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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09 13:22
[한국사] 인진왜란,병자호란 이후로 가장 중요한 근현대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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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당자강 17-07-09 13:50
   
그건 지들 생각이고.......
비좀와라 17-07-09 14:07
   
유시민 저 분은 종교를 정치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하는 분이 왜 종교를 그 것도 특정종교의 편에 서서 열변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누가 뭐래도 동학은 종교집단이지 사회집단이나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탈레반이나 이슬람 정통주의자 들이 이슬람 문화권 국가의 정치를 장악하는게 맞다고 하는 말과 같은데 평소의 지론과는 완전 틀린 말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인지...
     
감방친구 17-07-09 14:39
   
역사인식이 그러해서야 되겠습니까?
동학농민운동은 특정종교의 교세확장 운동이 아니라 반외세, 반부패의 거족적 민중운동, 무장투쟁운동이었으며

당시의 우리 민중이 주체가 된 시대정신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이후 항일투쟁의 뿌리가 됩니다
     
비좀와라 17-07-09 14:57
   
IS 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주장도 반부패와 반외세 인데요?

그리고 우리의 전통종교는 유교이고 동학이야 말로 외래 종교 입니다.

인간과 신의 구분에서 인간은 같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집단을 말하는 것 입니다. 설사 외모가 같다고 해서 인간으로 여기질 않는단 말이죠. 외모가 같다면 로봇도 인간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죠.

신과 짐승은 같은 말이고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 즉 문화와 정신이 다르다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죠. 그리고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유교의 규제되어 있습니다. 유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고 한국인이 아니죠.
     
북창 17-07-09 15:02
   
어이가 없네요 ㅎㅎㅎ
그래요~ 조선도 종교 집단이죠~ 유교 종교 집단...ㅎㅎ
서양 세력은...기독교 종교 집단이고 ㅋㅋㅋㅋ
이 무슨 얼척없는 프레임 씌우기인지....?
동학은 그 시작은 종교였을지는 몰라도...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사회 개혁을 주장해서...일반 농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이지...거기 참여한 자들이 전부 무슨 세뇌된 종교인쯤으로 여기시나?
당시만해도...사상을 일반 백성에게 전파하는 수단이 종교 같은 형태밖에 없어서 자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런 것들도 다 식민 사관이 아닌가 하네요.
          
비좀와라 17-07-09 15:05
   
유교는 종교집단이나 정치는 유학자가 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제정이 완전히 분리된 국가란 말이에요.

그리고 동학이 인본주의라고? 정말 기가 막히는 구만... 관 둡시다.
               
북창 17-07-09 15:09
   
인내천이 그럼 인본주의가 아니고 뭐랍디까?
유학자가 바로 님말대로라면 종교인이죠~
촐라롱콘 17-07-09 15:09
   
동학농민운동의 슬로건 가운데 반외세-반봉건적인 요소들을 일부 제외하면....

동학농민운동의 대부분의 지도부와 거의 대부분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전근대적인 미신-주술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헀던 것이 현실인지라.....

수많은 지도자격의 접주들이 부적으로 총탄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휘하 병력들에게

부적 하나만을 나눠주고, 일본군-관군의 화망속으로 밀어넣어...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허무하게 사그라들게 만들었지요.....!!!
     
감방친구 17-07-09 15:11
   
참 역겹네요
참 기가 막힙니다
     
꼬마러브 17-07-09 15:16
   
이게 무슨 망언입니까?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이라뇨..;;

그게 사람으로서 할 소리입니까?
          
촐라롱콘 17-07-09 16:01
   
사람으로서 할 소리.....????
그리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이라는 표현이 어째서 망언이지요....???

비록 동학농민운동 자체가 거시적으로는 한국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세부적으로 우금치전투를 비롯해서 미시적인 여러 수많은 전투(특히 2차봉기이후를
중심으로는)적인 차원에서는....

