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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16 11:49
[한국사] 구한말 러시아에 한국 정복의도가 있었나요?
 글쓴이 : Marauder
조회 : 2,676  

그렇다는 말을 본거같은데... 아예 식민지화 하려고 했었나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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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7-02-16 12:07
   
당시 니콜라이 황제의 편지 내용?에 보면

조선을 먹을 생각은 없었던 걸로 알아요, 하지만 조선을 일본에 내줄 생각도 없었던 걸로 앎.
     
Marauder 17-02-16 14:16
   
러시아 로젠남작 편지보고... 그것때문에 여러개 찾아보게 됬네요. 결론은 밑에분들이 설명해준 그대로지만요.
G스마트SM 17-02-16 12:20
   
음.
식민지화가 아니라.  조선의 북부.  압록강 지역의 벌목이나 기타 이귄등 경제적 이익을 원한걸로 기억하지만.
전국토와 국민의 식민지화는  당시  러시아가 열강중 하나지만 흠좀. .
버섹 17-02-16 12:57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에 욕심을 낸 건 맞는데,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어서 정책이 왔다갔다 한 걸로 보여집니다.

러시아의 견제로 한반도를 독차지하지 못하게 된 일본이 러시아에 한반도를 39도선으로 반으로 나눠서 남쪽은 일본이 지배하고, 북쪽은 러시아가 지배하자고 제안했지만 러시아가 거절합니다.
한데 일본이 영국, 미국과 손잡고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자
당시 전쟁준비 미흡 즉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되기 직전이어서 병사와 군수물자 이동이 용이치 않았고, 국내 문제가 혼란했던
러시아가 오히려 일본의 제안을 역제안하며 시간을 끕니다.
한반도를 반으로 나눠 반반씩 갖자고 일본에 제안했지만 영국,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이 전쟁할 생각을 굳히고 오히려 반대합니다.
그 결과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한 것이죠...
버섹 17-02-16 13:12
   
우리나라 남북분단의 원인은 쳐죽일 일본때문입니다.

이 놈들은 임진왜란 때도 명나라에 조선을 4도씩 남과 북을 나눠 갖자고 제안했었고,
구한말 땐 러시아에 39도선을 기준으로 반씩 나눠서 갖자고 제안했었죠...

그리고 태평양전쟁에서 패해 항복하기 열흘 전 일본 도고 외상은 러시아 외상에게 전문을 보내 자신들은 곧 항복 할 거다. 미국이 한반도를 차지하게 될 것인데, 러시아도 군대를 보내 한반도의 북쪽을 차지 하라고 알립니다.
그 결과 러시아가 빠르게 남하해 한반도의 북쪽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나눠진 남북이 1950년 전쟁을 하게 되자 수상이 된 도고는 하늘이 우리 일본을 버리지 않았다며 신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분단시켜 놓고 지금 독도, 위안부 문제로 하고 있는 꼬라지 보면 처죽일 놈들이지요...
     
꾸엑꾸엑 17-02-16 14:08
   
그 도고라는 자.. 지옥불에 몸 데우고 있을 듯
     
촐라롱콘 17-02-16 15:44
   
소련은 이미 독일의 패배가 기정사실화되던 시점인 1945년 2월 미,영 정상들과 회동한
얄타회담을 통해서.... 독일의 항복선언(실제로는 1945년 5월)  이후 3개월 이내에
대일전에 참전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입니다.

따라서 소련은 이후 1941년에 맺었던 일소중립조약 연장불가를 선언했으며
(반대로 일본은 일소중립조약의 연장에 목을 맨 반면에...)
독일이 항복한 이후 유럽전선의 소련군을 극동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하여....
1945년 8월이 되면 무려 150만이 넘는 소련군이 소만국경일대를 포함한
극동시베리아지역에 집결한 상태였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자체적인 판단으로.. 1941년에 맺은(만 5년기한) 일소중립조약을 소련측이
연장불가선언을 하기는 했지만, 만 5년이 되는 1946년 봄까지는 소련이 군사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일본의 소망이 담긴 낙관론이 팽배했었기 때문에......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할 시점에도 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일본이 항복하기 열흘전이면 1945년 8월 5일경이 되는데
이 당시는 일본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연합군측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기 이전이고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8월 9일 자정을 기해 소련군 만주-한반도 침입개시,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과정을 거친 다음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게 됩니다.

