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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1 07:58
[기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夏日記)·도강록(渡江錄)》-한사군 관련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045  

만주족 발원지   한사군 요동설은 사이비 이론이 아니라 조선 실학중 하나입니다

http://blog.daum.net/seulgibi/16515653


「(전략)...... 애닯도다! 후세에 와서 경계를 자세히 모르게 되고 본즉 함부로 한사군의 땅을 압록강 안으로 죄다 끌어들여 억지로 사실을 구구하게 끌어 붙여놓고는 그 속에서 패수(浿水)까지 찾게 되어 혹은 압록강(鴨綠江)을 가리켜 패수라 하기도 하고 혹은 청천강(淸川江)을 가리켜 패수라 하기도 하고 혹은 대동강(大同江)을 가리켜 패수라 하기도 하여 이로써 조선의 옛 강토는 싸움도 없이 쭈글어 들고 말았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 평양을 한 군데 붙박이로 정해 두고 패수는 앞으로 불러들이니 언제나 사적을 따라 다니게 된 까닭이다.


나는 일찍이 한사군 땅은 비단 요동 뿐만 아니라 여진(女眞)도 마땅히 들어간다고 주장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는 현도·낙랑은 있으나 진번·임둔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제 시원(始元) 5년(전82)에 4군(郡)을 합쳐 2부(府)로 만들고 원봉(元鳳) 원년(전80)에는 또 다시 2부를 2군으로 고쳤는데 현도 3현에 고구려가 있고, 낙랑 25현에 조선이 있고, 요동 18현에 안시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진번은 장안으로부 7천 리 떨어져 있고, 임둔은 장안으로부터 6,100리로서 김륜(金崙: 조선 세조 때의 학자)의 말한 바와 같이 이 땅들은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는 찾아 낼 수 없는 지명임으로 마땅히 지금의 영고탑(寧古塔) 등①지가 됨이 옳을 것이다. 이로써 보아 진번과 임둔은 한나라 말년에 부여·읍루·옥저에 들어갔고, 부여는 다섯 부여가 되고, 옥저는 네 개의 옥저가 되여 혹은 변하여 물길(勿吉)이 되고, 말갈(靺鞨)로 발해(渤海)로 여진(女眞)으로 차차 변하게 되었다. 발해의 무왕 대무예(大武藝)가 일본의 성무왕(聖武王)에게 회답한 글에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유속(遺俗)을 가졌다"는 구절이 있으니 이로써 본다면 한나라 4군은 절반은 요동(遼東)에 있고 절반은 여진(女眞)에 있어 본래의 우리 강토를 가로 걸쳐 있었던 사실이 명백하다. 한나라 이래로 중국에서 말하는 패수(浿水)란 일정하지 아니하고 또 우리나라 인사들이 반드시 지금의 평양을 표준으로 삼고는 저마다 패수의 자리를 찾고들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은 무릇 요동의 왼편 강물들을 옮겨 패수로 부르고 보니 이정(里程) 맞지를 않고 사실이 어긋남이 모두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땅을 말할진대 먼저 여진의 국경을 맞추어 보아야 하고, 다음으로 패수를 요동에서 찾아야 한다. 패수의 자리가 확정된 뒤에야 우리 옛 영토와 경계를 밝힐 수 있고, 영토의 경계을 밝혀야만 고금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부합시킬 수 있다.


그러면 봉황성은 과연 평양이던가. 이곳이 혹 기씨(箕氏)나 위씨(衛氏)나 고씨(高氏)들이 도읍으로 정한 땅이었다면 봉황성이건 평양이건 수 많은 평양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왜하면 《배구전(裴矩傳)》에는, "고구려는 원래 고죽국(孤竹國)으로서 주나라는 기자를 여기 봉했고, 한나라는 4군으로 나누었으니 이른바 고죽땅은 지금의 영평부(永平府)②에 있다"고 했다. 또 광녕현(廣寧縣)에는 옛적에 기자묘가 있어 후관(冔冠: 원문의 "冔"의 발음은 후고 뜻은 머리에 쓰는 관이다. 은(殷)나라 사람들이 썻던 관을 말한다.)을 쓴 소상(塑像)이 세웠으나 명나라 가정(嘉靖) 때에 병화에 불타버렸다고 했다. 광녕사람들은 여기를 평양으로 불렀고, 《금사(金史)》나 《문헌통고(文獻通考)》에는 다 같이 광녕과 함평(咸平)은 함께 기자의 봉지라고 하였으니 이로써 미루어 영평·광녕 사이는 평양으로 불렸을 것이다. 《요사(遼史)》에 보면 발해 현덕부(顯德府)는 본디 조선땅으로 기자가 있었던 평양성이라고 하였는데 요나라가 발해를 치고 동경으로 고쳤으니 지금의 요양현(遼陽縣)이 바로 이곳이다. 이로써 미루어 요양현의 지명도 도한 평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기씨는 처음 영평·광녕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가 뒤에는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쫓겨나 2천 리의 땅을 잃어버리고 점점 동쪽으로 옮아 중국의 진(晉)나라 · 송(宋)나라가 장강 남쪽으로 밀려가 동진(東晋)과 남송(南宋) 정궈을 열었던 것처럼 되었고 그들이 옮겨 다닌 곳마다 평양이라고 불려 오늘에 대동강 위에 있는 평양도 같은 연유에서 얻은 지명일 것이다.


