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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05 11:03
[기타] 강단사학의 무능함과 뻔뻔함
 글쓴이 : 바람따라0
조회 : 1,315  

강단사학은 식민사관과 동북공정 극복을 위해 자신들도 열심히 연구했다고 자화자찬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시진핑이 트럼프와 회담하면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개소리를 합니다.

 

여기에 강단사학은 어떤 대응을 했나요?

 

시진핑의 개소리에는 강단사학이 추진했다 폐기된 동북아역사지도도 큰 역할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그들의 잘못을 막은 도종환 의원을 환빠라고 음해하고 있습니다.

 

도종환 의원은 일본과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의 역사를 축소한 것에 반대한 것이지, 환단고기를 옹호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글이나 행동 어디에도 환단고기 옹호는 없습니다.

 

그런데, 도종환 의원을 환빠라고 마타도어 하던 자들이,

자신들의 거짓이 드러나니,

 

'환단고기와 맥락이 같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말입니까? 방귀 입니까?

 

현재 동북아시아에 치열한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강단사학의 행동은 적과 맞상대하는 아군의 등에서 총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을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분야에서 완전히 퇴출시켜야 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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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7-06-05 11:12
   
환빠가 아니라면,
청문회때 도종환 의원이 해명하면 되는 일입니다.
     
스리랑 17-06-05 12:19
   
독립군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 두 사람의 자금지원으로 30부를 간행한 책이 환단고기 입니다. 환단고기 책은 일본인이 쓴 책이 아닙니다. 그른데 왜?

환빠니 뭐니 하면서 거짓말 책이라고 일본사람보다도 더 그책을 원수스럽게 생각할까요??

제가 볼때는 일제 식민사학 추종자들이
그들의 영달과 직결된 자신들의 아성을 방어하기 위해
『환단고기』책이 위서, 거짓말 책이라고 또는 환빠라고 거의 저주하다시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주장을 하는사람들의 본질적인 이유는 식민사학이 붕괴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이 상실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환단고기 책은 예로부터 민간에 비장되어 온,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환단고기桓檀古記』입니다.

신라 고승高僧 안함로(安含老,579~640)에서 조선조 이맥(李陌,1455~1528)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입니다.
이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삼성기(三聖紀)라는 책은 세조실록에도 그 책 이름이 나옵니다. 민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쓴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년 ~ 1364년)선생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태백일사太白逸史』를 지은 이맥李陌 (1455~1528)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맥은 행촌 이암의 현손玄孫으로 자는 정부井夫, 호는 일십당(一十堂)으로 1474년(성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 4) 성균관 전적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는데,

장숙용張淑容(장녹수)이 연산군의 총애를 믿고 분에 넘치게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일삼자 여러 차례 탄핵 상소를 올리다가 50세(1504)에 충청도 괴산에 유배되었던 인물입니다.


66세 때인 1520년, 이맥은 실록을 기록하는 찬수관撰修官이 되었을때 옛사료를 바탕으로 태백일사를 썼습니다.

 『북부여기北夫餘記』를 지은 복애 범세동(伏涯 范世東)은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며, 두문동 72현’으로 손꼽힌 충절 인물로 공민왕 18년(1369)에 급제하였고 성리학자로서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華海師全)』과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던 인물입니다.

삼성기 上을 지은 안함로 安含老 (579~640)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로 신라의 대표적인 인물 십성十聖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삼성기 下의 저자 원동중(본명,원천석) 고려 말(1330~ ), 태종(이방원)의 스승으로, 태종이 벼슬을 태종이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원천석은 춘추전국시대 晉(진)나라의 직필하던 사관이었던 ,董狐(동호)를 존경하여 자신의 필명을 董仲(동중)이라 하였습니다.
          
스리랑 17-06-05 12:29
   
일본이 우리역사를 왜곡하는데 가장 큰 역할를 했던 역사학자 이병도박사가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사관 수립에 직접 기여하였고,
일제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도사관론을 유포시키고,
우리 역사 사료들을 전부 빼앗아 가고 불태우고서는

증거가 있어야만 인정한다는 식의 소위 실증주의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일제가 유포시킨 식민사관을 해방 후까지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그런 사람이
광복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와 문교부 장관까지 지냈습니다.

