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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16 15:29
[기타] 임진왜란 잡생각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395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입니다.

일제가 이순신 장군을 신격화 시켰던 이유가,

이순신 장군이 아니면 조선이 졌을것이다라고 조선인 머리에 심어놓기 위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대단했던건 맞지만,

조선의 수군 질이 왜군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배에 장착할수 있는 화포숫자에서부터 차이는 엄청나고,

전투 교리도 조선이 포격전 위주라면, 왜군은 백병전 위주의 낡아빠진것.

배도 조선배가 더 뛰어났고.

해상전은 이순신 장군의 개인기량도 있겠지만, 수군의 질 자체가 너무 달랐다는것.


예전 한국 TV 드라마에서 파란색 포졸옷에 물수자 적은것 걸쳐놓고 수군이라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왜군이 남긴 기록보다 후세 한국인이 생각하는 조선군이 더 형편 없다는 것.

한국에선 조선군에 대해 역사 왜곡수준으로 비하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평화로웠던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조선군이 마냥 평화롭게 지낸건 아닙니다.

조선초부터 만주지역을 힘으로 찍어누르던게 조선군 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이 승승장구 했던 대상은 농사짓다 갑자기 징집되서 무기를 잡고 나온 지금으로 치면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총포소리에 놀랐다는걸 봐서도 짐작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화약무기를 고려시대부터 독자생산해서 사용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여러가지 종류의 화약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인이면 화약무기가 낯설수가 없죠.

당시 이순신이나 원균같은 조선 장수들의 이력에서만 봐도 북쪽에서 여진과의 전투경험을 갖고 있는걸 알수있습니다.


임진왜란초 조선에 치명적인 패배는 신립이 정예군을 말아먹은 탄금대 전투입니다.

탄금대 패배하자마자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튀어버립니다.

그전까지 패했던게 지방에 있던 민방위 성격의 병력이었다면, 신립이 말아먹은건 정예병입니다.

신립 장군이 용맹했을지는 모르지만 몇천 몇만을 지휘할 인물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수의 진을치고 말이 제대로 달릴수 없는지형에서 기병돌격을 감행해서 조선 정예군을 깨끗이 아작냄.

선조가 도망갔다고 선조를 까지만,

합리적인 선택 이었습니다.

왜군에게 잡혀서 조선이 왜에게 항복하고 점령당하는걸 바라지 않고서는 도망가는게 당연함.


조선군에 명나라 원군이 합쳐지면서 왜군의 진격은 주춤하게되죠.

하지만, 조선군을 도와 평양성 전투에서 이기고는 왜군을 깔보며 기고만장했던 명군은 벽제관에서 왜군에게 당하고는 제대로 싸우려고 하질않았습니다.

명군이 도움이 된건 사실이지만, 명군이 참전한 이후라도 전투는 조선군과 의병의 역할이 여전히 컸습니다.

어쨌든 히데요시가 죽고 왜군이 철수하며,

왜군은 엄청난 병력, 물자의 희생을 치루고도 아무 전략적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도공과 문화재 약탈이 성과라면 성과지만 그럴목적으로 침공한게 아니니 명백한 왜의 패배입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참전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병력을 보면 임진왜란때 모리 요시나리의 4번대에서 1만명에 약간 못미치는 병력을 차출해서 참가했다고 기록되있지만, 세키가하라 전투당시에는 1500명 정도의 병력밖에 차출하지 못해 미쓰나리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왜에게도 임진왜란의 피해는 가볍지 않았다는거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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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7-02-16 15:57
   
일본이 수많은 문화재와 기술자들을 끌고 감으로서

명목상 조선이 승리하긴 했지만 손해는 조선이 다 봤죠.

조선 영토에서 일어난 전쟁이기에 죄 없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임 당하고 국토는 초토화 되고 건물은 불타고 그 아까운

기술자들 뺏기고 문화재 뺏기고..

일본이 손해 본 건 조선 땅에서 죽은 일본군들 정도?

일본 전체 인구에는 거의 피해가 없었고

오히려 이후 일본은 인구가 급증합니다.

게다가 조선에서 끌고 온 기술자들로

이득이란 이득은 다 봤고요. 조선의 상처뿐인 승리인 셈이죠.

일본 도자기가 유명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는..
     
대쥬신1054 17-02-16 18:32
   
고추 감자 담배가 임난때들어오지않나요?
아물론고추가 그이전부터있었다는 설은있어요.하나고추가 퍼지게된건임난때문인지라.
이로인해 김치라는 획기적제품이만들어지죠.
일본이 미개해서 고추를활용하지못했다?  그건아니죠. 오뎅단무지 스시 라면등 한국과는 비교조차불가능한식문화를지닌게일본인데요.

