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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1 17:56
[세계사]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 1453년
 글쓴이 : 옐로우황
조회 : 2,146  

콘스탄티노플의 함락(Fall of Constantinople)은 비잔틴-오스만 전쟁(1265~1453)의 마지막 부분으로 1453년 4월 6일에 전투를 시작하여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써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재해왔던 비잔틴 제국은 종말을 고하게 되고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 및 발칸 반도로의 진출과 지배권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대포와 화약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온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고, 문화적으로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고전학 연구 학자들이 대거 서유럽으로 망명하고 결국 유럽 르네상스의 새로운 연료가 되었다.

비잔틴 제국은 제4차 십자군전쟁에 있었던 1204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심각하게 쇠락했다. 14세기 중반 이후의 비잔틴 제국은 빈사상태에 있었다. 보다 전문적인 행정기구가 있다는 점에서 오스만 투르크나 슬라브족 경쟁자들보다 더 잘 조직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관용이나 외부의 대규모 원조 없이는 거의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난하고 크기도 작았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에 함락되었지만 사실은 이미 50년 전에 투르크의 손에 떨어졌어야 했다. 1390년이 되자 대다수의 비잔틴인들은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비잔티움은 실상 오스만 제국의 비공식적인 속국이었으며 제국의 공인된 일부가 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였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던 억지스러운 주종 관계는 14세기 말에 이르러 점차 와해되기 시작한다. 침착하고 점잖던 무라드 1세(Murad I)의 뒤를 이은 바예지드(Bayezid)는 곧바로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바예지드는 이미 1402년에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난 7년간 델리와 다마스쿠스 같은 도시들을 유린하고 (거의) 모스크바까지 휩쓴 티무르의 엄청난 군대가 소아시아 동쪽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콘스탄티노플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터키 역사 연구의 성과에 근거하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결코 오스만 투르크의 장기적인 포위와 공격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비잔틴 제국 내부의 조화될 수 없었던 반(反)서양적 입장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루가 내부의 분열로 파괴된 것이다. 실제로 서양 라틴교회가 비잔틴의 그리스 동방정교회에 대해 일관되게 취했던 확장과 장악 정책 때문에, 그리스 동방정교회는 설사 터키인들에게 투항할지언정 서양 라틴교회와 동맹을 결성해 공동으로 터키 무슬림에 항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스 동방정교회가 터키인들에게 투항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태의 압박 때문에 성급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을 거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동방정교회 사람들은 서유럽 라틴교회의 통치하에서보다 터키인들의 진보적인 통치하에서 더욱 많은 자주성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1450년 콘스탄티노플 주변 지역과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대부분의 영역만을 가진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1세(Constantine XI)가 이끌고 있었다. 이 도시를 건설한 황제도 같은 이름인 콘스탄티누스였다는게 아이러니하다.
1451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왕좌에 오른 메흐메드 2세(Mehmed II)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결국 비잔틴 제국은 21세의 이 야심찬 청년 술탄에 의해 1453년 5월 29일, 1100여 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8.png

- 1450년경의 동東지중해 지역으로 오스만 제국에 둘러싸인 멸망 직전의 비잔틴 제국


※ 지휘관과 병력
  비잔틴 제국   오스만 투르크
 - 콘스탄티누스 11세(Constantine XI)
 - 루카스 노타라스(Loukas Notaras)
 - 죠반니 지우스티니아니(Giovanni Giustiniani)
 - 약 7,000 - 12,000명, 26척의 배
 - 메흐메드 2세(Mehmed II)
 - 자가노스 파샤(Zaganos Pasha)
 - 술레이만 발토울루(Suleiman Baltoghlu)
 - 80,000 - 150,000명, 90 - 126척의 배

