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인구는 해석에 따라 기존 사료의 2.5~3.5배까지 늘려볼 수 있는데요.
사료를 단순하게 보면 임란직전 인구는 250~300만 사이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250~300만은 군대에 가야하는 사람(1정)의 수 곱하기 4~5(+노비, 왕족, 기타 부역제외자)를 한 수치이기때문에
1정이 차출되는 기준이 2호당 하나이냐, 3호당 하냐이냐에 따라서 인구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세영 교수님 견해)
이세영 교수님의 경우 조선 후기는 1호당 1정, 조선 전기는 3호당 1정이라 주장하시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750~900만(+여진족 출신 백정+공사노비) 사이였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이 견해조차 기존의 학설보다는 인구를 높게 잡는 편)
저의 견해도 이와 유사해서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1천만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분이 조선 전기는 최소 1500에서 최대 2천만이 넘는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조선 전기 세법과 결당 생산량이 이미 해석이 된 상황인데, 1200만 남짓이라면 몰라도 1500.. 2000만 이었으면 경작지가 너무 모자라게 됩니다.
경작지도 문제이지만 인구대비 정(丁)의 수도 문제입니다.
주장하신 인구의 최저치인 1500만에 10%미만이 왕족, 양반, 면제층이라 가정하겠습니다. 혹여 200만이 빠지게 된다고 쳐도 1300만. 약 260만호의 3분의1을 하면 86만 정이 나오게 됩니다. 2천만 초중반이라고하면 무려 130~140만 정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사료를 해석하면 정인의 수가 40~50만명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130만 정으로 뛸수가 있죠?
130만 정이라는 것은 군대+관인이130만씩이나 됬다는 건데.. 가능한 일입니까? (보인을 주장하실 수도 있는데 조선 전기에는 3호당 1정이기 때문에 부역을 하지 않는 2호 자체가 정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 자체가 보인이게 됩니다 1정을 2호에서 도와주는 것이죠)
1500~2300만의 평균치를 1900만이라 놓고, 임란 직후 인구가 450~500만(거의 최대로 잡은 것)이니까
명종조의 혼란+임란으로 한반도 전체인구의 5분지 4가 없어졌다는 것인데 제가 아는 논문과 사료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네요.
참고로 정이란 신라 말(? 백제, 고구려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는 있음)부터 내려오는 제도입니다. 기존학계에서는 고려시대에 체계화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었지만 신라 촌락문서를 해석한 결과 신라에서도 정과 유사한 것이 존재했다.라고 해석이 되었음.
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적정연령의 남자를 모두 군인이나 관에서 노역으로 쓰기에는 숫자가 지나치게 많고 그들을 재우고 먹이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웠음. 그렇기에 생겨난 것이 정이란 것인데, 3호가 한조가 되어 1호의 1명이 군인 혹은 관에서 노역을 감당하고 나머지 2호가 나머지 가족을 부양하는 제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