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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07 22:27
[한국사] 외세의 역사서적 파괴와, 역사축소
 글쓴이 : 의로운자
조회 : 1,371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라는 문구에서 알수있듯


이시대에선 명나라의 강압에의해 책을 수거해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후 청나라가 서적을 가져오라 했겠지만요.

일본이 일제에 저지른 민족말살정책과 비슷하지요.


그리고 임진왜란당시 국토의 3분의 1 이상이 황폐화 되고,노비문서가 전부 불탔습니다.

그래서 누가 노비인지 노예인지 판별하지도 못했죠. 사서란사서도 많이 불태워졌을겁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강화도에 국가서적을 관리하던곳을 점령해 우리나라 서적을 몽땅 가져가버리죠

대통령이 가장먼저 해야할일이 서적 돌려받는일입니다. 안되면 돈주고라도 사야합니다.


또, 일제감정기 시절, 일본이 35년간 우리나라 문화재를 부수고,문화재를 가져가고

자원을 다 캐네서 가져가고 농산물을 전부 가져가고 가축을 가져가고 뭐.. 많겠지만


서적을 가장많이 불태우고 가져갔을겁니다. 칠보도라는 검조차 조작했는데요.. 글자일부분을 지웠습니다.


진덕여왕이 백제와 싸우러 가는 김유신에게 이런말을 합니다.

"어찌 작은나라가 큰나라를 이길수 있겠단 말입니까?" 라고 하자

"이기고 지는것은 나라의 크고작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라고 답하는데,

여기서 중요한건 진덕여왕 시절이면, 교과서에 따르면 신라가 백제의 두배가량이나

영토가 더 크다고 말하는시점인데, 저런말이 오갑니다. 백제는 결코 작은나라가 아니였다는거죠

일본,탐라는 그냥 백제파였습니다. 백산,속말말갈등이 고구려파에 속했듯이요

중국에서도 활동을 계속 했을수도있고,이전 백제에대한 대륙에서의 기록으로인해 더

큰나라라 생각했을수도 있겠지요


자국 내에서 판타지 소설이라하는 일본서기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백제가 다하여 내게로 돌아왔네.
본국(本國 : 本邦)이 망하여 없어지게 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게 되었다."


"아! 백제의 최후 거점인 주유성마저 무너졌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제 조상의 분묘가 있는곳을 어찌 갈 수 있단 말인가?"


                                 -일본서기-



일본 천황이 한국에 여행와 몰래 무령왕릉에 절하고 간거 모두 아시죠??


근데 일본은 백제사를 뺏을생각을 안하고 백제를 욕하는모습이 희안하더군요

한국역사가 자명해서 뺏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게 맞을수도 있겠지만요


백제가 만약 통일을했다면 우리 김박씨보다 백제성씨가 더 많았을겁니다.


고구려는 당이 천리장성을 공격하지않을때는,

시라무렌강 내몽고지역과,요서에서 당과 계속 교전합니다.

고구려 천리장성의 위치도 말이 많지만요.


그나마, 가장 역사서를 하나라도 더 찾을만한 곳이 있다면,

프랑스가 박물관 지하에 숨겨둔 서적들,일본의 천황 황실 도서관, 북한에 있는 서적들이 큰 후보지 입니다.

유물은 일본 천황가 무덤 조작하기전에 발굴하면되는데, 안하고 출입금지시켜버리고

희안한놈들 지들은 30년간 "민족말상정책"이란 무서운 이름으로 역사조작했으면서 무덤발굴조차 못해요


중국도 조선유물과 기마민족의 유물,요하,바이칼 계 삼국계 유물이 나올까봐

아에 조사조차 못하게 한다고 하죠. 


웃긴건 중국은 그쪽 땅에 살았다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멋대로 보장왕의 4촌인가 8촌인가 되는놈을

고구려 의 다름이름인 고려와, 옛지면 조선을 섞어 고려조선군왕을 책봉합니다.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에게 웅진백제대방군왕에 부여융을 또 책봉하구요.