이미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지역 요새인 아나돌루 히사리(Anadolu Hisari)를 소유하고 있던 메흐메드 2세(Mehmed II)는 유럽 해안에 루멜리 히사리(Rumeli Hisari)로 알려진 요새 건설을 시작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효율적으로 장악한 메흐메드는 콘스탄티노플을 흑해와 고립시키고, 흑해 지역의 제노바 식민지로부터 받을 수있는 원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오스만 투르크의 위협에 교황 니콜라오 5세에게 원조를 호소했다. 동방정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의 수세기에 걸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오는 서구유럽에서 도움을 청하기로 동의했지만 도와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서구유럽의 왕들과 제후들은 각자의 문제 때문에 동방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으로 약해져있었고 이베리아 반도의 왕국들은 레콩키스타의 막바지에 있었다. 독일의 선제후들은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고 헝가리와 폴란드는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패배한 상태였다. 비록 몇몇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군대를 보내긴 했지만, 서방의 원조는 오스만 제국의 전력과 견주기엔 너무나 미미한 정도였다.


- 터키 영화 '페티 1453(Fetih 1453)' 예고편의 공성전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453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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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스 17-07-21 19:13
   
저 페티1453 영화가 역사왜곡이 심하다는데
     
TheCosm.. 17-07-21 19:20
   
말씀하신대로 터키의 국수주의 성향과 결합된 영화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스인. 특히, 동로마 제국을 최후까지 지켜려 헌신하였던 콘스탄티누스 11세를 완전한 악역으로 탈바꿈시켰고,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보여준 철저한 약탈행위를 지우고는, 마치 억압된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자 이미지를 덧입혀서... 고증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 만큼 단순히 정치적 오락용 작품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물론, 고증이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많긴 합니다.)
전쟁망치 17-07-21 19:39
   
청동대포 ㅋㅋ
Banff 17-07-22 02:25
   
youtube에서 인기있는 Feith 1453는 원래 터키영화니까.. 서양입장에서는 왜곡이라 하는것이고.. 터키나 서양, 특히 서유럽은 둘다 동로마 침략자로서 서로 왜곡이 심하니, 제3자인 우리가 봤을때엔 누가 왜곡인지는 알수없는것이고요.

그리고 위 원글에서도 나왔지만, 동로마는 사실 로마교황과 베네치아가 주도한 4차 십자군때 1204년에 콘스탄티노플 함락되고 망했었죠. 영국 프랑스 사학자발 역사책에서는 거의 잘 얘기안하는 것인데. 그래서 2001년에 로마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이스탄불가서 동방정교에게 800년동안 입닫고 있던 일에 대해 공식사과를 했었고. 

1204년이후 베네치아등에 의해 라틴제국이 세워졌고, 당시 동로마 멸망을 주도한 베네치아 Doge 엔리코 단돌로는 베네치아가 아니라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에 묻혔다가 지금은 묘비만 남아있죠. 이는 영화 인페르노의 배경이 된 것이고. 이후 1250년대이후에 후백제 후고구려처럼 부흥왕조가 다시 라틴제국을 무너트리고, 동로마를 부활했는데, 이미 동로마의 석학 예술가들은 다 베네치아와 그 서쪽으로 다 넘어간 상태고, 식물인간 국가만 남은 것. 이슬람의 Golden Age가 몽골 훌라구의 침략으로 끝나고 재기가 불가능해졌듯이, 동로마도 1204년이후로 마찬가지 재기불가능 상태가 됩니다. 당시 베네치아인인 마르코폴로 아빠가 라틴제국서 사업을 하다가 제국이 무너질 것을 예상하고 베네치아로 돌아온뒤에 마르코폴로와 함께 원나라 쿠빌라이를 만나러 갑니다.

이 원글이 다른 동로마 함락에 대한 글들보다도 좀 더 중립적으로 잘 쓰여져 있는데, 1204년이후 오스만 점령때까지 동로마와 서유럽과의 관계는 한일관계를 넘는 철천지 원수지간사이인지라, 원글대로 1400년대에는 부흥왕조는 끝까지 버텼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냥 자연스레 오스만에게 넘어갔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을듯 합니다. 메흐메트 2세도 함락후 오스만 수도를 이스탄불로 옮기고 자신이 이제 로마황제라고 얘기한 것에도 이런 배경이 있던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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