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호란 이후
군사력 증강에 더욱 매진하던
조선에겐 더 없는 기회였을지도 모르죠.
네덜란드는 당시
대서양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였습니다.
선원들은 해상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포술과 병술에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고
이 말인 즉슨 우리나라에 표류한
네덜란드인들 또한 군사적인 지식이
해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더욱더 발달된 서양식 조총을 갖고 있었죠.
조선에서 운용중인 조총보다
훨씬 더 가벼웠고,
사거리도 더 길었으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현장에 배치하여 무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조선은 이들의 총을 모방해
대량으로 제작하게 됩니다.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데브레 또한 군사적 지식이 해박했고
박연으로 조선식 이름을 받은 그는
우리나라의 무기개발에 동참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에 참여해 싸우기도 했으며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신식 조총을 만드는데
그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홍이포라는
서양식 신식 대포를 만드는 일에도
관여할 만큼 군사적인 지식이 상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