동학지도부의 군사적 무능과 근대무기-전술에 대한 무지함과 몰이해도로 인하여
엄청난 대량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전근대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당시대인들을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런 면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전투에서 무려 1:10~1:100 이상의 우월한 병력수를 지니고도

비록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근대무기-전술을 거의 접하지 못한 농민출신들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로 당시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일본군 또한 당시 정규군은 청일전쟁에
주로 동원되었기 때문에... 동학농민군 토벌에는 전역한 민간인을 재소집한 2선급 예비군들이
주로 동원되었고 병력수도 2개 대대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주로 소화기로만 무장한 상태로 기관총 등의 중화기는 조선중앙군에게
의존했을 정도의 허접한 수준이었음에도....

이런 2선급 예비군들을 상대로도, 그것도 1:100 이상의 우월한 병력수로도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패배 정도가 아닌 동학농민군 수 만명이 죽어나갈 동안에
일본군은 고작 수 십명의 사망자(그것도 전투에서의 전사자는 10명 미만이고 대부분은
풍토병으로 병사한)에 불과한 피해를 냈을 따름입니다!     

전투적인 부분만 놓고 보면 지도부들의 군사적 무능으로 인한 일방적인 '개죽음'에
가까웠던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리 동학농민운동이 우리 한국근현대사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하더라도
세부적인 모든 부분들까지 미화하는 우는 피해야 하겠습니다...!!!
               
그노스 17-07-09 17:47
   
제가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동학 농민운동을 군사 전략, 전술적으로 진지하게 평가해보고자 하시는 분은 처음 뵙네요.
전봉준 평전을 보시면 님의 말씀대로 일본군은 기관총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농민군의 주요 무기는 화승총(...)과 죽창(...)이었습니다.
이런 무장을 한 농민군이 학살을 당한 것을 어떻게 농민군의 군사적 무능이라고 평하시나요.

영국군이 수단군과 치른 Omdurman 전투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의 기관총의 위력이 보입니다.
영국군은 기관총을 사용해 수단군의 6만대군(근대식 라이플도 일부 보유한) 중에 수만명을 학살했으나, 영국군의 사망자는 수십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전투를 서구에서는 님처럼 수단군의 무능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보통 이렇게 표현합니다.

'It also proved decisively the killing power of the West’s new weaponry.'

-David Shonfield

사실 동학운동은 정치적, 종교적인 무장운동에 가까웠습니다. 이들에게 군사적 유능함을 요구하는 것이 더 이상하고, 실제로 동학운동이 군사적으로 유능(...)했다고 평가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농민군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그것을 마치 전제적인 지도자가 농민군을 강제적으로 징병해서 전장에서 인적 자원을 불필요하게 소모시킨듯이,

'일본군-관군의 화망속으로 밀어넣어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허무하게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내지는 '개죽음'

...이라는 님의 표현은 그다지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 당시 조선에서 님의 기준을(...) 충족시킬만한 소위 근대적으로 훈련된 무장집단이 얼마나 존재했을지 의문인 상황에서, 타민족에 의한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불가항력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은 농민군의 희생을 기리는 것이 미화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후에 보이는 일제 강점기를 기억한다면 말입니다...

님의 말씀처럼 윗분이 세부적인 모든 부분들까지 미화하는 우를 범하시는 것이 아니라 님께서 세부적인 모든 부분들까지 지나치게 가혹한 시선으로 한국사의 인물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은 아닐지...
     
그노스 17-07-09 15:58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님 한국 싫으시지요? ㅋ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 야심차게 집필한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에서 동학군에 관한 내용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민중은 분노로 달아올랐고 가을부터 다음 해에 걸쳐 반일운동이 각지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농민군이 남과 북에서 다시금 봉기하였다. 주자학을 가르치는 유학자, 병사들과 지방의 관리 가운데서도 싸움에 참가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일본군은 자신들을 적대하는 자는 모두 참살해 버리겠다는 방침으로 사태 진압에 임하였다. 농민군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훈련을 받은 정식 군대는 아니었으며 무기도 빈약하였다. 1894년 11월, 근대적인 총화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주축이 되어 조선정부군과 연합한 군대는 충청도 공주에서의 혈전을 시작으로 농민군을 차례로 격파하였다. 그 희생자는 3만명, 부상한 뒤 사망한 사람들을 더하면 5만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무명 동학농민군 위령탑의 석주에 새겨진 농민의 얼굴은 수많은 농민이 본보기로 효수에 처해진 원통함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선의 항일 전쟁도 무지한 농민을 청국이 꼬드기어 폭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었고, 사건의 진상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일본인은 아직도 청일전쟁 중에 벌어진 조선 항일 투쟁의 진실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 교육자들조차도 이런 식으로 논하고 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촐라롱콘님께서는 한국인 강사이셨던 것으로 압니다만 님께 배웠던 학생들은 독특한 역사관을 갖게 되겠군요...)
          
