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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0 08:49
[기타] 동학 농민 운동 잡설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361  

북한에서 평가하는것과 달리 동학 농민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동학의 기치는 '충효'였다.

부패한 관리를 척결하고 나라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동학 봉기는 2차례 있었는데,

첫번째 봉기는 성공했으며,

조선이라는 나라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할수있다.

1차 봉기후 관리들은 동학 세력과 협력관계를 맺고 다시 들어와서 통치할수 있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처우는 좋아졌다고 할수있다.

봉기의 목표대로 더 좋은세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봉기는 동학군이 이용당해 정치세력화된 봉기이다.

일본이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고 활개치게 된것이, 청일전쟁 이후이다.

2차 봉기 이전의 일본세력은,

조선의 입장에서 근대화 파트너로서 일본, 러시아, 청, 미국 등 여러 나라중에서 저울질했던 하나의 세력에 불과했다.

2차 봉기는 흥선 대원군이 동학에 서찰을 보내 봉기를 부추겼다.


흥선대원군은 이전에도 권력을 되찾기 위해,

조선 정부의 구식군과 신식군의 차별을 이용해 부추겨 반란을 일으켜 구식군을 이끌고 왕궁에 처들어왔던 인물이다.

고종황제의 부친 이긴 하지만 그는 '군'으로 왕자의 신분으로 '상왕'이 아니다.

고종이 친정을 하기 시작한 이후에 권력을 되찾겠다는건 반역이다.

2차 봉기는 1차 봉기와는 다르게 불순한 의도에 이용당했으며,

조선 정부의 적극적 토벌로 동학은 사실상 해산된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이후에도 권력을 잡기위해 일본과도 접촉했으며,

명성황후가 일본자객에게 시해 당했을때 많은이들이 그 흑막으로 흥선대원군을 지목했다.

구식군의 반란당시 궁궐로 들어와 명성황후를 죽이려고 했던게 흥선대원군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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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07-10 11:03
   
어느 정도 알려진, 가설이라기보다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지요.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동학군을 부추겼다는 단초적 기능만을 부각시키면 미완의 동학혁명의 정체성과 시대적 가치가 절하되는 우에 봉착하게 됩니다.

동학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일제의 이른 바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수만에서 십수만이 학살되는 수십 년의 항일의병으로 이어졌고 한반도 내의 의병이 와해(뉴라이트 교과서에서는 이를 '소탕'이라고 표현했죠)된 이후에는 만주와 연해주, 중국으로 이어져 일제강점기 하 독립투쟁의 근본이 됩니다

동학혁명ㅡ삼일만세운동ㅡ대한민국 임시정부

에 이르는 맥이 있는 것입니다
빠가살이 17-07-10 11:16
   
박정희와 박근혜가 동학을 싫어합니다.
꼬꼬동아리 17-07-10 13:06
   
고종이 정봉준을 만났더라면  역사가 달라졌다
라는 이야기도 있죠
     
mymiky 17-07-10 14:29
   
그런 이야기는 첨 듣는데요?

근데, 고종은 봉건시대 왕권사상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라.
전봉준을 만나도 딱히 다른게 있었을까? 싶습니다-.-

걍. 역도일뿐..
          
꼬꼬동아리 17-07-10 15:48
   
일본인이 쓴 책인데 제목이 생각안나네요
너무 오래되어서
칼리S 17-07-10 13:55
   
흥선대원군이 동학을 부추겼다고 해도(이것도 가정), 이건 국내문제인데, 청군을 끌여들인 건 바로 민씨일족 아님? 명성황후가 드라마에서 미화되서 그렇지 나라 말아먹은 쌍뇬임. 청군을 끌여들여서 왜놈의 개입 빌미를 제공하고 결국 청일전쟁으로 우리 국토가 유린됨.

