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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0 16:52
[한국사] 원나라 때의 민족 계급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글쓴이 : 샤를마뉴
조회 : 2,656  

원나라 시기에 '몽골인 → 색목인 → 한인 → 남인' 순이었잖아요??? 

색목인이 몽골인 다음가는 지위의 계급 순위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려인들은 거란족이나 여진족, 그리고 금나라의 지배를 받던 

화북의 한족들과 같이 3등급을 받았는데 

왜 3등급을 받게 된 건가요??? 

제가 알기론 몽골은 고려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인식하며 

꽤 괜찮은 나라로 봤던 거로 알고 있고 

실제로 고려와 (중간에 충돌은 많았겠지만) 많은 인적 문화적 교류도 있었잖아요. 

근데 당시 몽골의 고려에 대한 인식에 비해 3등급은 너무 낮은 게 아닌가 해서요.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기까지 수십 년간 저항하며 

바로바로 무릎 꿇지 않고 애를 먹여서 강등된 건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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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07-20 17:24
   
색목인 다음의 지위가 고려인 아닌가요 ? 원나라 고관대작에 고려인이 많을텐데...
     
샤를마뉴 17-07-20 17:31
   
네 색목인 다음이 고련인이었어요.
          
국산아몬드 17-07-21 16:16
   
색목인이 황금씨족에 들어갔던가요? 고려는 몽골황가에 준하는 처우를 받지 않았을까요? 다루가치 고려인 유적도 있다고 하니 지배계층에 꽤 있었을 겁니다. 특히 원종때나 기황후시절 고려인을 지배계층으로 많이 편입시켰을 겁니다
촐라롱콘 17-07-20 17:42
   
몽골(원)제국에서의 색목인들이 대체로 몽골인들 다음 지위로써 준지배층을 구성했던 점은....
그들이 한인 또는 남인들보다 훨씬 이전부터 몽골인들과 교류해왔던 것은 물론이고, 팍스몽골리카의 체제에
가장 먼저 복속하고 협력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몽골제국에서의 색목인들의 구성원들 가운데 우리가 쉽게 떠올리기 쉬운 유럽계 백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옛 몽골고원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구르, 티베트, 중앙아시아일대의 투르크계 유목민들,
그리고 아랍-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인들이 절대다수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색목인들은 상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 이재-회계분야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에
무력에만 능했던 몽골인들의 취약점을 보완하여 제국을 유지시키는 협력자로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이는 몽골제국 이전 시기에도 흥기했던 유목민족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서양과 동양을 오가던
상인집단들과 파트너가 되었던 사례들이 빈번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한인-남인 등의 농경민들보다는
색목인들과 통한 점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샤를마뉴 17-07-20 17:56
   
아…. 이해가 갔습니다;; ㄷㄷ

아무래도 색목인들이 살던 지역이 몽골과 맞닿아 있고

예전부터 교류가 훨씬 많았겠군요.

그리고 몽골 제국이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복속되었겠고요.

설명 감사합니다. 이해가 잘 되네요. ㅎㅎ
          
촐라롱콘 17-07-20 18:26
   
그리고 몽골인-색목인-한인-남인 순으로 이어지는 민족차별정책이
대략적인 도식으로는 어느정도 맞는다고 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예외가 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몽골에 복속된 고려의 경우 충렬왕-충선왕 등 충자 돌림의 왕들은
몽골권력서열에서도 표면적으로는 10위권의(실제로는 수 십위권 이지만
몽골황금씨족출신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물론 충숙왕 이후로 가면 점점 권력서열 측면에서 뒷쪽으로 밀려나기는 하지만..)
대접을 받을 정도로 높은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근거지를 몽골초원의 카라코룸에서 중원 언저리인 대도로 옯기고 부분적인
한화정책까지 시행했던 쿠빌라이시기부터는.. (물론 국가권력기관의 핵심인
중서성, 추밀원, 어사대의 요직은 몽골인-색목인 차지였지만...) 지방 하부권력의
상당부분은 한족 출신 관료와 세가들에게도 파이가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옛 금-남송 지역출신의 한인-남인들이 원제국 인구구성 측면에서 압도적일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몽골인들 입장에서는 잠재적으로 가장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한인-남인들은 극심한 차별과 착취를 당했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훨씬 적었던
색목인들을 이용하여 이이제이의 정책을 펼쳤던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라며 높이 평가한 이는 쿠빌라이인데....
이는 당시 쿠빌라이가 처했던 정치상황을 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몽케칸 사후 쿠빌라이는 막내동생인 이리그부카와 대칸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는데... 정통성 측면에서는 쿠빌라이가 불리한 입장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력한 몽골황금씨족출신의 유력자들은 이리그부카를 지지하던
배경에서...

당시 강화사절로 몽골에 왔던 고려태자(훗날의 원종)가 이리그부카에게 가지않고
쿠빌라이인 자신을 강화회담의 파트너로 선택하고 찾아왔으니......
정통성 측면에서 고립무원의 상황이던 쿠빌라이 입장에서는 적지않은 명분을 고려태자가
제공해줬기 때문에... 이러한 배경에서 고려태자에게 최대한의 립서비스를 한 것입니다.

물론 고려태자(원종)입장에서도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수를 선택한 셈이지요!
훗날 쿠빌라이의 도움으로 오랫동안 고려왕권을 위협했던 무신정권을 무너뜨렸고...
나아가 고려왕실과 국체를 보존할 수 있었으니....
               
