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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25 14:44
[일본] 일베의 역사지식 2(편) - 조선 일본의 대외수출비교
 글쓴이 : eo987
조회 : 5,183  

어제에 이어서 제가 게시한 글에 이런 부분도 존재하더군요 물론 시종일관 조선과의 비교기에 
다른 말은 생략할께용~ ^^

https://www.ilbe.com/index.php?_filter=search&mid=ilbe&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
%EC%9D%BC%EB%B3%B8&document_srl=9310791343

tu.jpg

이부분의 연구사는 누구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양동휴교수님께서 
논문을 몇편 내신게 있어서 매우 자세한 수치까지도 나와 있는데요 최근에는
영역을 확대하셔서 "중부유럽 경제사"라는 서적도 발간하시고 ㅋ

기본적으로 흔히 일본이 에도시대 번성했다라는 근거로 내세우는게 2ch에서 전형적으로 
한때 일본의 은수출량은 전세계의 30%가 가까웠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막연하게 와 엄청났구나 하는 것인데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물론 이런 폭발적 생산량에 기저에는 당시 조선에서 유출된 연은분리법이 존재했지요 심지어 실록에서도 국가 기밀 기술로 유지했는데 최근에 일본에 유출되어서 걱정이라다라는...기록이 등장)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외부의 학자군들은 바로 페어뱅크스와 같이 중국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교수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중국은 청나라 들어서면서 그나마 명백을 유지하던 명나라시대의 지폐나 여러 화폐제도들이 모두 쇠퇴하고 거의 silver로 통일되어 유통되는 은본위제 국가로 화폐정책이 퇴행하고 전세계 신대륙및 유럽 일본을 산지로 하는 은을 무지막지하게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블랙홀이었거든요
그리고 게중에는 일본산 은이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경로는 직교역 이전에는
조선의 인삼이나 조선에서 수입하여 중계판매한
중국산 비단의 대가로 조선에서 입수한 은을 청나라와의 무역 화폐로 조선이 사용하여 흘러들어간 경우인데
그 양이 막대해서 그렇고용!!!

본론으로 들어오면 우선 한때 1/3이 아니라 전체 수출량을 우선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1560~1640년에 총 9450ton
1601~1708년에 총 3750ton 
50.jpg



그리고 이 총 생산량중 75%를 바로 지배층들이 중국의 비단을 구입하거나
조선산 인삼을 구매하는데 사용한다라는 ...(일본이 조선산 인삼의 종자를 입수해서 수십년에 걸쳐 시도해서 자국화 한게 18c초반인데요 이 때가 바로 은이 고갈되어서 더이상 결제수단이 없었을때)
정리하면 일본의 총 은수출량은 148년동안 13200ton의 75%인  9900ton 그래서
연간 수출량은  66ton이고 이걸 당시 일본 쌀 시세로 따지면 35만석 조선 도량으로 환산하면 70만석이 되죠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두 지배층이 비단옷을 입거나 몸보신을 위해 조선산 인삼을 구매하는데 사용했다라는 점 ㅋ(여기서는 총생산량대비 수출75%로 생각)

그러면 이제 조선의 대표적인 무역물품인 흔히 이야기하는 고려인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요 이문제는 이철성 교수님이 대청무역사라는 저서에서 상세히 정리해놓신 것이고 이미 책이 출간된지가17년이 된 것인데 
조선에서는 이미 그전부터 대중국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인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지만 그후 점차 자연산 인삼이 고갈되면서 곤란을 겪던 와중에 인공재배에 성공하게 되면서 그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요 이건 왕조실록에서 공식적으로만 확인할수 있는 무역량을 정리한 표에용
(각종 밀무역이나 사무역 기록은 모두 배제)
5_00000.jpg

공식적으로 실록에 기록이 등장하는 1797년부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절정일 당시에는 일년에 공무역에서만 4만근이 수출되는데 연평균으로 따지면 1797~1874년까지 2만근 가량이 되고 여기에 각종 밀무역이나 사무역까지 합산하면 최소 4만~5만근 이라고 교수님께서는 밝히시는데요 이게 당시 가격으로 따지면 
어느정도냐면 
5_00001.jpg

이건 은과 같이 칭량이 가치의 단위가 아니니 계산식이 조금 다른데 조선내에서 홍삼1근이 70석 그러니까 일본석으로 하면 35석이라고 하면 연평균 2만근일때 일본석으로 하면 70만석 그런데 이걸 조선 상인들이 중국에서 판매할때는 이보다 최소 3.5배에서 7배까지 상승하니 중간치로 5배라고 잡으면 무역액만 당시에 무려 조선식으로는 350만석 일본식으로는 175만석 그리고 최대 호황기때는 연간 무려 일본석으로 따지면 
350만석의 수출이 이루어진 금액(어디까지나 공식통계에서만) 일본이 연간35만석일때 ...
그런데 이걸 근거라고 비교하고 있으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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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987 17-01-25 14:47
   
