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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2 19:38
[한국사] 고구려의 역사서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글쓴이 : 샤를마뉴
조회 : 2,286  

역사가 700년이나 되는 나라인데요.

당나라가 고구려 멸망시킨 후 모조리 다 태워버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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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17-07-12 19:54
   
솔직히궁금하네요 역사서가 안남있다는게 이상합니다. 일제강점기 등등을거치면서 역사서들 잃거나 많이강탈 당했지만 그긴역사동안 역사서를 엄청 써내고 복사본도 있을텐데.. 전왠지 은폐되서 들어나지 않은역사서들이 괭장히 많을것같네요..
Marauder 17-07-12 20:12
   
신라때 당나라때 거의 소실되지 않았나요.
Marauder 17-07-12 20:14
   
그리고 보통 역사서는 자기대역사를 짓기보다는 후대 왕조에서 전대 역사서를 짓기 마련이라... 발해는 망하고 신라가관심없어서 고려가 지은게 가장 크죠. 고려사도 조선때 신당서도 송나라때 편찬했죠.
     
도배시러 17-07-12 20:56
   
그러구보니 신라는 어떤 의도에서 백제, 고구려사를 개무시 했을까요 ?
결혼동맹도 맺고 그러더니만... 게다가 단군조선 문제는 씹어버리고...
꼬마러브 17-07-12 20:24
   
사실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구려에서 직접 편잔한 자국 역사서인 <유기>와 <신집>
백제의 역사서인 <서기>
신라의 역사서인 <국사>

모두 현재 전해오고 있지 않습니다.

뭐..일본이 어딘가에 숨겨두었을지도..? ㅎ..
설설설설설 17-07-12 20:37
   
설인귀가 고구려의 궁성을 불 태울때 차곡차곡 정리되어있고 수 많은 책이 간직되어 있는 서고를
몇일 동안 불태웠다고 하지요. (제일 아쉬운 부분)

고구려의 역사뿐만 아니라 부여등 북방국가의 역사서들도 존재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백제는 일본서기에 보면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이 인용된 흔적이 보입니다.
백제 멸망 후 백제의 역사책들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일본이 백제의 삼서를 인용해서 일본서기를 엮은것으로 보입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할때도 상고시대의 사서가 부족해서 불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상고시대의 사서가 부족한 부분에는 기본적으로 전쟁밖에 생각할수 없습니다.

수 많은 사서를 간직해둔 서고가 방화로 인해 불타지 않는 이상 이 정도로 부족할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거란과의 전쟁에서 한번 제대로 불탄것 같습니다.
레스토랑스 17-07-12 20:39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고구려 역사 대부분이 중국기록을 바탕으로 만든거라는데
     
설설설설설 17-07-12 20:48
   
흔히 우리가 생각하고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의 역사책은 <유기> <신집> 입니다.

유기는 고구려의 건축초부터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해온 사서였습니다.
그리고 훗날 국가적인 사업되어서 이 유기100권을 5권으로 압축시킵니다.

그게 바로 신집5권입니다.
당연히 지금 현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김부식은 1145년에 국가사업으로 당대 고려최고의 학자들이 모여서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게되면
본기 초중기 부분까지는 고구려 자체 전승기록이 상당히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주몽이 아들 유리를 찾는 부분이라던가
왕의 유랑생활과 부여와의 전투기록 등등

수 많은 이야기가 동화처럼 서술되어 보는 사람으로서도 흥미를 유발시키는 기록이 많습니다.
이런 부분은 고구려 자체의 전승기록에 의거한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땐 고구려의 신집 일부분이 이 당시까지만해도 몇권 존재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후미에 갈수록 중국기록에 의존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고구려 자체 전승기록이 부실해집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건국 초중기 까지는 고구려 자체 전승기록이 남아 있어서 김부식 역시 그 부분을 인용해서
집필했던것 처럼 보이고
후미에는 기록이 부족하니 김부식이 중국사서를 많이 참고해서 기록한것 같습니다.
하시바 17-07-12 21:24
   
설인귀가아니라 이세적 ㄱㅅㄲ가 그런겁니다.