명성황후가 쪽바리에 죽어서 미화될 뿐 실상은 자신과 그 일족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라면 청, 러시아, 일본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붙어먹은 쓰레기.
     
mymiky 17-07-10 14:36
   
흔히 알려진 통설에 따르면,,
민씨 일족이 청군을 끌어들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접선을 해서 들어왔는지?
그 과정에 대한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가설이 분분함.

제 생각엔, 어찌하던간에
결정권자인 고종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왕실이 곧 국가이던 시대다보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겠다고 나온 패착이죠..

사채 땡겨쓴거라 비슷함...
나중엔, 고종은 청나라군 몰아내려고,
미국에 요청해 미군도 들여오려고 했었는데..(실패했지만..)

이 당시, 외교정책을 보면,, 속된말로, 카드 돌려막기-.-
내일을위해 17-07-10 14:44
   
동학운동을 북에서 이용한거 뿐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에선 사회주의에 사자도  모르던 때입니다.
장마철 17-07-10 15:06
   
2차 봉기가 일어난게 일본군이 상륙해서 궁궐을 침탈하면서 부터 아니였나요?
일본군이 들어오게 된 이유는 청나라가 한반도에 상륙했기 때문이고,
청나라가 들어오게된 이유는 민비가 청나라에게 원군을 요청했기 때문이고...

민비가 국고를 탕진했다는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아닙니까.
그래서 흥선대원군이 일본을 이용해 민비를 제거를 했는데,
흥선대원군이 오히려 일본에게 이용당한게 되어버린거구요.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동학군에게 봉기를 일으켜 조선을 되찾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는 사료는 수차례 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는건 느끼지 못했는데...
 제가 알지못하는 부분이 있으려나요
     
mymiky 17-07-10 16:40
   
민비는 솔직히,,
그 당시 왕족들보다 사치를 덜 하지도 않았고, 더 하지도 않았습니다.

민비의 사치라고 해봤자, 병약한 아들때문에 굿에 홀딱 빠진거?

근데,, 왕실 여인들이 무당에 의지한게, 민비만 그런게 아니라..
그런 예는 옜날에도 많았습니다.

조선이 유교국가긴 하지만,
엄연히 불교나 무속신앙도 뒤로는 다 했거든요.

자고로, 왕이나 왕비가 아프거나,  세자가 아프면,
전국에 있는 원찰(願刹)= 기도빨이 잘 듣는다는 절마다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한 일이 비일비지 합니다.

민비 앞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갑작히 민비만 문제가 되는게 아님.

국고를 탕진해 대원군이 민비를 제거하려고 한게 아닙니다.
[민비: 흥선대원군] 싸움으로 보면 안됨.

민비는 고종의 얼굴마담 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치는건, 모양새가 빠지니까..
며느리인 민비를 앞세웠지만..

어디까지나 고종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 민비가 한 일들 중에, 고종이 몰랐던 일도 없죠. 

민비는 당대 왕족 여인들과 별 차이 없어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잘 따르는게 미덕인 시대이고,

고종에게 있어선, 좋은 정치 파트너이자, 내조잘하는 아내였습니다.
          
장마철 17-07-10 16:44
   
.. 그 근거자료좀 요청드릴수 있을까요??
10년간 대원군이 충실하게 쌓아온 재정을 민비의 아들 굿비용, 전국 유람비용, 본인및 아들
사치품 구입및 잡기에 단 1년만에 재정을 바닥내고 그 후 나라의 국고를 국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주범이 되는 바로 민비및 측근, 일가친척이었으니, 나라의 국모가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서 능지처참을 당해야할 여자였지요..


그 측근들이 치부가 얼마나 엄청났나하면, 갑신정변때 민비의 친척인 민영익이 중상을 입어
크게 다친적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의사였던 알렌이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때 사례금으로 민영익이 얼마나 지불했는지 아십니까?


