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는 후에 점점 강하고 커져서 작은 나라를 병합하고 그 나라가 본래 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고 백제군이다. <양서> 백제전
-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함께 있었으며 그 후 고구려는 요동에 있었으며 백제는 요서에 있었고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불렀다. <송서> 권97
- 금주, 의주, 애훈 등지가 모두 백제이다. <만주원류고>
-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치통감>
-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절에는 강한병사가 1백만명이나 되어 남쪽으로는 오월을 침범하였다. <삼국사기> 최치원전
당나라 때 계림(雞林)으로 일컬어졌던 곳은 당연히 오늘날의 길림(吉林)으로 생각되는데 말이 그릇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요, 따라서 신라·백제 등 여러 나라들도 역시 모두 그 부근 지역에 있었다…《만주원류고》
'박연암집(朴燕巖集)'에 복건성(福建省)의 천주.장주가 일찍이 신라의 땅이 되었다 하니 하서(何書)에 거(據)한 말인지 알지 못하여 인용치 못하거니와 진흥대왕이 흑 해외도 경략하여 이 유적(遺蹟)을 끼친 곳이 있는가 한다. 《조선상고사》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파견된 명의 장군 이여송이 요동(遼東) 철령위(鐵嶺衛) 출생인 것
태조 왕건 시절 오월국(吳越國) 사람들이 고려로 귀순·투항한 것
태조 때 거란에서 사신 30명과 낙타 50필을 보내와 화친을 청했지만 태조가 사신을 가두어 버리고 낙타를 굶겨 죽여버렸는데도 한반도의 넓이도 안된다고 알려진 고려를 막강한 힘을 가진 거란이 이 때 무력으로 응징하지 않은 것.
현종 때 오월국(吳越國) 사람들이 고려로 귀순·투항하고 천축국(天竺國)의 마후라(摩喉羅) 승려와 서천축국(西天竺國)의 홍범대사(洪梵大師)가 1~2 만 여리 거리에 있는 고려에 귀순을 한 것
현종 때 민월(越)사람들이 귀순·투항하고 만 여리나 떨어진 감숙성에 위치한 철리국(鐵利國)에서 한반도의 조그만 나라로 알려진 고려에 조공을 하며 속국이 되기를 자청한 것.
현종 때 중국 복건성의 천주(泉州)사람들이 귀순·투항한 것
고려 인종 14년 기록 : 9월에 김치규(金稚規)와 유대거(劉待擧)를 송나라 명주(明州)에 보내어 첩(牒)을 전하기를, 만약 상국의 울타리인 우리 나라가 없어진다면, 회남(淮南)·절강(浙江)의 언저리가 금나라와 인접될 것이니, 진실로 상국(上國)의 이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려의 영토를 한반도를 기점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
1102년(숙종 7년) 10월 ‘왕, 북숭산(北崇山) 신호사(神護寺)에 가서 오백나한재(五百羅漢齋)를 설치 라는 기록에서 숭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며 한반도 내에 없다고 주장
1006년 2월 '등주(登州), 용진진(龍津鎭), 귀성(龜城)에 성을 쌓음' 에서 등주는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았다고 주장
‘1026년(현종17년)윤 5월 거란, 야율골타(耶律骨打)를 보내어 동북여진을 치는데 길을 빌려줄 것을 청했으나 불허’ 기존의 고려 영토를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
930년 8월 청주(靑州)에 거대한 나성(羅城)을 쌓았다고 전해지나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것
고려시대 각종 지진과 가뭄 등의 횟수가 동시대 중국의 자연재해 횟수와 비슷하다는 것
고려의 행정구역 수가 584개로서 조선의 324개에 비해 2배 정도인 것
한반도의 평범한 산에서 화산이 폭발한 것
중국 사천성의 '영릉'에 묻힌 왕건이 고려의 태조 왕건이며 현지인들은 그 무덤을 '카오리 왕젠의 무덤'이라고 부른다는 것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A5%99%EC%82%AC%EA%B4%80
요동, 요서 백제설은 말이되는 얘기입니다.
백제의 건국세력이 어디서 출발했나를 생각하면 이견이 있을수 없죠.
소서노가 고구려에서 비류, 온조와 신하들을 데리고 갈라진게 백제입니다.
주몽이 소서노를 만나 고구려를 세우기 이전 세력이나 유리왕과 갈라진 직후에,
그들이 백제라고 칭했는지 어땠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백제를 건국한 세력이 고구려가 건국된 위치에 살고 있었던건 반박할수 없는 진실입니다.
만주원류고는 만주족이 쓴 역사서 입니다.
만주족은 청, 후금, 금, 여진의 계보를 갖고있는 세력입니다.
고조선 해체후 진한, 변한 유민들이 한반도 마한으로 내려가 진한, 변한을 이루었고,
한반도 진한에서 신라가 세워졌습니다.
거란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의 진한은 부여지역이라고 합니다.
고조선의 정통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야) 모두 갖고있었습니다.
여진은 신라를 잇는다는 명분을 갖고 일어난 부족입니다.
그러므로 만주족에게는 고구려보다 신라가 더 중요시 된것입니다.
고구려를 잇는다는 명분을 갖고 있던 고려와 싸우지 않고서도 명분을 세운겁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여송은 조선계 명나라인 입니다.
그의 부친 이성량은 명나라의 관직을 받아 여진지역을 세습 통치했으며 후금을 건국한 누루하치의 부친과 조부가 살해당할 당시 그곳에 있던 인물입니다.
소서노를 따라나온 두명의 왕자 비류와 온조는 각각 따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비류는 바닷가에 살고싶어해서 백성을 나눠 미추홀로 갔다고 하며,
온조는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십제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100개의 집단(집안)이 바다를 건너와 세운 나라’라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100개의 나루터(항구.선착장)를 가진 나라’라는 뜻과 마지막으로 온조가 세운나라 즉 십제에서 비류가 죽고 비류의 나라를 통합하면서 ‘백성들이 즐겁게 따랐다’는 의미에서 백제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제건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대백제이야기), 2007., 한국콘텐츠진흥원)
오월국
오대십국(五代十国) 시기의 십국(十国)의 하나. 당의 절도사 전육(钱镠)이 건국한 나라로 도성은 전당(钱塘 : 杭州)이었으며 영토는 현재의 저장성, 장쑤 동남부 및 푸젠 동북부에 위치하였고, 태조무숙왕(太祖武肃王) 전육(钱镠 : 재위 907~932), 세종문목왕(世宗文穆王) 전원관(钱元瓘 : 재위 932~941), 충헌왕(忠献王) 전좌(钱佐 : 재위 941~947), 충손왕(忠逊王) 전종(钱倧 : 재위 947~948), 충의왕(忠懿王) 전숙(钱俶, Qián Chù : 재위 948~978) 등 5명의 군주(君主)가 통치하였으며, 987년 북송(北宋)에 멸망하였다. 존속기간 907~978.
[네이버 지식백과] 오월국 [吴越国, Kingdom of Wúyuè, Wúyuè Guó]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도서출판 인포차이나)
오월국은 당나라의 절도사가 건국한 나라입니다.
왕호가 충손왕, 충의왕 이렇듯 오월국은 통치편의를 위해 세운 당나라의 괴뢰정부 성격으로 추측되어 집니다.
오월국 사람들이 멀리 바다건너 고려로 귀순, 투항하러 왔다는것의 의미가 뭘까요?
민월[閩越 ]
진(秦)·한(漢) 나라 때 지금의 푸젠(福建) 성 지방에 있던 야만족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