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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17 23:59
[한국사]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증거 문헌(역사자료들)
 글쓴이 : 눈틩
조회 : 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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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네티즌과 독도 문제에 대한 토론시 증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 우리 역사상, 독도가 조선(한국)의 영토이며 실효지배를 하여온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과 링크입니다. 


출처 : http://onzzz.tistory.com/103


신라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울릉도, 독도) 정벌(512) 신라시대 장군인 이사부가 현재 울릉도와 독도 지역을 정복하여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킨 역사(삼국사기에 기록). 당시 우산국 사람들 복속하여 신라에 조공을 바치게 함. 우산국 사람들은 현재의 울릉도에 터를 두고 거주하고 있으며 울릉도 해안과 독도 연해에서 어업에 종사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7923&cid=43667&categoryId=43667) 


세종실록지리지(1432) 조선의 세종대왕 시절 만들어진 지리 서적에 울릉도와 독도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육지의 백성이 섬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있어, 울릉도와 독도를 감시하라고 명령하였다고 기록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4&cid=57618&categoryId=58159)


신동국여지승람(1531)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이 있음. 울진현에 속해 있으며 두 섬이 있고 순풍이 불 때에는 작은 섬(독도)에 2일 만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록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3&cid=57618&categoryId=58159) 


숙종실록 안용복 사건(1693)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이 일어난 최초의 사건. 조선인이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고 있었는데 왜인(일본인)이 울릉도에 무단 침입하여 어업활동을 하였음. 이에 왜인 어민을 본국(왜국)으로 돌려보냈으나 왜 어민들이 막부에 사실을 알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입장을 표명. 

당시 일본 막부는 '독도는 조선과 더 가까우므로 조선의 영토임이 확실하다' 라고 유시諭示함. 

한일 독도 분쟁은, 이미 수백년 전 1696년 안용복 사건 이후 명백한 조선의 영토임으로 판명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2&cid=57618&categoryId=58159) 


태정관지령(일본, 1877) 일본 메이지 정부에서 해안관측을 하던 일본 관측사의 '독도 편입' 질문에, '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에 유념할 것' 이라는 지령을 발표. 이미 일본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입증함. 


대한제국 칙령 제41조(1900) 대한제국은 칙령을 반포함. 울릉도를 울도라고 개칭하였으며 울릉 전역과 석도(독도)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임을 발표함. 울릉군수를 임명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근대적 행정기관으로 통치를 하기 시작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8&cid=57618&categoryId=58159) 


() 의 링크된 사이트는 직접 접속하여 한일 번역을 통해 확인해 볼 것. 



이후 1905년 돌연, 일본 정부는 독도를 '다케시마' 라는 가짜 명칭을 만들어 명명하고, 일본의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 1905년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친일의 관료 몇 명과 강압적으로 '을사늑약' 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 외교권이 일본국에게 넘겨진 대한제국은 자국의 영토인 독도가 빼앗겼음에도 제대로 된 항의가 불가. 

당시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의 도장도 찍혀있지 않은, 국제법상 무효의 조약이며 일본은 무효의 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조선의 영토와 외교권을 박탈함. 


이외에, 독도가 조선이 직접 관할한 영토라는 증거는 무지하게 많으며, 일본이 독도와 관련 없다는 문헌도 많이 있음. 일본은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으나 종종 일본과 독도가 관계 없다는 증거가 발견됨. 

하지만, 독도가 조선과 관계 없다는 문헌은 단 1개도 없음. 독도와 조선 및 한반도의 대한민국 역사의 국가는 독도를 수천년 간 실효지배하며 고유의 영토로 편입하여 관리를 하여 왔음. 

반면 일본은 '일본과 관계없는 땅' 이라는 자국의 역사적인 문헌들을 은폐하고 왜곡하여 거짓과 날조로 일본 국민들을 세뇌하고 이웃 국가와 분란을 야기하는 등, 침략적인 행보를 하고 있음. 


자민당 1당 독재체제, 패전 이후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깨어나지 못한 일본이 조속히 정상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쳐,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평화로운 민주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함.




新羅異斯夫将軍の于山国(鬱陵島、独島)征伐(512)新羅時代の将軍の取締役付加現在鬱陵島と独島地域を征服して新羅の領土に編入させた歴史(三国史記に記録)。当時の于山国の人々併合して新羅に朝貢を捧げること。于山国の人々は、現在の鬱陵島にデータを置いて居住しており、鬱陵島海岸と島沿海で漁業に従事する。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7923&cid=43667&categoryId=43667)


世宗実録地理志(1432)朝鮮の世宗大王時代作られた地理書籍鬱陵島と独島を明らかに記録しており、陸地の民が島に逃げていく場合があり、鬱陵島と独島を監視するように命令したとなった。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4&cid=57618&categoryId=58159)


新東国輿地勝覧(1531)鬱陵島と独島に対する記録がある。蔚珍県に属しており、二つの島があり、追い風が吹いたときは小さな島(独島)に2日ぶり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るとなった。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3&cid=57618&categoryId=58159)


粛宗実録安龍福事件(1693)韓国と日本の間では、独島の領有権をめぐり紛争が起きた最初の事件。朝鮮人が鬱陵島で漁業をしていた倭人(日本人)が鬱陵島への不正侵入して漁業活動をした。これ倭人漁民を本国(倭国)に回して送っなぜ漁民が幕府に事実を知ってもらい、鬱陵島と独島の立場を表明した。

当時、日本幕府は「独島は朝鮮とより近いので、朝鮮の領土であることが確実である」と有志諭示する。

日韓独島紛争は、すでに数百年前の1696年、安龍福事件以降明らか朝鮮の領土任意に判明南。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2&cid=57618&categoryId=58159)


