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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20 18:40
[한국사]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점 (1)
 글쓴이 : 사과죽
조회 : 2,678  

1.jpg
 
 
 
저걸보면서 여전히 식근론 빠는 역센징들이 많은 만큼 단순히 멍멍소리로 치부하긴 좀 그래서
저 할배 말대로 그 시절부터 한번 찬~찬~히 돌아보며 과연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근대화 시켜주었는지 알아보는것도 재밌을 거 같다.
 
나 역시 나름 공시준비를 해오는 만큼 근현대사 복습하는 셈 치면서 글을쓰는거니 나도 유익하고 보는 여러분도 유익하고...캬~
 
재밌는건 19세기말~ 20세기 초 일본의 국력으론 한국을 식민지 삼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참고로 조선이라 안하고 한국이라 부르는건 엄연히 대한제국 이후 정식국호로 한국이라 쓰였으니 한국이라 부르는거... 사실, 한국이라 쓰는게 개인적으로 편하기도 하고)
 
헌데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일본의 식민지시절만 생각하는데 사실 한일병탄 이전 이 한반도는 대륙으로의 관문이자 바다로 통하는 항구라는 커다란 지정학적 이점덕분에 일본 이전에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물론 이제 막 열강흉내좀 내보려는 청나라 짱꼴라들까지 달려들어 하드코어쩡인지에 나오는 히로인마냥 나라가 갱뱅당하던 상황이었다.
 
참.... 앞으로 내가 쓸 글을 보기전에 한번쯤 생각해볼 것이 하나 있다.

 진짜로 저 만화의 내용처럼 함께 근대화시키기위해 힘써온 식민지 근대화가 사실이라면 피식민지인들의 생활이 좋아질 것이고 당연히 오히려 식민통치하는 지배국에게 고마워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할 좋은 예시가 있는데 바로 '거문도 사건' 이다.
 
 여러분도 역사시간에 배운것처럼 구한말 부동항을 찾기위해 남하하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무단으로 한반도의 거문도를 무단점거하고 식민지로 삼았던 사건을 말하는것이다. 그렇담 당시 영국의 무자비한 식민통치(!)를 받던 거문도 주민들은 과연 영국을 어떻게 보았을까?? 놀랍게도 당시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의 식민통치에 고분고분했고 오히려 영국에 고마워하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영국은 거문도 주민들 배고플까 식량을 나눠주거나 심지어 마을 주민들이 개를 잃어버리면 레드코트(영국군)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개를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주기까지 했다.
 이는 영국이 존나게 신사들이라 그런건 아니고...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거문도를 군사기지화 하려한 만큼 거문도 주민들이 불만을 가지고 소요사태라도 일으킨다면 자신들의 정책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만큼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위해 신경을 쓴 것이다. 즉, 당시 거문도주민들이 특별케이스였던거. 때문에 거문도에서 영국이 떠날때 당시 거문도 주민들은 굉장히 실망했고 다시 민씨세도정치하에 들어가게되는걸 두려워하기 까지 했다. (식민지정책보다 최악인 민씨세도정권은 도대체 얼마나 개막장이었단 걸까...ㄷㄷㄷ)
 여튼 특별케이스이긴 하지만 식민지 정책이라고 무조건 피식민지인들이 거부하거나 저항한것은 아니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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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와, 이런 갱뱅 상황에서 자체적인 힘으로 문물을 근대화하려 시도했지만 좌절당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오히려 이런 극악인 상황에서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타파하고 독립협회를 통해 입헌군주제 도입시도까지 하는 등 밑에서부터의 개혁은 매우 고무적인 것을 넘어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갱뱅에 가까울정도로 열강들에게 돌림빵당하듯 수탈당하며 한국의 국력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결국 마지막에 일본이 엉망진창이 되버린 한국을 먹어버리는것으로 지옥같은 식민지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 그야말로 게임으로 비교하자면 보스몬스터 레이드를 하다 제일 비리비리한 공대원이 보스몹 막타때려서 보상 다 먹은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그 막타를 쳐 먹기위해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고 가쓰라테프트 밀약과 영일협약 등등... 자기들보다 훨씬 큰 열강들을 상대로 마치 임요환 드랍십 컨트롤하듯 전쟁과 외교로 종횡무진 활약을 한 것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일본은 한국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한때 청일전쟁으로 요동반도를 손에넣었지만 결국 삼국간섭으로 눈뜨고 뺏긴 이후 일본입장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손에넣은 식민지였던 만큼 그 애착은 상당했을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운영했던 다른 서구열강들과 달리 처음으로 식민지를 손에넣은 일본이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부족한 국력으로 무리하게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고 그 전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거기에 한반도의 정미의병으로 인한 남한대토벌 작전까지 수차례의 전쟁까지 치뤘던만큼 일본 내부도 그리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숙한 식민지경영 경험 + 여유가없는 국력 => 무단통치를 불러오게 된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적어도 무단통치가 뭔진 대충은 아실것이다.
무단통치를 통해 일본은 한국에 공포정치를 피게되고 일방적인 수탈과 탄압을 고수한다. 특히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하던 조선태형령이나 신분 및 직업을 공문서에 기입하게 하는 등, 기껏 갑오개혁 거치면서 조선이 폐지했던 전근대적인 정책들을 다시 부활시키기 까지 한다.
 음..... 여기서부터 뭔가 그들이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와는 다른 냄세가 나기 시작한다..... 뭐 여튼 아직 이야기를 끝내기엔 한참 멀었으니 일단 넘어가자~
 
