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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6 13:12
[한국사] 초록불 이문영과 유사역사학
 글쓴이 : 마누시아
조회 : 1,522  

이문영과 유사역사학

글 : 이덕일
출처 : https://www.facebook.com/newhis19/posts/117091775566150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칭 소설가였던 이문영이 「한겨레 21(2017. 6. 26)」에는 자신을 ‘역사작가’라고 소개했다. 「한겨레 21」의 청탁을 받고 너무 기뻐서 인터넷에 글을 남겼는데, 유사역사학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한겨레 21」이 처음부터 마음먹고 독자들과 싸우려고 기획했다는 뜻이다. 단군 죽이기를 마음먹고 특집으로 꾸밀 정도면 순간의 일탈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가 신념이라는 뜻이다. 이문영은 “그런 건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내 주위는 대부분 책 깨나 보는 사람들인데 아직 이문영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문영이 소설가로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의 전위대로 나서니 『매일경제』에서 연재지면을 주고 「한겨레 21」에서도 청탁을 한다. 역시 대단한 카르텔이다.

당초 「한겨레 21」에서는 학사출신의 이문영이 아니라 그럴듯한 대학의 교수를 필자로 섭외했을텐데 모두 내뺐을 것이다. 도종환 후보자를 맹비난하던 ‘한국고대사학회장 하일식, 윤내현 교수가 자신의 뒷자리를 준 단국대 심재훈,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준 기경량’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청문회에 불러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모두 학회 핑계를 대며 도망갔다. 이문영이 그간 소설 인세로 몇 푼을 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소설을 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봐서 소설가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국사학 전위대로 나서니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다. 이 신문, 저 신문에서 지면을 주고 고대사학회는 한성 백제박물관에 초청해 강연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리 계산하나 저리 계산하나 남는 장사다.

그러니 그는 전위대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래서 적반하장은 이문영의 특징이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를 되뇌이면서도 『매일경제』에 때로는 ‘심산 김창숙이 그립다’ 운운의 글도 쓴다. 물론 김창숙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병도는 침묵하고 문정창, 박창암은 비판하고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했던 인사들을 극우파나 쿠데타 동조세력으로 모는 것은 이문영의 특기다. 이문영은 광복 후 민족사학에 전념했던 문정창에 대해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이사관)을 지낸 일제 부역자”라고 비판했다. 문정창이 일제 때 관료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남은 평생을 사재를 털어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바로잡기에 바쳤다. 이문영은 이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자유』지를 창건한 박창암 장군에 대해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자 5·16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박창암 장군이 박정희에게 민정이양을 계속 촉구하다가 박임항·김동하 장군 등과 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되어 숱한 고문을 당한 끝에 1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는 사실도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이 안 좋다.


반면 자신이 추앙하는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스승들과 함께 한국사를 난도질한 장본인이란 사실은 일단 제외하자. 이병도는 이승만 정권 때 인간백정으로 불렸던 관동군 헌병 출신 김창룡 방첩대장(중장)의 묘갈명을 썼다. 이 묘갈명에서 이병도는 “간첩오렬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만5천 명”이라고 칭송했다. 김창룡이 반 이승만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 하도 많이 죽이자 군부 내 양심세력인 허태영 대령이 1956년 처단하고 사형 당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이 허태영 대령을 참군인이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병도는 거꾸로 김창룡을 칭송한다. 이병도가 김창룡을 칭찬한 이유가 있다. 이병도는 광복 직후 진단학회에서 쫓겨났다가 1950년의 6·25사변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김창룡의 반 이승만 세력 숙청은 곧 자신의 재기의 발판이었다. 그래서 1954년 진단학회 이사장으로 복귀한다. 이병도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기관지 『최고회의보』 창간호에 「5·16군사혁명의 역사적 의의」라는 글을 써서 쿠데타를 칭송하고, 학술원 원장 등 각종 요직을 꿰찬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국정자문위원에 이르기까지 이병도는 친일, 독재 미화의 삶으로 일관했다. 이런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문영은 반성의 삶을 살았던 문정창, 박창암의 전력만 극력 비난한다.

