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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14 02:08
[한국사] 조선 전기 인구를 너무 크게 보지는 마세요
 글쓴이 : 그만혀
조회 : 2,811  

조선 전기의 인구는 해석에 따라 기존 사료의 2.5~3.5배까지 늘려볼 수 있는데요.
사료를 단순하게 보면 임란직전 인구는 250~300만 사이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250~300만은 군대에 가야하는 사람(1정)의 수 곱하기 4~5(+노비, 왕족, 기타 부역제외자)를 한 수치이기때문에
1정이 차출되는 기준이 2호당 하나이냐, 3호당 하냐이냐에 따라서 인구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세영 교수님 견해)
이세영 교수님의 경우 조선 후기는 1호당 1정, 조선 전기는 3호당 1정이라 주장하시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750~900만(+여진족 출신 백정+공사노비) 사이였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이 견해조차 기존의 학설보다는 인구를 높게 잡는 편)

저의 견해도 이와 유사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1천만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분이 조선 전기는 최소 1500에서 최대 2천만이 넘는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조선 전기 세법과 결당 생산량이 이미 해석이 된 상황인데, 1200만 남짓이라면 몰라도 1500.. 2000만 이었으면 경작지가 너무 모자라게 됩니다.

경작지도 문제이지만 인구대비 정(丁)의 수도 문제입니다. 
주장하신 인구의  최저치인 1500만에 10%미만이 왕족, 양반, 면제층이라 가정하겠습니다. 혹여 200만이 빠지게 된다고 쳐도 1300만. 약 260만호의 3분의1을 하면 86만 정이 나오게 됩니다. 2천만 초중반이라고하면 무려 130~140만 정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사료를 해석하면 정인의 수가 40~50만명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130만 정으로 뛸수가 있죠?

130만 정이라는 것은 군대+관인이130만씩이나 됬다는 건데.. 가능한 일입니까? (보인을 주장하실 수도 있는데 조선 전기에는 3호당 1정이기 때문에 부역을 하지 않는 2호 자체가 정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 자체가 보인이게 됩니다 1정을 2호에서 도와주는 것이죠)

1500~2300만의 평균치를 1900만이라 놓고, 임란 직후 인구가 450~500만(거의 최대로 잡은 것)이니까

명종조의 혼란+임란으로 한반도 전체인구의 5분지 4가 없어졌다는 것인데 제가 아는 논문과 사료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네요.

 

참고로 정이란 신라 말(? 백제, 고구려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는 있음)부터 내려오는 제도입니다. 기존학계에서는 고려시대에 체계화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었지만 신라 촌락문서를 해석한 결과 신라에서도 정과 유사한 것이 존재했다.라고 해석이 되었음.

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적정연령의 남자를 모두 군인이나 관에서 노역으로 쓰기에는 숫자가 지나치게 많고 그들을 재우고 먹이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웠음. 그렇기에 생겨난 것이 정이란 것인데, 3호가 한조가 되어 1호의 1명이 군인 혹은 관에서 노역을 감당하고 나머지 2호가 나머지 가족을 부양하는 제도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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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987 17-02-14 08:56
   
1.일단 호에대한 이해가 너무 단선적이라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난감하네요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한 문제가 아닐수 없는데 간단히 인용하면
(정과 호의 편성 비율을 이해도 못하시고... 1정3호라 아니라 3정1호입니다)

"법제호인 경우에는 고려 이래 정수, 소유 전결수 또는 가옥의 규모 등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편호하였는데, 그것은 또한「3丁」·「5丁」을 1호로 하는 등 役種, 신분 및 지역에 따라 상이하였다. 이러한 기준에 의한「호」의 등급은 그 호의 정수, 가산, 가옥의 규모에 따라 대·중·소호로 3분하는 것이 고려시대 이례의 통례였다. 이러한 기준에 의한 호등급의 3분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2.스스로의 주장 자체에 모순이 있으신데요
첫 문장에 "조선 전기의 인구는 해석에 따라 기존 사료의 2.5~3.5배까지 늘려볼 수 있는데요."

