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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26 20:22
[기타] 병인양요, 신미양요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633  

병인양요
 
흥선대원군은 1866년 정초부터 천주교 금압령()을 내렸다. 이후 몇 개월 동안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9명을 비롯하여 남종삼(정의배() 등 한국인 천주교도 8천여 명이 학살되었다.

그해 5월 조선을 탈출한 펠릭스 클레르 리델(Félix Clair Ridel) 신부는, 중국 톈진[]에 주둔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피에르 로즈(Pierre Roze) 제독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학살사건을 알렸다. 보고를 받은 베이징[] 주재 프랑스 대리공사는 청국정부에 공한()을 보내어 한반도로 진격할 결심을 표명하고, 이후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든 청국정부는 이에 간섭할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청국 총리아문사무()의 공한을 통해 프랑스 동태를 알게된 대원군은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과 변경() 수비를 강화했다.

9월 18일 리델 신부와 한국인 신도 3명의 안내로 로즈 제독이 인솔한 프랑스군함 3척은 인천 앞바다를 거쳐 양화진()을 통과하여, 서울 근교 서강(西)에까지 이르렀다. 극도로 긴장한 조정에서는, 어영중군() 이용희()에게 표하군() ·훈국마보군()을 거느려 경인연안을 엄중 경비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프랑스 함대는 9월 25일 강류() ·연변만 측량하고 중국으로 퇴거하였다.

그러나 10월 로즈 제독은 순양전함() 게리에르를 비롯, 모두 함대 7척과 600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부평부() 물치도(:)에 나타났다. 10월 14일 이 중 4척 함정과 해병대가 강화부() 갑곶진() 진해문() 부근의 고지를 점거하였다. 프랑스군은 한강수로의 봉쇄를 선언하고, 16일 전군이 강화성을 공격하여 교전 끝에 이를 점령하고, 무기 ·서적 ·양식 등을 약탈하였다.

조선은 이경하() ·신헌(:) ·이기조() ·이용희 ·한성근() ·양헌수() 등 무장들에게 서울을 위시하여 양화진 ·통진() ·문수산성() ·정족산성() 등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9일 프랑스측에게 격문()을 보내 선교사 처단의 합법성과 프랑스함대의 불법 침범을 들어 퇴거할 것을 통고하였다. 로즈는 회답을 통하여 선교사 학살을 극구 비난하고, 그 책임자를 엄벌할 것과, 전권대신을 파견하여 자기와 조약의 초안을 작성하라고 맞섰다. 10월 26일 프랑스군 약 120명은 문수산성을 정찰하려다 미리 잠복, 대기중인 한성근의 소부대에게 27명이 사상되는 등 처음으로 막대한 인명손실을 입었다. 이로부터 민가 ·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으며, 이러한 만행은 황해도 연안()에까지 미쳤다.

11월 7일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프랑스 해병 160명은 정족산성을 공략하려다가 잠복하고 있던 500여명의 조선군 사수들에게 일제히 사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간신히 갑곶으로 패주하였다. 정족산성 전투의 참패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결국 로즈 제독은 철수를 결정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정족산성 수성장()인 양헌수가 그해 11월 9일에 “저들은 죽은 자가 6명이고 아군은 죽은 자는 1명입니다”라고 보고하고, 다시 11월 11일에는 “6명의 적들이 남문 밖에서 죽은 것을 우리 군사들이 목격하였습니다. 어젯밤 촌민()들이 와서는 저놈들이 행군해가면서 또한 죽은 자가 40여 명이나 되었는데 저놈들이 모두 시체를 묶어서 여러 대의 짐바리에 실어갔다고 했습니다. 저놈들이 죽은 수는 50여 명입니다”라고 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기록에서는 당시 전투에서 3명이 죽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11월 11일 프랑스군은 1개월 동안 점거한 강화성을 철거하면서, 장녕전(殿)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앞서 약탈한 은금괴와 대량의 서적 ·무기 ·보물 등을 가지고 중국으로 떠났다. 이로써 세계정세에 어두운 대원군은 그 기세를 돋우어, 척화비()를 만드는 등 쇄국양이() 정책을 더욱 굳히고, 천주교 박해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구미열강은 이를 계기로 조선을 청국의 종속국가가 아닌 독립한 주권국가로 인식하여, 종래의 한 ·청 관계를 재검토하였다. 프랑스군이 탈취한 많은 서적 ·자료 등은, 뒷날 유럽사람들이 한국 ·동양을 연구하는 데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병인양요 [丙寅洋擾] (두산백과)
 
신미양요
 
1871년(고종 8) 미국군함이 강화도에 쳐들어옴으로써 일어난 사건.

1866년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정부는 이를 문책하는 동시에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북경 주재 미국공사 로(F. Law)에게 훈령하여 미국의 아시아 함대를 출동케 했다. 로 공사는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J. Rodgers)와 함께 기함 콜로라도호 등 5척의 군함에 병력 1,230명을 이끌고 71년 4월 3일 남양() 앞바다에 도착, 조선정부에 통상을 요구했으나 즉시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 지대는 소함정 4척을 이끌고 강화해협을 측량하기 위해 강화부의 관문인 손돌목을 지나 광성진() 앞으로 들어섰다. 이에 강화수병이 맹렬한 포격을 퍼붓자 피차간에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미군은 초지진()에 상륙하여 포대를 점령한 다음, 다시 북진하여 광성진을 공격했다. 백병전까지 포함되었던 이 싸움은 대단히 치열하여 아군은 중군() 어재연() 등 53명이 전사하고, 미군 측도 매키(McKee) 해군중위 이하 3명이 전사,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다음날에는 첨사(使) 이염()이 초지진을 야습하여 미군선박을 물리치자, 미국 측도 이 이상의 공격이 무모함을 깨닫고 5월 16일(양력 7월 3일) 40여 일 만에 불법침입한 우리 해역에서 물러갔다. 이 결과 대원군은 척양척화()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어 온 나라 안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쇄국정책을 한층 굳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미양요 [辛未洋擾]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가람기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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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17-04-26 20:27
   
병인양요 끝나고 프랑스군들이 두고간 와인이나 음식들을 조선군이 다 먹었다는 기록도있음
촐라롱콘 17-04-26 21:54
   
신미양요 당시 광성진 전투의 조선군 전사자수가 축소된 것 같습니다.

당시 광성진과 그 주변에는 정3품의 높은 품계인 진무중군 어재연 휘하의

600여 명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광성진 전투에서 어재연은 물론 휘하의 대소 지휘관들도 대부분이 전사했는데...

전사자가 53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광성진 내부에서 243명이 전사하고 광성진 주변에서 100여 명이 전사하여

잔사자수 총계로 대략 350명 가량이 전사했다는 것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광성진전투에서의

조선군 전사자 숫자입니다.

그리고 이외에 심한 부상을 입어 자력으로 후퇴하지 못하여 미군의 포로가 된 이들이

수 십명 규모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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