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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7 00:16
[한국사] 얼척없는 임란시 조선의 쌀 생산량
 글쓴이 : 힐러리
조회 : 4,260  

밑에 보니 무뇌 하나가 임란시 조선의 쌀 생산량을 적어도3000~3500만석이라는 판타지를 써놨는데
임란 당시 조선의 인구를 보통 700~1000만으로 보는데

일제 시대 조선의 인구는 2천만정도다
기술이 발전된 당시 쌀 생산량이 1500만석 정도다

1922년 세계 쌀 생산량 조사 <인도 2억 5천만석으로 최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쌀 생산량은 6억3천162만5천석인데
인도가 2억5000만석
중국이 1억8000만석
일본이     5518만석 
조선이     1480만석
대만이       484만석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40900209202032&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22-04-09&officeId=00020&pageNo=2&printNo=589&publishType=00020

참고로 조선의 1홉은 일본 1홉의 3/1 수준이다
일본식 홉은 180mL 1되는 1.8L  한말은 18L 한석은 180L
조선의 홉은 대략 58mL 1되는 5.8L 한석은 87L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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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0 17-01-07 00:38
   
헛소리말고 역사의 진실을 바로 보기바랍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경지면적은, 159만 헥타아르로, 400만 헥타아르의 조선에 40%에 머물럿습니다.

일본이 조선이 생산력을 따라잡은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입니다.

1811년 150만 헥타아르에 해당하는 칸토평야 개발로 일본의 경지면적이 310만 헥타아르로 늘어났습니다.

반면, 조선의 경작면적은 여전히 400만 헥타아르를 넘었습니다.

따라서 메이지유신 초기에도 여전히 조선의 생산력이 일본보다 높았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생산력을 따라잡은 시기는,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이후이고,
합성 비료가 대량 합성된 이후입니다.

일제시대인 1922년 자료를 들고 와봐야 헛발질 하는 겁니다.
     
힐러리 17-01-07 00:45
   
임란이후 300년 이상 지난 1922년 중국의 쌀 생산량이 1억8천만석 정도인데 1600년 조선의 쌀 생산량이 3천만석이네, 6천만석 생산력을 가지게 됐네 한다면 할 말 없음
참고로 한반도 70%가 산지인데 참...
          
바람따라0 17-01-07 00:48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경지면적인 159만 헥타아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요.
당시 조선의 경지면적은 400만 헥타아르고,

이것을 부정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요.

합성 비료가 생산되고, 농업기술이 발단되기전, 일본의 땅의 거의
슬모없었다는 것이오.
               
힐러리 17-01-07 00:54
   
100여년전 자료보다 400년전 자료를 더 신봉하는 무뇌한테 내가 뭔 소리를 하긋냐
알려줘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저능아는 걸러야지 별수 있겠노?^^
                    
바람따라0 17-01-07 01:01
   
ㅎㅎㅎ 정말 구제 불능 무뇌로구만 ^^

1811년 뻘과 늪이었던 가토평야 150만헥타이르 개발,
메이지 유신이후 홋카이도 개발.
그리고 부족한 지력을 보충하는 한선비료의 등장이후,
간신히 한반도의 생산력을 다라잡은 일본이,

일제 강점기이후, 늘리 생산력을,
일본의 역사적 능력이가 견강부회 하는 것이 제정신인가?

아무리 네가 무뇌아지만 똑똑히 들어,

일본은 메이지 유신전까지.
한국과 비교해 역사적 소국이었어.

그리고 일시적으로 경지면적을 늘렸지만,
방사능 터지면서, 간토평야 날아가고,
다시 원래 소국으로 복귀하고 있는 거지.

