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남의 말은 신뢰하는 사람이라서 자료는 제대로 안읽습니다. 그사람이 그렇다하면 자료해석은 먼저 신뢰하고 의문이 되는 부분만 살펴보죠. 물론 그 전에도 몇가지 대응할 논리가 있었는데
오늘 천천히 정독한결과부분을 추가했습니다. 몇가지자료는 가생이닷컴에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합니다. 이부분도 나중엔 삭제예정인데 읽을떄 괄호부분에 가끔씩 의문이 있으니 필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일식 1석이 조선식 2석이냐 4석이냐.
아케치경감님은 극구 대답을 회피하시려고하시던데 이게 키워드입니다.
2. 그논리를 주장하는 분들 보면 흔히 계산할때 결과에 끼워맞추는 행태를 보이시던데(그분을 단정하는것은 아님)
저는 그냥 계산 끝에 나온 결과만을 보여드립니다. 2석이냐 4석이냐하는건 이걸로 계산에 따라 결과가 그렇게나오니까 중요하다는거지 결과를 끼워맞춰야하는 경우가아니라면 곱셈이 왜 안중요하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이죠.
일본과 조선의 자료를 비교해야하지않겠습니까.
3. 순환논리의 오류
3번부터 시작하죠. 순환논리 다들 아실텐데...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신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말이 안되죠.
그런데... 조선시대 인구에 대한 다양한 글을 봐왔는데 이글은 제가 보기만했지 끼어든 글은 아닙니다.
어떤 분이 임진왜란 조선의 인구를 1200만에서 1500만으로 추정하자 농업생산량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반대로 이번에는 생산량이 종전의 2배라고 하자 이번에는 멜서스 트랩때문에 인구가 더 증가하지 못했을것이다 하더군요.
물론 두 논쟁은 각기 다른 곳에서 일어났고 말을 한사람도 다른사람입니다만 무적의 순환논리가 형성되었군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구건 생산량이건 한변수가 정확하지 않은데
그 변수가 변하면 다른변수도 변하고 순환논리가 깨집니다. (그림으로 후에 그림)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논리는 증거로 채택하지않는게 옳은행위고 기본적 토론의 예의입니다. 물론 인구가 800만이 확실하다고 믿고 그근거가 있으시다면 뭐... 할말은 없군요.
그런데 한가지 더 이야기를 드리자면... 분명 글은 썼는데 거론하시는 분이없길래... 조선인은 평균 일본인에비해 2배식사를 했습니다. 그건 구한말에도 똑같아요. 그런데 식량생산이 인구비례라면 조선인이 먹었던 밥은 하늘에서 떨어진겁니까? 아니면 일본에서 식량을 버렸거나 수출했다는 말이되겠죠...
1. 뭐 이런 기초적인걸 회피하시는지... 심지어 뭐 가물가물하다고 하셔놓고 뭘믿고 똥퍼온다고 자신만만하신건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을 보다보면 왜 2번이 거론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생각나게되실겁니다.
우선 논란의 1200만석. 물론 여기까지는 상관없습니다만 만지교수님 본인이 1/4석을 지지하시므로 조선석으로 치면 4800만석입니다. 물론 1/2석이라고 하셨다면 좀더 어려웠을텐데 마침 1/4석이라고하셨으니까 4800만석이 맞다는데는 이견이 없으시겠죠.(제가 쓴 글에서는 이논리에대해 꾸준히 피해다니시더군요?
물론 그게 세금의 총량이냐 세금의 가늠이 되는 총량이냐 이거 자꾸 설득하시려는데 솔찍히 저일본어몰라서 누가 대놓고 사기쳐도 못알아봅니다. 그런데 숫자놀음은 뭐 초등학생 수준만 되도 가능한거잖아요?)
그런데 역으로 다시 생각해보죠. 만약 1/4가 틀리고 1/2가 맞다면? 그럼 그냥 2400만석이 맞는겁니다.
모르겠다 알겠다. 혹은 번역을 어떻게해야한다 죄다 둘쨰치고 만약 1/4석은 꺼내지도 않았다면 이 오류부분은 꺼내지도 못했을겁니다. 그런데 만지교수님은 1/4을 지지한다고 말씀하셨으니... 1200은 당연히 4배하면 조선식으로 4800만이라고 교수님도 생각했겠죠. 그게 아니라면 이중잣대밖에 더됩니까? 논리상의 오류가있는데 내가옳다고 생각될땐 가만있다가 상대방이 잘못됬다고 정정해주니까 오류라고 주장하는것이잖습니까.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선 단순계산으로 세종때 2000(2400?)만석 임진왜란떄 2800만석이됩니다.
