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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03 21:27
[한국사] 고구려 대무신태왕대 만주 지역 판도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2,00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rL9l5

칸 채우기용



만주 지역 판도.png


 

 

칸 띄우기용

      파란색 북부여

 

      

       회색 읍루

   

    연두색 고구려

   

    보라색 북동부여

 

    하늘색 남동부여

  

    노란색 낙랑국

 

 연하늘색 마한

 

칸 띄우기용

 

 주요 논점에 관해

칸 띄우기용


 

고구려: 그 연대가 삭감되어 200백 여년에 달하는 시대 기록의 간극이 생기게 되었다.

실상 고구려는 서기전 200년 경에 건국되었다.

칸 띄우기용


낙랑국: 낙랑군과는 다르며, 낙랑국은 지금의 평양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로 서기전 195년에 건국되었다.


칸 띄우기용


삼부여(북부여-남동부여-북동부여): 해모수의 정권 장악으로 부여의 단군이 되었으니 이가 북부여이며

원래 부여 단군이었던 해부루는 동쪽으로 달아나 다시 터전을 잡으니 이가 동부여인데 그 손자 대소 대에

이르러 고구려 대무신태왕에 의해 크게 패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니 북동부여와 남동부여이다.

북부여는 한때 중국 한나라로부터 임금의 수의를 조공받았을 정도로 강성했다.


칸 띄우기용


마한: 지금의 대한민국과 위치와 강역이 대략 비슷하다. 나중에 북쪽에서 내려온 유민들에게 남쪽과 동쪽

땅을 떼어주어 그들이 각각 변한과 진한이 되어 떨어져나갔다. 북으로 낙랑국과 접경했다.

칸 띄우기용


우기용

마지막으로 지도를 만드는데 있어서 특별히 주목했던 고구려 수도 졸본성의 위치


 

칸 채우기용


칸 띄우기용

  

'요동성에는 주몽의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쇠갑과 예리한 창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국조 추모태왕의 사당은 분명 최초의 수도 졸본성에 있었을 것이므로 '졸본성=요동성' 이라는

중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대 요동은 지금의 난하와 요하 중간에 있었으며 대략 지금의 하북성 동부와 요녕성 서부에 걸쳐서

위치했을 것이다. 요동 지역의 중심이었으며 가장 거대했던 성 요동성도 분명 그 내에 위치했을 테다.

칸 띄우기용

 

그렇다면 요동성은 어디에 위치했는가

칸 띄우기용


1. 발해에 대해 다룬 이광웅 저 '대조영과 발해'에는 '요동성=창려현' 주장이 나온다.

창려현은 만리장성 동단기점 부근에 있으며 고대 요동의 범위에 들어간다.

칸 띄우기용 

2. 박영규의 대중역사서 '신삼국사기 고구려본기'


900년 역사 종지부.jpg

칸 띄우기용

3. 조선상고사

칸 띄우기용

'졸본성(현 봉천성 소재지)' 라고 하였던 바. 봉천성은 현재 요녕성의 청나라 시대 명칭이니

요동성(옛 졸본성) 고지의 범위는 현 요녕성으로 확대된다.

칸 띄우기용

결론

칸 띄우기용

졸본성의 위치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서 가장 정확한 것을 찾아나가야 한다.

필자는 졸본성이 현재의 창려현에 위치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서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그 영토는 현재의 만리장성의 남부에 이르지만 고구려 건국 당시에는 명대에 축조된 것보다

견고함이 덜하였고 그 경계가 불분명하였으니 장성을 넘어서 영토를 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다

추론하는 바이다. 다만 '장성이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얼마나 장애물이 되었는가'는 지엽적인 문제이므로

더 이상 생각할 가치도 없다.





칸 띄우기용

축소된 열국.jpg 

칸 띄우기용



 왜곡된 역사.png

칸 띄우기용


식민.png



이따위 지도들은 더 이상 나돌아다녀서





는 안된다

 

 

칸 채우기용

 

우리 민족의 광활한 터전과 만주를 내달




렸던 웅대한 기상은 어디 있는가? 모두




 왜곡되고 지도에서는 그 자취를 감춰버




렸다





 

그 기상을 되찾아야 한다





칸 채우기용

    


식민사학과 그 세력의 척결이 우선이다





칸 채우기용




지적 받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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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7-06-03 21:31
   
저기 위에는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이라,,
예로부터 색칠놀이로 그리기 나름임.