임난은  손해본전쟁이아니라엄청난흑자를본  전쟁이었어요
          
흑요석 17-02-16 18:41
   
감자는 훨씬 후에 중국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김치는 그전부터 있었습니다.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게 없군요.

뭘 알고 떠드십니까? 댓글들 보면 가관이네..

일본의 식문화를 무시할 생각은 없으나

어찌 이것들을 한국과 비교해서

비교할 수도 없다는 말을 하시는지?

뭐가 비교조차 불가능하나요????

임란은 당연히 조선 입장에서 뼈아픈 전쟁이었습니다.

왜곡하지 마세요.
karin123 17-02-16 16:03
   
어쨌든 방어는 성공했으니, 승리긴 하지만 조선은 많은 손해를 보았죠...
태양속으로 17-02-16 16:16
   
신립이 형편 없음은 인정하면서
형편 없는 자가 국가의 모든 군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정도로 썩은 선조의 정치는 왜 지적하지 않는 것이죠?
     
mymiky 17-02-16 18:50
   
신립은 당대엔, 형편없다는 평을 듣던 장군이 아닙니다.
당시엔, 명장이란 소리를 듣던 장군이고, 조선인들의 영웅이였습니다.

선조 또한 그동안 여러 전공을 쌓은 신립을 신임했고,
실제로 둘은 사돈 관계입니다.(인빈김씨 아들과 신립딸이 결혼)

썩은 선조의 정치란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 썩은 선조가 이순신을 파격승진 시켜서, 오늘날 이순신이 있는 것이기도 한데요?

솔직히,
선조는 왜란만 없었으면, 성군 소리를 들었을 사람입니다.

요새 트렌트가 광해군 재평가를 하다못해, 되도안한 미화빨이 심한데;;
학계에선 오히려 선조대나, 인조의 후반 정치를 재평가 해야한다는게 중론임.
          
구름위하늘 17-02-16 20:26
   
선조에 대해서는 동의 못함.

선조는 신하를 분열 시켜서 왕권을 강화(선조 자체가 명분이 조금 약한 왕이었음)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그 와중에서 특정 신하에 대하여 깝놀 같은 높은 등용과 가차 없는 버림이 교차했습니다.

당파싸움에 휘말려 정치를 못한 것이 아니라, 당파싸움을 애초에 조장한 사람이 선조 였음.
               
mymiky 17-02-16 20:53
   
저는, 선조가 당파싸움에 휘말려, 정치를 못했다고 한적 없습니다만?

님말씀처럼, 당파를 교묘히 조장한 것이 선조였고,

그 결과 최초의 방계혈통 승계자인 선조가 왕권강화에 성공했고,
치세 내도록, 자기 뜻대로 정치를 움직여 나갔습니다.
알고보면, 이분은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고
나중에 등장할 숙종 미리 맛보기? 버젼의 왕이였음  ㅋㅋㅋ

솔직히, 선조의 정치력를
후에 아들 광해군이나 손자 인조가 비할바가 못 됩니다.
이들과 비교하는게 선조의 굴욕임.

조선왕들 중에서, 선조와 중종은
전형적인 능구렁이 스타일의 군주였고
두 사람다 재위 40년을 해먹는데 성공합니다.

영조가 50년, 숙종도 40몇년, 선조와 중종이 뒤를 잇고 있는데,
건국 초기에 세종대왕과 태종 같은 넘사벽은 제외하고 나면,
선조는 s급 정치력을 보여준 왕입니다.

오히려, 사극같은데서 왜란때 왕, 광해군 아빠로만 알려져
이미지가 안 좋아서 그렇지 ㅋㅋㅋ
군주로 볼 때, 선조는 평균이상 레벨임.

하다못해, 왜란때 무능한 군주란 이미지도 좀 과소평가된 면이 있고요.
          
촐라롱콘 17-02-16 20:28
   
mymiky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설령 당시에 선조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 영조,정조치세라 하더라도 무려 15만~20만 대군의 침입 앞에서
큰 타격을 받지않고 국가를 보존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비를 철저히 잘 하자! 국방에 만전을 기하자!.... 말은 쉽습니다만....
100년 이상 전란으로 단련된 일본군들과, 200년 동안 이렇다할 전쟁없이
평화체제속에서 안주해온 조선을 직접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당장 왜란이 일어날 것을 어느정도 감지하고(물론 1~2만 병력규모 정도의 침입으로
예측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 조정에서 무너진 성벽 수리하고, 녹슨 병장기
수선-점검하고, 인원 소집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정도에도
전국 각지에서 원망하고 저항하는 목소리가 워낙 높아 흐지부지된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구름위하늘 17-02-16 20:29
   
신립에 대해서는 상당히 동의 합니다.
바토 17-02-16 16:48
   
한국전쟁도 우리가 승리한전쟁
뭐꼬이떡밥 17-02-16 18:03
   
신립이 형편없는거였습니다.

실책이라 치면.

