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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7 15:31
[기타] 고려전기의 국제관계(거란, 여진, 송, 일본 )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503  

http://blog.naver.com/hh2hh2s1/100051272384


1. 고려는 거란(요)과 어떠한 관계에 있었나?

 

야율아보기는 거란(916)을 건국하고 화친을 제의하며 사신30명과 낙타 50필을 고려에 보냈으나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를 멸하였다는 이유로 태조 왕건은 사신을 귀양보내고, 낙타는 굶겨죽여 거란과 국교단절을 선언하고 적대관계를 가졌다.

태조의 북진주의정책은 고려와 국경에 접한 거란과 충돌을 면할수 없었으며, 정종은 광군(광군사 설치) 30만군으로 거란을 방비하고 광종도 청천강 넘어에 많은 성을 쌓아 거란에 대비하였다.

 

1) 1차 침입 

거란이 과거 고구려의 영토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고려는 고구려를 승계한 것이라며 거절하자 성종

12년(993)에 소손령이 80만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자 중군사 서희가 안융진(현 안주)에서 소손령과 만나 외교담판으로 강동 6주(여진의 지배하)을 얻고 대신 요의 연호 사용과 조공을 하며 송과의 국교단절을 한다는 조건으로 회군시켰다.

강동 6주를 점령하게 됨으로서 고려는 압록강까지 영토가 확장되고 서북면의 군사, 교통의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고 송과는 문화 정치적 외교를 펼쳐 선진문물을 들여오고 거란과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외교를 펼치는 실리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였다.

 

2) 2차 침입

목종의 모후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그들 사이에 난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미자 도순검사 강조는 김치양을 숙청하고 목종을 죽인다음 현종을 왕위에 올렸다(강조의 정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을 죽인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요의 성종은 40만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현종원년-1010)했다.

강조는 싸우다 항복을 거절하고 항사하였고, 요군이 개경을 점령하자 조정관리들은 항복을 건의 하였으나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항복반대)를 받아 들여 일단은 나주로 피난했다.

현종은 하공진을 보내 요의 요구조건(고려왕의 요의 입조와 강동 6주 반환)을 수락하고 요는 하공진을 인질로 잡아가고 철수했다.

그러나 요는 돌아가는 길에 귀주부근에서 양규의 공격을 받아 많은 군사를 잃었다.

인질로 잡혀간 하공진은 항복을 하지 않고 항사하였다.

 

3) 3차 침입

현종 5년(1014) 무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영업전을 거두어 들이자 무신들은 현종에게 협박을 하며 요구조건들을 내세우자 현종은 이자림과 의논하여 잔치를 한다고 장락궁에 장군들을 끌어들여 19명이나 살해하여 버리자 거란의 성종은 이기회를 이용하여 고려를 침입하게 된다.

현종이 요구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소배합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입(현종 1018)하였으상원사 강감찬과  부원수 강민첩이 귀주에서 크게 싸워 이겼다(귀주대첩)

몇번의 전쟁으로 양국은 서로 지쳐서 고려는 요의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고, 요는 고려에게 친조와 강동6주 반환을 철회하기로 하고 강화하였다.

 

4) 전란후 고려는 방비를 위해 전후사업 추진과 민심수습에 만전을 기했다.

(1) 전후사업

개성의 나성축조-현종 원년에 강감찬의 건의로 이가도를 시켜 개경 외성을 흙으로 쌓았다.

② 천리장성의 축조

현종~정종에 걸쳐 유소가 축조하여 압록강에서 도련포까지 거란과 여진의 방비를 위해 돌로 쌓았다.

대장경의 조판-현종~문종에 걸쳐서 거란의 굴복을 기원하며 시작하였다.

④ 국사편찬

현종~덕종때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실록을 편찬했다.

임진왜란때 춘추관이 불타면서 소실되고 말았다.

(2) 민심수습책

① 주창수렴법(의창수렴법)-현종때 흉년에 대비한 빈민구제를 위한 제도다.