그냥 지들멋대로 책봉하는겁니다. 거란한테 평주,발해한테 요서지역 공격 당하고는

발해한테 발해군왕 주고 책봉합니다. ㅋㅋㅋ


뭐 낙랑군왕인가 머시기도 있더라구요. 근처에 낙랑국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그쪽 서북쪽에 낙랑군을 설치하지않나, 옛날이지만,제정신이 아닌놈들이였습니다.

근데 그 낙랑군이 낙랑국이랑 똑같다고 낙랑국유물을 낙랑군 유물이라며 중국에서 몰래 돈받아쳐먹다가

중국으로 도망가는 동북아 역사재단의 머시기는 더 소름이구요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미래를 위해 용서하고 협력하는게 맞는 일이지만,

빼앗긴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찾는 노력은 필요할겁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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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07-07 22:40
   
제주도는 백제의 흔적이 0%, 백제에게 조공하던곳은 탐라가 아니라 탐모라(남북 천리).
신라 이사부의 정벌은 제주도(탐라), 울릉도

신라성씨 - 박,석,김... 이,최,손,정,배,설
     
의로운자 17-07-08 00:00
   
잠깐만.. 제주도와 백제의 흔적이 0% 라구요??

탐모라국(耽牟羅國)·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라고도 표기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및 조선 초기까지 오랫동안 불려졌던 칭호이다.

백제와 밀접해 476년(문주왕 2) 4월에 사신을 파견해 방물(方物, 토산물)을 바쳐(佐平)의 관등을 받았다.

 498년(동성왕 20) 8월에는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다가 백제동성왕이 친히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부를 바친다.

서기661년, 신유(辛酉)년, 탐라 처량왕3년, 신라 문무왕1년, 고구려 보장왕20년 
○ 5월, 탐라, 일본 및 당과 교빙(交聘)함. 
○ 일본의 입당사신(入唐使臣), 탐라에 표착해옴. 
○ 이 무렵 건들개[健入浦 : 제주항(濟州港)]의 내항으로 고령포(高齡浦)를 설치함.
서기662년, 임술(壬戌)년, 탐라 처량왕4년, 신라 문무왕2년, 고구려 보장왕21년 
○ 2월, 탐라, 신라에 사신을 보내 복사(服事)함. 
○ 신라, 백제의 고례에 따라 탐라왕에게 좌평(佐平)벼슬을 줌.
 
서기665년, 을축(乙丑)년, 탐라 처량왕7년, 신라 문무왕5년, 고구려 보장왕24년 
○ 탐라, 당의 진수사(鎭守使) 유인궤(劉仁軌)의 안내로 태산천제(泰山天祭)에 참석함. 
○ 탐라의 당케[唐浦 : 대평리(大坪里),표선리(表善里)],당과의 교역항으로 번성함.
 
서기667년, 정유(丁酉)년, 탐라 처량왕9년, 신라 문무왕7년, 고구려 보장왕26년 
○ 7월, 탐라, 일본에 사신을 보냄      
[이 무렵 탐라(耽羅)와 일본(日本)은 백제(百濟) 부흥운동(復興運動)에 협조하였다고 함.]
 
서기668년, 무진(戊辰)년, 탐라 처량왕10년, 신라 문무왕8년, 고구려 보장왕27년 
○ 3월, 탐라, 사신을 일본[천지(天智)8년]에 보냄. 
 
서기677년, 정축(丁丑)년, 탐라 처량왕19년, 신라 문무왕17년 
○ 8월, 탐라, 왕자(王子)를 일본에 사신으로 보냄.

백제가 망한 후부터, 탐라가 급격히 외교적 활동을 강화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니 이사부의 정벌이 제주도는 또 무슨소린가요;; 신라가 백제망하고 탐라관리하러가는데

.. 새로운 지식을 주시려면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알려주세요

그리고 중국의 이씨가 무슨 신라성씨라는겁니까 또..
당나라 왕조와 거란지도부 대표성씨가또 이씨입니다..
물론 한국의 이씨들은 이성계 후손들로 당연히 우리민족들로 생각하지만요.

