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년 즈음에 몽고의 가한(可汗)은 탈탈불화(脫脫不花)이었는데, 실권은 야선(也先)이 쥐고 있었습니다.
1449년 야선은 요동을 침공하여 광녕성을 함락하였는데 이때 야선은
고려인과 여진인은 본래 같은 종족이라며 변발을 하게 하고 살려줬지만
한족은 모두 코와 귀를 베어버리니, 동녕위 사람들이 자신들은 모두 본래 고려인이라고 하였는데,
이 내용을 조선의 세종이 입수하여 실록에 기록한 대목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야선은 훗날 토목의 변의 주역으로 명 황제 영종(주기진, 정통제)를 포로로 잡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1년 1449년 8월 12일 기사中
통사 김자안(金自安)이 요동(遼東)에 도착하여 먼저 사람을 보내어 치보(馳報)하기를,
“신이 동녕위(東寧衛) 사람 박진(朴鎭)을 보고 성식(聲息)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달달(達達)이 광녕(廣寧)을 3일 동안 포위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포위를 풀어 10리쯤 떨어진 곳에 퇴둔(退屯)했으며,
또 동녕위 지휘(東寧衛指揮) 고홍(高洪)이 여순 구자(旅順口子)를 진수(鎭守)하고 있다가
달달의 성식(聲息)을 듣고 즉시 거느리고 있는 군사를 인솔하여 요동성(遼東城)으로 달려 들어갔는데,
문을 지키던 사람이 잘못 알고 달달병이 왔다 하여 얼떨결에 문을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당초에 달달이 와서 광녕(廣寧) 등지의 긴 장벽 40여 리를 헐었는데,
성가퀴를 지키는 자가 달려와 보고하였으나, 감군 총병관(監軍摠兵官)들이 모두 말하기를,
‘실없는 말이라.’ 하고서
그 사람을 매질하여 가두고, 다시 보고하여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으며,
또 두세 번에 이르도록 보고하여도 모두 믿지 아니하여, 조금도 수비(守備)하지 않고 있더니,
달달이 과연 돌입(突入)하여 사람과 가축을 노략질하기를 수를 헤아릴 수 없게 하였습니다.
달달이 고려(高麗) 사람이나 여진(女眞) 사람을 잡으면,
‘너희들은 본래 모두 우리 종족이었다.’고 하면서 변발(辯髮)하게 하여 자기들 의관(衣冠)을 본받게 하지만,
만일 한인(漢人)을 잡으면 모두 코와 귀를 베므로, 동녕위(東寧衛)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시 고려(高麗) 사람인데, 중국의 난리가 이 같으니 의주(義州)에 투항하고 싶지만,
다만 입국(入國)을 허가할는지 아니할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1442년 8월 12일 기사中
대체로 북방(北方)에 퍼져 있는 달달은, 이름이 탈탈불화(脫脫不花)라고 하는 자가 권신(權臣) 탈환(脫歡)을 세워서 임금을 삼은 것이다.
비록 그에게 헛된 이름만은 빌려 주었으나, 실지의 권한은 탈환(脫歡)이 마음대로 하고 있다.
전년에 탈환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야선(也先)이 그의 무리를 이어받아 가지고 전과 같이 전권(專權)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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