ㅎㅎㅎ 알아들었냐?
힐러리 17-01-07 01:06
   
바람따라 이 무뇌 정박아 인증하냐?
대가리가 있음 쫌만 생각해 봐라 무뇌야 ㅋ
조선시대 쌀 생산량이 3000~3500만석이면 260~300만 톤이다
6천만석 생산 능력이면 522만톤^^
당시 인구는 700~1000만이고

1년전인 2015년 한국 인구 5천만에 쌀 생산량이 430만톤여 이 돌대가리야
뭔말인지 알긋써? ㅋ
지금 쌀 남아돌아서 골치 아픈거 알지?
하...
참...
바보야 이제 이해되냐? ㅉㅉ
     
볼텍스 17-01-07 01:12
   
전체 내용과는 별개로 이 내용의 비교는 잘못되었네요.
과거에는 쌀의 생산이 가장 중요하고 국토중 농사가되는 곳은 모두 재배를 해야 했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쌀 생산에 그렇게 높은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고 있구요.
현재인 2015년에 430만 톤이 생산최대여력인건 아닙니다.
     
바람따라0 17-01-07 01:12
   
힐러리/ ㅎㅎㅎ 역시 무뇌인증이구만.

2015년 한국 경지면적은 167만 헥타아르에 불과하단다.
헥타아르당 2.57톤 생산이지.

반면 조선시대의 경우 남북한 온존한 토지에 400만 헥타아르 경작지란다.

그러면 헥타아르당, 0.65톤이 되는 거지.
조선시대 작물 생산성이 4배 낮다는것인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ㅎㅎㅎ 수준하고는^^
꼬마러브 17-01-07 01:12
   
일본이 농지면적과 인구 (오류 있다면 지적 환영)

日本の農地
 930年(平安末期)…『和名類聚抄』‥85万ヘクタール。
 鎌倉時代から室町時代にかけて二毛作が普及して、食糧不足が緩和されて餓死が減少した。
 1450年(室町中期)…『捨芥抄』‥94万ヘクタール。
 1600年(江戸初期)…162万ヘクタール。
 1720年(江戸中期)…294万ヘクタール。
 1874年(明治7年)…水田面積、265万ヘクタール。畑面積、190万ヘクタール。合計、455万ヘクタール。
 1912年(大正元年)…558万ヘクタール。
 1926年(昭和元年)…580万ヘクタール。
日本の人口
社会工学研究所(1974年)
1600年    12,273,000
1700年    28,287,200
1750年    31,005,900
1850年    30,714,000
明治13 1880年 36,649,000
明治43 1910年 49,184,000 

에도시대의 최대 번성기였던 18세기를 기준으로 (일본측자료라...일본의 쌀생산량을 최대한 많이 쳐준거임)


18 世紀半ばの平均米生産総量
1640万反 × 1.1石 = 1800万石以下
人口約3000万人の( 60 )%
米以外の主食の比重は( 40 )%
都市居住者の武士や町人…主食は米
農民の人口は,全人口の約80%
쌀 1800만석        1인당 0.6석
잡곡 1200만석    1인당 0.4석
인구 3000만명    1인당 년간 1석을 소비

한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1910년 미곡 생산량

1910년 미곡 생산량 1240만석
잡곡 2000만석
잡곡수입 26만석     
 도합 3266만석 인구 1313만명
쌀 1240 만석        1인당 0.94석
잡곡 2000만석      1인당 1.52석
인구 1313만명      1인당 년간 2.46

즉 에도시대 최절정기였던 18세기 일본과 한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1910년을 비교해보았을 때,
한국이 일본보다 1인당 2.46배 잘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시대가 다르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네요
아래는 제가 예전에 쓴 글입니다
조선과 일본을 같은 18세기 기준으로 쌀생산량 비교

18~19세기면 한반도는 조선후기이고 일본은 에도막부시대인데
당시 조선의 쌀생산량을 측정하기 앞서 탈세전(혹은 은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세의 부과대상에서 부정,불법으로 누락시킨 토지를 말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 탈세전이 조선후기에 가면 성행하게 되어 정확한 쌀생산량을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세종대왕시기의 쌀생산량을 회복하였거나 혹은 기술의 발달로 더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석단위와 조선의 석단위가 다릅니다. 그러나 대충 계산해본 결과
세종대왕 시기 때 대략 2000만석~2500만석을 생산했던 것으로 계산되고
당시 일본은 학자들마다 농지와 인구에 관해 편차가 커 정확히 말할수는 없으나 1700년 기준으로 대략 3000만석 약간 안되게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 北島正元의 논문을 보면
して日本の水田と畑の割合は 6:4 位を維持しています. 1874年以前の日本の農地と人口に対しては研究機関と学者たちごとに偏差が大きくて論難が多いですが 1700年を基準でよく見ましょう.
1700年の農地面積は 282万ha 60%が田だと言ったら水田の面積は 169.2万ha 人口は 28,287,200人, 人口 1人当り農地面積は 0.598反, 江戸時代単位面積当たり米生産量 190kg/反を考慮すれば 0.758石/反
1700年 0.758石/反の米上がり高以後日本でどんな仕事が発生しましょうか? 次のグラフを見ましょう.
 
