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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5 14:45
[한국사] 1-2세기 태조왕 시기의 고구려는 요서에 있었다
 글쓴이 : 마누시아
조회 : 1,567  

1-2세기 태조왕 시기의 고구려는 요서에 있었다
(현토군 역시 요동이 아닌 요서에 있었다)

글 : 문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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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초기 강역은 요서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중국 북부의 독특한 지형에 유념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사실일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단순한 과학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는 점은 중국의 각종 사서, 문헌들이 잘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중국 정사 속의 그 기사들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까지 <설문해자>, <수경>, <십삼주지> 등의 문헌자료들에 소개된 패수 및 낙랑군의 위치를 근거로 재구성해 보면 충분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후한서><고구려전> “건광 원년”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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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광 원년) 봄, 유주자사 풍환, 현토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 등이 군사를 이끌고 요새를 나가 예맥의 거수를 사로잡아 목을 베고 병력과 말, 재물들을 노획하였다. 이에 궁(태조왕)이 세자 수성을 보내 2,000여명을 거느리고 요광 등을 따라잡은 후 사자를 보내 거짓으로 투항하니 요광 등이 속아넘어갔다. 수성이 그 일로 지세가 험한 요지를 거점으로 삼고 대군을 차단하면서 한편으로는 3,000명을 몰래 보내 현토, 요동을 공격하고 성곽을 불태워 2,000여명이 사상하였다. 그래서 (풍환, 요광, 채풍 등이)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 속국의 기병 3,000여 기를 차출하여 구원에 나섰지만 맥인(고구려군)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春, 幽州刺史冯焕、玄菟太守姚光、辽东太守蔡讽等, 将兵出塞击之, 捕斩濊貊渠帅, 获兵马财物. 宫乃遣嗣子遂成将二千餘人逆光等, 遣使诈降, 光等信之. 遂成因據险厄以遮大军, 而潜遣三千人攻玄菟、辽东, 焚城郭, 杀伤二千餘人. 于是发廣阳、渔阳、右北平、涿郡属国三千餘骑同救之, 而貊人已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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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따르면, 유주자사 풍환, 현토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이 대군을 이끌고 노룡새를 나와 고구려를 선제공격 하자 태조왕의 밀명을 받은 세자 수성은 3,000명을 데리고 한나라에 거짓으로 투항한 후 지세가 험한 요충지에 배치된 셈입니다.
얼마 후 풍환 등이 수성에게 방어를 맡기고 떠나자 그는 즉시 자기 휘하의 3,000명을 데리고 현토, 요동 두 군에 대한 공격에 나섰고, 그제서야 그에게 속은 것을 안 풍환 등이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 속국으로부터 3,000여 기의 기병을 차출하여 허겁지겁 두 군을 구원하러 나섰으나 수성은 이미 두 성을 불태우고 철수한 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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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한나라의 풍환 등이 현토, 요동 두 군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차출한 기병들이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 속국의 병력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광양은 지금의 계현, 어양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밀운현, 우북평은 지금의 내몽고 영성현, 탁군은 지금의 탁주시로 각각 비정하고 있지요. 이 비정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를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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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현토, 요동 구원에 차출된 각지 병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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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의 영성현에서 현재 학계에서 제3기 현토군 치소로 비정하는 요동성 신빈현까지는 지리적으로 결코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고속도로 직선거리로 따져도 대략 581 km 즉 위진대의 ‘1리 = 425m’ 수준으로 치더라도 1,366리 가까이 되는 먼 거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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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인 삼국시대에 위나라에서는 “전군교위 하후연은 사흘만에 500리, 엿새만에 1천리를 주파한다(典军校尉夏侯渊, 三日五百, 六日一千)”는 말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하후연(夏侯淵)은 정예 기병부대를 이끌었던 조조의 최측근 명장이지요.
만일 저 말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한 말이라면 위진대에 기병부대는 사흘에 212km, 엿새에 425km를 주파한 셈이니까 매일 70km를 진군했다는 이야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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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무리 훌륭한 명마라고 해도 1,000리가 넘는 장거리를 계속 달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칭기스칸 당시에는 몽골 기병대가 1인당 8-9필의 군마를 보유하면서 장거리를 행군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말이 지치지 않고 처음과 동일한 속도를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족, 특히 칭기스칸 당시보다 최소 1,000년 전인 한나라의 경우에는 그같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마필 관리 시스템이 존재했을 리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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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풍환 등이 차출한 한나라의 기병들은 목적지인 현토, 요동 두 군으로 달려가는 중간 중간에 속도를 늦추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요령지방은 천산산맥이 높게 솟아 있고 산들이 첩첩이 늘어서 있기 때문에 행군 속도는 더더욱 늘어졌을 것은 자명하지요.
그렇다면 현토군에서 가장 가까운 영성현에서 출발하여 매일 70km를 주파한다고 해도 열흘 이상이나 걸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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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환 등이 현토, 요동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지원 병력을 굳이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에서 차출했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뿐입니다. 현토의 실제의 위치가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해 온 요령성 신빈현이 아니라 이들 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 즉 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하북성 동북부와 요령성 서부 사이의 모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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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수정을 거쳐 후속작 <낙랑군은 요서에 있었다>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이 내용과 관련하여 여러분께서 많은 가르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243042_113478032599222_6308802950080273092_o.jpg


