渤海靺鞨 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 高麗旣滅 祚榮率家屬徙居營州. 萬歲通天年 契丹李盡忠反叛 祚榮與靺鞨乞四比羽各領亡命東奔 保阻以自固. 盡忠旣死 則天命右玉鈐衛大將軍李楷固率兵討其餘黨 先破斬乞四比羽 又度天門嶺以迫祚榮. 祚榮合高麗·靺鞨之衆以拒楷固 王師大敗 楷固脫身而還. 屬契丹及奚盡降突厥 道路阻絶 則天不能討 祚榮遂率其衆東保桂婁之故地 據東牟山 築城以居之.
○ 발해말갈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조영은 가속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
만세통천 연간(A.D.696; 신라 효소왕 5)에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니, 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와 함께 각각 [그들의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하여 요해지를 차지하여 수비를 굳혔다. 진충이 죽자, 측천[무후]가 우옥검위대장군 이해고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그 여당을 토벌케 하니, [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찔러 베고, 또 천문령을 넘어 조영을 바짝 뒤쫓았다. 조영이 고[구]려·말갈의 무리를 연합하여 해고에게 항거하자, 왕사는 크게 패하고 해고만 탈출하여 돌아왔다. [이때] 마침 거란과 해(奚)가 모두 돌궐에게 항복을 하므로 길이 막혀서 측천[무후]는 [그들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다. 조영은 마침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동으로 가서 계루[部]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祚榮驍勇善用兵 靺鞨之衆及高麗餘燼 稍稍歸之. 聖曆中 自立爲振國王 遣使通於突厥. 其地在營州之東二千裏 南與新羅相接. 越憙靺鞨東北至黑水靺鞨 地方二千裏 編戶十餘萬 勝兵數萬人. 風俗與高麗及契丹同 頗有文字及書記.
○ 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용병을 잘 하자, 말갈의 무리 및 고[구]려의 여당이 점점 모여 들었다. 성력 연간(A.D.698~699; 신라 효소왕 7~발해 고왕 1)에 스스로 진국왕에 올라 돌궐에 사신을 보내어 통교하였다.
그 땅은 영주 동쪽 2천리 밖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서로 접하고 있다. 월희말갈에서 동북으로는 흑수말갈에 이르는데, 사방이 2천리이며, 편호는 십여만이고 승병은 수만명이다. 풍속은 고[구]려 및 거란과 같고, 문자 및 전적도 상당히 있다.
中宗卽位 遣侍禦史張行 往招慰之. 祚榮遣子入侍 將加冊立 會契丹與突厥連歲寇邊 使命不達. 睿宗先天二年 遣郞將崔 往冊拜祚榮爲左驍衛員外大將軍·渤海郡王 仍以其所統爲忽汗州 加授忽汗州都督 自是每歲遣使朝貢.
○ 중종이 즉위하여, 시어사 장행급을 보내어 초위하니, 조영이 아들을 보내어 입시시켰다. 이때 책립을 하려 하는데, 마침 거란과 돌궐이 해마다 변경을 침입하므로 사명이 전달되지 않았다.
예종 선천 2년(A.D.713; 발해 고왕 15)에 낭장 최흔을 보내어 조영을 책봉하여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으로 삼고, 아울러 거느리고 있는 지역을 홀한주로 삼아서 홀한주도독의 직을 더 주었다. 이로부터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開元七年 祚榮死 玄宗遣使弔祭 乃冊立其嫡子桂婁郡王大武藝襲父爲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
○ 개원 7년(A.D.719; 발해 무왕 1) 에 조영이 죽으니, 현종이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고 이어서 그의 적자 계루군왕 대무예를 책립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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