당시 일본의 1인당 쌀생산량에 세금을 공제하면
에도시대 일본의 백성들은 1년에 1인당 0.228석으로 삶을 연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조신은 1년에 1인당 1석..(조선인들이 중국과일본인에 비해 밥을 세배정도 더 먹은 것도 고려 해야할 듯
당시 조선은 일본과 쌀생산량은 얼추 비슷한데 일본보다 인구가 2분의 1가량 적고 다이묘들간의 전쟁이나 수탈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비추어 보았을 때
에도시대 일반 백성들의 삶은 조선에 비하여 형편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님도 에도시대 역사를 공부했다면 알겠지만 1720년부터 1840년까지 일본에서는 비참한 기근이 연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이것도 고려해야 돼요

 日本歴史にいて惨めな飢饉が 1720年から発生し始めます.
日本学者たちは気象條件が良くなかった. と日本愚民の心をなぐさめるが
「郷村の百姓どもをば死なぬ様に生きぬ様に合点いたして収納」(東照宮上意)の結果,単位面積当たり米生産量が 0.758石/反(税金を控除すれば 0.38石/反 ) 以下に減ると 1840年まで飢饉が連続的に発生するようになる.
1880年 480万トン 明治13 1880年 人口 36,649,000 人 131 kg/1人 0.873石/1人
또한 얼마전 도쿄에서 에도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1만여구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평균 키는 남성이 150센치대 반으로 여성은 그것보다 10cm가량 작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는 고대 일본의 조몬인들보다도 키가 작은 것입니다.
또한 발굴된 1만여구의 인골이 전부 만성적 영양실조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상당수가 일본도에 의해서 살해당하거나 매독으로 사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신매매도 성행했습니다
에도시대의 장녀 이외의 여성은 가족의 빈궁한 삶에 의해서 살해되거나 인신매매로 전국 각지의 유곽에 매춘부로 팔려 나갔습니다.
江戸時代の女性は家族の貧しい生によって殺害されるとか人身売買で全国各地の遊郭に売春婦に売れて行きました.
     
꼬마러브 17-01-07 01:37
   
요약

에도시대 최절정기였던 18세기와 (최~~~대한 많이 쳐줌)
한국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인 1910년을 기준으로

1인당 쌀생산량
일본 - 1인당 1석
조선 - 1인당 2.46석

시대가 다르잖아?라는 반론의 대답

조선과 일본을 같은 1700년을 기준 (세금 공제)

일본 1인당 년간 0.228석
조선 1인당 년간 1석

에도시대 말기 남성의 평균 키 - 154cm - 고대 조몬인보다 작음
에도시대 백성의 7할은 연립 주택 주거 - (한집을 칸막이하여 만든 여러 집) 평균 폭 9자(2.7m) 깊이 2간(3.6m)
- 이런데서 어떻게 살지?
힐러리 17-01-07 01:20
   
바람따라 이 바보 참 교화가 안되네.....ㅋ
지금 5천만 인구 하루 세끼 430만톤인데

인구 5분의1 6분의1로 300만톤 생산이라 ㅋ
너 조선시대 두끼 먹은것은 알고 있냐? ㅋ

남은 쌀 수출이라도 했노? ㅋ
아이구
조선시대 제1수출품이 인삼이 아닌 쌀이었구먼 ㅋ
     
바람따라0 17-01-07 01:24
   
힐러리/ 왜구들이 조선의 쌀사가려고 발악을 했지.

조선은 배짱팅기면서 남아도는 쌀 일본에 팔아주면서, 일본 관리한거고,

조선통신사 올때마다 일본 재정이 휘청이면서 환대한 것도,
조선을 쌀을 사기위한 환심용인거야.