촐라롱콘 17-07-09 16:06
   
동학농민운동 가운데 전투적인 부분을 평가한 것임니다만....

당시 동학농민운동 지도부들의 근대전술-무기에 대한 무지함과 몰이해도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사그러져간 부분은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도 일맥상통하게
평가하는 부분입니다만.....

그리고 강사는 대딩때 알바로 중고생들 상대로 학원강사 몇 달 한 것에 불과한데...^^
글고 교과서대로 요점을 집어주기에도 당시 경력과 능력이 부족해서 벅찬 형편이었는데
무슨 독특한 역사관씩이나....^^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상식3 17-07-09 20:02
   
참 특이한 인간이시네, 일차세계대전만 봐도,
당시 자신들이 만든 기관총의 위력도 잘 모르고 이전의 전술을 답습하다 엄청난 피해가 났죠.
딱히 군사, 무기 이해 나발거리면서 동학농민군 비하하는 거 우습기 짝이 없네요.
그리고 숫자따위 무의미할정도로 무기와 전술의 차이가 큰데, 어처구니 없는 일뽕짓이라니,
기관총 교차로 놓고 갈기면 숫자따위 무의미한 거요.
이 사람 참, 일뽕의 병이 깊네...
               
상식3 17-07-09 20:07
   
좀 제대로 사쇼.
어디서 역사지식은 잡다하게 쌓았는데,
폄훼나 왜곡질을 위해서 개소리나하고 참~나~
부분적 사실을 가지고 사기치는 짓 좀 하지 맙시다.
               
굿잡스 17-07-09 20:14
   
당시 동학농민운동 지도부들의 근대전술-무기에 대한 무지함과 몰이해도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사그러져간 부분은>??

그노스님도 첨언한 부분이지만

님은 너무 현대적 눈높이와 결과론적으로만 보는군요.그것도 잔인할 만큼.

우금치 전투(1894) 이후에서야 서구식 대한제국군이 설립되고 기관총이 수입되는

마당에 당시 일반 민중들이 주축이 된 동학운동이 그것도 비전투원들에게 얼마의

근대전술과 무기의 지식을 바라시는지??

기관총은 밀리터리 역사에도 전쟁사에 한획을 긋는 발명품이군요.

심지어 쨉극우나 쨉빠들이 그리 쳐빠는 쨉도 러잽전쟁의 뤼순전투에서 이 기관총에

쨉 정규 대대가 작동불능이였고 1차대전의 영독 솜전투에서 그리 잘난 영국군도

6만명의 엄청난 전사를 내게 한 물건. 물론 당시  이런 포격에 대비한 참호와

철조망이라는 방어진이 있었지만 이런 기관총의 출현으로 제대로된

정규 공격진영쪽에서 조차 몇백미터 전진하는데 엄청난 출혈을 감내해야 했고

이를 계기로 탱크라는 또다른 신병기가 나온게 밀터 역사.

과연 당시 민중의 순수한 열망과 외세에 대한 자존적 외침에 그런 조선 조정내에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신식 병기에 대해서 무지와 전술적 부족만을 내세워 어쩌고 결과론

적으로 말해야 하는지?? 시대적 격변기나 쨉군의 잔인성은?
                    
촐라롱콘 17-07-09 21:15
   
당시 동학농민군들도 1차봉기기간을 거치는 동안
단계적으로 근대무기를 접하고 습득해서
부분적으로는 이를 운용한 경험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군현 단위의 지방관아 병력과 대적할때야 화승총 수준의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전라감영군 등 도 차원의 지방군과 대적할때는 근대식 소총을 경험했으며....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장위영 병력 등 중앙군과 대적할때는
기관총, 근대식 대포 등의 중화기까지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2차봉기 당시에 대적했던 2선급 후비보병 예비군 수준에 불과했던 일본군이
보유한 수준의 무기와 화력은 1차봉기 당시 이미 경험해 봤다고 여겨집니다만....
                         