그리고 이 분은 고려시대부터 전국에 건설된 525개 가량의 역참을 중심으로한 교통및 도로망네트워크를 모르시는 것인지... 전국시대때 일본의 교통이 정비가 되었다는 글을 쓰고 있으니. 그 비교대상이 조선인데 무려..에궁
심지어 에도시대에도 고카이도라고 해서 조선과는 비교할수 없는수준의 육로 시스템을..에휴...
     
아스카라스 17-01-25 14:55
   
조선시대엔 도로관리가 잘 안되지않았나요?
게다가 일본은 에도 이후로 관광업이 발달했다던데.. 막부의 전국순회 때문에 성이란 성마다 길을 닦으니 평민들이 여행을 하곤 했다던데말입니다
또 상업이 조선보다 발달한 이유가 봉건제로 인한 다이묘들의 세력 경쟁 때문이라던데
제가알기로 조선은 다같이 잘막고잘살자는 농본국가로서 마을과 도시의 자급자족을 추구하지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런 조선이 오히려 저런 일본보다 교통망이 좋았다니...
          
eo987 17-01-25 15:04
   
음 우선 일본의 경우는 아시는 것 처럼 봉건제 국가라서 기본적으로 이에(국,번)에 속한
각나라의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가 없었거든요 말씀하신 것은 모두 자신이 속한 각 번에서
특별히 허가를 받고 통행증을 발급 받아서 통과를 하는 경우 뿐이 없는데용 에도 말기에 가서는 아무래도 그런 통제들이 조금은 느슨해져서  닛코참배라고 해서 도쿠가와가 묻혀있는 신사를 참배하는 여행길은 일생에 1번정도 허가해준 정도이고 대부분은 역시 강력한 통제 속에서  존재 했으며 그것이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이어져 왔다는게 미야지마 히로시교수님의 중론이고 이분이 도쿄대 명예교수인만큼 이런 입장이 일본 학계의 중론이라고 할수 있겠죵. 그리고 고카이도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의 체제 자체가 적대번들의 반란을 강력히 억제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이라 조선으로 치면 역참제도라 할수있는 코가이도의 연결의 길이나 실제 역참의 수도 불과 조선의 1/3가량 밖에는 안되어 있었고용 ^^
               
아스카라스 17-01-25 15:05
   
제가들은 건 거짓이군요.. 일뽕들이 여행이란 주제를 근거로 '일본이 이만큼 선진적이었다'라는 걸 주장하던데...
조선 역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나요??
                    
eo987 17-01-25 15:16
   
아니요 이 부분은 제가 언급한 미야지마 히로시라고 도쿄대 명예교수이시면서
은퇴후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겠다 결심하셔서 한국으로 이주를 하시고
그 이후 현재까지 십수년째 성균관대에서 학자로 계시는 데요
(한국 학계에서도 매우 입지전적인 분으로 유명하고 심지어 꽤 존경받는)
이분이 2013년에 참여하여 발간하신 "한국 병합을 말하다"의 부분을 보면 이에 대해
상세해요 즉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사회진화적 차이에 대해 이 부분은 마침 제가 소장하고 있는 서적이라 바로 올려드릴께요 스캔을 ㅋ
                         
아스카라스 17-01-25 15:21
   
네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ㅠㅠ
                         
eo987 17-01-25 15:21
   
앗 2011년 ㅋ
eo987 17-01-25 15:10
   
참고로 소문한 제가 주제넘게 조금 이야기를 더 하자면
기본적으로 참근교대제라고 해서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 1년에 절반은 각 번의 영주들이 도쿄에 체류해야 하는 규정인데 이게 연간 인원으로 따지면  전체를 합쳐도 불과 수만명 수준으로 매우 낮아서요 ..더군다나 앞서 말 한 것처럼 애초에 에도 막부가 이런 제도를 시행했던 이유가 바로 물자의 축적을 방지해서 반란을 사전에 미리 예방하고자 했던 것인데  길을 정비하는 걸 방치 해둘리가 없어서 실제로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해운의 발달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용 간단히 야후재팬에 가셔서 고카이도나 당시 이 길의 상태를 보시면 확인해 보실수 있지 않을까해용 ^^
국산아몬드 17-01-26 01:32
   