오늘날 한국 역사학계의 학문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사람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이병도의 제자 아닌 사람이 드물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과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들 백성의 피를 빨던 친일파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정권창출을 위해 권력을 그대로 유지시켜준 게 가장 큰 근본 문제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땅은 되찾았지만
아직까지도 정신,혼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스리랑 17-06-05 12:30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杏村 李灸,1297~1364) 선생이 쓴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을 보면

爲國之道 莫先於士氣 莫急於史學 何也
史學不明則士氣不振 士氣不振則國本搖矣
... 國猶形 史猶魂 形可失魂而保乎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사가 밝혀지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펼칠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펼쳐지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분열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스리랑 17-06-05 12:39
   
위서론자들은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문명, 개화, 부권(父權), 헌법과 같은 어휘가 쓰인 것을 빌미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어휘들은 고문헌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 자유는 ‘자기가 주인이 되다’라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고, 환단고기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도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주역 계사하(繫辭下)의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집안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라는 구절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된 ’국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문’과 ‘화’가 결합된 문화라는 말은 고대에 이미 사용 되었으며, 문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키다(以文敎化)를 뜻합니다.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을 보면,“선행을 상주고 간악한 행위를 벌주는 것은 나라의 법이다(賞善罰姦 國之憲法也)하고 하여 ‘법’, ‘법전’을 뜻하는 ‘헌법’이 나옵니다. 백번 양보하여 정말 근대어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 자체가 완전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들을 돌이켜 보면,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주역(周易)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을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 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합쳐진 것입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가 천 년에 걸쳐 쓰인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묶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원래 다섯 저자들이 쓴 원본이 무수한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무사히 피하여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기도 하고 부족한 내용에 가필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들과 다소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가 전적으로 매도 될 수 는 없습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나온 시선집인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수록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분함을 품고 있었는데, 네가 어찌 멋대로 할 수 있는가(吾意久懷忿 汝豈得自由)라고 하여 ‘자유’라는 어휘가 나옵니다.

 

인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된 금강경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편에 이 법은 차별이 없어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라고 하여 ‘평등’이란 어휘가 사용되었습니다.

 

장자 지북유(知北遊)편에서 “생물은 이를 서러워하고, 사람은 이를 슬퍼한다(生物哀之 人類悲之)라 하여 ‘인류(人類)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때 한문으로 번역 된 능엄경의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합니까(何名爲衆生世界)라는 구절에 ’세계‘라는 어휘가 사용 되었습니다.
                         
스리랑 17-06-05 12:48
   
그리고『환단고기』의 기록을 검토해 볼 때 그 내용이 유물로 입증된 사례도 있습니다.『환단고기』에는 장수왕의 연호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이 1915년에 발견된 불상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서 입증된 것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建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건흥 연호가 1915년 충북 충주 노온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光背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천남생묘지(泉男生墓誌) 비문(碑文)”에도
천남생(泉男生)은 고구려의 재상이자 영웅인 연개소문의 큰 아들입니다. 그의 묘비명이 1923년에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남생의 아버지 개금(蓋金),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子遊)”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태백일사太白逸史』가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밝힌 기록과 일치합니다. 이 책은 여기에 남생의 고조부, 즉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을 “광(廣)”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또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환지 17세손’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광개토태왕은 추모鄒牟왕의 13세손’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다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환단고기』를 보면 그 이유가 밝혀지게 됩니다.

 

『환단고기』에는 고구려 제왕의 계보가 제1세 해모수(BCE 194년에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로부터 →제2세 고리국의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로부터 →제2세 고리국의 제후 고진(해모수의 둘째 아들)→제3세 고진의 아들→제4세 옥저후 불리지(고진의 손자)→제5세 고추모(고주몽, 고진의 증손자) … 제17세 광개토태왕(주몽의 13세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주몽의 선조는 해모수이며 그로부터 치면 광개토대왕은 17세가 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도 광개토대왕비도 모두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환단고기』가 해명해준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환단고기』가 후대의 창작이 아닌 진서임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환단고기』가 진서임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들이 『환단고기』 자체 내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그 증거들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왜 자세히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고 굳이 위서라고 낙인찍는가 하는 것입니다.