무려 50만냥 입니다..50만냥이 지금 가치로 얼마냐고요?
당시 쌀20kg가격이 1냥이었는데 지금 5만원정도라고 친다면, 당시 50만냥이면
당시 50억원을 줬다는 얘기입니다..
외과수술 한번과 치료 좀 해줬다고 현재 금액 기준 50억원이라니,,감이 오시나요?


그리고 역시 친척인 민형식이란 놈은 큰 벼슬도 한적이 없는데 개인이 착복한 돈만 70만냥,,,
당시 국가세입의 7분의 1이었습니다.. 1년 국가세입이 480만냥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병원책임자이자 조선견문록이란 책을 쓴 언더우드란
미국여성에게 민비란 여자가 결혼축의금으로 준 돈이 무려 100만냥입니다...알겠습니까?
민비및 그 일가가 착복한 재물이 얼마나 되었겠는지 짐작하시겠죠?


본인과 일가, 측근들이 저런식으로 재물을 마구잡이로 착복하였으니,
나라는 만신창이처럼 되어가고 심지어 신식군대인 별기군에 비해서
차별대우를 받던 구식군대 군인들을 봉급마저 선혜청에서 13개월이나 지급하지않습니다..


기껏 한달치 준다고 불렀는데, 그것마저도 절반은 모래를 섞어서 지급했습니다,,
당시 선혜청 최고책임자인 당상관 민겸호가 민비의 친척오빠였고, 민겸호의 수하가
급료지급 책임자인데 그 수하마저 주인을 믿고 엄청나게 착복했으니 그런겁니다..


봉급도 13개월이나 안주다가 기껏 준게 이런 썩은 쌀을 지급한것에 대한것에 대해 군인들이
분노하고 항의하러 갔을때, 그 민겸호의 수하인 담당자가 대놓고 무시하자,
성난 군인들이 그를 때려죽였고, 그때 민겸호는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자기 수하를
처벌한게 아니라 부당하게 피해입은 군인 주동자들을 잡아다가 처벌할 정도로
권력층, 즉 여흥민씨들은 썩어있었습니다..


결국 분노한 군인들이 민겸호의 집을 습격해서 그를 처형하니, 그의 집에는 금은 보화를
비롯한 각종 오색 재화가 많은 군인들이 가져가도 없어지지 않을만큼 쌓여있었을 정도였으니
착복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만합니다.
주인도 , 그 아랫것들도 그저 착복, 부패, 그러니 나라가 안 망할까요?

님이 말하는 대로 민비가 사치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근거자료를 통해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일본인들처럼 상상으로 역사를 지어내는 뇌피셜에 의한것인가요??
               
mymiky 17-07-10 17:03
   
문제는,,
그 당시 왕족들은 하나같이 경제 개념이 없었습니다.

왕실이 곧 국가이던 시대이고,
나라재정이 곧 자기 재산입니다.

네,, 무개념한건 맞아요-.-
 
지금보면 골때리죠.
민씨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 외척들이 뽕을 뽑아온게 계속 됩니다.

안동 김씨네는, 저 정도 안 해먹었을까요?
거기도 많이 해쳐드셨죠.. 어쩌면, 민씨보다 더 했는데,
지금와선 기록이 없으니,  안 들킨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수십년 걸쳐 누적되어온 왕조의 모순이 고종대에 빵! 터진거죠.
                    
장마철 17-07-10 17:21
   
민비를 쉴드치기위해 다른 왕과 왕비들까지 동급으로 몰아가시는군요. 비교할게 없어 안동김씨까지..ㅋㅋㅋ 말이 통하지 않는 분인것 같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mymiky 17-07-10 17:31
   
앞에는 멀쩡했는데,
갑작히 민비란 여자가 튀어나와 조선이 망한게 아닙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목이 잘렸으나,
엄밀히보면, 프랑스는 그의 고조부인
루이 14세때 이미 쇠락하고 있었죠.