일본이 백제성씨 거부하는거랑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씨가 신라성씨라면;

아참.. 설마 타모라랑 탐라랑 다르다고 하시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다르다면 다른 이유도 같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도배시러 17-07-08 03:09
   
탐모라는 남북이 천리에 달하는 길이를 가진 섬인데, 제주도는 남북 백리수준.
其南, 海行三月有耽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그(백제) 남쪽에 바다로 3달을 가면 [탐모라국]이 있는데, 남북으로 1000여 리이고 동서로 수백 리이다. - <수서> 백제전
제주도에 백제 흔적이 없다는 것은 유물이 신라, 마한의 것만 출토됨.

신라왕조가 박석김인것은 아실테고... 삼국사기에 신라6부의 6성씨가 기록되어있어요
유리왕9년 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一云牟梁] 姓孫 干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部 姓裴 明活部爲習比部 姓薛

> 신라 이사부의 제주도 정벌은 혼선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사부가 정벌한 우산국은 사방 백여리인데...
울릉도는 사방 30리 수준.  제주도는 남북 백리, 동서 3백리 수준
               
의로운자 17-07-08 13:23
   
사서에 쓰여있는 천리로 단정하긴 어렵구요, 똑같이 해석하자면 규슈일수도있습니다.
사서에 외교활동만으로 주류학계가 추정끝낸 자료입니다.

전주 이씨(李)의 시조는 이한이라고 한다.

이한은 신라 태종무열왕 10세손인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통일신라 문성왕(文聖王 : 재위: 839년 ~ 857년)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고 한다.[1]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라고 한다.

삼국지 인물중에 전주 李씨가 나오는데, 이는 연대차이가 600년가량 납니다.
김씨도 최초로 등장하는게 중국사서이긴 하나,
김박석씨는 삼국지 인물에 등장하지 않는거로 보아, 이민족이라 생각했을겁니다
                    
도배시러 17-07-08 13:36
   
주류학계는 조상들이 한반도 벗어나면 싫어해요.
싸돌아 다니지말고 콕 박혀 있기를 원하죠.

수서 백제전의 탐모라는 수나라가 진나라 정벌하던 격변의 시기에 얻은 정보죠.
진나라를 공격하러가다가 천재지변으로 수나라 군사가 탐모라에 착륙하여 겪었던 일입니다.
그냥 카더라~가 아니고, 진나라 정벌하러 갔다가 탐모라에서 개고생한 기록이죠.

진나라 옆에 제주도나 큐슈가 있었다면 ?
                         
의로운자 17-07-08 14:24
   
규슈는 도배시러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럴수도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탐라의 대한 백제의 흔적이 0%라니요 속국이였습니다. 탐라는요

진나라를 평정한 해에 수의 전선이 표류하여 해동의 탐모라국에 닿았다. 그 전선이 돌아가면서 백제를 통과하게 되자, 여창은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내고 아울러 사신도 보내어 표를 올려 진나라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북사-

여기서보면 평정한 해에, 라고 나오는데 공격하다가 탐모라로 갔다는 소리는 뭐죠..
저도 헷갈려서 찾아봤습니다.

그 나라의 남쪽에서 바다로 석 달 동안 가면 탐모라국이 있다. 남북으로는 천여리이고 동서로는 수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많은데, 백제에 부용되어 있다. -북사-

탐라는 무덕 아래로 백제에 속했기 때문에 좌평으로써 호칭을 주어 삼았다. 이때부터 신라에 속하였다 -삼국사기-
                         
도배시러 17-07-08 15:12
   
다 오셨네요.
그많은 군사들이 탐모라에 와서 남북이 더 긴지, 동서가 더 긴지 구분도 못했다면
눈알 파내야 합니다.

이제 제주도에서 백제 유물의 흔적을 찾아내시면 답이 나옵니다.
사서에 나오는 탐라와 탐모라국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
제주도는 탐라국인가, 탐모라국인가 ?
                         
의로운자 17-07-08 17:47
   
탐라국 [耽羅國]
탐모라국 (耽牟羅國) 또는 섭라 (涉羅), 탁라 (乇羅), 담모라 (耽牟羅), 담라 (憺羅)라고도 지칭한다.
이중 탐라[眈蘿]라는 지명이 일치합니다.

담모라국(탐모라국)이라고 처음에 백제에 신속했다가 나중에 신라에 신속되는 섬나라 이야기가 있는데 학자들은 대부분 이곳을 현재의 제주(탐라)라고 상정한다.