지도가 튕겨 나와서 따로 올립니다. 갈색 네모는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의 위치이고 왼쪽 흰 덩어리는 현토와 요동의 추정 위치, 오른쪽 요동반도의 표시는 현재 학계가 정설로 맹신하는 요령성 신빈현(제3 현토??)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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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스 17-06-25 15:06
   
고구려의 초기 강역은 졸본성과 압록강 유역 아닌가요?
     
꼬마러브 17-06-25 15:30
   
고구려의 초기 위치가 압록강이냐 요하이냐 라는 논쟁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압록강이라는 게 통설이긴 합니다만..

저는 어느 쪽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네요.
캐쉰 17-06-25 15:48
   
삼국사기에도 졸본은 현재의 요서지역으로 ,삼국유사에는 요하를  압록수라고도 한다고 기록.
졸본뿐만이 아니고 국내,평양 등도 여러 사료로 판단하면 요하쪽에 비정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파게티 17-06-25 15:57
   
삼국사기  유사에  그렇게  써있어요??


근대 왜 북한 압록강이라구함???

 
저말이 맞다면    첫 평양은  지금의 요동성이겠군요



고대사는  모 이리  뒤죽박죽인지  참  ㅋㅋㅋㅋㅋㅋ
     
레스토랑스 17-06-25 16:21
   
그럼 지금 있는 졸본성은 뭐임?
촐라롱콘 17-06-25 16:09
   
많은 분들이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이 압록강변에서 가까운

집안에 있다는 분명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ㅋㅋㅋ
     
도배시러 17-06-25 17:04
   
어떤 때는 사료로 비정하고, 어떤 때는 유물로 비정하고... 뭐가 먼저 일까요 ?
일제시대 사학자의 주장에 가깝냐에 따라서 선별적 선택 ?
캐쉰 17-06-25 16:26
   
집안은 고국원왕때 옮긴 황성이 맞습니다. 평양동황성이라고 기록에 나와 있지요. 장수왕때 평양으로 이도하기까지  75년정도 있었지요. 평양의 동쪽 황성이라고 해석하면 맞습니다.  황성이란 지명은 다른 기록에도 나오지요. 광개토왕비가 서있으니 집안이 황성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 집안을  국내라고 비정한 것은 억지중의 억지요. 평양의 동황성이라고 비정한 것도 억지입니다.
평양의 동황성이라고 하면  지금 북한의 평양부근 어딘가에 광개토왕비가 있어야 맞는거고  장수왕은 평양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깁니까? 넌센스지요. 이게 우리가 배워왔던 주류학자들의  추정사학 논리이고 그안에서 우리는 배우고 사고해온 것입니다.참으로 억울하고 한탄스럽기만 할 뿐이지요.
캐쉰 17-06-25 16:35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졸본,국내,평양 위치비정은 추정에 의해 비정된 것입니다. 확증된 게 하나도 없어요.
물론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걸 추종하는 자칭 주류사학자들에 의해서지요. 우리나라 사서뿐만 아니라
중국사서에 현재 비정된 환인,집안,북한평양으로 기록된 예는 없습니다.
고구려 평양의 경우 요양일대로 전부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좀와라 17-06-25 17:32
   
장군총은 집안에 있죠. 그리고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 입니다. 그럼 왕의 무덤은 수도와 멀리 있을 까요? 아니 가까이 있을 까요?