 오랑캐 역사가 어찌 우리보다도 이리 잘 정리되있단 말인가?
다른 이민족이 보고 우리에게 대들까 두렵구나... 하고 불질렀답니다.
하시바 17-07-12 21:25
   
그리고 700년이 아니라 900년 가까이되는 나라예요
karin123 17-07-12 23:22
   
출처는 기억 안나고 어디서 본 건데, 이적이 평양성 함락했을 때, 고구려 역사서들을 보고 소국이 역사를 이리 잘 정리했다며 후대의 전해지는게 두렵다고 불태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고려사초략이라고 해서 고구려시기 사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햄돌 17-07-12 23:34
   
몇일내내 불태워 없애버렸다는데요
TheCosm.. 17-07-13 00:37
   
예전에 타 사이트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고대 국가의 특성상 문헌 기록들이 넓게 산재되어 보급되기보다는, 몇몇 장소에 주로 밀집하여 보관하다보니 전란, 화재, 인위적인 말소 등으로 허무하게 전소되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의 고구려도 그러하고, 백제의 기록물도... 그리고 삼국 이후의 신라, 발해만 하더라도 그 기록물의 보존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을 고려하면... 당대의 시대적인 여건들이 문헌의 장기적 보존에는 매우 좋지 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려도 멸망하기까지 수없이 환란을 겪는 통에 문헌을 그대로 보존하기란 쉽지도 않았으니...
이리듐 17-07-13 01:03
   
전대왕조의 역사는 후대왕조가 편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크죠.

신라가 삼국통일을 자처했다면 마땅히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서를 편찬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중국처럼 전왕조의 역사를 후대왕조가 편찬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신라가 멸망한 것은 고려초기 때의 일이니 사실 삼국사기라도 최소한 고려초기 때 편찬되어야 했으나 1145년이 되어서야 편찬됩니다. 무려 200년이 지난 뒤죠. 이 기나긴 기간 동안 또 기록의 멸실을 가져왔죠.

발해사의 경우도 발해의 왕자 대광현이 고려에 귀순했을 때 편찬했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했죠.
     
샤를마뉴 17-07-13 02:09
   
중국은 전 왕조의 역사를 후대 왕조가 편찬하는 전통이 있었지만

고대의 우리 국가들은 그러한 전통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왜 없었을까.. ㅠㅠ 있었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도배시러 17-07-13 03:16
   
다시말해 통일신라가 아니라 신라불통인거죠.
통일신라 였다면 피정복국가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역사를 정리하는게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자신 17-07-13 02:27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수도 평양이 함락당했을때 수많은고구려서적들이 불에 타 없어지거나 당나라군에 의해 약탈됐을 확률이 높죠 물론 신라군도 해겠지만
ㅓㅏ 17-07-13 06:48
   
삼한 삼국의 역사서는 지금도 열도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일부를 일제시대때 남당 박창화라는 분이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필사해 왔고, 10여년 전에 국사편찬위에서 pdf파일로 공개한 적이 있지요.
구글에서 '화랑세기'나 '高句麗史略' '高句麗史抄' '芻牟鏡' '乙弗大王傳'등으로 검색하면 그 원문과 번역문들을 볼 수 있을겁니다.(오역투성이긴 하지만)
이 문서들을 위서나 소설로 치부하는 건, 읽어보지도 않고, 원문 독해도 안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죠.
삼국사기에 기록된 봉상왕의 이름 '歃矢婁'를 남당의 해당 사료에서는 모두 '矢婁'로 적고 있는데 을불대왕전에 보면 '揷矢婁'의 유래가 나옵니다.

“......그 때에 경도(京都)에도 역시 큰 눈(大雪)이 내렸는데 도성사람들이 모두 눈사람(雪人)을 만들어서 “을불태자(乙弗太子)”라 말하며, 혹은 수레에 싣고 거리를 행진하니 시민(市人)들이 다투어 절을 하면서 “우리 천자(吾天子)”라고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그를 체포하려한즉 뿔뿔이 흩어져 간곳을 모르고, 다만 수백개의 큰 눈사람(大雪人)을 궁안(宮中)에 잡아다 놓았다.
왕이 노하여 그것을 불사르도록 명했다.
역부(役夫) 수백명으로 하여금 각기 큰 횃불(大炬)을 들게하고 “을불은 마땅히 이 눈처럼 사라져라.”하고 빌게 했다. 그 중에 몇 사람이 크게 외쳤다.
“을불이 마땅하지 않은가? 을불이 마땅히 왕이다! 연태자(椽太子)가 마땅히 이 눈처럼 사라져라.”
그러자 무리(衆)들이 모두 일제히 따라 외쳤다.
왕이 노하여 그 선창(先呼)한 자를 체포토록 명하자 무리들 모두가 횃불을 든 채 뿔뿔이 달아나므로 화연(火烟)이 궁안에 가득 차서 궁인(宮人)들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갑자스런 와중(忽閒)에 잘못하여 궁중에 실화(失火)하니 불길의 기세가 매우 급하였으나 불을 끄는 자가 없었다. 왕은 크게 두려워하여 그 체포를 중지시켰다.
그 눈사람들을 보니 혹은 ‘椽太子’ ‘顔太子’라 써 있고, 혹은 ‘揷矢婁’라 써 놓았는데 팔을 자르거나 눈을 뚫고, 혹은 머리를 끊고 가슴을 파고 코를 깎거나 입을 지졌으며 또한 ‘主上可殺(주상을 죽일 것이다)’라고도 써놓았다..........(을불대왕전 중에서)”