太政官指令(日本、1877)、日本明治政府から海岸観測をしていた日本の観測社の「独島編入」の質問に、「鬱陵島外1度(独島)は日本との関係なしに留意すること」という指令を発表。すでに日本は独島が朝鮮の領土であることを認めていたことを証明する。


大韓帝国勅令第41条(1900)の帝国は勅令を半含む。鬱陵島を鬱島と改称し、鬱陵全域と石島(独島)を管轄する行政機関であることを発表した。鬱陵郡ことを任命して鬱陵島と独島を近代行政機関に統治を始めする。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2938&cid=57618&categoryId=58159)


()のリンクされたサイトは、直接接続して、日韓翻訳を介して確認することだ。



以後1905年突然、日本政府は、独島を「竹島」と呼ばれる偽の名称を作っ命名し、日本の島根県に編入させる。 1905年は、日本が大韓帝国の親日の官僚数名強圧的に「乙巳条約」を締結し、外交権を剥奪。外交権が日本国に渡された大韓帝国は自国の領土である独島が奪われたにも関わらしっかりとした抗議が不可。

当時「乙巳条約」は、大韓帝国の高宗皇帝の塗装も写っていないが、国際法上無効の条約であり、日本は無効の条約を強制的に締結して朝鮮の領土と外交権を剥奪する。


加えて、独島が朝鮮が直接管轄した領土という証拠は知らずに多く、日本が独島と関連しない文献もたくさんある。日本はこれを意図的に隠しているが、多くの場合、日本と独島が関係ないという証拠が発見。

しかし、独島が朝鮮との関係という文献は、ただ1つもありません。独島と朝鮮と朝鮮半島の大韓民国の歴史の国は独島を何千年もの間、実効支配し固有の領土に編入して、管理をしてきた。

一方、日本は「日本と関係のない土地」という自国の歴史的な文献を隠蔽して歪曲して偽りの捏造で日本国民を洗脳して近隣諸国と混乱を巻き起こすなど、侵略的な歩みをしている。


自民党1党独裁体制、敗戦後の帝国主義の亡霊から覚めなかった日本が早急に正常な民主化の過程を経て、韓国と肩を並べることができる平和な民主国家になることを切に願って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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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황웅 17-05-18 01:13
 
올바른 예 ㅎㅎㅎ
각종 왜놈들의  주장에 댓글로 쓰임 좋을듯 하네요
전쟁망치 17-05-18 01:44
 
이놈의 왜놈들은
유튜브 한국 관련 역사에 꼭 한두놈씩 있더군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국 역사와 문화를 퍼트리는것에 도가 텃음
아직까지 똥술 이야기 하고 있더군요
대쥬신1054 17-05-18 05:59
 
근데조선은  울릉도 공도정책펴지않았나요?
     
그노스 17-05-18 07:05
 
조선의 공도정책은 왜적들로부터 지역민을 보호한다는 개념이지 그 지역을 방치하거나 포기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울진군청의 심현용 학예연구사에 의하면 조선이 울릉도에 대해 수토정책을 펼쳤는데, 수토 담당으로 그 당시 동해안의 경비를 담당한 수군인 삼척 포영과 월송 포진이 선정되었고 울릉도로 수토사를 주기적으로 파견하였으며, 울진 대풍헌 주변 지역민들이 수토사 일행의 경비와 부역을 부담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 시대에 섬이란 개발의 의미보다 통제의 의미가 더 강했는데 그 이유는 세금과 부역을 피해 섬으로 도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므로, 조선의 공도정책은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라고도 봐야 할 것입니다.
          
대쥬신1054 17-05-19 22:54
 
음.세금도  못내는 극빈곤층이 울릉도까지  도피를한다. 그당시  운송술로는 울릉도까지가는데 엄청난 돈이들었을듯한데요. 그리고간다해바야 그쪼매한섬에  얼마나 이주가가능했으며.  관군이들이닥친다면.

현실성 제로에수렴하는듯합니다만
               
그노스 17-05-20 12:25
 
그건 님만의 독특한 생각이시지요.
북한에서 도주하는 인민들은 모두 다 여유가 있어서 도주비용을 마련하나요?
다큐에서 북한 어린 아이 홀로 자금없이 중국으로 도주한 것은 못보셨습니까?
세금•부역을 피한다는 개념이 빈곤층이 세금과 부역을 피한다는 것 외에, 여유가 있어도 그것들을 부담하기 싫어 피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셔야지요. 현재도 탈세자들이 빈곤층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조선이 저런 공도•수토 정책을 울릉도에서만 실시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한국에 2900여개의 무인도들이 있는데 저 시대의 조선이 어떻게 수많은 무인도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도망한 백성들을 찾아내나요.
그런 싹을 처음부터 자르자고 한 것이 조선의 공도•수토 정책입니다.

실록에 부역을 피해 섬으로 도망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0월 20일 을유 3번째기사>

"인우가 20여 인을 잡아왔으나 40여 인을 잃었으니 무엇이 유익하냐. 이 섬에는 별로 다른 산물도 없으니, 도망해 들어간 이유는 단순히 부역(賦役)을 모면하려 한 것이로구나."

더욱이 이런 도주 문제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래 기록을 보시면,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3월 3일 계사 1번째기사>

종정성(宗貞盛)이 본도에서 도망하여 온 사람을 찾아 돌려보낼 것을 청하였는데, 그 글에 대략 이르기를,

"본도의 백성 마삼랑(馬三郞) 등 26명이 배를 훔쳐 가지고 도망하여 나가서 산달포(山達浦)에 정박[到泊]하였사오니, 청하옵건대, 속히 돌려보내 주소서."
Alice 17-05-18 09:11
 
일본 : 빼에~~~~~~~엑
조지아나 17-05-18 14:52
 
대마도가  백제땅 이란 고문헌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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