이건 당시 조선의 호구파악수의 미약함을 말씀하시면서 정작

"장하신 인구의  최저치인 1500만에 10%미만이 왕족, 양반, 면제층이라 가정하겠습니다. 혹여 200만이 빠지게 된다고 쳐도 1300만. 약 260만호의 3분의1을 하면 86만 정이 나오게 됩니다. 2천만 초중반이라고하면 무려 130~140만 정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사료를 해석하면 정인의 수가 40~50만명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130만 정으로 뛸수가 있죠?"

의 전제는 조선이 호구수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라는 전제입니다.
이 부분은 호구총기의 증가 흐름을 이야기 해야 하는 부분이고

3.조선시대의 토지생산성의 흐름은 제가 이미 정리해 놓았습니다 확인하시고 말씀 부탁드려용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0554&sca=&sfl=wr_name%2C1&stx=eo987&sop=and

4.그리고 이세영교수?님이 기존 학계보다 높게 추정했다라는게 무엇을 근거로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2006년 최초로 발간된 인구학사전에 공식 채택된 임란직전의 인구는 77년의 권태환-신용하의 추정치를
가장 합리적으로 보아 1400만입니다. 더불어 말씀하신 이세영?의 추론 방법은 오히려 77년보다도 후퇴한 추정방식으로 보일정도이고

5.무엇보다 님이 말씀 하시는 그런 방법론의 비과학적성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 자체가
역사인구학이고 그것의 결과를 아신다면 그런 식으로 반박을 하시는 것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에긍

6.기본적인 계산에서부터 오류인데 님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면
임진직전 250만명인데 이것은 1정에x4~5를 한 것이니 총 정수는 넉넉히 50만정이죠?
그런데 1정=2~3호라니 대체 무슨 말씀인지..호 -가- 정 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계세요
eo987 17-02-14 09:05
   
총론으로 들어가면 님 말씀하시는 그 방법론 자체가 제가 계속이야기 하고 있는
단순히 호구수에 x2.5를 행했던 권태환의 방법론과 동일 하거나 오히려 연구론에서는 뒤쳐진 인식과
수행입니다. 무엇보다 님의 주장이 타당했다면 애초 그동안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에도 인구사 토론에서
70~80년대 무시못할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지 않았겠죠 그리고 그에 대한 혹독한 비판도 없었을테고

단순히 무엇인가의 전제 그 근거 자체를 매우 부실하고 집계 방법도 알수없는 사료를 근거로 한다는 것은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단순한 추론이나 추측에 불과하죠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1426년 호구에 기록된 당시 경중의 총 인구는  103,328명입니다
그런데 1467년 당시 도성의 방어를 위해 편성된 농민과 유학호를 제외한 즉 잡색군의 편성대상이었던 한량 복예 공사천예등의  집계만 7만명 이었습니다 무엇이냐하면  이건 학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끝으로 기존 발간되어 있는 손병규교수님의 전 서적과 논문을 일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호적의 편성원이의 이해가 선결되어야 해 보이니
     
Marauder 17-02-14 09:18
   
그런데 외부에서 끌어왔을 수도 있지 않나요?
          
eo987 17-02-14 09:25
   
문제는 알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 문제 자체를..
조선시대 사료를 샅샅히 뒤져 그런 문제들을 확정할 만한 즉 논란이 생길수 없는
사료가 발굴되었다면 애초 지금 이런 이야기도 없었을테고 ^^
eo987 17-02-14 11:32
   
그리고 자꾸 짧은 단문인데도 글 자체에 스스로의 주장에 모순이 너무 쉽게 보이는데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750~900만(+여진족 출신 백정+공사노비) 사이였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이 견해조차 기존의 학설보다는 인구를 높게 잡는 편)
저의 견해도 이와 유사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1천만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와 바로 아래에서는

"임란 직후 인구가 450~500만(거의 최대로 잡은 것)이니까"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라는 말씀은 누구의 이론인지요?
기본적으로 임란시기 전국토가 전쟁터가 된것은 고작 1년 남짓인데
아무리 기존 학계에서 높게 잡아도 100만명선이 아닌지요?

