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喇特部三旗:三札薩克同駐哈達瑪爾,在歸化城西三百六十里。
오랄특부삼기:삼찰살극동주합달마이,재귀화성서삼백육십리。
漢,五原郡。元魏,懷朔鎮。唐,中西受降城地。遼置雲內州,屬西京道。
한,오원군。원위,회삭진。唐,중서수항성지。요직운내주,속서경도。
金因之。元為大同路。明為瓦喇所據。
금인지。원위대동로。명위와랄소거。
東界茂明安,南界鄂爾多斯左翼前旗,西界鄂爾多斯右翼後旗,北界喀爾喀右翼。
동계무명안,남계악이다사좌익전기,서계악이다사우익후기,북계객이객우익。
▲ 청사고(清史稿) 권 77 - 오랄(烏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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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랄(烏喇)의 특부(特部)는 삼기(三旗)입니다. 세 곳은 찰살극(札薩克 : 몽골족 공왕)의 동주(同駐) - 합달마이(哈達瑪爾)입니다. 그 곳은 귀화성(歸化城 : 歸化城土默特)의 서쪽 360리에 위치합니다.
▶ 한나라(漢) 당시 오원군(五原郡)이요, 원나라(元) 및 위나라(魏) 당시 회삭진(懷朔鎮)입니다. 당나라(唐) 당시 중수항성(中受降城)과 서수항성(西受降城)의 지역입니다. 요나라(遼) 당시 운내주(雲內州)를 두었고, 서경도(西京道)에 속하였습니다. 금나라(金)당시 그 곳을 말마암아 끼쳤습니다. 원나라(元) 당시 대동로(大同路)이었고, 명나라(明) 당시 와랄(瓦喇)이 소거하였습니다.
▶ 오랄(烏喇)의 동쪽 경계에 무명안(茂明安)이 있고, 남쪽 경계에 악이다사(鄂爾多斯 : 오르도스)의 좌익전기(左翼前旗)가 있고, 서쪽 경계에 악이다사(鄂爾多斯 : 오르도스)의 우익후기(右翼後旗)가 있고, 북쪽 경계에 객이객우익(喀爾喀右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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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청나라(淸) 당시의 오랄(烏喇)은 명나라(明) 당시의 와랄(瓦喇)과 동일한데, 심각한 지형적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근세 조선(朝鮮)의 김지남 (金指南)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가 정계비를 세우고자 청나라(淸)에서 보내는 인물은 목극등(穆克登)인데 그 직함은 오랄(烏喇) 총관(總管)입니다.
그 오랄(烏喇)은 현재 한반도(韓半島) 북부에 위치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명백히 현재 내몽고 중부에 흐르는 황하(黃河)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근세 조선(朝鮮)의 서북쪽 경계가 되는 국경지가 바로 황하(黃河) 지대의 음산산맥(陰山山脈)을 기점으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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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랄(烏喇)의 동쪽에 흐르는 강은 곤도륜하(昆都倫河)이라고 불리우는데, 그 강은 서-랄목륜하(西-喇木倫河 : 시마무렌강)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즉 그 강은 흥안령(興安嶺) 주위에 흐르는 강들에 포함되어 있는 지명입니다.
▷ 기괴한 기록에 근세 조선(朝鮮)의 기록을 근거로 더하여 붙여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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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喇忒。秦置九原郡。漢更五原。後魏置懷朔鎭。
오랄특。진치구원군。한경오원。후위치회삭진。
唐景龍二年。張仁愿於河外。築三受降城。此爲中受降城。
당경룡이년。장인원어하외。축삼수항성。차어중수항성。
遼置雲內州。屬西京道。金因之。
요치운내주。속서경도。금인지。
元屬大同路。皇明初廢。爲瓦喇所據。
원속대동로。황명초폐。위와랄소거。
崇禎中。其台吉俄木布土門達爾漢朝滿洲。
숭정중。기태길아목포토문달이한조만주。
▲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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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 조선(朝鮮) 후기에 기록된 내용은 청사고(清史稿)의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 오랄(烏喇), 오랄(吳喇), 와랄(瓦喇)은 서로 같은 이름인 걸 자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내몽고 중부의 황하(黃河) 지대에는 만주(滿洲)와 연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침 윗 기록이 첨부되는 다른 지명들 대부분은 항복하여 만주(滿洲)로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숭정(崇禎 : 명나라 마지막 왕 연호) 가운데 시대입니다. 그 곳은 태길(台吉 : 추장의 호)의 아목포(俄木布)와 토문강(土門江)의 달이한(達爾漢 : 다르한)의 땅입니다. 근세 조선(朝鮮) 당시의 만주(滿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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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사항 : 와랄(瓦喇) 지역의 서쪽과 남쪽에 위치하는 악이다사(鄂爾多斯 : 오르도스)는 현재 섬서성(陝西省) 북변에 위치하는 하투(河套) 지방을 말합니다. 그 곳은 역시 현재 내몽고 중부의 황하(黃河) 지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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