상식3 17-07-09 21:29
   
이사람은 전쟁전술이 금방 뚝딱하고 나오는 줄 아나보내..
이전글에도 말했시피, 1차 세계대전에서도 기관총 상대로 영국군 장교가 호루라기를 삑 불면 소총병 돌격하는 짓을 반복했어요.
혁명적인 무기의 발명과 그걸 극복하기 까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요.
그리고 일본군 찬양하려고 별허접한 개소리를 반복하시는데, 교차로 기관총 설치하고 총알만 안 떨어지면 화망구축하면 거기로 공격하는 건 숫자나 병사수준 말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관학교의 존재는 이전시대와 군의 수준차를 크게 만들어요. 무슨 동학농민군 수뇌부가 사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기관총 뚫는 전술을 어떻게 아나? 이 사람 억지가 심하시구만요.
                         
굿잡스 17-07-09 22:04
   
전라감영군 등 도 차원의 지방군과 대적할때는 근대식 소총을 경험했으며....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장위영 병력 등 중앙군과 대적할때는
기관총, 근대식 대포 등의 중화기까지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

본인이 말하는 그런 정규 관군과의 황룡촌 전투에서의 대승이 이런 동학 지휘부에

우금치 전투에서의 병력차이를 감안한 돌파 시도 강행을 낳게된 도리어 독으로 작용

판단 미스를 가져왔다는 건 모르시는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영제국의 영국군 조차 최신병기와 정규군임에도 전장의

상황 미스에 따라 얼마든지 6만명이 대패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가 나오는게 밀터역사군

요. 하물며 제대로 근대 무기에 대한 접전이나 교리 역사도 무지했던 농민군들이

도리어 초기의 이런 일시적 대승은

지휘부에게 승리에 대한 자기 합리화 혹은 확신을 주게 되고 우금치의 지형 자체도

단기 돌파에 대한 지형적 이점도 있어 감행하는 여러 요인등 하여튼 이는 앞서도

말했지만 비정규 그것도 순수한 열정으로 외세 극복을 위해 모인 농민들에게

무슨 근대적 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전술이나 무기의 이해도와 숙련을 요구하는지??

그기에 일부에서는 부적 미신 어쩌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좀 다른 시각이군요.

님이 만약 이런 오합지졸을 데리고 전투에 임한다면 그것도 무기의 질적 전력차에서

그나마 쪽수의 우위에서 전투시에 피터지는 전황상황에서 그런 정신적 공황을

일반 비정규인들에게 단기간 극복시키기 위해서는

당시 극단적으로 지휘부에서 어떤 조치의

선택권이 있었을까요??

황룡촌 전투의 대승만 봐도 장태를 이용해서 관군이 가진 총알을 소비시키는

기지를 이용해서 전투에 승리했던 당시를 보면 이런 동학군의 지휘부가 마냥

멍청했거나 미신에만 의지했다는 시각은 너무 단선적 사고로 보이군요.


이걸 떠나서 앞서도 말했지만 님의 그런 결과론적 기계론적 시각은

마치 촛불시위가 전정부를 내리고 새로운 정권 교체가 아닌 피터지는 혈전으로

이어졌다면 마치 왜 대규모 촛불시위가 발생했는지 전후 상황은 무시한채

민중의 무지로 수십명의 사상자만 났다 뭐 이런 식의 포커스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상식3 17-07-09 20:35
   