면군급고법

현종때 80세 이상의 부모를 가진 군사 는 군역을 면제받고 70세 이상의 부모를 가진 문무관리는 외직에 두지 않는다.

③ 주현공거법-현종때 지방의 자제도 과거에 응시할 수있는 기회를 주었다.

  

2. 여진과의 초기관계는 부모와 자식같은 관계였다.

 

발해의 멸망후 여진은 고려와 거란을 상국(上國)으로 섬겨 고려를 부모의나라 라고 불렀다.

 

1) 현종9년에 여진은 우산국에 침입후 일본 북구주도에 상륙하였다.

2) 숙종9년(1104)에 완와부의 추장 우야소가 정주까지 남하하여 윤관, 임간을 보냈으나 패하였다.

3) 고려의 패전원인이 여진의 기마병때문이라고 하며 윤관은 숙종에게 건의하여 방비책으로 별무반(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병)을 조직했다.

4) 예종 2년(1107)에 윤관을 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하여 17만군(수륙양군)으로 여진을 공격했다.

육군은 여진의 소굴 함흥평야를 소탕하고 *9성을 축조하고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를 표시했다.

그러나 예종4년에 조공을 받고 9성은 반환하였다.

5) 아골타(阿骨打)가 여진을 통일하고 금국을 세우고(고려 예종-1115) 황제라 칭하면서 고려에게

형제지국을 맺을것을 요구하나 고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종은 천리장성을 3배나 높이 쌓아 여진의 내침에 대비하였다.

서쪽으로 밀려난 거란은 함께 여진을 칠것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중립정책을 취하였다.

 

6) 인종때 이자겸은 자기정권을 유지하기위해 금에 사대를 하였다.

 

3. 송과는 친송책을 썼다.

 

1) 북송과의 관계

광종때 국교가 시작되고 현종때 거란과의 수교로 절교하였다가 다시 문종때 회복되었다.

고려는 송의 문화적 목적으로 친선하였으나 송은 고려를 이용하여 요를 배제하려 하였으나 고려는 중립정책을 써 응하지 않았다.

▶고려도경

북송의 서긍이 지은 고려 견문기로 원명은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事 高麗圖經)이다.

삽화와 함께 엮었는데 삽화는 없어지고 글만 남았다.

 

2) 남송과의 관계

송과 금이 연합하여 요를 멸한뒤 금이 배반하고 송을 공격하자 송은 남하하여 이를 남송이라한다.

남송은 금에 사대하면서 고려와 연합하여 금을 제압하려고(聯麗制金策) 했지만 고려는 중립정책을 취하여 고려와 남송은 사신왕래가 단절된 적도 있었지만 송나라 상인들이 대신하기도 했다.

송나라 상인들은 여전히 *예성항(벽란도)을 중심으로 무역을 하였다.

3) 송문화의 수입

고려청자의 기술은 향상되고 고려목판인쇄술도 발달하였으며 대성악이 예종때 수입되어 고려의 아악이 되었다.

(1) 수입품-비단, 자기, 문방구, 책, 향료, 약재, 차 

(2) 수출품-금, 은, 동, 인삼, 생피, 모필, 종이, 먹, 화문석, 접부채

 

4. 일본과의 관계

 

고려전기 일본은 후지하라씨의 전제정치시기로 문물이 교류되었다.

 

5. 대식(Sarasen, Arabia)

 

예성강 하류 벽란도를 통하여 수은, 향료, 약품등이 들어왔다.

이때 Korea라는 말이 생겼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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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 17-06-27 16:33
   
당시는 일본이라고 부르지 않고 '왜'라고 불렀음...
     
그노스 17-06-27 19:11
   
본문에 나온 후지와라씨 치세인 999년의 고려사 기록을 보시면 일본국인(日本國人) 20호가 투항해 와서 이천군에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실 그 이전 기록인 삼국사기를 봐도 670년에 왜국이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샤를마뉴 17-06-28 02:49
   
백제가 망한 7세기 말 왜는 국호를 '일본'으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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