실제로, 국경을 어디까지로 보았는지? 알수는 없음.

고구려는 계속 따뜻한 남쪽으로 가고자 노력했지..
딱히, 저 방향쪽은 제대로 관리도 안된 지역이고,

거기 퉁구스계 토속민족들이 사는데 동네로,
고구려의 부용민족이 되어 사냥하고 지들이 알아서 살던 곳..
     
감방친구 17-06-04 11:09
   
흉노나 돌궐, 요나 금은 인구가 얼마나 되었길래 사람도 살지 않고 별 쓸모도 없는 땅을 영토로 그려준답니까?

남의 영토는 되도록 크게 그려주고 우리 영토는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되도록 작게 그리는 게 과연 타당한 짓입니까?

부여와 고구려와 발해가 내리 만주와 연해주의,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내몽골지역의 종족을 지배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역이 우리의 영역이요 영토였던 것이지요
     
위구르 17-06-05 12:42
   
위분 분 말마따나 요나라가 지배했던 광활한 초원지대, 금나라가 지배했던 만주 땅, 청나라가 통치했던 위구르, 티베트 땅 그리고 흉노제국이 장악했던 비단길 지대는 뭡니까? 그리고 인구 천만도 안되는 티베트가 지배했던 5백만 제곱 킬로미터의 땅과 인구 수백만에 불과했던 위구르 제국이 지배한 9백만 제곱 킬로미터의 넓디 넓은 황량한 땅은 다 인정해주면서 부여와 발해, 고구려의 만주 땅 지배는 인구가 적었다느니 황량하고 추워서 쓸모가 없었다느니 실효성이 없고 땅따먹기 놀이에 불과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가지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이중적인 논리 참으로 증오스럽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들이대며 축소시키는 행위, 부끄러운줄 알아야지요.
설민석 17-06-03 22:05
   
북부여 사람들 얼어 뒤지겠다
     
인류제국 17-06-04 00:09
   
저때랑 지금이랑 만주 시베리아지역이 기후가 다르다고 하네요

저때는 나름 따뜻해서 농사가 되었다고 하네요
     
TimeMaster 17-06-04 14:33
   
저때 북부여 기후는 지금 북한정도 기후였거나 그보다 조금 낮은 정도였을겁니다. 예전 6~7천년전 몽골에서 농경 유적들이 여럿 발견되었는데 지금 한반도 중부 서울정도 기후였다고 하더군요. 당시 온도가 기후 온난화라고 난리치는 현재보다 훨씬 따듯했던...

예전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때만해도 남태평양에서 오던 바람과 구름이 몽골지역까지 오던 당시라 많은 강수량과 적당한 온도등으로 농사가 가능했죠. 이후 어느시기부터 그것이 한반도와 남만주정도까지만 올라오다 끊겨버려 몽골과 북만주 지역이 지금같이 비도 안오고 따뜻한 기후도 아닌 곳이 되어버린거지...

조금씩 기후가 떨어지고 있었으나 북부여도 아직은 살만할 정도였다는 거죠. 중원쪽 역사 기록에도 부여는 반농반목을 했다고 하니 지금 북만주와는 달리 농경은 아직 어느정도 가능할 기후였겠죠. 쌀농사는 아닌 조나 수수, 콩등이었겠지만...

예맥과 함께 우리민족의 주류인 부예계 민족(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백제)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남만주와 한반도로 남하하는걸 보면 기온이 조금씩 떨어져서 살만한 땅을 찾아 민족대이동이 있었다는걸 증명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구르 17-06-05 12:45
   
온돌을 쓰고 옷을 지어 입으며 추위를 이겨낸 조상들의 지혜와 강추위에도 끄떡없이 버티던 조상들의 강인함을 무시하는군요. 그리고 위분들 말씀처럼 지금보다 따뜻했을 수도 있으니 만주 북부에서 나라를 이루고 사는건 충분히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논리에 의하면 저 황량하고 먹을 것 없는 곳에서 살던 몽골인들은 이미 다 멸족하고 없어졌겠군요.