일본이 조선통신사 영접을 그만둔것도,
1811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개간이 끝난 이후지.

야비한 잔대가리 굴려서,
비싼돈 들여 통신사 영접 그만하겠단 거라는 거다.
          
힐러리 17-01-07 01:27
   
하...
그래 넌 그냥 그렇게 알아라
1900년대 중꿔 생산량이 1억 8천만석인데
400년전 조선에서 3000~3500만석 생산했다는 놈한테 뭔 더 할말 있겠노 ㅋ^^
               
바람따라0 17-01-07 01:31
   
ㅎㅎㅎ 가지가지 하는구만.

중국은 남부 일부가 쌀주식이고, 중북부는 밀이 주식이란다.

멀좀 알고 까불어 ^^

그래봐야 비루한 일본의 처참한 역사를 가릴수 없지.

ㅎㅎㅎ
                    
힐러리 17-01-07 01:44
   
그려 내가 잘못햇다 ㅋ
현재 쌀생산 세계 1위가 중국인데 밀가루 타령하는 놈한고 뭔 말 하겟노? ^^ㅋ
진작 패스했어야 했는데 후회되네^^
                         
바람따라0 17-01-07 01:49
   
ㅎㅎㅎ 주제를 알고 까불어.

너희들 패쇄된 일뽕 커뮤니티에서
나대던 거짓 자료를 가지고 어디다 드리미는 거냐?

오늘을 교훈 삼아 진실을 알기 바란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비루한 소국이고,
간토평야의 방사능 오염으로,
일시적으로 널어졌던 영토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너희같은 부류가 열심히 빨아봐야.
왜구의 제자리찾기는 막을 수 없지.

ㅎㅎㅎ
               
꼬마러브 17-01-07 01:41
   
본문 글 중...

기술이 발전된 당시 쌀 생산량이 1500만석 정도다 -???

계산해본 결과 1800년 기준 조선의 쌀생산량

2,345만 석(1석=100리터)
Marauder 17-01-07 05:46
   
1200만이라고 버젓이 올려놨는데 무슨 쌀생산량이 3천만?
그노스 17-01-07 07:47
   
일제시대 인구조사와 조선시대 호구조사에 차이가 있는 것이, 전자는 근대식 인구 관련 정보를 파악할 목적이었지만 후자는 조세 징수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조선시대에 조세 회피를 위해 지방 군현과 민간이 호구수를 실제보다 적게 신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즉 지금까지 파악된 조선 인구수가 과소하게 측정되었다고 보여지는 상황에서 학자분들마다 서로 추정 오차가 심한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지도요.

조선시대 식량 생산량을 추정해 볼수 있는 조선 환곡량의 경우 전남대 김재호 교수님에 의하면,

'세조 후반기부터 16세기에는 환곡이 감소해 임진왜란으로 바닥에 이르렀지만 17세기 후반인 숙종 대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여 18세기 초에는 500만석, 18세기 후반에는 최고 수준인 1000만석에 이르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감소하였지만 19세기 중반까지도 800만 석 수준을 유지하였다.'

생산량이 아니라 환곡량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정조의 명에 따라 호조의 모든 사례를 정리하여 1788년에 편찬한 '탁지지(度支志)'의 서문에 당시 1000만 인구가 필요로 하는 식량(5700만석)과 소비량(6000만석)을 비교하고 식량이 부족하여 굶주릴 수밖에 없다고 한 기록으로 보아 그 당시 조선이 받던 인구 압력이 상당했다고 보더군요.
야차 17-01-07 08:44
   
애초에 기록에도 있고 사진으로도 있듯이 구한말 어떤 중인같은 사람이 밥먹는 그릇을 보면 지금같은 공기가 아니라 엄청 큰 사발에다 밥을 먹고 기록에서도 조선군이 일본군 염탐을 가서 식량 조사를 했더니 식량이 별로 안되길래 한 며칠있다 가려나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일본한테는 그게 몇주치 식량이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무슨 부정을 하시는지? 조선은 농업을 국가의 기본으로 삼고 농업을 장려해서 일본보다 당연히 1인당 쌀소비량도 많고 기록에서도 봤듯이 차이가 엄청남. 뭐 근대전 국가들이 농업을 장려해서 일본도 그럴수도 있지만 차이는 엄청나다는것 일본인 3~4명이서 먹을걸 조선인 한명이 먹는격이니
eo987 17-01-07 09:55
   