패수(浿水)도 또한 이와 흡사하니 고구려의 판도가 가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였은즉 패수란 이름도 역시 국경을 따라 옮겨 다녀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교치(僑置)라는 제도로 인해 주(州)나 군(郡)의 이름들이 혼란스럽게 된 일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동강변의 평양을 원래의 평양이라고 주장하고 계속해서 대동강을 가리켜 패수라 하고 평안 · 함경 양도의 접경에 있는 산을 가리켜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 한다.


요양(遼陽)으로써 평양이라고 하는 자는 헌우(蓒芋)④·낙수(儸水)를 패수라 부르고 개평현의 산을 개마대산이라고 하는 주장은 딱히 옳은지는 모를 일이나 오늘의 대동강으로써 패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제 땅을 스스로 줄여 잡는 소극론임에 틀림없다.


당나라 의봉(儀鳳) 2년(677년)에 고구려의 보장왕(寶藏王)을 요동주·도독(遼東州·都督)으로 하여 조선왕으로 봉하고 요동으로 보내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신성(新城)으로 옮겨 이를 통치케 했다. 이로써 보면 요동에 있는 고구려의 영토를 당나라가 비록 얻기는 하였으나 이를 지니지 못하고 다시 고구려에 돌렸는데 평양은 본래 요동에 있었는데 혹은 이 당시 이름을 평양으로 붙이여 패수와 함께 왔다 갔다 했음이 분명하다.


한나라의 요동에 두었던 낙랑군치(樂浪郡治)는 그 자리가 오늘의 평양이 아니요 요양의 평양이다. 왕씨의 고려시대에는 요동과 발해 전역이 한꺼번에 거란에 들어가고 보니 겨우 자비령(慈悲嶺)·철령선(鐵嶺線)을 그어 국경선으로 삼았고 선춘령(先春嶺)·압록강마저 다 내다버려 돌아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밖에 땅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비록 안으로 삼국을 통일했지마는 그 강토와 무력은 고구려의 강대함에 멀리 미치지 못하였거늘 후세의 곡학자들은 평양의 옛 명칭에만 마음이 쏠렸고 함부로 중국의 사전만 등을 대고는 수 · 당의 구적에 정신이 팔려 여기가 패수다 여기가 평양이다 당치도 않는 수작들을 하니 이 성을 안시성이니 봉황성이니 하는 주장도 무슨 자료로 변증해 내겠는가!」


 

①영고탑(寧古塔) : 為清朝時期古地名,約今黑龍江省牡丹江市一帶,範圍大概是圖們江以北,烏蘇裏江以東,地靠日本海,舊屬吉林管轄。「南瞻長白,北繞龍江,允邊城之雄區,壯金湯之帝裏」[


②영평부(永平府) : 現盧龍縣城(屬河北秦皇島市)從明朝起稱爲永平府,當時的永平府屬直隸,下轄5縣、1州,分別是:盧龍縣(附廓)、遷安縣、撫寧縣、昌黎縣、樂亭縣及灤州。乾隆二年裁山海衛置臨榆縣,屬永平府管轄。因此至清末,永下半夜地領6縣1州。


③교치(僑置) : 중국 6조 시대에 적국에 빼앗긴 땅 이름을 자국 내의 군현에다 붙여 놓음으로써 그 땅을 적국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취했던 조치를 말한다.


④헌우(蓒芋) : 《강희자전》에 의하면 꼭두서니(茜草)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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