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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26 23:10
[한국사] 노비(奴婢)-2
 글쓴이 : mymiky
조회 : 2,353  

충남 홍성군 결성면 갈산에서 세거한 안동김씨 가문에서 발굴 된 일기와 기타 문서들을 활용하여
19세기 중반 양반가의 노비 존재양태와 노비노동에 대한 사례연구이다.

19세기 노비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노비제가 16세기 극성기를 거치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18세기 노비종모법에 따라 그 수는 격감하다가, 1801년 공노비해방, 1884년 노비세습제 폐지, 1894년 노비제 폐지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19세기를 노비제의 해체 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본 일기는 저자인 기계유씨 부인(1818~1875)이 31세인 1849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일상적인 일에 대한 개인의 소회를 적은 보편적인 일기 의 형태보다는 대가족의 살림을 맡아하는 안주인의 가계부로서의 성격이 강 하게 나타난다.

즉, 이 일기의 목적은 집안의 수입과 지출, 고리대 현황 파 악, 노비노동 등 경제적 목적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형식상 당대 사 대부 남성들의 언문 생활일기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고 보여 진다.


본 일기의 주인공인 유씨부인의 남편, 즉 金好根의 가계는 조선후기 안동김 씨 서울 경파 계열 중 하나이다. 이 집안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우의정 金尙容(1561~1637)을 派祖로 하며, 김상용의 세째 아들인 水北公 金光炫 7)이 병자호란 당시 홍주 오두촌(현 갈산면 오두리)에 은거하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기에는 예속민 혹은 외거 노비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대체로 성이 없는 사람들로 차복, 원섬, 귀점, 옥복이, 춘매, 춘금, 늦네, 검손 어미, 조잘이 어미 등의 이름으로 총 13명가량이 기재되었다.


이들은 한 두 차례 일기에 등장하는데, 대부분 갈치나 계란 등을 들고 유씨 부인에게 문안을 올리며 청탁을 하거나 돈을 빌려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일기에 의하면 이 집에는 13개의 행랑채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랑채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일기에 등장하는 45 명의 종들이 기거하기에는 적은 수이다.


따라서 일부 노비들은 행랑채에 가 족 단위로 거주하거나, 호젓집이라 하여 상전가 인근의 독립된 가옥에서 거 처하면서 상전가의 사역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는 이들이 병이나 출산, 혹은 자신의 가족과 가사를 돌보기 위해 수일간 귀가하거나 주기적으로 일정 기간 농사를 짓기 위해 귀가하는 것이 기재되어 있다.


물론 일기에는 누가 며칠 동안 나갔다가 들어오는지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이와 같이 노비들은 일정기간 상전가에서 일하며 행랑채에 임시 거주했거 나, 행랑채에서 가족과 함께 살거나, 혹은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독립된 가 옥에서 출퇴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근과 재난이 수시로 도래했던 전근대 사회에서 노비와 노비주 간의 관 계는 일면 후원자-의존자의 성격이 내재해 있다. 인신적인 예속에 따른 노 동력 제공 대신에 노비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사회ㆍ경제적 문제 와 신체적 위험은 일차적으로 노비주가 해결ㆍ보장해주어야 하는 부분이었 다.


그것은 장기간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지불해 야 할 대가이자, 유교적 도덕윤리를 근간으로 하는 신분사회에서 지역 유지 로 인정받기 위해 강요된 측면이기도 했다. 양자 간의 정교한 보호-예속의 장치는 생존 위협에 대처하는 일종의 사회적 보장이었다.


본 일기에도 이러 한 메커니즘이 곳곳에 포착된다. 물론 노비주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므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일기에는 많은 여성 노비들의 병과 출산이야기가 나타난다. 일기가 기록 되는 약 2년의 기간 중에 총 5명의 비들이 아들과 딸을 낳았다. 그중 4명이여자아이고, 1명이 남자아이다.


비들은 출산 당일까지 뽕잎을 따는 등 노동 에 시달리다가 저녁에 출산하였다. 18) 이들에게 출산휴가가 주어지는데 대체 로 보름 동안의 출산휴가를 받았다.


많은 비들은 고된 노동과 출산, 열악한 식생활과 위생문제 등으로 인해 수시로 병에 시달렸다. 유씨부인은 이들에 게 주로 2일에서 5일 사이의 병가를 주는 것으로 기록되는데, 병과 관련된 기사의 빈도수는 매우 높게 나타난다. 열악한 의료시설과 노동으로 인해 사 망하는 노비도 등장한다.


하나의 사례로 노비인 금섬이를 보기로 하자. 금섬이는 출산 후 사망하는데, 그녀 집에서 갓난아이를 보살필 상황이 아 니어서인지 유씨부인은 아이의 젖 값을 금섬이의 동료 婢인 판절에게 지불하 고 상전가에서 키울 것을 명하였다.


그녀는 아기를 약 40여 일 간 데리고 있 다가 아기가 100일을 맞이하자 돌려보내었다. 이후에도 갓난아이를 위해 젖 값으로 벼 한말과 돈 6푼을 추가로 지불하였다.


 아이의 생모가 죽은 날과 아이를 비금이 등에 업혀 제집으로 보내는 날, 갓난아이를 남겨 놓고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애처로움도 기술되고 있다. 유씨부인의 이러한 행위는 온정주 의, 측은지심이라는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볼 수 있지만 사회적 측면, 즉 노 비주의 노비에 대한 책임과 생존에 대한 의무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노비가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해야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비들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것은 유교적 인 본주의와 도덕을 근본으로 삼았던 당대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노비 측에서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금섬이의 아들 응술이 는 어린 동생에 대한 부인의 시혜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고을 관아에 상 직하러 들어가기 전 인사차 오기도 하였다.