우선 자신의 주력병력이 곧 조선의 주력병력입니다

그런데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친다는 자체가 뒷일은 신경안쓴다는 아주 무책임한 전술을 쓴다는게 엉터리 이고요

적의 기세가 강하다면 누그러 질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지연책을 썼어야 하는데 그냥 다급하게 싸웠다는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없는게 낫았을 만큼 무능한 장군이라고 봅니다

속칭 애국자로 뽑히는 무다구찌 렌야가 명장으로 보일 정도 입니다
     
스스슥 17-02-16 19:00
   
조선의 주력병력인 신립의 주력을 탄금대 배수의진을 침으로써 다 죽게 했다?
 -당시 신립의 군대는 조선의 주력병력이 아닌 급조병력에 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주력에 해당하는 일부 기마대만 포함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적의 기세가 강하다면 누그러 질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지연책을 썼어야 하는데 그냥 다급하게 싸웠다는점.
 -지연책을 쓸 수만 있다면 쓰는게 당연하겠지만.. 당시 상황이 가능한 상황이었을까요? 신립이 급조병력을 이끌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지연책을 쓸 만한 상황이었을지는?
 
 
개인적으로 저도 신립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능의 대명사 무다구치에 가져다 비교하는 님은 정도를 너무 벗어나는거 같습니다.
          
뭐꼬이떡밥 17-02-16 19:41
   
뭔가 잘못아시는거 같은데요

싸움에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겼을경우 내가 졌을경우.

또는 내가 얼마나 이길것이냐 얼마나 질것이냐.

싸움에 임할것이냐 퇴할것이냐는 그 유명한 손자병법에도 나옵니다 ..

쏱아지는 폭우는 일단 피하는게 상책이란 말입니다 ..

무장적 내가 쎄니까 내가 이 지리를 잘 아니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싸우면.

패배의 책임앞에 너무 쓰라리 결과를 낳게 되고.

그 탄금대 전투로 인하여 선조가 한양을 버린 결과가 되어버린겁니다

신립이 한양 근처나 한양 아래 에 진을 치고 만 있어도

많은 시간을 벌수 있다는 뜻입니다.

님말처럼 급조의 병력으로 급하게 싸워서 이길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

그리 수준높지 않다는 증거죠.
               
mymiky 17-02-16 19:54
   
이길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배수진을 각오로 절박한 심정으로 싸웠는지?
모르지요.. 급조된 병력이라, 탈영병들이 많아서, 할수없이
신립이 최후의 배수진을 치고 싸운거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신립이 한양근처에 진을 치고만 있어도 많은 시간을 벌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믿음으로 한 것인지요?
걍, 님 생각이 그럴 것이다. 뭐 그런겁니까?

한양근처에 어떤 장점이 있어서, 그곳에 진을 치고만 있어도 많은 시간을 벌수 있다는건지? 이해가 잘 되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신립은 왜적이 한양으로 올라오기 전, 충청도 방어선에서 끝내려고 내려간 것인데.
만에하나,, 한양에서 까닥 잘못했으면, 뭐 어찌할려고;;
한양 방어진에도 실패하면, 그때면 진짜 선조가 도망할 시간도 없었을텐데요..
                    
스스슥 17-02-16 20:02
   
흠냐.. 7초 차이로 저와 비슷한 답변을 하셨네요... ^^;;;;
               
스스슥 17-02-16 20:01
   
저는 임진왜란 당시에 있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그저 상황을 보고 추론을 할 뿐입니다.
 
헌데 님께선 모든걸 아시는 듯 써 놓으셨군요...
 
님과 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님은 신립이 "급조의 병력으로 급하게 싸워서 이길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 " 라고 보는거고
 
저는 신립이 "급조된 병력으로라도 일단 싸워야 할 급박한 상황"으로 봤을꺼라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님 말대로 신립이 한양 근처나 한양 아래 에 진을 치고 만 있어도 과연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요? 어떤 근거로 시간을 벌 수 있을꺼라 생각하는지 궁금해 집니다.
 
오히려 한양에서 진치고 시간끌다 박살날 경우엔.. 선조(욕먹어 싼 임금이지만)까지도 왜군에게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걸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mymiky 17-02-16 18:37
   
신립은 당대 명장입니다.
왜란때 패착으로, 생애 마지막 전투인 탄금대의 실책으로
두고두고 까이는 장군이 되어버렸지만-.-;;

당대엔 북방의 여진족 전문이였고, 전공도 뛰어났으며
백성들이 신립이 있으니까 피난도 안 떠날 정도로 존경받던 장군입니다.
무다구치 렌야와 비교를 하다니요? -.-

마지막 결과로 인해, 그 사람의 전 생애가 무가치하다고 평가해버리면 곤란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고,
장수라해서 모든 전투를 다 이길수는 없습니다.
(이순신도 해전은 모르겠지만, 육전이였으면, 또 다르겠죠.. 역사에 이프는 없지만.)