위에서 ‘揷矢婁’는 ‘矢婁에게 화살을 꽂(揷)아라.’ 즉 ‘주상을 죽여라’의 뜻을 矢婁라는 이름 앞에 ‘揷’자 하나를 붙여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죠. 촌철살인입니다.
아마 이 揷矢婁가 유명해지다보니 역사에서 본명 矢婁 대신 아예 ‘揷矢婁’라는 이름이 전한 것이고, 이것이 또 와전된 것이 삼국사기의 ‘歃矢婁’라 할 수 있겠지요.

3월, 왜주(倭主)가 그 아들 맥수(麥穗)를 보내어 딸을 후궁(後宮)에 납(納)하고 (표를 올려) 가로되 “신(臣) 인덕(仁德)은 멀리 바다 위(海上)에 있어 해(日)와 더불어 구존(俱存)하나, 아직 황화(皇化)에 젖지 못하여 길이 마음(長心)이 결연(缺然)하였습니다. 얼핏 풍문에 듣건대(仄聞) 황제폐하(皇帝陛下)의 덕(德)은 삼황(三皇)을 겸(兼)하고, 공(功)은 오제(五帝)를 넘으니(過), 5부 8맥(五部八貊)이 자래첩복(子來妾伏)하여 남(南)으로는 삼한(三韓)을 삼키고(呑) 서(西)로는 두 진(二晉)나라를 제압하였습니다(壓). 신(臣)에게 딸을 바칠 것을 명하사, 길이 신(臣)의 나라(邦)를 주재(主)하며 세세(世世)토록 친척이 되라(作親)하시니 신(臣)은 두렵고도 기뻐서 몸 둘 바(所措)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규전(嬀典)을 따라 감히 두 딸(二女)을 바치오나 아름다운 구의(媾儀)가 못되어, 실(實)로 부끄러운 도습(島習)이오니, 버리지만 않으면 다행(幸)이겠습니다.”하였다. 상(上)이 누가 지었는가 묻자 사신이 답하기를 “맥군(貊君) 문장(文藏)이 지었습니다.”하였다. 대개 우리 사람이 들어가 그 스승(師)이 되었던 것이다. 상(上)이 연도(淵鞱)에게 말하기를 “왜(倭)가 우리에게 배운 것이 불과 50년인데 그 진보가 이러한데 우리나라는 문(文)을 닦은지 3백년이나 오히려 이보다 못하지 않은가?”하자 연도(淵鞱)가 말하기를 “문(文)에 주력(主)하면 무(武)가 흐트러지고 무(武)에 주력(主)하면 문(文)이 흐트러지니 바로 양난(兩難)입니다. 신(臣)이 유주(幽州)와 기주(冀州)에 가서 한인(漢人)들의 문자를 해득하는 자를 보면 백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금수(禽獸)의 행동엔 차이가 없으니 백년대계는 초초(草草)하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하였다. 三月, 倭主遣其子麥穗送女納後宮, 曰 “臣仁德, 遠在海上 與日俱存 未霑皇化 長心缺然 仄聞 皇帝陛下 德兼三皇 功過五帝 五部八貊 子来妾伏 南呑三韓 西壓二晋 命臣納女 永主臣邦 世世作親 臣惧且喜 不知所措 謹從嬀典 敢献二女 不腆媾儀 實愧島習 不棄是幸” 上, 問其誰作. 使曰“貊君 文藏作也.” 盖吾人之入為其師者也.” 上謂淵鞱, 曰 “倭學于我不過五十年, 其進與此. 我國修文三百年反不如是耶.” 鞱曰 “主文則武觧, 主武則文觧. 以是兩難. 臣徃幽 冀, 漢人之觧字者百無一焉. 禽獣之行無有差焉. 百年大計, 不可草草為也.” 《고구려사초- 영락대제기 12년 기묘 -》

↑ 위와 같은 내용들이 남당의 창작이라면 참 대단한 천재지요. 아마 톨스토이 백명이 와도 못 당할 겁니다. 총 30종이 넘는 남당 문서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그것이 인간 대가리로 창작할 수 있는 문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왜 이런 사료들이 이 땅에서 완벽히 말살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넘사벽이 아닌 넘륜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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