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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2 12:38
[한국사] 식민사관과 만선사관 그리고 나당전쟁과 중일역사학계의 시각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530  


출처: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이상훈 저


식민사관과 만선사관

 

일제의 식민사관

 

사관史觀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다.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논리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이제 강점기에는 식민지를 통제하기 위해 사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타율성론,정체성론,당파성론 등이 등장했다. ‘식민지 조선은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을 받아왔고, 사회 변동 속에서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었으며,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파벌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만을 탐했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논리다. 이를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 한다.

식민사관 속에는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이 있다. 조선의 역사는 만주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만주와 조선은 하나의 역사 단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선사관에 따르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만주사에 속하고, 백제,신라의 역사는 조선사에 속한다. 얼핏 보면 한반도의 역사에 만주의 역사까지 포함시키는, 그럴듯한 사관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선사관의 목적은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로 인식하기 위함이 아니다. 만주를 중국의 역사에서 분리하여 만주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일제의 노림수다. 조선의 역사도 만주사에 종속되므로 조선사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흔히 한국, 중국, 일본을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라 한다. 대륙에는 중국이 있고 해양에는 일본이 있으며 그 사이에 한반도가 위치한다. 중국대륙은 대륙으로서 완성된 곳이고, 일본열도는 해양으로서 완성된 곳이다.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대륙의 중국과 해양의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강하고 튼튼한 독립국을 만들 수 없다. 한국은 스스로 존재하기 힘들었고, 남의 힘을 빌려 살아야 했다. 항상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큰 나라를 섬기며 국가를 유지해왔다. 한국사는 중국세력의 남진과 일본세력의 북진속에서 부수적으로 존재한 역사다. 이러한 논리가 바로 식민사관의 본질이다.

 

일제의 만선사학자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1854-1922) 메이지시대에 조선사연구를 개척한 인물이다. ④《조선사(1892) 조선근세사(1901), 조선통사(1921)등의 저서를 통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뼈대를 만들었다. 하야시 다이스케가 조선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면, 시라도리 구라키치는 이를 확대, 재생산한 인물이다. 시라도리 구라키치白鳥庫吉(1865-1942)1886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가쿠슈인대학과 도쿄제국대학에서 학생들르 지도했다. 일본과 조선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시라도리 구라키치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이어받은 인물은 쓰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1891년 도쿄전문학교현 와세다대학부를 졸업하고, 시라도리 구라키치의 지도를 받았다. 1908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에서 만주와 조선의 역사,지리를 연구했다. 만철은 순수하게 철로를 놓는 회사가 아니라,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설립한 싱크탱크였다. 만철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시라도리 구라키치가 주도했다. 결국 1941년 만철의 만주 및 조선 역사, 지리 연구 부서는 도쿄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쓰다 소키치는 와세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1878-1952)는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1904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조선사 연구에 주력했다. 물론 만철의 만주, 조선의 역사 지리 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케우치 히로시의 연구는 만선사연구(5, 1951-1979)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이외에 만선사를 강조한 인물로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1875-1940)가 있다. 이나바 이와키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중국에서 유학했으며, 1909년부터 만철에서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연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현재 일본의 한국사 연구 기반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만선사 연구에 적극적이었던 도쿄대학, 가큐수인대학, 와세대대학 등을 중심으로 한국사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물론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내에서도 만선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일본에서는 신라사학회新羅史學會가 형성되어 한국학계와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식민사관 속의 나당전쟁

 

신라를 바라보는 일본과 중국학계의 시선은 비슷하다. 특히 신라와 당나라가 직접 무력충돌을 벌인 나당전쟁에 대한 인식은 일치한다. 근대 이후 나당전쟁은 대표적인 만선사학자인 쓰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에 의해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

쓰다 소키치는 옛 백제와 고구려 지역은 당 본토에서 거리가 멀어 교통이 불편했다. 그곳의 유민들은 당에 복종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허점을 이용해 신라가 병탄倂呑했다라고 보았다 병탄은 남의 재물이나 영토를 함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신라의 백제 고구려 지역 장악을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서술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삼국사기에 매소성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신라가 당을 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케우치 히로시는 당이 차지하고 있던 옛 백제 지역을 신라가 침략했기 때문에 당이 신라를 정벌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벌은 죄가 있는 무리를 군사를 동원해 공격한다는 뜻이다. 신라가 욕심을 부려 당으로부터 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670년 설오유 부대가 요동을 공격한 것을 두고 “2만 명의 병력이 멀리 압록강을 대동강으로 바꾸ᄋᅠᆻ다. 역사서에 압록강이라고 기록된 것을 임의로 바꿔 신라의 역할을 축소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는 방기放棄되었다고 했다. 나당전쟁의 결과로 당이 물러난 것이 아니라 당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한반도가 방치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논리는 중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학자 천인커陳寅恪당대정치사술논고唐代政治史述論稿(1922)에서 다음과 언급했다. “토번의 발호로 인해 당의 서북 지역이 위급해지자 동북 지역을 경영할 여력이 없었다. 이로 인해 당은 동북지역에 대해 소극적인 정책을 취할 수박에 없었고, 결국 한반도를 방기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케우치 히로시의 한반도 방기론에 동조하면서 토번을 언급했다. 이와 같은 시각은 일본과 중국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로 자리매김했고, 서구학게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왕퉁링王桐齡동양사東洋史(1922)에서 한나라와 당나라의 정벌을 강조했다. 한 무제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설치했고, 당 고종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중국 세력이 남진하여 한반도 북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았다. 이와 더불어 일본세력이 북진하여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으로 인식했다. 한마디로 한반도 북부는 중국, 남부는 일본의 영향 하에 있었따는 애기다. 중국과 일본이 함께 한반도로 진출하는 구도로 파악한 것이다. 왕퉁링에 의해 근대 중국의 한국사 인식체계가 수립되었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똑같은 맥락이다. 황예페이黃炎培조선朝鮮(1922)에서 식민사관을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중국 중심의 중화사관과 식민사관은 서로 충돌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상승작용하면서 결합되었다. 논리에 따라 중국세력의 남하와 일본세력의 북진은 서로 차용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이다. 왕퉁링은 식민사관을 이용하여 한국사를 인식하는 구도를 정착시켰고, 황옌페이는 이를 보급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를 지향하던 일본이 식민사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중국에는 왜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을까?