 일단 이 무단통치시기에 본인이 주목하는것은 바로 '회사령' 이다.
 
 그렇다... 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회사령이 뭔진 아실것이다. 쉽게말해서 한반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는걸 의미한다. 사실상 한국인 사업체에 대한 탄압과 마찬가지였다. 19세기말 사회변혁에 대한 기대감 + 열강의 한반도진출에 위기를 느꼈던 한국은 다양한 근대식 사업체를 만들고 경영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령을 거치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체들은 모조리 망한다.
 재밌는건 이 회사령의 대상은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도 포함이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피식민지인인 한국인을 탄압하기위한 정책이었는데 일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던건 과연 무슨뜻이었을까? 이는 그만큼 당시 일본내부 상황이 그렇게 여유가 없었다는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인들 입장에서 한국에 투자하려고 하는 이들이 꽤 있었을것이다. 물론 한국잘되라고 그런건 아니고 이제 막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은 그들 입장에선 나름 블루오션이었을 것이다. 적은 투자로 나중에 큰 이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일본정부입장은 아니었다. 아직 일본 내부의 개발도 다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국부가 한반도로 유출되는것은 국가발전계획에 벗어나는것이었으니까. 실제로 20세기 초까지 일본의 대 한국 주요 수출품은 바로 '영국산' 면제품이었다.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공업화는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앞으로 한국경제를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한국인들의 자본을 박살내고 자신들의 국부유출을 막고 효율적인 경제개발을 위해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공평하게(?) 회사령을 적용한 것이다.
 
결국 불만이 쌓이고 쌓인 한국에선 1919년 3월 1일 그 유명한 3.1운동이 터진다.
 
사람들의 편견(?)으론 당시 3.1운동이 단순히 독립선언서 낭독하고 태극기나 흔들던 평화로운 운동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어디까지나 첫날 뿐이고, 무단통치로 불만이 쌓이고 쌓였던 농민, 노동자들이 일본의 무력진압을 당한 뒤론 말 그대로 빡돌아버려서 전국적인 폭동을 일으킨다. 진짜로 일본인들 만나면 낫으로 대굴빡을 찍어버렸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예상보다 거세게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보게 된 일본은 당연히 자신들의 식민지 정책이 잘못되었다는걸 인정하고 그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길 한국이 일본에 저항이 적었기에 2차세계대전 이후가 되서야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재밌는건 그 당시 100만명 이상 동원된 시위를 하던 식민지는 몇 안되었고 그 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당연히 이후에도 다양하게 저항활동을 하고 프랑스의 자유프랑스정부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도 국제사회에서 어느정도 인정받기 까지 한다. 이정도의 규모와 끈질긴 저항은 사실 전세계를 뒤져도 오히려 드문편이다. 인도의 경우처럼 100만 이상이 들고 일어나면 대부분 그 식민지를 포기하는데 그럼에도 일본은 한반도 내 일본인들의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강경하게 나오며 한국에 대한 식민정책을 포기하질 않았다. 어찌보면 당시 일본놈들도 징글징글할정도로 끈덕지긴 끈덕졌다.
 
