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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1 21:49
[기타] 서적 간의 비교·대조[互證]에 관하여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00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51248&cid=56779&categoryId=56779&expCategoryId=56779


첫째. 《고려사》 〈최영 열전〉에 따르면 최영이 “당태종(당나라 태종)이 우리나라를 공격했을 때, 우리나라는 승군 3만 명을 출동시켜 그들을 격파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 전체 50권에는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서긍4)이 《고려도경()》 제18권에서 “재가화상(재가승_옮긴이)은 가사를 입지 않으며 계율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흰모시로 만든 좁은 옷에 검정 비단으로 된 허리띠를 두른다. 맨발로 돌아다니지만 신발을 신는 사람도 있다. 가정을 꾸려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한다. 공무에 동원되면 도구를 짊어지고 도로를 청소하고 도랑을 파고 성이나 집을 짓는 일 등에 종사한다. 변경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단결해서 출동한다. 말 타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꽤 용감하다. 군대를 따라갈 때는 직접 양식을 갖고 가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 예전에 거란족이 고려에 패배한 것도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은 형기를 덜 마친 노역자들로, 수염과 머리를 깎은 그들을 오랑캐[]들이 승려[]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승군의 실상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하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나중에 《통전()》과 《신당서()》 등을 보니 ‘조의(혹은 백의)선인’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재상인 명림답부를 연나조의라고 불렀다. 《후주서()》에서는 조의선인()을 예속선인()이라 불렀다. 선인()이나 선인()은 모두 우리말의 ‘선인’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조의나 백의()라고도 부른 것은 《고려도경》에서 말한 것처럼 검정 비단으로 허리를 졸라맸기 때문이다. 선인()은 종교 무사단의 단장으로 신라의 국선() 같은 인물이었다. 승군은 국선의 수하로, 재가승[]이라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붙인 승군의 별칭일 뿐이다. 사신단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승군을 목격한 서긍은 이들의 기원을 몰랐기 때문에 ‘형기를 덜 마친 노역자들’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이처럼 《삼국사기》에 없는 승군의 존재를 《고려사》를 통해 알게 되고, 《고려사》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승군의 특성을 《고려도경》을 통해 알게 됐다. 또 승군과 선인과 재가승이 동일하다는 것을 《통전》·《신당서》·《주서》나 신라 고사를 통해 알게 됐다. 30만의 당나라 대군이 고구려의 종교 무사단인 선인군에게 대패했다는 몇 십 자의 간략한 기록을, 예닐곱 서적의 수천 군데를 뒤진 끝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안시성에서 활에 맞아 눈을 다쳤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역사책에 기록됐다. 이색도 〈정관(당태종의 연호)음()〉이란 시에서 “어찌 알았으리오 검은 꽃이 흰 깃털에 떨어질 줄을[()()]!”이라고 함으로써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중국의 《구당서()》·《신당서》에는 이런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일까? 사실 관계를 불문하고 무조건 한쪽만 믿는 것은 역사의 위증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 기록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중국 사관이 국치를 숨기고자 당태종의 실명을 《구당서》와 《신당서》에서 뺀 게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명나라 학자인 진정의 《양산묵담()》에 따르면, 송나라 태종이 거란족을 공격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부상을 입고 도망치듯 귀환한 지 몇 해 만에 부스럼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이 《송사()》나 《요사()》에 기록되지 않고, 수백 년 후에 진정의 고증에 의해서 비로소 확인되었다. 중국인은 군주나 신하가 이민족에 패해 다치거나 죽는 것을 국치라 여겨 이를 역사에 기록하지 않는다는 나의 가설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이로써 얻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치욕을 숨기는 버릇이 있다고 해서,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도 이것을 숨겼을 것이라고 곧바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구당서》와 《신당서》를 다시 정독해보았다. 그랬더니 〈태종 본기〉에서는 당태종이 정관 19년 9월5) 안시성에서 회군했다고 했고, 〈류계 열전〉에서는 같은 해 12월6)에 태종의 병세가 위급해서 류계가 매우 우려했다고 했고, 〈태종 본기〉에서는 정관 20년7)에 황제가 위독해서 황태자에게 국정을 위임했다고 했고, 정관 23년 5월8)에는 황제가 죽었다고 했다. 사망의 원인에 관하여, 《자치통감강목》에서는 이질이 다시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했고, 《자치통감》에서는 요동에서부터 악성 종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개, 가까운 사람과 존귀한 사람의 치욕은 숨기는 법이다. 주나라 천자가 정나라 제후의 활에 맞은 사실과 노나라 은공·소공이 피살되거나 쫓겨난 사실을 《춘추》에 기록하지 않은 공자의 편협함이 중국 역사가들의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당태종의 다친 눈을 유리 조각으로 가리고 진찰 기록을 죄다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래서 화살로 인한 상처가 몸속 질병으로 바뀌고 안질이 항문 질병으로 바뀐 것이다. 전쟁으로 다쳐 죽은 사람이 이질이나 늑막염 등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신라가 고구려·백제 양국을 시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불태웠던 것이다. 북위 군대를 깨뜨린 백제 사법명과 수나라 군대를 물리친 을지문덕의 이름이 중국 역사서를 통해 알려진 것은 그 때문이다. 을지문덕이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것은 김부식이 중국 역사서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당태종이 실명하고 달아난 것은 고구려 전쟁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이므로, 신라인들로서는 이것을 삭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태종이 실명한 사실을 전설과 《목은집()》을 통해 어렴풋이 알아냈다. 그러자 《구당서》·《신당서》나 《삼국사기》에 이것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뒤이어 진정의 《양산묵담》에서 같은 종류의 사건을 발견하고, 공자의 《춘추》에서 역사 왜곡의 악습을 찾아냈다. 또 《구당서》·《신당서》·《자치통감강목》 등의 모호한 문장 속에서, 첫째로 태종의 질병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 둘째로 이색의 〈정관음〉이 신뢰할 만하다는 점, 셋째로 신라인이 고구려 역사를 훼손한 탓에 당태종의 부상이 《삼국사기》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점을 도출했다. 이로써 얻은 결론은 ‘당태종이 보장왕 4년9)에 안시성에서 눈을 다치고 도망했으며, 귀국 후 외과 치료가 불완전하여 거의 30개월간 고통을 겪다가 보장왕 8년10)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짧은 결론도 대여섯 권의 서적 수천 군데를 수없이 뒤적인 끝에야 불현듯 깨닫거나 의식적으로 도출해낸 결과이니, 이 노고가 결코 적지 않다.

“승군의 내력을 모른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고 당태종이 부상한 사실을 안다고 무슨 이익이 생긴다고, 이런 사실을 힘들게 파고드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역사학이란 사실 관계를 수집하여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과거 인류의 활약을 생생히 묘사하여 후손에게 전달하는 학문이다. 승군의 내력을 모르면 고구려가 당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원동력뿐 아니라, 명림답부가 이끈 혁명군의 중심이나 강감찬이 거란을 격파한 요인을 알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구려·백제·신라로부터 고려까지 1천여 년 동안의 군사 제도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당태종이 안질로 죽은 사실을 모르면, 안시성 전투가 빨리 종결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라와 당나라가 동맹을 맺은 이유, 고구려와 백제가 제휴를 체결한 이유, 당나라 고종과 그의 신하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구려와 장기전을 벌인 이유 등을 알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은 한두 사례에 불과하다. 이런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조선사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일은 한두 사람이 몇 년간 노력하는 것으로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료의 수집과 선택 (조선상고사, 2014. 11. 28., 역사의 아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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