여러 요소를 무시하는 1차원적인 논리 삼가셨으면 합니다^^
Marauder 17-06-03 22:40
   
요동성이 졸본성이었단 말은 처음들어봤는데 진짜라면 고대지도 전체가 확바껴야하는거 아닌가요? 근데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한거 아닙니까
     
꼬마러브 17-06-03 23:33
   
머로다님께서 다양성?을 좋아하시니 설을 소개한다면..

사실 압록강을 포함, 고구려의 건국위치가 요하일대라는 주장은 굉장히 오래된 설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사서 모두 고구려가 건국된 곳, 즉 졸본의 위치가 요동에 있다 하였고
특히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고구려지리에서 졸본의 정확한 위치가  요양 서쪽이라고 밝혔습니다.

더 자세히 보면

삼국사기 제37권 잡지 제6 <고구려지리지>

『한서지』에는 “요동군은 낙양과의 거리가 3천6백 리이며 이에 속한 현으로써 무려현이 있었으니 바로 『주례』에 이른바 북진의 <<<♬의무려산♬>>>이며 대요 때는 그 아래쪽에 의주를 설치하였다. 현도군은 낙양과 동북으로 4천 리 떨어져 있었고 이에 속한 현은 셋이다. 고구려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즉 주몽이 도읍을 정한 곳이라고 하는 흘승골과 졸본이란 지방은 아마도 한나라 현도군의 경내이고 <<♥대요국 동경의 서쪽♥>>인 듯하며, 『한서지』에 이른바 현도군의 속현으로써의 고구려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 대요가 멸망하기 이전에 요제가 연경(燕京)에 있었으므로 우리 사신들이 동경(東京)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 사이에 의주에 당도하여 연계(燕薊)로 향하였기 때문에 『한서지』의 기록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하트 안쪽을 잘 보시길.. '요나라의 동경의 서쪽'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요나라의 동경은 현재 요양입니다. 즉, 고구려가 건국되었던 '졸본'지역은 요양의 서쪽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의 음표부분들 역시, 의무려산은 요서와 요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중국어로 이우뤼산, 중국 동북부 3대 명산 중 하나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A%B0%EB%A4%BC_%EC%82%B0
또한, 한사군 중 하나인 요동군이 의무려산지역에 있었다면, 의무려산이 현재 요서지방에 있으므로 한사군도 요서에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지요.

이어서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 1 <고구려>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혹은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라고 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 요동경계란 요하를 말하겠지요.

이어서 삼국유사를 계속 보면..

주몽은 졸본주[♥현도군의 경계이다.♥]에 이르러 드디어 여기에 도읍을 정하였다. 하지만 미처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서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며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그리고 고(高)를 성으로 삼았다.[본래의 성은 해씨이다. 지금 자신이 천제의 아들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고 하였기 때문에 고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그 당시 나이가 12세로,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년 갑신(기원전 37)에 즉위하여 왕이라 하였다. 고구려가 전성기였을 때는 210,508호나 되었다

-'현도군의 경계'라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도군을 포함한 한사군은 요서지방에 있었고, 따라서 현도군의 경계란, 요서와 요동의 경계, 즉 요하지방을 말합니다. 앞에서의 기록의 '요동경계'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삼국사기 완역본
http://terms.naver.com/list.nhn?cid=49615&categoryId=49615
삼국유사 완역본
http://terms.naver.com/list.nhn?cid=49616&categoryId=49616

뭐 사실 저도 졸본의 위치와 압록강 요하 논쟁에 대해서 어느 쪽이 옳은지 확신은 못합니다. 다만 한 쪽 설만을 고집하고 가능성을 닫아두는 것 역시 좋아 보이지는 않겠다..하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요하이든 압록강이든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가 요동지역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사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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