 

민족사학자이건, 역사학계의 주류 사학자이건 누구라도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 『환단고기』에 담긴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열린 태도와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스리랑 17-06-05 13:00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중국과 일제가 저지른 역사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서입니다. 그런데도 일제 식민사학 추종자들이 그들의 영달과 직결된 자신들의 아성을 방어하기 위해 뿌려 놓은 위서 바이러스에 많은 국민들이 감염이 되어 있습니다.

위서론자들의 본질적인 이유는 식민사학이 붕괴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이 상실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를 전해준 분들이 대부분 절식(絶食)으로, 또 일본 제국주의 침략주의자들에게 잡혀서 사지가 잘리고 그렇게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이『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병도선생 이후 지금 강단 사학은 식민사학의 큰 틀은 전혀 극복이 안돼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읽어가면서 그 극적 클라이막스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杏村 李灸,1297~1364) 선생이 쓴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입니다.


단군세기 서문에 대해서도 위서론자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합니다.

 

대한민국의 정통 강단사학의 태두들이 자리 잡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단군세기 서문을 보면 너무 근대사의 술어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만방이라는 말이 옛날에 쓰던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유형(國猶形) 사유혼(史猶魂)”하니,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이게 박은식 선생의 한국 통사(韓國痛史)에 있는 얘기를 끌어다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은식 선생의 책 원본, 한자로 된 책을 보면 내가 옛사람의 글을 인용해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은식 선생이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베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한 구절을 빼고서 거꾸로 뒤집어가지고서 한국통사에 있는 그런 한 구절을 단군세기에다 끌어다 썼다고, 이유립이가 조작을 했다고, 그런 것을 보면 위서론자들의 심성이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행촌 이암이 국록을 먹은 사람이 몽고니, 고려니 이런 말을 직설적으로 쓸 수가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행촌 이암은 고려말 사람으로 여섯 명의 왕을 모신 사람입니다.

지구촌의 3분의 1을 통일한 원나라 대제국이 고려를 쳐들어 왔을 때, 원나라의 시녀로 전락한 고려의 오잠吳潛, 유청신柳淸臣 같은 역적이 나와 가지고 고려란 나라 간판을 떼고서 전부 보따리 싸들고 원나라 조정으로 귀속해버리는 이런 역적들이 날뛸 때입니다.
 
 

그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태도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일단 부정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꼬투리를 잡다보니 ‘잠청배(潛淸輩)’를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 땅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이 ‘청과 몰래 내통한 무리’를 가리켜 한 말”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잠청배(潛淸輩)”는 원래 이암이 『단군세기』 서문에서 처음으로 쓴 말인데 원나라 간섭기 때 고려 인물로 정치적 문제를 일으켰던 오잠과 류청신의 이름을 빗대어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위서론자들은 이렇게 잠청배를 잘못 해석하여 『단군세기』 서문은 이암이 아닌 구한말 이후의 사람이 쓴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학자가 역사 지식의 부족을 스스로 드러낸 주장입니다.
 

그들은『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의 실제 사용연대가 저술 연대보다 훨씬 후대이므로 그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고탑이라는 지명과 잠청배라는 용어를 들어 단군세기나 북부여기가 청나라 이후에나 저술될 수밖에 없는 책이므로 고려시대에 저술된 책이 아니라 청나라 이후에 조작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지하고 억지스러운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고탑은 그들의 주장처럼 청나라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명대明代의 기록에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나오고 있으므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각 역사서의 저자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라는 『세조실록』의 기록은 보지 않고 그보다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安咸·원로元老·동중董仲’ 세 사람이 황해도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삼성기』의 저자를 안함로, 원동중 두 사람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 주장합니다.