그리고 재차 이야기 하지만 호구총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시고 한번 확인도 안하셨다라는 ..
님  1543년(중종38년)에 기록된 당시 조선의 총 호수는836,669호입니다 즉 님 말씀대로하면
3정1호이고 1가=1정이라고 한다면(반대로 말씀하셨다고 이해를 하죠) 당시 실제 가구수는 x3=250만가구로서 1가=5인이라고 치면  총1250~1300만명이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되지 않는 합리적 추론이겠죠(그래서 77년 연구당시 권태환-신용하는 임진직전 1400만명으로 설정한것이고)  물론 1호=5정으로 할시는 2100만이 될테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750~900만
(+여진족 출신 백정+공사노비) 사이였다고 말하고 계십니다.(이 견해조차 기존의 학설보다는 인구를 높게 잡는 편)
저의 견해도 이와 유사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1천만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밖에 지적할게 많지만 ...대체 무슨 주장을 하고 싶으신 건지 이해가 힘드네요..
     
촐라롱콘 17-02-14 12:15
   
조선의 총호수는 836,669호라고 해놓고 250만 가구는 또 어디서 나온 건지....??
호와 가구가 틀린 개념인가....??
3정 1호는 또 뭐야....?? 그만혀님은 3호 1정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반대로 이해하셨나....??

836,669호면 *5하면 대략 400~450만 인구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거기에다 통계에서 누락된 노비를 비롯한 천민인구가 대략 조선인구 전체의 1/3이었으니
200만쯤 더하고... 전근대시기의 호구-인구조사의 허술함을 가정하여 누락된 호구-인구를
더한다 하더라도 임란 전의 인구가 최대 1,000만 이상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저러나 님 말대로 학계에서 최대 1,400만으로 잡는다면서.....
최대 2,000만이 넘는다는 언급은 그냥 님의 상상에 불과한 숫자인지.....??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줄어든 인구가 100만 밖에 안 된다는 건 도대체 어느 학자가 주장한건지
200~300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인구비율로는 절반까지는 안된다 하더라도
임란의 영향으로 1/3가량 줄어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은데.....

님 주장대로 1,400만~2,000만인구에서 100만밖에 안줄어들었으면
임란후의 그토록 사회전반과 생산력에 걸친 막대한 후유증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지......??

그리고 님은 시대구분이나 좀 제대로 정립하세요!
17세기 숙종시기의 을병대기근 시기도 조선전기라고 하지를 않나....!! 사람 헤깔리게~~~
          
eo987 17-02-14 12:24
   
우선 이분이 어떤분인지는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1078&sca=&sfl=wr_name%2C1&stx=eo987&sop=and


님 3호1정이 아니라 그 반대에요 3정 혹은 5정1호이지

즉 정인(가구에서 노역을 담당할수 있는 남자 성인층)이 자연호 1구당 1인이라고 치면
1호=3~5정을 하나로 합친 법적호편성이니 자연히 836,669호x5정=418만정
1정=1가구
1가구=5~5.2명 을 하면 산술적으로  2091~2170만이 나오는 것이죠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사료를 통한 추정 이상이하도 아니라서
연구라고 할수 없지만.

에유~인간이고 싶은건지..아닌건지
               
촐라롱콘 17-02-14 15:41
   
[[1호 = 3~5정을 하나로 합친 법적호개념이니 자연히 836,669호*5정=418만정
1정=1가구
1가구=5~5.2명 을 하면 산술적으로 2091~2170만이 나오는 것이죠]]

이건 또 무슨 기상천외한 논리인지.....???

