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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6 15:50
[일본] 전국시대 일본 노예매매
 글쓴이 : 꼬꼬동아리
조회 : 1,311  

http://m.egloos.zum.com/enjoyjap/v/1798426

일본에서는 가르치지 않는역사죠 흘러 넘칠정도로 많은
자료가 있음에도요


* 역사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는, 그러나 분명 그 실체가 존재했던 감춰진 역사의 한 부분.


오니즈카 히데아키(鬼塚英昭)의 저서「천황의 로사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의 저서,「근세 일본국민사」의 초판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참가해 많은 기록을 남긴, 요즘으로 치면 종군기자에 해당하는
  이의 견문록 내용 일부가 실려있다.

> 천주교를 믿는 지방영주들이 전쟁에 필요한 화약을 수급하기 위하여 자기 영지의 여자
> 들을 서양선박에 짐승처럼 묶어 가득 팔아치웠는데, 그 여자들은 울며불며 소리치고
> 선박의 서양인부들은 그들을 함부러 다루니 그 참담함이 지옥에 비견할 지경이다.

그 이외의 유럽에 관한 기록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가는 곳마다 일본 여성이 많이 눈에 띈다. 유럽 전역을 통틀면 무려 50만이라고 한다.
> 백인들에 의해 일본인 여성들이 놀이감으로 전락한 모습을 좌시할 수 없다. 서양의
> 대포등을 수입하기 위해 자국민을 저 먼 땅에 팔아치우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왜 같은
> 인간을 노예로 삼는가. 포르투갈 교회의 선교사들이 초석(화약의 원료)와 맞바꾸어
> 우리의 젊은 처자들을 인도나 아프리카에 팔아치우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국민들이 포르투갈인(*역주 : 일본의 경우 포르투갈을 통해 서양
문물을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전국시대의 대포/조총이나 빵 등도 모두 이 포르투갈을 통해
전래된 것입니다)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나가자, 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합니다.

히데요시는, 일본에 파견된 예수회의 준관할지역장 코엘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한다.

>「포르투갈인이 다수의 일본인을 노예로 구입, 그들의 나라로 연행하고 있지만,
>  이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다. 따라서 귀관은 인도를 비롯해 다양한 나라로 팔려간
 >  일본인들을 다시 일본으로 반환하라」

2002년 7월 9일자 호코쿠 신문의 역사관련 기사「신부 추방령」도 당시의「서양 선교사
들에 의한 일본인 여성 인신매매」에 대해 다루고 있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양 선교사 추방령 제 10조의「일본인을 남만에 노예로 매도
> 하는(노예매매) 행위를 일체 금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선교사들이 큐수 지방
> 현지의 일본인들을 외국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히데
> 요시의 서양 선교사 추방령에는 그러한 이유도 담겨있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챤 탄압의 진상

히데요시의 크리스찬 탄압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만(*역주 :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일본 역시 전국시대 당시 전래된 천주교
에 대해 히데요시가 대대적으로 탄압을 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 정권을 잡게되는 도쿠
가와 이에야스 역시 초창기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 탄압을 하게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크리스찬들이 노예로서 해외에 팔아치운 일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히데요시가 왜 크리스찬 탄압에 나서게 되었는가는 학생
들이 알지 못하지요.

사극에서도 다카야마 우콘 등의 크리스찬 영주들이 나오지만, 그런 크리스찬 영주들이
화약을 얻기 위해 화약 한 통 당 일본인 여성 50명을 팔아치운 일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이유가 되어 당시 카톨릭에 대한 일본국민의 이미지가 나빠졌고,
이후로는 제 아무리 선교사를 보내도 단 1%도 신자들이 증가하지 않게 됩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히데요시의 크리스트교 탄압을 단순한 이교도 배척으로만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의 노부나가, 히데요시 모두 크리스찬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적이
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식민지화 하려는 선교사들의 야심을 간파하고 점차 경계하던
도중, 신사/불각을 파괴하는 행동이나 일본인을 노예로 팔아치우는 행위를 알게 된 후
크게 노여워하고는 그들을 탄압하게 된 것입니다.