이사람 웃기는 게 다른 글에서 반자이 어택 찬양하는 우스운 짓을 하던데,
반자이 어택에서 하던 일본군의 어처구니 없는 짓에 뭐가 있냐면,
탱크에 칼질하다 뒤지기, 기관총에 칼질하다 뒤지기, 일본도로 기관총이 잘릴 거라 생각한 듯,
미군이랑 싸우다, 칼 들고도 주먹에 맞아죽은 일화도 있을 정도였는데,
기가찬 거지, 반자이 어택 찬양하는 짓 말이야.
이사람은 너무 목적이 노골적으로 분명한 것 같애, 한국 비하, 일본 찬양...
기관총 아니라도 임란 때,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10만명이나 되는 병력 총동원해서 3000명에게 3만이나 죽고, 기록적인 폭우로 토성이 무너져서 겨우 이겼지, 그리고 추접한 민간인 학살, 보통 공성전에 수성측 보다 10배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죽은 것만 3만, 3000으로 기록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발달한 조선의 화약 무기 덕이죠. 비격진천뢰...
조선이 어처구니 없는 수준으로 대비를 하지 않은 탓에 피해가 컸지, 준비만 제대로 했다면 일본군은 성하나 점령하다 다 괴멸됐을 거요. 당신이 찬양하는 임란 때, 왜군 수뇌부 수준이 당신이 비하하는 동학농민군 보다 나아보이지 않는데? 신무기에 대해 무슨 정보니 지식이니 웃기고 자빠졌네..
 이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역사를 편집해서 왜곡한단 말이지...
왜군이나 일본군 찬양하는 꼬라지와 조선을 비하하는 걸 보면 너무 노골적이야.
                    
촐라롱콘 17-07-09 21:27
   
이 인간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내가 언제 반자이어택을 닥치고 찬양했던 적이 있는지....???

만약에 내가 반자이어택을 언급했다면....
19세기말~20세기 초 시기의 비교적 근대식 무기를 갖춘 청나라-러시아군을
상대로 해서도 반자이어택이라는 무식한 방식이 청나라군을 상대로는 상당한 성공률로
먹혀들었으며...

러시아군을 상대로는 비록 막대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203고지 전투와 같이 일부분의 성공률을 보일 정도였는데

임란 당시의 창,칼,활 또는 초보적인 총통으로 무장한, 게다가 병력수와 실전경험도
딸리는 조선군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적군이 닥치고 돌격을 감행한다면....
이를 쉽게 감당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을 한 걸 가지고...
.
.
의미를 완전히 곡해하고 있네요....!!!

참 특이한 인간이시네...^^ 좀 제대로 사쇼~~~
                         
상식3 17-07-09 21:38
   
청일전쟁이나 러일 전쟁은 일본이 운빨터진 전쟁이었고,
반자이 어택에 적이 두려워했네 어쨌네는 당시 일본군의 검술위력이 쎘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친 것들이 쳐죽어나자빠지면서도 좀비같이 몰려오니까 그 상황이 무섭게 느껴졌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 무슨 반자이 어택이 위력있었다고 개소리신지..
청일전쟁 때 청군의 지휘관이 심하게 멍청한 거였어요. 일본군의 상황은 식량이 떨어져 내일모래하는데, 이것들이 닥치고 돌격하는 걸 보고 지래 겁먹고 지지친거지, 무기, 보급 등의 모든 제반상황은 청군이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청이 멍청한 게 전쟁 배상금 준건데, 그걸 왜주나? 러일전쟁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는 쌩까잖아? 전쟁배상금도 적이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주는 거지 단순히 전쟁에 일시적으로 졌다고 주는 게 아니요. 청조정이 국제정세를 잘 몰라 멍청한 거로, 과거에 중국 제국들이 그냥 오랑케한테 돈주고 물러나게 하는 개념이랑 같은 거요. 영국과의 전쟁 때도 그런 사고방식이었고, 중국이 아무리 뒤쳐졌다지만 그런 덩치를 가지고도 개판 친 건 과거 중국역사에서 반복되듯이 내부분열과 지배층의 븅신짓이 큰 거지, 청일전쟁 당시만 해도 일본이 청을 못 이겨요.
                         
촐라롱콘 17-07-09 21:48
   
시모노세키조약 당시 청나라측 강화사절단에도 이미 자국에서 고위관리를 지냈었던
미국인-영국인들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무슨 당시 청나라가 국제정세를 잘
몰라...ㅋㅋㅋ

그리고 배상금 관련해서 시모노세키조약에 명시되었으니 청나라가 준 것이고
포츠머스강화조약에는 명시되지 못했으니까 러시아가 안 준거지....ㅋㅋㅋ

그리고 청일전쟁에서는 배상금 지불의 담보로 일본군이 산동반도의 위해위 등
주요 거점과 요새를 계속 장악하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안주고 배기나....