 

중국학자와 일본

 

천인커陳寅恪(1890-1969)1890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태어났다. 13살이 되던 1902년에 형 천헝커陳衡恪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 도쿄의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1905년까지 일본어와 기초 지식을 배웠다. 고분학원에서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 등을 가르쳤다. 1905년 귀국하여 상하이의 푸단공학(현 푸단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 유학하면서 대학자로 성장했다. 귀국한 천인커는 칭화학교(현 칭화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왕퉁링王桐齡(1878-1953)1878년 중국 허베이성 런추에서 태어났다 왕퉁린은 일찍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모두 일본에서 보냈다. 1907년에 도쿄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에는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귀국한 왕퉁링은 베이징고등사범학교(베이징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황옌페이黃炎培(1878-1965)1878년 짱쑤성 촨사에서 태어났다. 황옌페이는 천인커나 왕퉁링처럼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가지는 않았다. 황옌페이는 20대에 청나라 말기 반청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쑨원이 주도하는 중국동맹회에 참가했다. 중국동맹회는 1905년 쑨원이 일본 도쿄에서 조직한 비밀결사 모임이었다. 이후 황옌페이는 교육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표적인 교육학자로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천인커, 왕퉁린, 황옌페이는 고향도 학맥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천인커의 성장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낸 점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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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왕 17-07-12 12:44
   
왕퉁링은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으므로, 일본식 역사관을 가지게 된 것은 당년하다. 왕퉁링의 스승은 《조선사》를 쓴 하야시 다이스케였다. 황옌페이는 일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에 관한 역사서를 참조하고 천인커나 왕퉁링을 비롯한 일본 유학파들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나당전쟁의 이해

나당전쟁 이해에서 토번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신라의 승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전쟁 차제에 대한 관심을 외면하고, 이ㅚ부적 요인만ㅇ르 찾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식민사관에서는 한반도가 중국대륙을 이길 수 없다. 열등한 신리가 최강대국 당을 이길 수는 없다. 아니, 이겨서는 안 된다.
일본과 중국학계는 나당전쟁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당이 신라 원정을 그만두게 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결국 그 이유로 토번의 성장을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의 서쪽에서 토번이 성장했기 때문에 당은 병력을 한반도에서 철수시켰을 뿐이다. 나당전쟁은 신라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당이 한반도를 방기했기 때문에 끝날 수 있었다. 이것이 중일학계의 논리다. 여기에서 신라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신라는 당의 심기를 건드려 정벌을 당했고. 토번 때문에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신라는 압록강을 건너 당을 선제공격했고, 8년간 당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국가를 유지했다. 당은 20만 명을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했지만, 결국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강력한 고구려는 멸망시켰지만, 약해빠진 신라는 굴복시키지 못한 것이다. 나당전쟁 직후 당은 대대적인 사면 조치를 취하고, 나당전쟁과 연관된 동부 지역에 전례 없는 대규모 위문활동을 했다. 정치계에서는 군부세력이 실권을 잃고, 반군부세력인 이경현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나당전쟁에 투입된 당의 가장 고위인사는 유인궤였다. 유인궤는 재상이면서 감수국사監修國史였다. 역사서를 감수하는 역할이었다. 중국 역사서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일은 자세하게 실려 있지만,나당전쟁에서 패했다는 기록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당전쟁에 관한 중국의 기억은 희미해져갔다.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은 기록이 자세하기로 유명하다. 봄,여름,가을,겨울 매 계절마다 꼭 한 번은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편수 원칙이다. 하지만 675년 9월부터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구당서》와 《신당서》도 동북지방에서 혜성이 등장했다는 애기밖에 없다. 이 시기는 바로 나당전쟁의 분수령이 된 매소성전투가 발생한 때다. 물론 신라가 승리한 전투다. 미국학자 존 재미슨John Jamie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삼국사기》가 기본적으로 중국 역사서를 많이 인용하지만 나당전쟁 기간만은 중국 기록보다 더 자세하다.” 중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굳이 강조하거나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떻나 연구도 진행된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신라가 당을 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현재 중일학계의 나당전쟁에 대한 인식은 한국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부 반영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틀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학계의 경우도 중일학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논의가 시도되고 있다. 앞으로 한중일학계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해나간다면 나당전쟁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인식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이와 앞서 일반인들의 나당전쟁에 대한 관심이 가장 필요한 때다 나당전쟁에 대한 인식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도 맞닷아 있기 때문이다.


추가로 글을 씁니다 가생이 글쓰기는 왜 이렇게 끝까지 글을 쓸 수 없죠?
     
밥밥c 17-07-12 16:04
   
딱히 더 길게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의 주류사학이 일제의 식민사관 그대로 이기에 시중의 주류사학책 보면 됩니다.

다른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만주사관과 식민사관, 주류사학을 구별해야할 의미도 없구여.
          
밥밥c 17-07-12 16:18
   
그리고 일제의 만선사관은 단순히 한반도 한사군설,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임나일본부설 입니다.

딱히 만주는 아니죠.

위의 언급한 사람들은 최소한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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