탄금대에 배수진을 왜 쳤는지?는 오늘날까지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신이 늘 잘 쓰던 기병전을 너무 과신했을수도 있고,

왜적의 기세가 강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적의 정보를 얼마나 알았는지도 솔직히 의문입니다;;

신립도 왜적은 처음 경험해봤고, 적들이 어떤 전략을 잘 쓰는지도 몰랐을걸요.
그건, 부산 동래성에서부터 시작해.. 걍. 당대 조선 장수들이 다 그렇지만요.
신립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도 아니였던데다,,
왜인들이라고 얕잡아 본 선입견도 있었을거구요,
     
mymiky 17-02-16 19:04
   
왜란을 제가 평가하자면,,

조선의 뼈아픈 빛좋은 개살수식 승리/
명나라의 대국 체면 세우기/
도요토미의 대삽질/
로또가 터졌구나! 도쿠가와와 누르하치

조선의 경우, 어쨎든 국체와 종묘사직이 보전되었습니다.
명나라의 경우, 어쨎든 대국의 체면은 살렸네요.
도요토미가 제일 크게 말아먹었을뿐더러, 아들대에 가문이 아작납니다.

에도막부를 열게된 도쿠가와와 변방 일개 여진족장에서 왜란으로 명나라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여진족을 통일하게 된 누르하치가 제일 잘 되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두고, 뭐라더라... 곰이 재주부리고, 왕서방이 돈 번다?
     
촐라롱콘 17-02-16 19:44
   
mymiky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시 조선군의 전투경험이란 함경도 방면으로의 야인여진, 혹은 번호들과의 충돌,
남쪽 해안 일대의 왜구들의 침입으로 인한 것이 고작이며.....

한 번에 침입한 외적들도 고작 수 백명~최대 수 천명 수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전투경험이나마 경험해본 조선군과 장수들조차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투경험이 있는 장수급 지휘관들 가운데 당시 신립이 왜 돋보이는 존재냐 하면.....

외적들을 물리친 경우가 대부분 수성전이고, 야전에서의 전투일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외적들보다 병력수에서 몇 배 이상의 월등한 인해전술의 전력으로 물리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립은 니탕개의 난 당시에 불과 500여명의 병력으로 적어도 2,000명 이상의 여진족
과 번호(조선에 귀순했다가 배반한)들이 점거하던 성을 공성전으로 탈환했을 정도로..
동시대 조선군의 전과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담으로 덛붙이자면 니탕개의 난 당시에 침입한  여진의 병력수를
무려 2만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지만....

병력수 2만이란 숫자는 여진 가운데 발전정도가 가장 뒤떨어졌던 연해주와 동북만주 일대에
넓게 분포했던 야인여진의 여러 부들이 전부 합세한다 해도 2만을 모으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니탕개의 난 이후 10여 년이 지나 명과 조선이 임란에 몰입하는 사이 건주여진을 거의 통일한
당시 누르하치의 병력이 2만 정도에 겨우 도달할 정도이니.....

어쨌던 결론적으로 당시 신립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군 장수들의 외적과 상대히여 올린 전과는
수성전이 대부분이었고, 야전의 경우에는 인해전술로 인한 것이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당시 신립은 단연코 조선 최고의 장수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산골대왕 17-02-16 19:03
   
이순신 장군이 대단하신분임엔 틀림없습니다.
우리 대포와 배가 성능이 좋았다고 하지만 원균 보세요. 두번 다 말아먹고 결국엔 본인도 죽었잖습니까.
     
구름위하늘 17-02-16 20:34
   
일부 의견에는 원균이 전투 당시 죽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배에서 내려서 육지로 도망갔다고...)
차라리 죽었으면 차상위자가 수습이라도 했을텐데,
명령을 내릴 최고위 장수가 죽지도 않고 숨어버리니 ...
뚜리뚜바 17-02-16 21:00
   
관심병자님;; 이거 닉네임이 좀 그래서 그냥 님자를 붙여도 이상하네요;;
아무튼 제가 보기엔 이순신의 기량에 대해 과소평가를 하시는게 아닌지;; 수군의 질이 좋았다는 것만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승리가 이순신 중심이 아니었다는 식의 태도는 반대입니다. 전 오히려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안됬다고 보는 쪽이니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지요. 칠천량 해전...  이순신이 그렇게 모으고 모아놓은 전함들을 깡그기 싸발라 쳐먹은 해전... 여기에 원균이 아니고 다른자였다면 모르지만 분명 지휘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전투라고 봅니다.
전쟁망치 17-02-17 21:59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그말이 맞지만
전체적인 결과로 본다면 조선이 손해가 막심했어요

일본은 본토 손해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조선에서 엄청난 보물과 인재를 약탈해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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