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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7 14:56
[기타] 거란의 건국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74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3003&cid=42976&categoryId=42976


북방 유목민족, 중국을 정복하기 시작하다

중국문명이 탄생한 이래, 중국민족과 북방 유목민족과의 대립은 역사상 중요한 주제의 하나였다. 일찍이 진한 대에 유목민족 최초로 제국을 이룬 흉노와의 전쟁은 중국사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북조 시대에 시작된 호한융합의 정권은 수당에 이르러 더욱 개방적인 문화를 이끌었다.

거란인

거란인몽골 아오한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그림 속 거란인의 모습.

그런데 당말 오대의 변혁기에 이르러 새로이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크게 일어나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수립하고 중국을 정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목민족들이 지속적으로 남하한 원인으로는 당시 동아시아의 연평균 기온이 계속 낮아진 이유도 있었다.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몽골족의 원()으로 이어지는 유목민 정복왕조의 행렬은 중국의 일부, 절반, 끝내는 중국 전역을 송두리째 지배하게 되었다. 중국사에서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 왕조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영역을 점령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정복왕조라고 부른다. 잇따른 전쟁 속에서 각국의 민족주의는 더욱 고양되었으며 송 대의 중국은 남북조 이래 다시 한 번 유목민족들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목축과 수렵활동을 하던 북방 유목민족의 이동생활

유목민족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부, 건조한 기후대를 따라 목축과 수렵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천막 속에서 살았고 목초지를 따라 이동 생활을 했다. 이들의 재산이라면 수백, 수천의 양떼와 말에 불과했다. 말은 여름철에 수많은 양떼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했으며 겨울에는 부족원들의 사냥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재산이었다.

매 사냥

매 사냥유목민족 거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매 사냥 그림.

'그 옛날, 흰 말을 탄 신인이 토하(랴오허 강) 상류로부터 내려오고, 검은 소달구지를 탄 선녀가 황허(시라무렌 강)의 상류로부터 내려왔다. 마침내 두 남녀는 두 강의 합류점인 목엽산 기슭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고, 아들 여덟을 두었는데 이들이 각각 거란 8부의 조상이 되었다.'

거란의 건국신화이다. 거란족은 만주 시라무렌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계 종족으로 8개의 대부족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사서에는 이미 4세기부터 등장한다. 유목민족인 그들에게 말이나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을 터이고, 아마도 수말과 암소를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결합하여 국가를 건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과의 접촉기에 강성했던 두 성씨, 즉 야율 성과 심밀 성은 각기 말과 소를 상징하는 씨족명의 한자 표기이다.

거란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 연운 16주를 획득하다

916년 부족연합의 대칸이었던 야율 성의 아보기()가 세습적인 지위를 확보하여 전제국가 체제를 갖추고 '거란국'을 건설했다. 도읍은 현재 내몽골 자치구인 소오달맹으로 920년에는 거란문자를 창제해 보급하였다. 탕구트와 위구르의 부족들을 제압하여 외몽골에서 동투르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확보하였고, 926년에는 만주에 약 230년간 군림했던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켜 만주 전역을 장악하였다.

발해의 유적인 청해 토성

발해의 유적인 청해 토성동서 500m, 남북 340m 정도의 장방형으로 생각되는 이 성벽은 높이 2m의 토두이다. 발해는 926년 거란에게 멸망당했다.

야율아보기의 뒤를 이은 태종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 첫 번째가 연운 16주의 획득이다. 후당()의 하동절도사 석경당이 이 땅을 넘기기로 하고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석경당은 후당을 멸망시키고 후진()을 세운 이다. 거란의 연운 16주 획득은 북방 유목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의 영역을 차지한 최초의 사건으로 우리가 거란을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로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야율아보기와 이극용

야율아보기와 이극용요나라를 건립한 요태조 야율아보기와 돌궐족 최대 군벌 이극용의 석상.

연운 16주는 북경과 대동을 중심으로 한 화북의 일부 지역으로 이 중원의 땅이 이민족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중국인들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송은 이 실지의 회복을 위해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 무렵 거란족은 농경민으로부터 단순히 물자를 약탈하는 차원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약탈보다는 농업이나 수공업 기술자의 획득에 치중하여 국력을 다져가고 있었다.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에도 많은 도시적 집락이 만들어졌고, 가구 수는 연운지방의 호수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전연의 맹, 송과 전연에서 화의하다

거란의 국력은 6대 성종() 대에 이르러 최고수준에 달해 동아시아 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성종은 12살 나이로 황위에 올라 소태후()의 섭정 기간 동안 대대적 국정 개혁을 통해 다져진 국력으로, 소손녕으로 하여금 고려를 침략하게 하고 직접 송을 공격하여 송나라 조정에 위기감을 조성했다. 송 조정에서는 천도론까지 대두했으나 재상 구준이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여 진종이 마침내 친정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황하를 사이에 두고 요군과 대치하게 된 진종은 전쟁터가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에 떨며 일말의 전의도 없이 화의만을 모색할 뿐이었다. 한편, 보병 위주의 송군은 초원의 야전에서는 기마병인 요군을 당해내지 못했으나 성을 거점으로 싸울 때는 완강한 저항력을 보였다. 때마침 송과의 교전에서 명장을 잃은 요군은 사기의 하락을 우려하여 전연에서 화의에 응하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전연의 맹()', 1004년의 일이었다.

요나라 영역

요나라 영역요나라의 전성기인 1000년경의 영토.

이 조약에서 송은 형의 나라라는 명분은 얻었으나, 요에게 연운 16주의 지배를 인정하고, 매년 비단 20만 필, 은 10만 냥을 바치기로 했다. 이로써 거란의 재정은 풍족해지고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달한 반면, 송의 국력은 크게 피폐해지게 되었다. 이는 빈번한 전쟁보다는 나은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하나 다른 유목민족들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선례가 됨으로써 송의 재정을 압박했다. 진종은 자신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글을 위조하여 봉선례의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했으나 송의 실추된 권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중국과의 일체화를 도모한 거란, 국가적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거란은 이미 태종 때 후진의 수도 개봉까지 점령한 상태에서 한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민족 색채가 강한 거란국의 명칭을 '대요'로 바꾸었고, 장성 이남의 화북 농경지대에는 한인 관료에 의한 중국식 군현제를 유지시키는 남면관,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에는 거란의 관습에 따라 통치하는 북면관 제도를 시행하는 이원적 지배체제를 취하였다. 또한 불교를 도입하여 중국인과 거란인의 일체화를 도모하고, 대장경의 간행 등 불사를 활발히 일으켰다. 불궁사 석가탑은 중국 내에 현존하는 최고의 목탑으로 유명하다.

불궁사 석가탑

불궁사 석가탑요나라 시절 건립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높은 목탑.

그럼에도 요나라의 중심은 명백히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였으며, 그곳에서 거란족 독자의 체제를 구축하여 중국과 구별되는 민족의식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그들의 민족의식은 그들이 창제한 거란 문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한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거란 문자는 대자와 소자로 나뉘는데, 표의 문자인 대자는 야율아보기가 920년 공표했고, 표음문자로 보이는 소자는 그의 동생 야율질라()가 위구르 문자를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여진 문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나 남겨진 자료가 적어 완벽하게 해독되지 않은 상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란의 건국 -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가 되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3. 23., 가람기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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