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노의 신성한 거위들이 로마 군사에게 경보를 발하여 재난을 막는다.
창건 이래 로마가 겪은 최악의 패배는 이탈리아 북부 포 골짜기의 갈리아족이 안겨 주었다. 기원전 390년의 여름에 브렌누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한 무리의 갈리아족이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군을 쳐부수고 로마 시까지 공격하러 왔다. 때는 밤이었고, 수비군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동시에 종교적 중심지인 카피톨리누스에 피난해 있었다.
갈리아족이 카피톨리누스로 통하는 바위투성이 길을 올라가고 있을 때, 맹렬하게 꽥꽥대는 소리와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란을 부린 것은 유노(영어로는 주노-옮긴이) 여신의 성소에서 기르는 신성한 거위 떼였으며-식량 부족에도 불구하고 잡아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것이다-덕분에 수비병들은 갈리아족의 접근을 눈치 채어 카피톨리누스를 구할 수 있었다.
도시의 다른 곳은 약탈 당하거나 파괴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도시의 모든 주민과 베스타 여신의 신녀(神女)들, 그들이 지키던 성화는 이미 피신한 후였다. 갈리아족은 일곱 달 동안 카피톨리누스를 포위했으나, 결국 브렌누스는 많은 금을 대가로 받고 군사를 철수시키는 데에 동의했다.
갈리아족에게 당한 이 수모의 기억은 이후 몇 세대 동안 로마인들을 괴롭힌다. 패배에서 몸을 추스른 로마군은 새로운 무기와 전술을 채택했고, 기원전 378년에는 도시 둘레에 11㎞ 길이의 돌로 된 방어벽을 쌓았다. 이 벽의 많은 부분은 오늘날까지 서 있다.
로마의 군사적 팽창은 계속되었지만, 기원전 225년 이탈리아 북부의 갈리아족이 마침내 패배하고 로마의 지배권에 들기까지 로마인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신성한 거위들에 대해 덧붙이자면, 이들은 매년 자줏빛 쿠션에 앉을 수 있었으며, 카피톨리누스를 지키던 개들은 갈리아족의 공격을 제때 경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
"식량이 부족했음에도 유노의 신성한 거위들은 죽이지 않았다."
리비우스, 『로마사』, 26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