 
.......
 
오늘은 여기까지 쓰자. 사실 이야기할 건 굉장히 많은데
이 이상 글을 쓰게되면 아마 유게이들은 보질 않을테니 그만둬야지. 나도 손꾸락이 아프고...
일단 보는사람도 많고 반응이 좋으면 2편 써야겠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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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7-04-20 20:33
   
[[일본입장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손에넣은 식민지였던 만큼 그 애착은 상당했을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운영했던 다른 서구열강들과 달리 처음으로 식민지를 손에넣은 일본이었고]].....???

19세기 후반에 일본내지로 편입한 오키나와, 북해도, 쿠릴열도는 제외하고라도

1910년 국권침탈되기 15년 전인 1895년에 청일전쟁 승리의 댓가로 대만을 할양받아
이미 식민지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만에 비해서는 조선이 훨씬 덩치가 큰 식민지이기는 하지만....
     
사과죽 17-04-20 20:50
   
아.. 그랬군요
     
아비요 17-04-21 00:05
   
근데 사실 타이완은 국가도 없고.. 사실 그냥 식민지보단 영토 할양에 가까운것 같은데요? 애초에 청나라가 쉽게 내준 이유가 그거였죠.
          
그노스 17-04-21 01:39
   
그런데 그 당시에 대만민주국이 수립되기는 합니다.
당경숭 총통이 곧 대만을 탈출해버려서 그렇지요(...)

일본의 대만 침략도 적은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의 규모는 7만 6천 명에 달했고 현지인들의 치열한 항전이 있었으며, 일본군이 현지 군대•주민 1만 명을 학살하며 얻은 성과지요.
영국의 North China Herald 신문에 따르면, 불필요한 학살을 자행하며 얻은 성과여서 '완전히 쓸데없는 전쟁'(...) 이라는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요.
람다제트 17-04-21 01:04
   
지들이 필요해서 철도깔고 항구만든 걸 근대화 해줬다고 하면 어쩌자는 건지 ㅋㅋㅋㅋㅋㅋ 백번 양보해서 조선에 이익이 됐었다고 쳐도 빼앗긴 자원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결국 조선의 손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그노스 17-04-21 01:24
   
네, 말씀하신대로 일제는 여유가 별로 없는 식민제국주의 국가였습니다.
청일전쟁이 시작되고 전시 중에 열린 일본의 제국의회에서 일본 정부는 임시 군사비 예산 1억 5천만엔안, 군사지변 공채 모집 법률안을 제출했는데, 국고 잉여금 2천 6백만엔과 모집을 끝낸 군사 공채 3천만 엔으로 이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신규 공채 모집과 차입금을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액수가 합당한 것인지, 외국채인지 내국채인지, 이율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중의원 예산 위원회가 예산안을 무려 2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졸속 가결을 시킨 것을 보면 그 당시 일제가 얼마나 다급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가 될 것입니다.

조선에서의 청일전쟁 전황을 보면,
그 당시 조선의 비위생적인 환경, 불결함을 지적하는 근대적 교육을 받은 일본군의, 근대인(?)의 시각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이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일본 병사들도 역시 위생에 대해 완전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로 해외 원정시 이들이 얻은 대부분의 병은 콜레라, 이질 같은 병으로서 보급체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압록강을 건너 청국 요양으로 진격한 일본의 제 22연대의 기록을 보면 부대에서 동상에 걸리지 않은 이는 10명 중에 2, 3명에 불과했다는 참담한 기록으로 보아 방한품 보급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말해줍니다.

특히 여순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고 부녀자들을 희생자들로 포함시킨 대학살은(영국의 타임즈, 미국의 월드가 보도) 일본이 자찬하던 소위 그들의 문명화, 근대화가 얼마나 허황된 소리였는지, 그들이 조선의 중세적 야만성(?) 운운할 자격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일본의 황해해전에서의 완승과 거듭되는 승전으로 인해 일본 민중의 자부심은 극에 달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제국대학의 국어교실 초대 교수인 우에다 가즈토시가 일본의 국어계와 문장계가 지나풍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격렬하게 한자배척론을 주장합니다.
(동아시아 한자배척의 선구자들이 한자를 폐지한 한국을 도대체 왜 조롱??)

