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 달다가 길어져서 새로씁니다.
한민족은 퉁구스에서 나왔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퉁구스와 구별되기에 한민족이라 따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부여와 고구려는 구별되지만, 완벽히 별개라고 할수없는것과 같습니다.
몽골족은 만주족처럼 부족 집단을 묶어서 부른 이름입니다.
만주족내에는 만주에살던 몽골계 부족과 여진족 고려인등도 포함됩니다.
홍타이지가 조선과 전쟁해서 조선인 20만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에 다른 기록에는 조선에 살던 여진족을 잡아갔다고 나옵니다.
그후 조선에 살던 여진인들이 머물길 원해서 조선과 청이 타협해 더이상 데려가지 않았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청이 왜 조선인을 데려갔을까요?
노예라면 한족만 해도 충분하고 처치곤란할 정도로 많았었습니다.
병사혹은 백성으로 삼으려고 끌고간겁니다.
한족 보다는 믿을수있다는 거죠.
만주족은 여진족이 중심이 되었고,
이 여진족은 이전 말갈족 이었고 발해의 유민이고, 고구려의 유민 이었으며, 고조선의 유민 이고 고려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일부는 조선의 백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에 항상 있어왔던 집단입니다.
한민족의 기원을 고조선으로 삼는다면 이들 역시 한민족입니다.
거란과 고려의 전쟁시에 여진은 고려에 협력해서 거란과 싸웠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여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었습니다.
우리 조상들과 전쟁을한 동북아시아 민족들의 처우를 보면,
그들이 우리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수 있습니다.
몽골에 몇십년이나 저항하고 항복한 고려가 나라가 유지되고 몽골황제 집안과 결혼을 통한 친척관계가 되었고,
청나라와 맞서다 패배했던 조선 역시 나라가 유지되고 통치자조차 바뀌지 않습니다.
원나라의 한족에 대한 처우, 청나라의 한족에 대한 처우와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다릅니다.
거란과 담판을 지어 싸우지않고 강동6주를 받은 서희는 유명하죠.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니 이땅은 우리땅이다." 라는 주장이 거란에 먹혀들었다는걸 알수있습니다.
조선, 고구려(고려) 라는 이름이 북방에서도 중요하다는거죠.
몽골이라는 이름에 대해 고구려와 관련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몽골은 몽골 동부의 모쿠리 라는 지명에서 유래됐고,
이 모쿠리라는 말은 중앙아시아 부족들이 고구려를 부르던 이름이라는겁니다.
징기스칸의 모계가 부여의 동명성왕과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이 몽골기록에 남아있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