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삼국의 맹주인 고구려, 백제가 모두 부여를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명성과는 다르게 부여에 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기록이 빈약한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교과서에서 상세히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나마 나오는 교과서의 부여라는 것도 저는 의문이 들더군요.
첫번째는 위치입니다.
위 그림은 고구려의 전성기 영토를 다룬 지도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건 동부여의 위치입니다.
동부여를 고구려의 동쪽으로 표기하고 있지요.
하지만 기록은 다르게 전합니다.
<삼국사기> 대무신왕조
겨울 10월, 부여왕 대소(帶素)가 사신을 통해 붉은 까마귀를 보내왔다. 그 까마귀의 머리는 하나이고 몸은 둘이었다. 처음에 부여 사람이 이 까마귀를 얻어서 왕에게 바쳤는데, 어떤 사람이 부여왕에게 말하였다.
“까마귀는 검은 법인데, 이제 빛이 변하여 붉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이니, 이는 두 나라가 병합될 징조입니다. 임금께서는 아마도 고구려를 차지하시는가 봅니다.”
대소가 기뻐하며 붉은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내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한 말도 알려 주었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고 부여왕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검은색은 북방의 색깔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의 색이 되었다. 또한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인데 그대가 이것을 얻었으나 가지지 못하고 나에게 보냈으니, 우리 두 나라의 존망을 아직 알 수 없겠구나.”
대소는 이 말을 듣고 놀라며 후회하였다.
- 대소왕이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낸 이유는 까마귀가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기 때문입니다. 대소왕은 이것이 부여가 고구려를 점령할 것이는 징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얼마 못가 대소는 후회합니다.
중요한 것은 까마귀의 색깔. 다시 말해, 까마귀의 색깔이 북방의 색인 검은색에서 남방의 색인 붉은색으로 변했으니.... 남방의 고구려가 북방의 부여를 병합하게 될 징조라는 것이지요.
즉, 이 기록에서 부여가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부여는 바로 동부여입니다.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삼국사기> 동명왕조
14년(기원전 24)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돌아가셨다. 그 나라 왕 금와가 태후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고 신묘를 세웠다.
- 여기서 금와는 동부여의 왕
<삼국사기> 동명왕조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그들의 재주가 모두 주몽을 따르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이 낳지 않았고 그 사람됨이 용맹스러우니 만약 일찍 처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없애버리십시오!”
- 그리고 대소는 금와의 맏아들
따라서 고구려에 까마귀를 보낸 부여의 대소왕은
동부여의 왕인 금와의
맏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까마귀를 보낸 부여, 역시 동부여이지요.
+) 고구려의 위치를 압록강이 아니라 요양으로 비정한다고 해도
동부여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으므로
지도는 통설을 존중하여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