얼핏 일리 있는 말로 들리지만 이 주장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인용할 때 앞서 나온 책을 인용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경우는 『세조실록』을 기록하는 사람이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하였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몇 가지만 지적하더라도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비양심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경대에서 나와 있는 1904년도 삼국유사본을 보면 거기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아주 뚜렷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마니시 류가 그걸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고 조작을 했는데, 우리나라에 여러 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야, 그것은 國 자나, 因 자나 그때 같이 그런 서체로 썼다고 합니다. 조작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걸 가만히 보면 심성이 잘못돼 있습니다.
바람따라0 17-06-05 11:21
   
mymiky/ 쯔쯔쯔... 수준참 저렴하네요.

환빠라는 증거없이 일단 저지르고 상대방이 증명하라는 것은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마타도어 방식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제가 님을 '식빠'로 규정하고, 아님을 증명하라고 요구해도 되는 건가요?
     
mymiky 17-06-05 11:27
   
청문회라는 것이 질문하고 응답하는 자리니까..
본인이 해명할거 있으면 해명하고, 방어할거는 방어하고
도의원이 알아서 어련히 잘 하시겠죠.
          
바람따라0 17-06-05 11:31
   
mymiky/ 강단사학이 청문회 의원 인가요?

도종환 의원을 환빠라고 매도하기전에,

자신들이 저지른 일부터 반성해야할 집단입니다.
               
mymiky 17-06-05 11:34
   
청문회에서 무슨 질문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는거죠.
나도 모르고, 님도 모르고요.

그날, 만약 그 질문이 나온다해도
빼지않고 도의원이 알아서 잘 하겠죠.

그 질문이 안 나오면, 안 나오는거고요-
그 날 가보면 알겠죠..
                    
바람따라0 17-06-05 11:39
   
mymiky/ 논지를 자꾸 벗어나서 말하는 군요.

저는 청문회에서 도종환 의원을 검증하는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시진핑의 개 소리에 침묵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 잡은 도종환 의원을 근거 없이이 환짜라 비방하는
강단사학을 비판하는 겁니다.
                         
mymiky 17-06-05 11:50
   
요 몇일동안, 한사군에 대한 글에,
평양설을 지지하는 댓글을 달아서
강단사학의 찌그레기-란 말까지 듣게 된 접니다 ㅋㅋㅋ

물론 저도 저 나름대로의 이유로 그렇습니다만..
세뇌라느니,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죠.

그래서, 공격당하는 기분이 먼지는 알겠는데..
뭐, 도종환 의원이 그 자리에서 공격당해도,, 잘 버텨내는 것
또한 정치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숙명이니까..
모조록, 청문회에서 잘 하셨으면 하네요..

그래도, 저는 시진핑 개, 소리에 옹호한 적은 없으니 오해는 마시구요ㅋ
                         
바람따라0 17-06-05 11:53
   
mymiky/ 계속해서 동문 서답 하시는 데요.

다시 말씀드리죠.

저는 청문회에서 도종환 의원을 검증하는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시진핑의 개 소리에 침묵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 잡은 도종환 의원을 근거 없이이 환빠라 비방하는
강단사학을 비판하는 겁니다.
                         
mymiky 17-06-05 12:00
   
예, 알겠습니다.
위구르 17-06-05 11:54
   
동북공정에 제대로 된 반박하나 못하는, 아니 안하는 영원한 쓰레기들의 집단 강단사학
     
인류제국 17-06-05 12:04
   
재미있는 사실 알려드리죠

바잉턴이라는 미국교수가  이덕일같은 재야사학자들의 공격을 받은적이 있는데

강단사학계쪽에서는 바잉턴을 도와주거나 방어해주기는 커녕 나몰라라 하고 버렸죠 ㅋㅋㅋㅋ

그래서 바잉턴의 떠나고 중국고대사로 전공을 바꾸었지요
칼리S 17-06-05 12:06
   
강단사학을 식민사학으로 몰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학도들은 유사사학자들 중에서도 환빠들의 논리가 허구맹랑해서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암.