만주원류고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백제에서 배를 타고 남으로 300일을 가야 닿을 수 있으며 섬의 크기는 남북이 1천여리 동서가 수백리이며 사슴이 많이 산다." 라는 말이있는데
이는 제주도 보다 대만에 몹시 가깝습니다.
하지만, 탐라가  제주도라는건 기록에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백제의 관할이였습니다.

남북이 천리고 동서가 수백리라면 탐모라가 대만이라는 말인데
이건 대만에서 엄청난반발을 가지고옵니다.

원래 부르는 이름은 시대와 기록을 누가하냐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말갈족을 예를 들면 처음엔 숙신-읍루-말갈-여진-만주족 으로 불리게 된것처럼 말이죠

사서가 소설이고,유물 위주라면 역사는 공부할 이유가 없다 생각합니다.
유물만보고나면 이미 우리나라가 동북아 최고입니다.

사실 이정도의 자료만가지고 단정짓는다는게 말이안되긴 하죠
                         
도배시러 17-07-08 18:24
   
대만이 반발할 근거는 그닥 없습니다.
대만이나 미국이나 역사의 깊이는 비슷해요. 기원후 1,000년 이전은 역사공백.

명칭은 오류가 있을수있지만... 본인들이 직접 답사한 장소의 지리정보 오류는 어렵죠.
...
제주도에는 백제가 지배 했다거나 일부 백제인이 잠시 거주했다는 유물도 없습니다.
울릉도는 통일신라말기의 도자기가 발견되지요.
신라 장군 이사부는 통일신라이전에 우산국을 정벌했는데...
          
바람속에서 17-07-08 04:04
   
이씨 중국성씨아닌데. 동이족성씨란게 맞죠. 당:선비계로 암.

순수 중국은 한,명뿐이죠.
그노스 17-07-08 05:09
   
조선 후기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백과사전에서 '우리나라 서적의 수난(受難)에 대한 변증설'을 길지만 인용하자면,

'책이란 고금의 큰 보배이므로 때로는 조물주의 시기를 받기 때문에 항상 재난이 있는가 보다. 우리나라에도 책의 수난이 있었는데, 대강만 헤아려도 열 가지는 된다.

당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침략하고는 국내의 전적(典籍)을 평양에 모아 놓은 다음 고구려의 문물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운 것이 그 하나이다.

신라 말기에 견훤이 완산주(完山州)에 할거하여 삼국시대의 전해 내려오던 책을 모조리 옮겨다 두었는데, 그가 패망하자 모조리 불태운 것이 그 둘째이다.

고려시대에 여러 번 전쟁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없어진 것이 그 셋째이다.

조선 명종(明宗) 계축년에 일어난 경복궁의 화재로 사정전(思政殿) 이남이 모조리 탔는데, 그때 역대의 고전(古典)도 함께 탄 것이 그 넷째이다.

선조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할 때 난민(亂民)과 왜적이 방화하여 불태운 것이 그 다섯째이다.

인조 병자년에 청나라 군사가 침입할 때 난민들이 방화하여 대부분 불탄 것이 그 여섯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중국의 장수와 왜적이 경향 각지의 민가에 있던 전적을 모조리 찾아내어 싣고 간 것이 그 일곱째이다.

인조 갑자년에 역적 이괄(李适)이 관서(關西) 지방의 장수로서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침범하여 그나마 약간 남아 있던 것마저 불태워 없어진 것이 그 여덟째이다.

우리나라 풍속이 책을 귀중하게 여길 줄을 몰라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들거나 벽을 발라 차츰 없어진 것이 그 아홉째이다.

장서가(藏書家)들이 돈을 주고 사들여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자기도 읽지 않으며,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아 한번 넣어두면 내놓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흘러 좀이 슬고 쥐가 갉아먹으며, 종들이 몰래 팔아먹거나 하여 완질(完帙)이 없는 것이 그 열째이다.

내가 일찍이 탄식을 금치 못하면서 책의 수난 가운데서도 장서(藏書)가 가장 피해가 크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럴리걍 17-08-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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