그럼 중종38년인 1543년 조선의 총호수 836,669호를 근거로 한다면.....
단순계산한 산술적인 인구만 2,000만 이상이고
자료에 잡히지 않거나 누락된 호구수까지 감안하면 인구가 최소 3,000만 이상에
달한다는 논리인지.....??

이 무슨......  증말 어처구니가 없네~~~~
                    
eo987 17-02-14 16:05
   
사람노릇을 좀...그리고 그 어처구니없는 방식을
호적대장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정과 호의 편성도 반대로 이해한체
말한게 바로 글쓴이님 ^^
                    
4번째정지 17-02-15 04:09
   
이긍... ㅉㅉㅉㅉ
디펜서 17-02-14 12:30
   
5천만, 서울인구 1천만...

이런데 서울시내 규모를 봐봐....

조선시대 한양 규모대비해서, 무슨 1천5백만 같은 소리를 하는지 ㅋㅋㅋ
     
eo987 17-02-14 12:32
   
친구오셨네요 촐라님 같은 weeaboo님들 ^^
          
디펜서 17-02-14 12:33
   
평균 수명만 생각해도 1천 5백만 같은 소리는 나오기 힘들지...

신분제도로 결혼하기도 힘든 시기에 무슨...
추가로, 질병에도 약하고...먹거리도 부족하고..
               
eo987 17-02-14 12:35
   
그렇군요..에고
글쓴이분은 호수를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촐라님은 계속 인간다운 행동을 안하시려고 하고
이분은 대단한 논리를 퍼시는 분이고...너무 무섭네요 혼자서 상대하기에 ㅋ
에이그
참..멀티플하네요 정말
디펜서 17-02-14 12:38
   
쌀이 부족하던 시절에 통일벼로 밥맛은 없고, 수확량만 늘리던 시기도 있었구만...

조선시대때 무슨 수확으로 먹고 산다고...

식량 자급이 되야 인구도 늘어나는거지...1500만이면 지금의 1/3 수준인데...


우리나라 현재 5천만 : 조선시대 1500만이라면
중국 현재 13억5천 : 조선시대의 중국은 ? 4억이었단 말인가?
     
eo987 17-02-14 12:43
   
님 조선시대 중국 인구는 4억은 아니지만 3억3~5천만 맞아요...그리고
님이 하시는 행동이 무슨 행위인지 이해도 안되고
          
디펜서 17-02-14 12:54
   
4억은 아니지만 3억3천~5천...

숫자차이가 20%다 무슨소리 하는겨?

그냥 억넘어가면 비슷해 보이지?
               
eo987 17-02-14 12:57
   
아니요 그렇진 않은데..힝 ㅠ.ㅠ
                    
디펜서 17-02-14 13:07
   
중국 13억 5천 => 3억 3천
지금의 25%

우리 5천만 x 25% = 1250만
이게 최대치임.

문제는 3억 3천이 조선초기때 중국인구수인지에 대한 자료는 없음.
                         
eo987 17-02-14 13:09
   
청나라때에요 ^^
보통 명나라 말기는 1억5천만명쯤으로 추산하고
                         
디펜서 17-02-14 13:19
   
조선 개국시기는 600~700만 (명나라 말기 기준)
조선 초기는 800~900만  (명인구에서 청인구로 가는 중간값기준)
조선 중기는 1200~1400만 (청나라 기준)
초선 후기는 1500~1800만 (전쟁이후는 무조건 번식 증대된다)

이런 계산이 나오네...
                         
eo987 17-02-14 13:24
   
헉 ~ 석학을 몰라뵙고...제가
                         
디펜서 17-02-14 13:29
   
모~ 비꼬는건가?
                         
eo987 17-02-14 13:33
   
아닌데요 -_-
                         
하얀돌 17-02-14 17:23
   
우리 7천만임
북한은 내다 버린거임??
2천만이면 숫자차이가 40프로임!!
                         
디펜서 17-02-14 18:24
   
7천만으로 다른쪽에 정정한 글 있어요~~!!!!!!