유사사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사료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합해서 유물 이딴건 아예 외면하고 주장만 해댐.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료나 유물이 가장 빈약한(즉 자신들의 조작에 편한) 상고사 쪽에서만 활발하게 활동함.

강단사학이 무슨 짱개나 쪽바리의 역사왜곡에 동조한다고 주장하는데 실상은 오히려 환빠와 같은 유사사학이 그들과 같이 역사왜곡에 앞장서 있슴.

상고사에서 영토만 넓게 그려놓으면 이게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는데, 실상은 그 시대에는 통치력의 한계 때문에 절대 그런 영토를 지배할 수 있는 국가가 존재하지 못함. 이건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전세계 만국 공통임.

당장 신뢰도 측면에서 일본서기(역사서로서 가치가 별로 없음.)보다 환단고기가 못한데, 환단고기를 인정한다면 일본서기는 머가 됨? ㅋㅋㅋ. 애당초 1900년대에 조작된 역사서(상고사인데도 참고했다는 책들이 현존하지 않거나 인쇄본자체가 오래된게 없슴)를 가지고 신앙처럼 숭배하는게 어처구니가 없는 것임. 구약이 차라리 환단고기보다 오히려 신뢰가 간다면 말 다한 겁니다.
     
바람따라0 17-06-05 12:08
   
강단 사학이 시진핑의 개소리에 침묵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왜 언급하시나요?
          
칼리S 17-06-05 12:32
   
시진핑의 개소리에 뭔 침묵이요?

유사사학자들 중에 환빠들이 많고 그들의 교과서이니깐요.
               
바람따라0 17-06-05 12:37
   
강단사학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시진핑의 개소리에 뭐라고 반박 했나요?

그리고 유사사학은 랑케의 실증주의를 기초로한 식민사관을 말하는 겁니다.

용어부터 제대로 알고 쓰기 바랍니다.
               
바람따라0 17-06-05 12:41
   
칼리S/
식민사관이 유사역사학입니다.
 
“미국의 공상적 기계주의
영국의 천박한 상업주의
프랑스의 퇴폐주의
러시아의 야만성
 
이런 외부의 위협에서 독일의 우월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무제한 적이고 무차별적인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히틀러 나치 제3제국의 기본정책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나치의 입맛에 맞게 설계해준 것이 랑케의 ‘실증사관’입니다.
 
랑케의 실증사관을 따르던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독일의 우월한 증거이자 산물인 문화를 보존하자고 역설하면서, 수많은 근거 중, 자기들에게 맞는 일부만을 논거로 사용하는 교활한 방법으로 나치에 협력했습니다. 결론을 미리 세워놓고, 자기들 입맛에 부합하는 증거만을 부각시키는 수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 이런 나치에 협력한 실증사관은 나치의 패망 후 쇠퇴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치사관을 ‘유사역사학’이라 불렀습니다.
 
실증사관 = 유사역사학 입니다.
 
이런 랑케의 실증주의를 이병도가 존경하는 일본 선생들이 받아들여, 허울 좋은 실증을 내세우며, 동아시아의 변방이었던 일본의 비천한 역사를 화려한 역사로 왜곡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 격하하는 '식민사관'을 만들었지요. 그래야 한민족에 대한 식민지배가 수월했으니까요.
 
이런 랑케 실증주의는 내포한 문제점 때문에 나치 패망이후 유럽에서 치열한 공격을 받고 쇠퇴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병도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오늘날에 이른 겁니다.
 
랑케 실증주의의 맨얼굴을 보지 못하고, 두툼한 화장을 보고 '실증=과학적'이라 착각하는 모자란 인간들이 지식인 행세하고, 역사학자 행세하는 곳이 한국입니다.
 
실증사관 = 유사역사학 = 식민사관 입니다.
 
식민사관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요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일본서기는 거짓과 사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식민사관 유사역사학자들은 ‘일본서기가 위서가 아니니, 인용하고 활용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일본서기가 거짓을 담고 있어도, 당시 일본 정권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위서가 아니니, 잘못된 부분을 가려서 이용해야 한다' 고 합니다.
 