제정신이 아니시네요 ...역시 가입 첫글인것 보니 역갤에서 오신 것 같고
참 정신승리법도 가지가지고 이 위아부님들 ..에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노릇 하긴 그른 님아.. 모두 통게 자체가 일본에서 실시한 것인데
거기에 어째서 조선 도량형과 일본 도량형의 차이가 등장하나요.이건 한글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애에게 시조를 가르치라고 하는 것이니 음..

우선 간단하게 언급하면 메이지 11년인 1879년에(원년제외)에 일본의 미곡 생산량과 논밭의 비율을 언급하면 논이 6.5:밭이3.5에요 그리고 미곡의 생산량이 2500만석에 나머지 밭 생산량이 약1000만석 가량이고 말씀하신 22년이면 이미 일본이 서양화를 추진한지가 50년이상 경과한 경우고 이미 19c후반에 시작된 산업화가  거의 완료된 단계인데 거기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을 대입하다니요? 그리고 어째서 미곡 생산량만이 기준인지도 알수가 없고 식민지 직후
조선의 비율을 보면 논이 3.5:밭이6.5입니다 그리고 미곡 생산량이 1500만석 나머지 밭 수확물이 2300만석 이고요 만약 어느나라가 쌀을 더 많이 생산했냐를 따질려면 기준을 같게 하거나 혹은 어느나라의 식량이 더 풍부했냐를 따질려면 전체 생산량을 비교 해야지요 .
계속 언급하지만 30년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전근대를 놓고 보면 메이지11년하고 조선의
1910년에서는 아직까지도 일본이 조선에 밀린다니까요..생산량에서 약 300~400만석 가량
어차피 정신병 수준이라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못할 테지만
논리? ㅋ 를 전개하는 방식이 전형적인 역갤러네요 지적 능력도 마찬가지고 다짜고짜
욕설부터 에공. 그래도 난잡한 싸움이 되지 앍고 순수하게 뭔가가 궁금하시면
질문을 올려 주세요 그럼 답변을 해드릴수 있으니 ^^

덧붙이면 더군다나 당시 일본이 이미 60년대 현재의 남한만한 훗카이도를 병합하고
한창  개발의 가속화 하면서 급격히 경지면적이 증가할 때인가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알지를 못하고...구만리같네요 앞길이
     
4번째정지 17-01-07 22:05
   
역갤보다 누군가가 새로 아이디 판듯함요. ㅋ
바람노래방 17-01-07 23:16
   
댓글이 양질이네!
킵해야겠구만 ㅎㅎ
바람노래방 17-01-07 23:16
   
댓글이 양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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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9 [한국사] 낙랑古墳群(고분군) 하이시윤 03-18 953
19678 [한국사] 왕광묘와 왕간묘에서 출토된 印章(인장) 하이시윤 03-18 962
19677 [한국사] “夫租薉君(부조예군)”, “夫租長(부조장)”등의 銀… 하이시윤 03-18 941
19676 [한국사] 孝文廟銅鐘(효문묘동종) 하이시윤 03-18 841
19675 [한국사] 秥蟬平山君神祠碑(점선평산군신사비) 하이시윤 03-18 864
19674 [한국사] 춘추 전국 진 서한시대 요수의 위치 (6) 하이시윤 03-14 1236
19673 [한국사] 위만정권ㅡ한 전쟁 당시 발해의 위치 (3) 하이시윤 03-14 1190
19672 [한국사] 후흐호트 방언 위구르 03-11 1124
19671 [기타] 세종대왕 관모와 어진의 유래가 무엇 일까요? (ft. … (4) 조지아나 03-09 1536
19670 [한국사] [영상] 복기대교수가 임둔태수장 관련 논문을 쓴 이… (1) 하이시윤 03-04 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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