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군대 해산 명령에 비분 강개 하고 있던 한국군 시위대 제1 연대 제1대대장 참령 박승환(朴昇煥)의 권총xx은 그동안 참고 있던 한국군들의 불똥을 건드렸다.
웅성 거리고 있던 군인들은 박승환 대대장의 xx 총소리에 깜짝 놀라 제일 먼저 제1중대장 남상덕이 대대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마룻 바닥은 박승환이 쓸어져 선혈이 낭자 하였다.
남상덕은 위생병을 불러 조치 토록하고 밖으로 나왔다.
"장병 여러분, 우리 대대장께서 몇시간 후면 우리 대한 제국군대가 해산 되는것에 대한 항의로 목숨을 스스로 끊으셨소.... 침략자 왜놈들을 한놈도 죽이지 못하고 옷을 벗게 되신데 대하여 이를 죽음 으로 대신 하신것이오 장병 여러분 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남상덕의 연설을 듣고 있던 장병들은 울분이 끓어 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 싸우자. 싸워서 대대장의 원수를 갚고 쓰러저 가는 나라를 지키자"
장병들은 제1 중대장 지휘로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 들고 영밖 서소문 쪽 일본군 진영으로 돌진하였다.
한편 남대문 안에 있던 시위 보병 제2 연대 제1대대에서도 교관의 지시로 훈련원으로 출발 하려다가 이웃 병영인 제1연대 제1대대 장병들이 서소문쪽으로 돌진 하는것을 보고 훈련원 가던것을 포기하고 이에 호응하였다.
이들은 남대문 근처에서 일본군과 마주치었다.
때아닌 한국군과 일본군간에 시가전으로 서울 장안은 총소리가 콩 볶듯이 들리고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일본군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일본군 보병 제51 연대 제3 대대 전병력과 기관총 3문을 투입하고 제2 대대, 응원병을 확보하는 동시 남대문과 서소문 위병까지 합세하여 대한 제국군과 혈전이 벌어지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군은 초조해 질수 밖에 없었다.
탄약이 바닥 나기 시작 한것이었다.
"탄약이 없다, 탄약이....."
누군가가 소리치었다.
"총알이 떨어 지었다 큰일났다"
드디어 한국군은 총소리가 멎고 말았다.
싸움에 가담 하였던 장병들은 이제 일본군의 눈을 피하여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한일 양국군의 사상자는 일본군 장교 야진진무등 사병 100 여명이 사망하였고 한국군은 중대장인 정위(대위) 오의선, 권중협, 참위(소위) 장세정, 견습 참위(준위) 이긍주등 많은 장교들과 50 여명의 사병들이 전사하였다.
일본군은 종로거리와 덕수궁 주변, 등에는 기관총을 여러대를 설치 해놓고 만일에 대비하고 있어서 거리는 살벌 하였다.
군무대신 이병무는 각 지방 진위대도 해산 시키기 위해 자기 명의로 각 지역에 있는 진위대장들에게 서울로 집합 할것을 전문으로 보내었고, 일본군사령관도 그들 대로 별도로 일본 헌병과 수비대들에게 전문을 보내 한국군이 갖고 있는 무기를 모두 수거 하라고 특명을 하달 하였다.
한편 서울의 시위대가 일본군과 항전을 벌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각 지역 진위대장들은 서울에 집합하라는 이병무의 명령에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뒤이어 일본군이 들여 닥치며 무기를 수거하려 하였다.
함경도 북청 진위대에 들여닥친 일본군에게 북청 진위대장 우원무가 항의하였다.
"누가 우리 한국군의 무기를 수거 하라 하였는가?"
일본군 장교 하나가 오만하게 우원무를 노려보았다.
"대한제국 군부 대신의 명령이오, 순순히 무기를 내 놓으시오"
우원무도 지지않았다.
"그 증거를 내놓으시오"
일본군 장교는 갖고온 전문을 내보였다.
"대한제국 각 진위대에 명한다. 지금 나라의 형편상 군대를 더 유지 할수 없게 되었다. 이 전문을 소지한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모두 일본군 에게 내 주도록 하고 각 진위 대장은 모든 군복과 장비를 일본군에게 주도록하라.
그동안 각진위대 노고를 치하하는 뜻에서 은사급을 줄것이니 각 병졸들 에게 규정대로 내 준후 모두 해산하여 귀가 토록하라.
군부대신 이병무
헌병사령관 장곡천호도"
이 전문을 받아 든 우원무는 눈에 핏발이섰다.
"이놈들 어디서 이따위 가짜 전문을 가지고 와서 우리 군대를 무장해제 시키려하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전문을 찢어 버렸다.
이 모습에 일본군 장교가 칼을 빼어 우원무를 내려치자 그자리에서 쓸어지고 말았다.
진위 대장이 쓰러지는것을 보고있던 병사들이 가만 있지를 않았다.
"일본놈들을 모두 처죽여라"
누군가가 소리치자 일본군과 그자리에서 백병전이 벌어지었다.
총소리와 화약냄새가 병영을 뒤흔들었다.
일본군이 일단 물러갔다.
그러나 신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1개대대가 급히 들여닥쳐 쌍방간에 교전이 벌어지었다.
그러나 우수한 기관포를 가진 일본군은 삽시간에 병영을 점령하고 말았다.
한국군은 인근 산속으로 숨어들지 않을수 없었다.
각지의 진위대는 서울 시위대와 북청 진위대 소식을 듣고 모두 들고일어났다.
원주 진위대 특무 정교(원사) 민긍호가 대대장 대리 정위(대위) 김덕제를 설득하여 전대원과 총기와 탄약을 미리 나누어주고 원주에 있는 일본 경무 분견소를 습격하였다.
이 소식을 보고 받고 뒤이어 지원 나온 일본군 충주 수비대까지 원주 진위대는 두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일본군을 격퇴 시킨 전과까지 올렸다.
대대장 대리 김덕제는 평창 강릉을 거쳐 간성 통천까지 일본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습격하여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민긍호도 해산된 병력을 이끌고 제천, 충주, 장호원, 안성의 죽산까지 항일전을 펴 새로운 형태의 의병으로 변해있었다.
이제 그들은 대한제국 군대가 아니었다.
시위대도 아니고 진위대도 아닌 의병으로 싸우고 있는것이었다.
이러한 의병들은 전국 각처에서 일본군과 대 격전이 끊이지 않았다.
강화도의 유명규, 허위, 안동의 이강년 등이 대표적 의병장 들이었다.
모두 진위대 출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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