☆칼럼:중세 노예무역 시대의 일본인 노예
Column : Japanese Slaves in the Age of the Middle Passage

덴쇼(연호) 15년(1587년) 6월 18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선교사 추방령을 발표한다. 그
법령에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한 일본인 노예매매를 엄하게 금지한 규정이 있다. 일본이
쇄국체제를 확립하게 된 그 이유 중에는, 노예무역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본국이나 남미 아르헨티나에까지 일본인 노예가 팔려나갔고,
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이러한 내용이 사절단의 회화록에 남아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지역을 재패한
직후, 하카다에서 예수회의 리더였던 가스팔 코엘료에 대하여,

「왜 포르투갈인은 이렇게나 열심히 크리스트교의 포교에 힘을 쓰는 것이며, 일본인을 사서
  노예로 팔아치우는 것인가」하고 힐문한 바 있다.

서양인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이나 새로운 지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매혹된 그였지만,
그러한 무역이 일본인들을 대량으로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엄
청난 분노를 하게 된 것이었다.

큐슈지역에서의 히데요시의 행적을 기록한 책(*역주 : 조선시대, 왕들의 행적을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마냥, 히데요시 역시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인
큐슈어동좌기(九州御動座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백성들의 종교를 자신들의 사이비 종교로 끌어들임은 물론, 수백명
  의 일본인들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들여 자신들의 배에 태워 싣고가서 해외에 팔아치
  운다. 그들은 일본인 노예들의 손발에 철제 쇠사슬을 묶은 후 가득 몰아넣고 산 채로 가
  죽을 벗겨내는 등 지옥의 고통보다 더한 축생도를 펼치고 있다」

위의 기술로 미뤄볼 때, 당시의 일본인 노예 무역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히데요시는 그러한 상황이 일본을 혼란케하고, 농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고 진심
으로 우려했다고.

그러나 히데요시는 명나라 정복을 기치로 내걸고 조선을 침략하는데, 그 당시 일부 지방
영주들은 많은 조선인들을 일본으로 끌고가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아치워 큰 이
익을 본 이도 있다 고 한다.

노예무역이 얼마나 이익이 큰 상업활동이었는지는 위와 같은 에피소드로도 충분히 추측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의 노예제와 포르투갈의 노예제

당시의 일본에는 서양처럼 공인된 노예제도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예로
삼을 만한 대상이 극단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사람을 사고 파는 경우는 일
반적으로「(먹고 살기 힘든)부모가 아이를 판다」경우가 압도적입니다.

당시의 일본은 신분제도상 양민(백성)과 천민이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인신매매는 금지
되고 있었습니다만 천민은 암암리에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었고, 기근이나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는 인신매매가 묵인되곤 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는 아예「인신매매 상인」이 횡행합니다. 도시의 젊은이들을 납치하여
지방 변경에 팔아치우는 것이었습니다. 변경은 아직 개발이 덜 되었던만큼 노동력이 필
요했고, 그러한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키는 매매였던 것입니다. 조금 천박한 이야기입니
다만 미청년이나 미소녀도 비싸게 팔리곤 했지요.

당시의 정부는 물론 금지령을 냅니다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인신
매매가 번창하게 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 이후입니다.

게다가 1543년에 포르투갈의 배가 타네가시마에 표착한 이후부터 일본은 노예무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만과의 교류 역시 일본인 노예무역을 부추기게 되는데, 그러나 일
본인도, 포르투갈인도 그 서로의 노예매매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구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노예 시장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무려 통상의 1/3 가격
으로 매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인 노예상인이「사라, 사라」하고 서구인
들에게 강매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 때 노예무역의 평균 시가는 오늘날의 값으로 따
지면 아프리카인 노예가 20만엔 정도로 거래되었습니다만, 일본인은 겨우 6만엔이었습
니다. 서양 노예상인 입장에서는「이렇게 싸다니!」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노예에 대한 서구인과 일본인의 개념차이에서 발생한 착각이었습니다.