자꾸 생산량에 대한 무지 어쩌구 하시는데 10 % 30% 변수는 저는 따지지도않습니다. 애초에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친구들이라서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세종떄 조선석으로 4000만석인건 확실합니다.
여러분들은 무리하게 1/2(60%가량) 을 곱하시려고 하는데 이 때 1/4석을 신뢰 한다면 또다시 1/2를 하므로 세종 당시 생산량은 5 ~ 600만석이됩니다. 그런데 이런 쉬운 결론을 내주신 분이 단하나도 없고...
자꾸 여러분들은... 1000만석대에 끼워맞추시려고하네요? 저번에 링크 걸어주셨던 사이트에서도 똑같이 계산은 틀렸는데 결론은 1000만석대가 나왔습니다. 그분도 한전수전으로 절반으로 깎았다면 500 600만이되는데 문제는 하나같이 그럴떈 마음에드는 결과가나왔는지 깎을생각을 안하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만 나왔을떄만 깎으시려고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사실 1/2석을 인정하신다면 더 읽을만한 가치도 없는내용인데 1/4석 내용이있길래 써본내용이구요. 사실 1/2석을 인정하시면 각각의 논리에 구멍이 뚫리는...(아마 기타지마 만지님의 자료에도 구멍이 뚫릴지모르겠네요. 본인도 이미 오류를 잡아내셨는데 뭐 오류가 절대 없다고는 못하겠죠. 심지어 본인의 입으로 기타지마교수님이 1/4라고 하셨는데... 근데 뭐중요한말도아니라면서 이걸 왜자꾸 회피하시는지?)
그런데 키타지마 교수님의 자료를 사공육민으로 계산했을떄 2900만인데
자료를 단순계산으로 했을때 2800만이니 딱 맞네요.
물론 아마 반대파분들은 거기서 50 60% 곱해야하므로 아케치경감님의 의견이 옳다고 하실것 같습니다만.
(역시나 이부분... 만약 50 60%를 곱해야했다면 실질 생산량은 600 700 만이 나오므로 기타지마 만지 교수님의 1200만석과는 크게 다른 셈인데 이미 만족하신건지 더이상 진도가 나아가질 않으시는군요. 뭐 사실 900만으로 보는 경우도있으니... - 만약 진짜 900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부분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겠군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분들의 논리에 맞춰드린것이고 일단 수전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즉 당시 쌀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전의 생산량또한 쌀로서 전환하여 일괄된 기준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상식이겠죠 이것은 일본또한 마찬가지이고 조세납부의 당연한 원칙을 그런식으로 해석(수전이니 늘리고 줄이고)한다는 자체가 매우 비상식이죠. 이말의 의미는 무엇이냐면 당시 한전의 대표작물이던 황두의 경우는 통상 조곡 가치의 절반이었으니 그 절대량은 2배가량 이었다는 점
(이부분 찬찬히 읽어봤는데 생산량 이야기인데 세금이랑 무슨 연관인지 햇갈리는데 쉽게 말하자면 1결자체를 300두로 정했을때 그분들의 주장은 수전을 제외하면 300두가 아니다인데 eo 님의 주장은
실제로 한전은 600두어치 생산량을 1결로 했다는건가요? 아니면 300두어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1결의 크기를 늘렸다는건가요?)
일본의 경지면적은 오히려 2 3배 증가했지만 신기하게도 생산량 격차는 오히려 줄어들었군요? 조선의 농업혁명이 생산효율을 3 4배 증가시킨것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일본도 농업효율이 최소 2배는 증가했는데 위와같은 격차를 따라잡다니 대단하군요. 심지어 멜서스트랩에도 부합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1910년대는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이지만 다행히도 일본의 경우 통계가 정확히 나와있고 조선의 경우 전근대사회를 벗어난지 얼마 시점이 되지 않았기에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참고로 조선의 경우 1650년대는 임란 호란 대기근을 겪어 오히려 세종 때보다 감소한 수치란것 정도는 아실테구요)
요건 일본 생산효율의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