이것은 나치에 협력 유사역사학자들과 같은 수준의 정신 나간 헛소리입니다.
일본서기는 백제의 역사를 차용해서, 당시 야만상태에 있던 일본 정권을 홍보하기 위한, 거짓으로 가득 찬 책입니다. 일본서기와 다른 기록물과 부합되는 것이 극히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사기로 점철된 문서입니다.
이 문서를 일본정권은 왜 인정했을까요?
당연히 역사적 사기를 치려고 인정한 겁니다.
일본서기는 흔히 말하는 ‘위서’보다 더 질이 나쁜 악질 사기 잡서입니다.
여기서 무슨 진실을 뽑아내서 인용한다는 건가요?
‘위서가 아니다’라는 물타기로, 일본서기를 인용한 연구서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식민사관 유사역사학적 사고방식입니다.
     
밥밥c 17-06-05 12:22
   
강단사학을 식민사학으로 몰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학도들은 유사사학자들 중에서도 환빠들의 논리가 허구맹랑해서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암.


사서 한장, 한줄 제시하라고 할때 단 한개도 제시하지도 못하죠.

단 한개도 제시하지도 못해서 날마다 욕먹었을 뿐인데, 이제와서 무슨 쓸데없는 타령인가요.

제시하지 못해서 동북아역사재단 지도가 폐기된 것입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마시죠.
          
인류제국 17-06-05 12:25
   
저는 강단사학을 한심하게 보는 이유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206663

재야사학의 학설이나 연구를 반박하기는 커녕 언론플레이질만 계속하고 허세만 부리는거죠


강단사학이 저렇게 언론플레이짓 할때 재야사학은 조용히 실증을통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a5EZJXiaNo

https://www.youtube.com/watch?v=daTkreTIYUo

https://www.youtube.com/watch?v=TH_pQHyujbE

https://www.youtube.com/watch?v=MDgSh5FAGBc


젊은 사학자라는 분들이 연구는 안 하고 뭐하시는건지? 이젠 논리로 안 먹히니 언론플레이로 진실을 가리려하시나? 그런짓이 오히려 역효과일텐데
               
칼리S 17-06-05 12:46
   
뭔 논리요?

유사사학자들 보면 그냥 몇개 사서(주로 중국측)를 자신의 입맛대로 가공해서 주장할 뿐이죠.

우리나라 고려나 조선의 역사서를 보면 위 주장과는 모순된 게 태반입니다. 당장 요동에 우리는 관리를 파견하거나 군대를 파견해서 다스리지 않았죠.

그리고 한반도가 우리민족의 중심인건 고려 조선을 통해 입증된 겁니다.

동북아 역사지도는 보지도 못했지만, 그 역사지도를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폐기한 게 오히려 문제 아닌가요? 국회가 역사학자들도 아니고 ㅋㅋㅋ.
                    
바람따라0 17-06-05 12:50
   
쯔쯔쯔... 동북아 역사지도를 보지도 못했다면서, 폐기를 문제라고 말하는 님의자세가 진짜 문제입니다.
비좀와라 17-06-05 12:40
   
도대체 언제부터 공직자 임명기준에 환단고기 인정 여부가 기준이 됐습니까?

환단고기의 내용이나 위서여부에 관계없이 이 환단고기의 인용여부가 실증법에 위반이 되는 겁니까?

더군다나 환단고기의 인용이 지나친 민족주의를 나타내기에 반대 한다고 하는데...

아니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라는 말이 금지어라도 되었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그런 소리를 했단 말입니까?

공산주의나 일제 미화에 대한 제제는 있어 왔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제제는 없었는데요?

그리고 민족을 부정하는 것은 좌파죠.

지금 이 논란이 진짜 역사에 관한 논란 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보죠.
제로니모 17-06-05 13:45
   
환단고기는 적어도 민족 자긍심이라두 심지

동북공정도 반박할 수도 없는 식민사학자들은 그야말로 ㅆㄹㄱ 매국사관자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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