서구인에게 있어서 노예란 물건이나 가축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있어선
일종의 채무를 떠안은, 같은 인간입니다. 즉 채무만 완전히 값으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판매가격의 책정이「채무+이익」이기 때문에, 서양에서 거래되는 노예
보다 가격이 싼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양에 대해 너그러웠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서구 배척」의 태도로
바뀐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해외에서 가축처럼 혹독하게 부림을 당하며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의 존재를 알게된 것입니다.

서구인에 있어서는 인신매매는「소유권의 이전」입니다. 일본인에 있어서 인신매매는
현대에 비유하자면「파견 사원」에게 가깝습니다.

「채무를 완제할 때까지가 노예이며, 평생 노예는 있을 수 없다」

라는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서민 출신이었던 히데요시는 자국민들이 그러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격노, 포르투갈 정부에까지 항의를 하기에 이릅니다. 1587년
이 문제는 외교문제가 되어, 포르투갈 정부는 고심한 끝에 다음과 같은 변명을 합니다.

 「너희가 거래에 응했기에 우리측 상인들이 거래를 한 것 뿐이고, 이미 거래가 끝난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포르투갈 정부는 대응책으로서 해외에 존재하는 일본인 노예의 매매를 금지했습니다만
이미 스페인은 물론 아르헨티나까지 일본인 노예들이 팔려간 후였기에 이미 뒤늦은 감
마저 있는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서양과의 노예무역은 거기서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큰 시장이었고, 임진
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온 다수의 조선인들은 그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을 통해
일본인들을 대신해 팔려나갔습니다.


* 외국의 시각에서 본 당시의 일본 노예무역


전국시대 말기의 일본은 꽤 이상한 상황의 나라라서, 법적으로 노예라는 신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만 빈번히 인신매매가 이뤄졌고, 전문적인 노예상인까지 존재했기에 외국에서
보자면 이미「노예무역 국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포르투갈측의 증언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 일본인은 노예들을 귀여워한다. 양자로 삼거나 아내, 며느리로 삼거나 하기도 한다. 
> 심지어 노예신분에서 해방해 주는 일조차 흔한 이야기.
>
> 반면에 우리가 노예를 구입하지 않으면「노예를 죽인다」라는 노예상인도 있었다.
> 비합법적 수단으로 손에 넣어 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케이스는 드물지만.

이후 히데요시는 인신매매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노예 매매를 중지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농사에 전념,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1598년 히데요시는 병사해버려,
이 인신매매 금지법은 또 다시 사문화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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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 17-07-16 15:57
 
일본인 노예로 잡아가는거 보고 빡쳐서
풍신수길이가 외국 배들 쫒아내버렸죠.
노부나가는 애초에 그런거 오히려 장려했을듯
꼬꼬동아리 17-07-16 16:01
 
일본은 여성을 서양에 팔아버리는 노예매매만 쏙 빼버린
교과서로 가르치죠 일제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을  성노예로
전락시켜버리는 쓰레기 같은 일본국민성이  이해가 가네요
임진왜란 때 전쟁에 졌으면 끔찍 하네요 우리나라 여성을
팔아먹었겠죠 일본은 항상 침략 잠재국가입니다 그 쓰레기 국민성을
안버리는 이상
     
ultrakiki 17-07-16 16:09
 
아니요 왜란때도 있었던 일입니다.

조선인들 끌고가서 노예로 팔아먹었습니다.

그 수가 10만 명 이상입니다.
          