조선은 700만석 규모로 무역할 때 일본은 70만석이라니. 게다가 밀매같은 비공식 기록까지 포함하면 1400만석이라니 조선은 대단하네요
페닐 17-01-26 11:56
   
조선이 인삼 무역으로 얻은 이익이
영국이 전쟁까지 해가며 아편 팔아 번돈 보다 많았다는 연구도 있음
일본 은도 기술 유출되기 전까지는 조선으로 헐값에 은광석 들고 와서 가공해 간거구...\

조선이 만만한 나라였던  시절은 구한말 밖에 없음
촐라롱콘 17-01-26 14:20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ㅋㅋㅋ

순조시기인 19세기 초반을 기준으로 한다면 조선역관과 조선상인들이
홍삼1근을 청나라상인들에게 넘기는 시세가 도매급 기준으로 은 50냥 수준인데....
(물론 저 정도 시세만 하더라도 중국산 짝퉁, 일본산, 캘리포니아산 인삼에 비하면
엄청난 고가이기는 하지만......)

설령 위의 자료대로 조선산 홍삼1근이 청나라에서 은 350냥~700냥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하더라도....그건 어디까지나 청나라 유통구조 안에서의 매출이기 때문에....
조선의 매출총액이나 이익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괴리가 존재하며~~~

더구나 청나라상인에게 도매급으로 넘기고 받는 홍삼 1근당 평균 은 50냥에는
사신, 상인들의 조선출발에서 귀국까지의 소요된 여비까지 싸잡아 포함된 개념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상당액수는 청나라측에게 지불할 숙소, 음식 및 물품구입비 그리고 기타 잡비
명목으로 도로 청나라측에게 뱉어낼 금액 또한 상당한 비중으로 포함된 개념이다... 그 말씀입니다~~~

또한 홍삼대금으로 받은 매출대금 가운데 조선정부에 낼 세금을 제외한 매출대금의 대부분은
조선상인과 역관들이 조선에다 비싼 마진을 붙여서 되팔 용도의 청나라산(또는 청나라가 외국에서
수입하여 중계무역격으로 조선에 되팔았던 제품까지 포함하여...) 제품구입비로 재투자되었습니다.

19세기를 통틀어 홍삼수출액에 부과하는 세금이 만성적인 세수부족에 시달리던 조선조정의 재정을
보충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는 했지만....

eo님이 언급한 350만석~700만석에 상당하는 수출규모라는 표현은 정말 말도 안되는
과장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위의 논리대로 저 정도 비중이라면.... 유사이래 총 GDP에서 치지하는
국가간 무역비중이 가장 높은 시기인 오늘날의 웬만한 국가의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규모
평균을 능가하는 규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서술에서 보이는 에도시기 일본의 수출에 관한 오류를 지적하자면......

일본의 수출품이 은 밖에는 없는지.... 그리고 일본의 무역상대국이 조선밖에는 없는지....
그리고 일본의 수출창구는 대마도밖에는 없는지...... ㅋㅋㅋ

가장 큰 무역창구인 나가사키는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사쓰마번과 유구는...???
그리고 북방의 마쓰마에번은......???

당장 에도시기 일본이 유럽에 수출한 도자기규모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적 수치상의 규모는 잘 모르겠지만)
그 수출용 도자기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쌌던 포장지 용도였던 우키요에가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은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이고....
     
eo987 17-01-26 19:51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근거도 없고  하여튼 weeaboo들이란 구제불능!!!
뭔가 학술적인 접근보다는 관련 서적 한권 제대로 읽지 않고 인터넷 검색해서
그때그때 기사한줄 혹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맘에 드는 구절만을 인용해서
대응하는 식이니 오류투성이에 늘..에유
그리고 당시 조선 GDP가 5000~6000만석에서 최대일 당시 350만석이 어떻게
현재의 GDP 1500조에서 수출이 600조인데 같은 비중 혹은 더 높을 수가 있는지..

[모르기는 몰라도 위의 논리대로 저 정도 비중이라면.... 유사이래 총 GDP에서 치지하는
국가간 무역비중이 가장 높은 시기인 오늘날의 웬만한 국가의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규모
평균을 능가하는 규모일 것입니다. ]

도자기 문제도 그래요 그 도자기 수출의 경우는 네덜란드와의 연간 규정된 무역량도
그렇지만 전적으로 대체 어느나라로 인해 그런 수출을 할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면서도
이렇게 뻔뻔하게 태연히 이야기를 하는건지 ...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건 알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웃겨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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