장수왕의 후계자인 문자명왕은 매년 제사를 어떻게 지낼려고 수도 평양에서 멀리 떨어트려 지었을 까요? 기본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도에서 왕의 무덤은 멀리 만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집안이 평양이란 말이죠.

애시당초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 한 것도 방어 때문 이었지 누구들의 주장처럼 남진을 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고대에는 수도의 위치를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설정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죠. 후일에 수도의 기능이 방어만이 아니라 경제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부가 되는 것은 원나라 이 후 입니다.

그 때가 되서야 성안에 일반인들도 거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전에는 특별한 사람들 만이 거주 하던 그런 곳 이었죠. 당연히 방어가 제일 중요한 설정 이유가 되는 것 이고요.
캐쉰 17-06-25 17:45
   
도배시러님. 사료비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료비정에 따라 유물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지금 고구려평양연구가 중요한 것은 평양의 위치비정에 따라 우리 역사지리가 모두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을 북한평양에 찍어놓고 비정한 것이 오늘의 환인졸본이요.집안국내요,고구려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요양이 평양이라고 확정되면 어떻겠습니까?낙랑이 현 북한평양에 들어설 수 있습니까?
그럼 이렇게 바뀌겠죠.현평양출토유물에 대한 전면 재검토.. 또한 고구려,고려영역,초기백제,백제한성 등등
연구해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겠죠.백년의 먹을거리,역사학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맞는 연구과제인데...
이놈의 주류추정사학계에서는 엄청 큰 위협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방어벽을 겹겹이 치고 있더구만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그때 가서도 그 사람들이  주류,강단 뭐 이딴 얘기 계속 하겠습니까?
캐쉰 17-06-25 17:53
   
비좀와라님. 이쪽은 오늘도 비가 안오네요.비좀 내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집안이 평양이라면 고국원왕때 옮긴 황성은 어디입니까? 댓구인 서경동목멱산중이란 구절때문에
달리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장군총이 장수왕릉이라고 확증된것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장수왕때 옮긴 평양은
사료상 요양이 맞다고 생각됩니다.기본적으로 고구려는 요하쪽을 중심으로 이뤄진 나라라서 주요도시가 그쪽에
있을 수 밖에 없거든요.
     
비좀와라 17-06-25 18:41
   
수서 동이전에 고구려가 위나라에 패한 후에 지금의 요동과 요서 쪽으로 이동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 갔다고요.

기록을 따라가면 위나라 관구검의 공격에 환도성이 폐허가 되어서 평양(요양)으로 천도 하는 것으로 나오죠. 그리고 다시 고국원왕 시기에 백제의 공격을 받고 요양이 파괴 됩니다. 장수왕은 이런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수도를 집안으로 옮긴 것 이고요.

다시 문자명왕 시기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의 고토회복을 위한 정복전쟁으로 원래의 수도인 요양이나 그 보다 더 서쪽으로 이동 하였을 거라는 것이죠.

수서 동이전에 고구려가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동쪽으로 이동 한 후에 원래의 위치로 돌아 갔으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 일부 부족이 신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북옥저라고 했죠.

홍산문명의 특징은 옥기문명 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북옥저는 홍산지역 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평양은 신라의 도시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초기 신라는 백제왕족이 왕으로 있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 일 부분 만을 점유 했었을 뿐이고 대부분의 한반도는 신라 즉 백제와 가야의 영역 이었다는 것이죠.
캐쉰 17-06-25 19:22
   
홍산문화,요하문명은 옥기,적석총 문명이었죠. 현재 평양은 고인돌 중심지였으니.... 아뭏든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 봐야겠죠. 어찌 됐든  현 평양은 고구려 멸망시 3경중의 하나인 한성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가 현 한국인에게 그리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고려건국세력에 대한 정체성 문제가 거론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문화 저변에은 고구려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배웠지요. 그것은 선진국 고구려의 문화가 신라에
전파됐고 그 신라의 문화를 우리가 물려받았다고 배웠거든요. 일종의 신라 정통론이라 보면 되겠지요.
그런데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고려에 의한 고구려 연속론 혹은 정통론이 주장되지요.
무덤양식,목조건물 양식,궁궐양식 등등 고구려를 물려받았다는 거지요.25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서 말이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계적 언어학자 알랙산더 보빈의 한국어 고구려어 계승론이지요.도수희교수의 반응외에 우리 언어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본격적으로  면위로 올라오지만 않았을뿐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이러한 학설들이 결합되었을 때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지요. 아뭏든 모든 것을 오픈하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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