*매국사학의 진정한 스승은 여전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문정창, 박창암 등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사실도 모른 체 하고 덮어 씌운다. 일제 고등계 순사 앞잡이 수법과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정체성이 같은 「한겨레 21」에서 원고 청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과 시민들 대다수는 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서 문정창, 박창암이란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학계 대다수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일이관지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고대사도 비판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비판한다.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계시다!’는 고대사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근현대사는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고대사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이른바 짝퉁 진보 근현대사학자들의 분절적, 쪼가리 역사인식도 웃기는 짓거리로 본다.


이문영의 웃기는 자화자찬은 한 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가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건이 있다. 이문영은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사례로 설명한다. 서울법대 학장이었던 최태영 선생이 이병도를 만나서 1차사료를 가지고 설득하자 이병도가 단군을 인정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자 그 제자들이 최태영이 협박했다는 등 이병도가 노망났다는 등 비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일화이다. 이것이 이문영의 머리속에는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대들 수 있는 사례로 둔갑한다.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를 비판한 것은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이병도가 광복 후에도 한국사를 빙자해 니뽄사(Nippon History:일본사)를 하는 매국사학자들의 태두로 추앙받은 것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한다는 전제 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병도가 총독부 품을 벗어나서 단군을 인정하려고 하자 그 제자들이 이병도를 짓밟고 직접 진짜 스승인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 선생님의 품안으로 안긴 사건이다. 이병도는 ‘니뽄사’의 큰 틀 내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니뽄의 식민지였다는 ‘한국지방사’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지 최고 책임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창한 쓰다 소키치는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병도는 8대 고이왕(재위 236~286) 때 건국되었다고 100년 정도 끌어올렸다. 그래서 국정 국사교과서나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백제는 3세기 후반 건국했다고 적고 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한 홍익대학교 김태식은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운영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이 되어 고이왕 건국설을 부인했다. 물론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서기전 18년 온조대왕이 건국했다고 볼 리는 만무하다는 사실은 이제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민들은 다 눈치 챘다. 김태식은 고이왕이 백제를 건국했다는 것은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김태식,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2005년)”이라고 주장했다. 서기전 18년 건국이라는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서기 3세기라는 이병도도 틀렸고, 서기 4세기 중반에 건국했다는 쓰다 소키치 선생님이 맞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임기환은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로 국회 동북아특위 진술회가 열렸을 때 이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학계의 견해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답변해서 여야의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는 4세기 중반에야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세금 47억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도, 백제도, 가야도 그려놓지 않은 것이다. 반복하지만 5개월의 수정기한을 주었는데도 독도는 끝내 그려오지 않았다. 이런 지도사업을 중단시켰다고 「한겨레 21」에서 조선, 경향, 한국과 함께 거품을 물고 비난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가야사 지원을 비난하는 고대사학자들


 만약 이병도가 최태영의 권유대로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그의 제자들이 받아들였다면 지금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지금 한국의 사학자들 대부분은 매국사학자라는 비난 대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역사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니뽄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한국사는 니뽄사의 지방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를 제안하자 고대사 연구자들이 대거 비난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간 가야사를 빙자해 임나사를 연구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했다고 나오고, 『삼국사기』는 서기 77년(탈해 이사금 21년)에 신라의 아찬 길문이 가야와 싸워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두 서기 1세기에 가야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사를 빙자했지만 실제로는 니뽄사를 했던 고대사학자들은 4세기에도 가야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설혹 존재했어도 아주 조그만 동네국가들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2005년만 해도 한일역사연구공동위원회처럼 국민세금으로 ‘쓰다 선생님 만세! 이마니시 선생님 만세!’를 외쳐도 모두가 한 통속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동북아역사왜곡특위의 국회의원들과 나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이런 매국사업을 비판한 국회의원들과 역사학자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국뽕 3각연대’라고 거품 물고 비난한 것이다. 정확히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계 형사의 인식과 일치한다. 정치가(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야 말로 일제 고등계 형사들이 기를 쓰고 죽이려던 존재들이 아니었나?