그나마도 서양열강들이 청일전쟁의 여파가 상해 등 서양제국들이 장악했던
조차지 등으로 번질까 우려해서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서 그쯤에서 전쟁이 끝난 것이지
당시 일본의 기세로는 적어도 북경함락까지는 거칠 것이 없는 기세였는데...

또한 당시 조약 대표로 왔던 이홍장이 어느 미친 일본민간인에게 피습당해
중상을 입는 바람에.. 당시 국제여론이 조약을 체결할 당시의 일본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해서 그나마 청나라의 배상조건이 완화된 결과물이 시모노세키조약인
것입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ㅋㅋㅋ
                    
촐라롱콘 17-07-09 21:40
   
그리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 10만명이 동원되었다니....???

당시 일본군은 한반도 북부까지 진격했다가 추위와 조명연합군의 반격으로
남해안으로 철수한 시기였는데.....???

그 시기까지 누적된 일본군 병력손실이 커서 남해안으로 철수하고 남은
일본군 총병력수가 10만 내외 수준인데....

당시 일본군이 허장성세로 조명연합군의 전의를 상실케할 목적으로 과장되게
떠벌린 병력수를 이 부분에서는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그냥 수용하고 앉아있네...ㅋㅋㅋ

당시 일본군들이 무슨 오크떼라도 되는 줄 아시는지... 그냥 무한정으로 병력들이
쏟아져들 나오네~~~ ㅋㅋㅋ

그리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이 3만이나 죽었다는 건 무슨 근거인지....???
총 8~9일간 벌어진 전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날도 수성군이 갖은 화력을
다 동원하여 퍼부어 하루에 올린 전과가 조선측 기록으로도 1,000여명 수준인데....
실제로는 수 백명 수준이었을 것이고....

8~9일을 전부 비슷한 전과를 올렸다고 가정하더라도 1만이 채 되지 않을 정도인데...
너무 과장이 심하시다...^^

임란이 일어난 후 1년여가 지난 어느날 선조가 이런 탄식을 했다지요...
그동안 보고된 전과대로라면 이 땅의 왜군들 씨가 말라도 예전에 말랐어야 정상인데
어떻게 왜군들이 아직도 이 땅에 차고 넘칠수가 있는지.... 하면서요~~~
                         
상식3 17-07-09 21:48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 거의 총동원 됐으니 10만 맞구요.
조선에서 일본군 사상자를 어떻게 아나요?
당연히 일본 기록이지,
당시 일본군이 한양과 평양을 먹고도 더 진군하지 못한 건 군대가 기능상실(전문용어라 기억이 안 나는데 보통 절반만 죽어도 군사적으로 전멸이라고 함)하고 명군 아니라도 후퇴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건 일제시대 일본군이 작성한 문서로 아는 건데?
전쟁에서 정확하게 사상자 통계 내는 경우 없어요. 더더군다나 전근대면 더더욱, 당사자가 몇을 동원했다고 남기는 기록이나 몇을 보냈는데 몇이 복귀했다는 걸 가지고 말하는 거지, 전근대에 적에게 병력수 뻥튀기 10쯤 우습게 하는 건 나도 아는데, 진주성전투 기록은 일본쪽 기록으로 알고 있는데? 2차에서 결국 전멸했는데, 보고할 사람도 없는 조선이 왜군 사상자 수를 어떻게 아나요?
                         
상식3 17-07-09 21:59
   
조약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거야 껍대기로 하는 거지...
말같잖은 소리는...
그리고 청일, 러일전쟁은 일본이 당시 일본민들 극한 까지 짜네서 겨우 이긴건데, 무슨 강제할 여력이 있다고 개리소린지?
                         
촐라롱콘 17-07-09 22:07
   
뭐 서로간에 개소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니.... 그냥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까

시간낭비 그만하고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
     
페닐 17-07-12 13:24
   
그시대에 훈련 안된 군대를 전진하게 만드려면 보통의 정훈교육으로 안되니 나온 고육지책 같은데.
군대서 정훈교육도 뻘소리 헛소리 과장과 왜곡을 일삼아 가며 한곳만 보게 하는 개사기술인게
그 부적과 다름 없음
오히려 현대전에 마약 나눠준 왜구들이 더 야만적이지..

그걸 이해못하는걸 보니 지능이 좀 모자른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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