다른글에(바로 윗글) 늦게 작성된글에 가서 보세요.
                         
디펜서 17-02-14 18:27
   
하얀돌님아 다른글에 쓴글이에요~~~~ 보정해서..

남북한 인구수를 합산해서 조금 보정을 하면,

조선 개국시기는 800만 (명나라 말기 기준)
조선 초기는 1000만  (명인구에서 청인구로 가는 중간값기준)
조선 중기는 1800만 (완벽하게 청나라기준)
조선 후기는 1500만 (전후기근등으로)
조선 말기는 2000만 (전쟁전 원래보다 더 번식하려고함)

일본 자료좀 달라구요~
일본 자료를 알면 중간 보정하면 더 확실하게 비교될텐데..
          
촐라롱콘 17-02-14 16:03
   
임란이전인 조선전기인 16세기 인구비교하는데....

200년 이상 지난 조선후기인 18세기 말과 동시대인

청나라 건륭제 시기인구인 3억3천~3억 5천만을 대입하는 건 또 무슨 논리인지.....??

동시대인 명나라 인구를 대입한다면 모를까....
               
디펜서 17-02-14 19:43
   
조선 개국시기는 명나라 비교했어요.
디펜서 17-02-14 12:42
   
호환 마마가 얼마나 무서운지 이해를 못하지...

조선시대때는 굶어서 죽고, 병걸려서 죽고, 징병나가서 죽고, 맞아서 죽고
그래서 평균수명 자체가 차원이 달라...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5세 전후라고 해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이하지..

지금 인구를 5천만이라고 치면 2500만 나온다.
이게 평균수명만 대입해도 2500만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보이겠지...

거기에 신분제도 등이 있어~
이런거 저런거 다 따져서 1500만명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개념조차 없지?
     
eo987 17-02-14 12:43
   
죄송합니당 ^^
          
디펜서 17-02-14 12:57
   
난 800~900만 본다.

지금의 1/5 정도가 도어야,

그당시 쌀생산량 대비 밥공기 크기(지금의 2배)에 비래한 인구수가 말이된다.
밥공기는 지금의 2배인데, 인구는 1/5이 되어야, 생산량이 절반이면 말이되거덩

참고로 임란때 100만이상 죽지 않았다고 본다.
문제는 핵심 노동력이 많이 상실 된거겠지...

전투할수 있는 사람 = 건장한 핵심 노동력
               
eo987 17-02-14 13:00
   
대단하시네요 정말.... 높은 식견에 감탄을 금할수 없어요...
                    
디펜서 17-02-14 13:04
   
비꼬는것 같네~~~ ???

인구수는 임란 이후 800만 정도에서 부터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
생존율이 낮아지면 오히려 갑자기 늘어나거덩...

그런데, 그 뒤에 재난이나 식량이 많아지면
급속하게 더 불어난다.

후기때는 1200~1300만까지 늘어났을것으로 본다.

ㅋㅋㅋ

인구수가 뭐가 그리 중헌디?
                         
eo987 17-02-14 13:06
   
그렇군요..사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대체 왜 그 기라성같은 교수분들이
십수년 연구를 위해 노력하시는지 저도 정말 바보같이 보이네요 그분들이 이제는
참 이런 손쉬운 방법을 두고 ...참 어서 알려드려야지 ㅋ
                         
디펜서 17-02-14 13:11
   
그 기라성 같은 교수분들은 정확한 근거를 만들어야 하니
당근 십수년을 연구해야지...ㅎ

근데, 중요한건 때놈이던, 짱게던, 로스케던
동시대의 인간은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는것이지...

조선전기 시대의

당시 중국인구수 대비 현재인구수
당시 일본인구수 대비 현재인구수
당시 러시아인구수 대비 현재인구수

각나라별 당시 생산량 대비 인구수
이런것들 비교해보면 되잖아.
                         
eo987 17-02-14 13:13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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