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단군왕검이 무리 800~3000명을 이끌고 이주해와서 정착했다.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고조선을 세웠다.
단군왕검 관련 내용에 '서자'라고 했던것은,
북방 유목민 문화다.
그쪽은 첫째가 아니라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다.
현재와는 반대로 장남은 아버지에게 배운 경험과 스스로 만들어온 기반세력을 갖고 독립하고,
가장 적게 배우고 기반이 약한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받고 부모를 모신다는 개념.
고조선은 만주, 한반도, 요서 지방등을 점거하고,
삼한 체제로 통치했다.
이 삼한의 성격은 고조선 해체후 한반도 남부의 상황을 보면 그 성격을 유추해볼수 있다.
마한왕은 백제와 신라등을 자기 아래에 소속된 세력으로 봤었고,
백제, 신라가 강성해진 이후에도 형식적으로나마 마한왕을 우대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고조선이 해체 됐지만 한반도에 있던 고조선 마한은 오랫동안 유지됐다고 볼수있다.
고조선의 원래 삼한 지역은 지나사료의 내용으로 봤을때,
한반도의 마한, 만주의 진한, 요서의 변한이다.
당시 지나 기록상에는 가장 위치가 가까웠던 변한을 주로 다뤘지만,
변한이 장인국, 진국에 포함되며, 삼한 전체가 진국이라고 하는등 삼한은 같은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기자조선, 위만조선은 어쩌면 고조선 전체로 봤을때 변한안의 사건으로 고조선 역사에선 그리 중요한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조선은 큰 2번의 난리를 겪고 해체됐다.
흔히 아는 한무제의 침공 이전에 흉노와의 전쟁이 있었다.
고조선은 처음에는 흉노와 가깝게 지냈다.
위서로 여겨지는 한국측 기록에 흉노가 고조선에서 추방된 후손이 세웠다는 얘기도 있지만,
흉노측 기록에도 고조선의 요구가 지나쳐서 참다참다 결국 고조선을 공격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흉노의 공격으로 고조선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된다.
이때 떨어져 나간 고조선인이 선비족이다.
이후 고구려가 지나를 치려고 했을때 이 선비족은 흉노를 치는데 더 관심이 있었고,
고구려가 선비 우문부와 단부등을 고구려에 무력으로 흡수하게 된다.
이때 고구려에 포함된 선비족이 나중에 거란족이 된다.
이후 한나라의 입장에서 봤을때 고조선은 흉노에게 여전히 우호적이거나 (그렇게 보였거나)
한나라가 흉노를 공격할때 고조선이 한나라에 해가 될것으로 여겼던걸로 볼수있다.
한나라와 전쟁으로 발생한 유민들이 한반도로 이동해 후에 가야, 신라가 된다.
고조선 해체후 마한땅(한반도)에 마한왕이 오랫동안 존재한걸로 봤을때,
한나라는 변한, 진한에는 큰 피해를 줬지만,
한반도 마한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다는걸 알수있다.
지나 사서를 참고하자면 고조선 삼한중 완전히 몰락한곳은 변한이고,
진한은 피해를 입었지만 한나라군을 몰아낸것으로 보인다.
근거로 진한지역의 부여가 건재했고, 고조선 침공에 참가한 한나라 장수들이 모두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봤을때 직설적으로 '한나라가 졌다'라고 기록하진 못했어도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켰다고는 볼수없다.
한나라의 침공으로 결과적으로 고조선이 해체된건 맞지만,
한나라에 패해서 멸망한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