이렇듯 奴인 응술이는 후원자 인 유씨부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告하고, 감사를 표함으로써 후원자-의존자 관계는 지속되는 것이다.


한편 노비들은 집단 휴가나 개인 휴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추수기와 농번기 등 상전가의 업무가 끝나면 한 해 동안 애쓴 노비들에게 휴가를 일 괄 보내기도 하였다. 22) 또한 각기 필요에 따라 단기 휴가도 얻었는데, 23) 주 로 자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수확하기 위해 봄 가을철로 휴가(말미) 를 얻고 있다.


시월의 경우 남편의 3년 상을 치루기 위해 4일 동안 휴가를 받기도 하였다. 24) 그 밖에도 김장이나 고된 노동이 끝난 후 상전의 배려에 의해 임시 휴가도 얻었다. 주인은 설이나 추석, 호미씻이, 단오 등에는 흰떡 3말을 하여 노비들에게 2가래씩 나누어 주거나, 25) 일년에 수차례 해자밥을 하여 한턱내기도 하였 다.


또한 노비들의 환갑 등 특별한 날에는 갈비 한짝을 보내거나 선물을 보 내기도 하였다. 26) 그 외 노비 가정에 제사가 있을 때에는 제수품도 잊지 않 았다. 27) 일련의 이러한 행위는 노비들의 복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양질의 충 성스러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 진다.


노비와 노비주와의 관계는 우호적인 관계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양 자 간에는 갈등과 불만도 나타났다. 특히 노동 상황이 열악하거나 노동 강 도가 높을 경우 발생하였다. 1850년 10월 9일부터 김장이 시작되었다. 김 장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와 일손이 필요하다.


각종 김장에 들어가는 갖가지 양념 준비와 배추와 무를 뽑아 절이기, 김칫독과 저장 장소 준비 등 많은 품이 들어간다. 김장 준비는 약 5일 이상 계속된 것으로 보이는데, “안 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들…”이라는 표현에서 노비들의 노동 양과 강도를 감지할 수 있다.


김장을 시작한지 4일 째 되는 날 노비들의 불만이 드디어 폭발하였다. “초한 추위가 대한 같이 추워, 물속에서 배추를 씻는 종들의 학 정(몹시 투덜거림)대어 노복 7명을 먹여 내어 보냈다.” 31)라는 사료에서 볼 수 있듯이 노비들은 처한 노동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노비주는 이 들을 달래기 위해 저녁을 먹여 보냈다는 내용이다.


그 외에 일기에는 노비들의 다른 착복기사 도 간혹 보인다. 그밖에도 유씨부인이 은가락지를 분실하여 노비들을 의심 하는 기사도 기술되었는데, 이처럼 간혹 보이는 기사를 통해 양자 간에 긴 장과 갈등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비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가정과 살림을 영위하는 것으 로 보인다. 일부는 주인집에서 제공한 행랑채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그들의 가족은 주인의 경작지에서 소작을 하면서 필요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일부가 주인가에 차출되어 사환과 가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주인집으로 차출된 앙역노비들은 노동하는 대가로 일반 고공들처럼 삯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료는 종들의 料(품삯)을 歲前까지 다 계산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일 반적으로 앙역(가내사환)노비들은 주인댁에서 신공을 바치고, 그 대신 현물 로 의복과 음식 그리고 주거지를 제공받는다고 알고 있다.


이 집안 종손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세전 노비 들이 이 집안을 친정처럼 가끔 방문하였으며, 이들은 머슴들과 행랑어멈들 에게 고참으로서 행세하면서 큰소리를 쳤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즉, 노비 가 실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집에서 料를 받았던 종들에는 노비가 포함되어 있고, 이 집 의 노비는 개덕45)이를 제외하고 임금노동자들처럼 料를 받았다고 잠정적으 로 결론지을 수 있다.


한편, 위의 사료처럼 현 역사학계에서 노비에게 料를 지급했다는 사례가 간혹 보고되었다. 첫 번째 사례는 柳希春(1513~1577)의 미암일기에서 서울에 상경한 노비들에게 사환의 대가로 朔料가 지급되고 있다. 노비의 삭료지급은 총 4 건의 기록이 나오는데, 노에게는 미 5두, 비에게는 미 3두씩을 매달 지급하 였다고 한다. 노비 모두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라 상경하여 생활하던 노비들 에게만 지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기에는 김장 및 김매기, 추수 등과 같은 강도 높은 노동 행 위를 요구할 때나 울타리나 지붕 수선, 다리미질, 빨래 등 추가로 노동을 시 킬 때에는 식사가 제공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유씨부인은 정확히 제공되는 식사의 수와 양을 기재하고 있는데, 53) 이때의 식사는 임금 에 포함되는 것으로 어느 노비가 몇 끼를 얼마나(양) 먹는가는 최종 임금 계산에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노비주는 정확하고 공평하게 노비들의 노동과 대가를 계산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이 노동 횟수와 양에 따라 임금이 계산되어 지불되었다는 것은 노비와 주인 간 의 관계가 더 이상 전근대적인 인신적 예속관계, 즉 노비의 생활비조로 주 인으로부터 집과 음식, 의복 등을 제공받는 관계에서 벗어나 노동을 하는 만큼 삯을 받는다는, 경제적 관계가 강화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시대사학보 67, 2013.12, 429-464 (36 pages)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67, 2013.12, 429-464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6609870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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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7-02-27 10:24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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