매국사학자들은 이병도가 매국사학을 추종할 때만 태두로 모신다. 감히 쓰다 소키치 선생님, 이마니시 류 선생님을 넘어서려 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문영은 역사학계가 스승에게도 대든 사례로 든다. 희한한 머리구조다.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출처와 『환단고기』


학부 출신의 이문영이 교수 출신의 매국사학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그가 고안했다고 하지 않고 따왔다고 하는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용어를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선총독부 만세가 가득 차다 보니 조선총독부식으로 사고하게 된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천도교, 동학교, 단군교, 대종교, 보천교, 증산교 등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꼽아 탄압했다. 또한 미륵불교, 불법연구회 등의 불교단체도 ‘유사종교’로 꼽았다. 지금 매국사학에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학위가 있어도, 없어도 ‘유사사학자’로 모는 방식과 완전히 같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 천황폐하와 조선총독 각하들은 영원히 우리의 앞길을 지도하신다!”는 충성선언의 무한반복이다.


이문영이가 나섰는데 『환단고기』에 대한 비난이 빠질 수 없다. 이문영은 「한겨레 21」에서 “이덕일은 초창기에는 약하게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주장했지만 최근 세계환단학회(2016년)에 나가서 <환단고기>의 역사성을 주장하기까지 했다.”라고 글의 끝을 맺었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환단고기』 추종자로 몰기 위해서 광분한다. 그러나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범례에 따르면 ‘홍범도, 오동진’ 두 독립운동가가 출간자금을 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진위 논쟁은 앞으로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오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문제지만 매국사학자들처럼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다 죽여야 한다’고 거품을 물 책은 아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내 생각은 추후 자세히 밝힐 것이지만 한두 가지만 미리 말하겠다.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지 애미를 잡아먹었는지, 지 애비를 잡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극도로 저주한다. 박노자도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저주를 늘어놓았다. 나는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위판정은 다양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환단고기』를 교차검증한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1911년에 편찬되었다는 『환단고기』에 수천 년 전의 내용이 적혀 있으면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검증 자체를 거부한다. 학문의 다양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일제가 한 세기 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대하는 자세와 같고, 유신, 5공정권이 맑스의 『자본론』을 대하는 자세와 같다. 2016년에 세계 환단학회에서 기조강연을 부탁하기에 나는 기조강연보다 논문을 써서 발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논문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문영은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학문적 분석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역사학계의 학문적 분석을 하나만 살펴보자.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잠청배(潛淸輩)’라는 용어가 나온다. 『단군세기』는 고려말 공민왕 때 이암이 썼다고 전해지는 책이다. 물론 실제 그런지는 더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환단고기』 위서론자인 박광용 교수는 ‘무서운 아이들’의 본거지인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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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 17-06-26 15:18
   
드디어 이소장도 이문영을 비판하기 시작하네요.
일개 인터넷 어그로 역사 비전문가의 선동질이라고 그냥 무시하고 방관하기에는 그렇죠
밥밥c 17-06-26 18:00
   
학부 출신의 이문영이 교수 출신의 매국사학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그가 고안했다고 하지 않고 따왔다고 하는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용어를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선총독부 만세가 가득 차다 보니 조선총독부식으로 사고하게 된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천도교, 동학교, 단군교, 대종교, 보천교, 증산교 등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꼽아 탄압했다.


 '유사역사학'이라는 단어에서 '유사'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군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3890&cid=50765&categoryId=50778

일제강점기 한국의 신종교를 조사 정리하여 한데 묶은 《조선총독부조사자료(朝鮮總督府調査資料)》 42집.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 편, 4ㆍ6판, 955면과 도판, 1935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했다. 조선종독부는 한국의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우리 민족혼을 말살시키는 정책을 수립했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불교ㆍ기독교ㆍ신도(神道) 이외의 한국신종교들을 모두 유사종교로 규정, 수년간의 조사 끝에 60여개 종교의 역사ㆍ사상ㆍ현황을 자료집으로 발간한 것이다. 본문은 13장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유사종교 [朝鮮-類似宗敎] (원불교대사전,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도배시러 17-06-26 18:12
   
의사역사학 Pseudohistory ...
Pseudohistory is produced by the application of the research techniques of the historical method (primary sources and evidence) characteristic of legitimate history; yet, in itself, the work of pseudohistory is intellectually inconsistent with the historical record and with the common-sense understanding held in the collective memory of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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