명나라도 만력제때 이미 망했는데,,
겨우겨우 호흡기 달고 연명하다 숭명제때 끝장났으며,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쫒겨났으나,
청나라가 망한건 건륭제 시기입니다.

고종과 순종이 조선이란 간판을 마지막으로 내렸지만,,
그 이전부터 쇠락해 오던 왕조입니다.

조선의 멸망이 어디 민비 한 사람 때문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죠.

민비를 쉴드 치는게 아니라,,
민비 한 사람에게 왕조 멸망의 모든 원인을 가져다 되는게
좀 웃겨서요..

보통, 나라 망하게 하는 요인중에,
악녀나 요녀가 왕을 홀려서(?)란 구실을 많이 가져다 되는데..
그런 레파토리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이란 환자에,,
잠시 호흡기를 달아준 사람일순 있겠죠.

그러나, 흥선대원군 역시 왕조 멸망 당사자 중에 한 사람임을
부정할순 없습니다.

뭐,, 고종이나 대원군이나 명성황후나,,
본인 각자는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을꺼라고 봅니다만..

결국에는,, 막장극 한번 거하게 찍다가 빛이 바랬죠..
                         
장마철 17-07-10 17:35
   
민비 한사람에게 조선왕조 멸망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 당시 왕족들보다 사치를 덜 하지도 않았고, 더 하지도 않았습니다. '라는 님의 언급에 대한 반박이죠. 그 사치가 조선 왕조 종지부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관심병자 17-07-10 15:29
   
흔히 알고있는 구한말의 명성황후(민비) vs 흥선대원군 대립은,
사실은 고종 vs 흥선대원군의 대립이라고 봐야합니다.

고종은 개화파를 중용하고 조선의 근대화에 노력 했습니다.
외국인 교관을 초빙해 신식군대를 육성하고,
전신국, 우편, 전기 관련 사업을 추진했고,
외교적으로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체결했고,
미국, 영국등과도 조약을 맺으며
여러 강대국들을 서로 견제시켜 조선의 독립을 지키려 했습니다.
단발령을 시행해 상투를 자르고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 단발령은 처음에는 외세의 강요에 의한것이라는 소문때문에 백성들이 반발 하였으나,
고종의 본의인것을 알고는 모두 따랐습니다.

이런 조선의 근대화 노력을 다 날려버린게 흥선대원군의 권력욕심 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친부 이지만,
고종은 정통성있는 황제(왕)이고 대원군은 호칭에서 알수있듯이 왕자출신 왕족이고 고종의 신하 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때 병력을 이끌고 왕궁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청나라 군대가 들어올 빌미를 주지 않았을 테고,
또 청나라 군대를 핑계로 일본군대가 들어올일도 없었을겁니다.

흥선대원군이 다른 조선시대 왕족들처럼 고종을 도왔다면,
임오군란을 이용해 앞정서 궁궐로 처들어오지 않고 무마시켰다면,
아니면 그후 청나라에 잡혀갔을때 정신차리고 권력욕을 버리고,
민란을 부추겨 권력을 잡을 생각을 버렸다면,
청나라나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 주둔 시킬 명분이 생길수 없습니다.
위에 적었듯이 형식적일지도 모르지만, 조선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조선을 무력으로 친다는건 이들 나라의 전쟁명분이 되는일입니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 명분은 중요합니다.
이런 상호간의 조약들 때문에 작은분쟁이 모든 열강들이 참가한 큰전쟁으로 번진게 세계 1차대전 입니다.
흥선대원군이 나라안에서 분탕치지만 않았으면,
일제치하를 거치고 남북이 분단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장마철 17-07-10 15:45
   
대원군이 분탕을 치기전에 민씨일족들의 횡포와 비리가 더 심각한 문제였죠.
당시 민비는 굿판벌이는데 국고를 탕진을 하고있었습니다.
지금의 박근혜와 같은 정신상태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걸 바로잡으려다가 실패한거구요.
한국의 식민지화는 필연적이였습니다.
 이미 국력이 쇠한 상태였거든요.

