에서조차 빗대어 표현한 걸 거부하신다면 애초에 이 글을 읽지 마셨어야 했습니다.

타샤 님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나 국정교과서의 저열함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허위와 과장과 오도된 걸 기반으로 아무렇게나 막 써내린 자신만의 소설을 맹신하는 저열함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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