고독한늑대 17-07-21 03:57
   
뭔가 착각하나 본데요..
실제 쿠빌라이의 장례식에 참석할수 있는 민족은 몽골인들과 고려인들뿐이었습니다.
또 색목인들의 지위가 높았다가 아니고요..
지위적으로 보면 고려왕족을 황족대우 했기 때문에 고려인의 지위가 더 높았고요..
당시 중국에 대방이라는 지명이 유지되는 지역을 보면 황성 옆에 고려인의 마을이 있을정도로 고려인들이 원나라 지배계층을 형성했습니다.
한자를 알고 기본적인 국가 체계를 이루고 있는 엘리트들을 기용했고요..
남중국의 다루가치 또한 고려인들 했다는것입니다.
만주 심양왕도 고려인이 했고요..
또 쿠빌라이가 립서비스를 했다?? ㅋ
님도 참 어떻게든 까내려보고 싶은가보군요..
                    
촐라롱콘 17-07-21 11:33
   
고려국왕을 비롯하여 국왕과 촌수가 가까운 왕족 일부가 원나라에서
지배층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대다수 고려인들 또한 높은 대우를 받았을 거라고 착각하는 우는 범하지 맙시다!

충렬왕~공민왕 시기까지 원나라 궁중의 무수리로 충원하기 위해서
또는 원나라 장졸들의 처첩으로 삼기 위해서 원나라로 끌려간 수많은 공녀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려에서 내노라하는 가문의 딸들입니다!

예를 들면 충렬왕 시기의 홍규 같은 경우는 무신정권을 종식시킨 1등공신에다가
조선시대로 치면 부원군의 위치와 맞먹을정도로 고려최고위급의 권력층임에도 불구하고
딸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할 정도인데.....

고려에서나 지체높은 가문의 귀한 딸들이지... 원나라로 끌려가면
그곳에서는 그냥 궁중의 이름없는 무수리요, 원나라관리의 첩의 신세밖에 안되는
처지입니다!

원나라 끝무렵에 고려출신 기황후가 원나라황후가 되었다고 해서 몽골간섭기 전기간
동안에 고려출신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는 착각은 하지 마시기를.....
                         
mymiky 17-07-21 12:47
   
당연히, 고려인들 중에서도 가문이 좋고,
재능이나 기술이 있어야 써먹을수 있겠죠.

귀족이 받는 대우와
평민이 받는 대우가 같을순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고려인 뿐만 아니라,
색목인, 소수의 한족들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쓰임이 있어야 대우을 받는 것입니다.

막말로 왜란때 끌려간 도공들도,
당시 일본이 도자기 기술이 낙후하니까 대접받은거지.

일본 자체적으로 도자기 생산 기술이 있었다면,
그들을 대우를 해줬을까요?

어차피, 고려 백성들이야
그냥 고려땅에서 살던대로 살던 사람들이고

원에 갈수 있는 사람들이야 특정부류죠.
고려 왕족이거나,  원에서 출사한 관리나, 상인이거나

비교를 하려면, 이같은 계층에서 비교를 해야죠.

님의 말씀처럼
공녀도 출신에 따라 대접이 차이가 났습니다.

한국도 사극보시면 아시겠지만

잡무를 하는 무수리 같은 궁녀와
왕족들 옆에서 보필하는 지밀궁녀들은
대접이 많이 다릅니다.

출신이 좋으면, 황족를 측근에서 모시는 궁녀로
고려의 친정에도 도움을 줄수 있었습니다.

원나라 관리의 첩 신세라고 하는데,
가난한 선비의 정실 부인보다 세도가의 첩이 낫다고

어차피 연예결혼은 근대에나 등장한거고,
당시 상류층 혼인은 다 정략결혼 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게 아니라
집안에 얼마나 큰 이득이 되는지? 가 더 중요해서 맺는 혼인이죠.

원은 일부다처제이기도 해서,
실제로 고려여자와 결혼하는 원의 관리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집에 고려 아내 맞아 들이고,
고려풍으로 꾸며놓고 살아야
명문가 취급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고

이색이, 원나라 관리들 중에는,
고려가 외가인 사람들도 많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잘 나가는 원의 관리에게 시집간 딸 하나가
열아들 안 부럽던 시대죠.

드라마 기황후에 나온 탈탈승상.

중앙박물관에 있는 경천사지 10층석탑
그거 탈탈 애첩의 고려 장인어른이 시주해서 만든 탑이예요.

그리고, 원말 기황후가 유독 유명해서 그렇지..
아들 아유시리다라의 황후도 고려 안동 권씨였지만..

원초기에도 고려인 황후 있어요.

원 인종의
2황후 김 달마실리, 3황후도 왕 백안홀도 이 분들도 고려인이였습니다.

김씨는 고려귀족 집안이였고,
왕씨는 고려종실로 충선왕의 의붓딸이였죠.
                         
국산아몬드 17-07-21 16:30
   
고려에서나 지체높은 가문의 귀한 딸들이지...원나라로 끌려가면 그곳에서는 그냥 궁중의 이름없는 무수리요, 원나라관리의 첩의 신세밖에 안되는 처지입니다! ?

이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역사를 정상적으로공부했다면 이런말로 역사를 왜곡하지는 못할텐데. 왜 씨도 안먹힐 주장을 하지? 역사를 잘 알면서도 무식한 척 왜곡까지 해서 한국을 욕먹일려고 하네. 전형적인 왜구수법이잖아
상식3 17-07-20 20:42
   
색목인은 외국인이라는 뜻의 범칭이기도 하구요.
몽골이 제국을 이루면서, 행정실무를 할 존재들이 필요했고, 몽골인들의 문명수준이 낮아서(문자도 없었음), 상업이
 발달해 재무에 능하고 큰 국가를 운영할 노하우가 있는 중앙아시아 아랍권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게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정욱 17-07-21 10:48
   
원나라가 인종차별 했군요. 지나족은 노예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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