그리고 임오군란은 엄연히 민씨일가가 군인들의 봉급을 횡령하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민씨일족이 일삼은 매관매직때문에 국정기강을 해이하게 만들고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고종의 근대화시도도 사실 그렇게 큰 파급력이 없었습니다.
애초에 외부세계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도입하는 바람에 대중적으로 보급되는데는 큰 무리가 있었죠. 대한제국 해군 창설당시 일본 상선을 사와서 대포달아 놓고 군함이라고 한것만 봐도 당시 고종은 당시 서양문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습니다.
그런만큼 효과도 부진했죠.

대한제국이 세워지고 군대도 총기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되더라도 탄약의 규격화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태여서 마구잡이로 도입한 무기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상태에서 다른나라에게 먹히지 않는게 불가능하죠.
다들 늑대처럼 약소국을 집어삼키는 식민지 시대에 말이죠.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 백성들이 고종에게 올바른 국정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자 모두 역적이라며 때려잡고 구금한 인물이 바로 고종입니다. 지금 갑작스럽게 적으려니 자세히는 말씀 못드리지만 고종은 러시아의 차르에 버금가는 전제군주제를 꿈꾼 군주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적이고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 아니였어요.

대한제국 헌법만 봐도 지금 헌법의 기본이 되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비롯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군주를 중심으로한 국정 운영에 대한 내용이 있죠. 이것만 봐도 고종이 꿈꾼 나라가 어떤것인지 알수 있습니다.
          
mymiky 17-07-10 16:56
   
외척정치는 민씨일족이 발호하기 전부터
계속 지속된 조선의 병폐 입니다.

적어도, 순조말기부터 지속된 사회모순이 점점 커져서,
고종때에 부풀어 올라 터진 것일뿐.

고종이 여러개혁을 단행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청나라 잡아먹은 서태후도 때에 따라선 개혁파들을 밀어주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랬다긴 보다는,,
일단, 서양의 힘이 쎈건 팩트니까,
어느정도 양보하는 모양새를 치할 필요가 있었고,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기도 하니까,
때때로는 진보적인 정책도 정치적으로 밀어줘야 할 때가 생기면 밀어주기도 했죠.

앞에서도 썼지만, 고종은 봉건시대 왕권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받아온 전통적인 교육도 그러한 것들이며,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어린시절 왕이 되어,
섭정인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치여가면서, 쭉- 힘겨루기를 해오며 느낀바

절대, 자기 권력을 남한테 뺏기지 않겠다는(그 자가 아비라 할지라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심어졌을 겁니다.

고종은 전제군주제를 꿈꾸었던 왕 맞음.
(비록 시대가 안 따라주고, 자기 능력도 안 따라준게 문제지만 -.-;;)

고종의 본인성격 자체는,
교양있고, 온화했던 사람이고, 정이 많았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렇게 말하거든요.

다만, 그것과 별개로

자기 고집은 있는 편이고,
자기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라인을 넘어오는 것을
딱 싫어하는.. 그런 면이 있었죠.

겉으론 유해보이는 사람이나,
내강외유형인 스타일이였습니다.
          
관심병자 17-07-10 19:04
   
흥선대원군이 집권했던 시기 마련했던 국고라는게,
자세히 알면 아주 터무니 없는 짓으로 마련한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강제로 수탈하고, 거기에 더해 돈을 찍어내서 국고를 확충한겁니다.
돈을 마구 찍어내면 돈의 가치가 급락하고(인플레이션) 경제가 망가집니다.
현재의 극빈국들도 자국 화폐를 마구 찍어내지는 않는게 이유가 있습니다.
대원군이 궁전을 복구해서 위엄을 세운다며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고 그 자금을 마련하려고 조선의 경제를 망가뜨렸습니다.