청일전쟁 이후 처음 열린 일본의 예산안을 보면 청일전쟁 이전 예산의 약 2배에 달하는데, 청국으로부터 얻은 전쟁 배상금 2억 냥은 일본 정부의 고질적인 자금 부족을 해소하고 각종 사업을 벌일 여유를 주게 됩니다.
특히 전쟁 이전과 비교해 예산이 폭증한 분야로 군사 부분을 말할 수 있는데 군비가 4370만엔 증가하며 침략사업을 확장시킬 투자를 했고,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전쟁 배상금의 약 43퍼센트에 달하는 1753만 파운드의 대부분이 해군 군비 확장비(영국에서 함선 건조)로 사용됩니다.
(오~ 역시 강도 국가의, 강도들에 의한, 강도질을 위한 재투자)
노비킴 17-04-21 01:47
   
조선을 근세 또는 근대태동기 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내서 시대분류를 하는 것은? 경제, 문화, 사회 등에서 이미 근대적 요소는 찾아볼 수 있고 정치가 왕조국가였기때문이죠. 일제시대는 그럼? 역시 정치적으로 근대국가라 불리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오히려 엄청 후퇴함.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온갖 수단을 통해 억압과 수탈이 이어졌고, 문화적으로도 마찬가지였음. 특히 전쟁을 하면서 한 짓거리를 보면 이건 뭐 근대!? 식민통치를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됨.
     
mymiky 17-04-21 07:12
   
일본이 서양문화 배워와서, 나름 겉으로는 흉내 내보려고 했는데
그렇지만, 대부분은 군사적인 부분을 더 중요시 했던거 같고,,

나라라는 것이, 처음에는 피와 땀으로 세운다고해도
국가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힘은,
역시 법과 제도, 사상, 철학 같은 인문학적 요소도 중요한 것들인데..

일본이 그런 분야에선 기본토대가 없다보니,, 허접했다고 생각함.
그게 갑작히 되는게 아니죠..

수백년간 군사정권인 막부통치 하다가, 그게 금방 되겠음?
다이쇼 데모크레시 좀 반짝하다가, 군부가 날뛰어 다시 개판됨..
정욱 17-04-21 12:47
   
결국엔 성양nom  흉내를 냈는데 잘안되네요. ㅋ 역시 닙뽕들은 유전자열등 합니다. 그 많은 식민지 잃고 욕만 먹고 있으니까 속이타갰네.ㅋㅋ
행복찾기 17-04-21 15:31
   
왜구에 의해 강제점령 당했던 36년간
한국의 근대화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죠.

왜놈들에게 당하지만 않았어도
한국이 선진국에 도달한 시점은 적어도 3~40년 전이었을 겁니다.
관심병자 17-04-21 17:53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조선땅에 들어온 일본인을 위한 정책이었고,
당시 조선땅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생활공간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3.1 운동과 해방당시 조선에 살던 일본인의 증언이 '조선땅에 저렇게 많은 조선인이 살고있었나' 였습니다.
조선땅에 살던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마주칠일이 별로 없었다는 거죠.

19세기말 20세기 초는 일본이 누굴 근대화해주고 그럴 여지가 없이,
중국, 일본, 한국 모두 혼란시기 였습니다.
당시 일제의 공식 국기는 현재와 같은 일장기 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자기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욱일기를 썼습니다.
국기조차 통일되지 못했고,
정치가 군부를 완벽히 장악해서 통제하지 못한건 물론,
군 내부에서도 육군과 해군이 서로 반목해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푸른마나 17-04-22 15:41
   
우리나라가 일제에 수월하게 병탄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당시 양반중 변절자도 있었지만  그당시 중인이나 상민중 권력욕이 있었던 상당히 많은 인간들이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사전모의가 거의다 탄로난 이유도 크죠... 보통 그당시 일제에 부역했던 인간들이 보통 노비였던 경우가 상당하죠..
솔오리 17-04-23 04:04
   
일본이 아니였다면 근대화에 더욱 더 박차를 가했을거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당시 순종이 조선의 뒤떨어진 서양 기술에 위기감을 느끼고 근대화를 위해 기술자들을 외국으로 보내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인해 무산됐다는 내용이였는데
정확히 프로그램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 라고 생각하는 한국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암적인 존재로 모든걸 약탈하고 유린하여
지금까지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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