꼬꼬동아리 17-07-16 16:14
 
예 제말은  나라가 일본에 넘어갔으면 더 엄청난 인구가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겠냐는 뜻이였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국산아몬드 17-07-16 16:07
 
일본은 그때도 총은 전래받았지만 화약은 못 만들었던 모양이네요
ultrakiki 17-07-16 16:09
 
왜란때 왜놈들이 조선인들 노예로 매매했죠.

진짜 쓰레기같은 민족입니다. 이거 알려야되요.
레스토랑스 17-07-16 16:16
 
자국 여자가 50만명 넘게 팔려나가면 남자들은 누구랑 결혼함?
     
꼬끼리코 17-07-16 16:42
 
저 당시에 일본 성비는 남자가 상당히 적었을거임. 계속된 전쟁때문에.
     
상식3 17-07-17 21:39
 
남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여자들이 결혼할 남자가 없는 게 더 문제였을 걸요.
유럽보면 전쟁 많이 할 때, 여자들이 남아돌아서 용병단 따라다니며, 성매매여성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들이 많았죠. 일본에서도 여자들이 먹고살려면 직업성매매여성 많지 않았을까요?

일본도 오랜 내전의 시기를 거쳤고, 전쟁비용 어떻게 장만하나요? 자국민도 외국에 노예로
 파는데, 가혹한 세금이야 당연할테고 당연히 느는 빈민, 그 빈민이 노예로 전락하니 50만이라는 게 어느정도인지 구체적으로 감은 안 잡히지만, 당시 사회상이면 노예로 팔려나갈 입장에 처한 사람이 많았을 환경이었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Marauder 17-07-16 16:57
 
그수는 믿기 힘들지만... 당시 평균수명이 40대정도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10 ~ 20살사이의 인구비율이 현대에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을듯.
     
샤를마뉴 17-07-16 17:01
 
그랬을 겁니다. 마치 요즘 베트남처럼.
탈레스 17-07-16 18:59
 
가라유키상 맞나요???
     
꼬꼬동아리 17-07-16 20:13
 
가라유키상에 대해서는 다른 가생이  유저분이 올리셨네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될듯하네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2970
정욱 17-07-16 20:24
 
차이나돌 Chinadoll 이란말 괜히 나온말 아니죠. 당시 유럽상인들 부터 유행했던 여성닙뻥노예가 차이나돌입니다.
상식3 17-07-17 21:36
 
예전 임란 관련 역사 다큐에서 한국 사학자가 당시 서양의 노예가격이 폭락했었다는 말을 하며,
그게 조선인을 노예로 많이 팔았기 때문일거라던데, 그 이전 부터 있었던 일이네요.

50만이나 여성이 노예로 팔려나갔다면 남자들은 누구랑 결혼하나?
일본이 내전으로 남성인구가 적었다 답하는 댓글들이 보이네요.

당시 유럽 보면 비슷한 시기에 어느 수준이었냐면,
영주나 왕들이 기사도뽕에 취해 전쟁 많이 했죠. 그런데 많은 상비군을 두기에는 돈은 없고 그래서 용병업이 발달했습니다. 당연히 먹고살만하면 용병할 사람이 누가 있나요? 신분이 좀 높다해도 가문의 재산은 장자가 받았고 나머지는 먹고 살일이 없으니 목숨파는 용병이 됩니다. 전쟁이 잦으니 남자 수는 줄고 여성이 경제 활동으로 하루종일 삯바느질을 해봤자. 한끼 식사 겨우 먹을 정도로, 여자들이 생존을 위해 결혼에 목을 맸죠. 성비가 안 맞으니 결혼 못한 여자들이 성매매로 밥먹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종종 조선은 지배층이 무능했고, 많이 수탈했고 피지배층이 힘들게 살았네 어쩠네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인지도 있는 지식인이란 사람들도 티비나와서 그런말 많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불행하게 산냥 아는 사람들 천지죠. 유럽, 일본 비교하면 잘먹고 편안히 산편이었다고 하면 알레르기 일으키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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