무기체계.
무기의 규격화를 시도할만큼 조선이 여유있게 발전되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국가중에서도 무기체계를 통일하지 못한 나라가 많습니다.
현재 최강의 전투기는 F-22입니다.
하지만 한국군은 F-16, F-15K 외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퇴역한 F-5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게 한국군의 군사무기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그런게 아닙니다.
F-22를 사고 싶어도 팔지않고,
판다고 해도 돈이 비싸서 못삽니다.
조선이 상선을 사서 개조해 군함으로 사용한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만민공동회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만민공동회로 러시아 세력을 몰아냈지만,
러시아 세력이 물러간 과정으로 보면...
고종이 만민공동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러시아측에 나가라고 했기때문에 그냥 나갔습니다.
만민공동회측과 후대가 미화한 주장대로 러시아가 조선을 식민침탈을 하려 했으면,
고종이 나가라고 한다고 나가지 안았을겁니다.
러시아가 파견한 10여명의 러시아 군관이 조선군을 서양식으로 훈련시키고 있었고,
러시아인 재정고문이 조선정부에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만민공동회 주장은 그저 쇄국정책의 연장이었습니다.

만민공동회의 주장을 고종이 받아들여
경부철도 건설이 무산되고,
러시아가 조선땅에 세운 은행이 철수하고
외국 자본에 의한 광산개발이 취소되고,
러시아 군사고문, 재정 고문이 해고되었습니다.
이 만민공동회의 요구로 조선은 성장에 타격을 입었고,
이익을 본건 일본밖에 없습니다.
샤를마뉴 17-07-10 18:54
   
가끔 이렇게 특정 주제가 뜨거워지면 역사 프로그램 보는 것보다

댓글 논쟁 보는 게 더 개꿀잼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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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4 [기타] 흑룡강을 국경으로 그린 조선의 고지도 (2) 관심병자 11-26 1426
19863 [기타] 우리가 알고있던 고려영토는 가짜 관심병자 11-26 1148
19862 [한국사] [FACT] 역사학자 임용한, 침착맨 "전쟁사에 대한 오해… 아비바스 11-26 759
19861 [세계사] [FACT] SBS - 과학박사 궤도가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 아비바스 11-26 679
19860 [세계사] [FACT] 문화평론가 이동진, 영화 오펜하이머 다루다. 아비바스 11-26 617
19859 [한국사] [FACT] 캘리포니아 석사 썬킴, 정형돈 - 해병대는 왜 귀… 아비바스 11-26 628
19858 [한국사] [FACT] 역사학자 김재원, 정형돈 - 한국사 희대 매국노,… 아비바스 11-26 599
19857 [한국사] [FACT]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한국사 훑어보기 아비바스 11-26 514
19856 [한국사] 번조선의 반역자 5명이 받았던 봉지封地는 어디인가 (1) 하늘하늘섬 11-25 452
19855 [한국사] 새로운 광개토대왕비 탁본, 프랑스서 발견 Korisent 11-25 622
19854 [기타] [고증甲]프로 불편러들 때문에 사라졌던 고구려모드 … (1) 아비바스 11-25 538
19853 [기타] 일본, 중국, 한국의 고조선에 관한 역사기록들 검토 관심병자 11-24 538
19852 [기타] 식민사학자들의 임나일본부의 허구 (1) 관심병자 11-24 476
19851 [기타] 거란족, 거란 8부의 기원 관심병자 11-24 529
19850 [한국사] [FACT] 우리나라 사극에서 병력 고증 불가능한 이유 (1) 아비바스 11-24 492
19849 [기타] [FACT] 우리나라 사람이 병력 수에 둔감한 이유 아비바스 11-24 382
19848 [세계사] [FACT] 인류 최악의 선동꾼 "요제프 괴벨스" / 거짓말도… 아비바스 11-24 352
19847 [세계사] [FACT] 파멸을 위한 교육 : 2차 세계 대전 시절. 디즈니… 아비바스 11-24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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