만약 일본외상이 8월 5일경에 소련측에게 만주와 한반도를 접수하라고 알렸다고 하더라도
불과 만 4~5일도 안된 8월 9일에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시일이 촉박하며....

무엇보다 일소개전 이후 만주와 한반도북부의 일본군이 그토록 무방비상태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무려 60만에 달하는 만주,한반도북부지역의 일본군과 일본민간인이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로 끌려가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고외상은 종전 이후 전범으로 죽을때까지 교도소에 있다가 병사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할 즈음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사경을 헤매던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신빙성은 없습니다.

이와 더불어 넷상에 떠도는 대표적인 유언비어 하나가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인 아베가
남겼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던데... 이것도 또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4번째정지 17-02-17 06:43
   
이긍...
촐라롱콘 17-02-16 16:01
   
러시아는 심지어 아관파천 직후 조선에서의 러시아의 입지가 일본에 비해서 우월해진 시기(1896년경)에
조차도.....

때마침 니콜라이2세의 대관식 당시 경축사절로 러시아를 방문한 일본 정계와 군부의 거물 야마가타 아리모토와
러시아외상과의 비밀회담을 통해 조선은 러-일간의 세력균형지역 또는 완충지역으로 암묵적인 비밀합의를
본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니콜라이2세 대관식 당시 조선사절대표는 민영환, 청나라사절대표는 이홍장)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통틀어 러시아의 극동에서의 최우선적인 세력확장 지역은 만주였습니다.
뤼순을 조차하여 해군기지를 세우고, 만주에 건설중인 동청철도를 통해서 이를 시베리아철도와 연결시키고
만주에서의 러시아의 우월적 권익을 장악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였습니다.

조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일본은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충돌했었던 영국의 개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이미 이전의 거문도사건의 사례와 같이)...
적어도 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고 만주가 완전히 장악되기 이전에는 조선은 일본세력과의 완충지대로나마
유지시키는 것이 당시 러시아의 밑그림이었습니다.
toriny97 17-02-16 18:34
   
지난 얘기지만, 일본에 식민지를 안당하려면 일본보다 강하면 그랬었겠죠.. 즉 당시 일본군사력을 상회하는 군사력을 갖었다면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근데, 1904년 기준 대한제국 총 국가예산이 5천만원이었는데, 당시 일본은 군사비만 19억엔이었습니다. 이미 비교자체가 의미없는 수준이었죠.. 설령 러시아가 먹진 않았다 하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성국 정도 위치로 남았겠죠.. 러시아식 의복과 생활풍습, 건축양식, 음식등이 지금도 남아있을거같네요.
     
버섹 17-02-16 19:22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요?
군사력이 약한 국가는 망해야 한다는 건가요?
침략한 일본이 잘 못한 거지, 침략당한 대한제국은 힘이 없으니 망할 수 밖에 없었다니요...

님의 말대로라면 지금 어느나라든 미국한테 침략당해도 당연한 게 되는 겁니다.

일본이 당시 대한제국보다 군사비를 많이 투입할 수 있었던 건 청일 전쟁의 승리로 받은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 덕분이고, 러일전쟁을 위해 사력을 다해 군비확장을 하던 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수치만 가지고 단순비교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대한제국은 국가예산에 버금가는 액수의 내탕금이 있었고, 그것으로 군비에 많이 투입하기도 했으니까요.
     
4번째정지 17-02-17 06:49
   
흠... 역사공부를 어찌하면 이리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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