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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2 09:35
[기타] 병자호란 포로 관련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4,129  

인조십사년에 발발한 청병의 입관(入冠), 즉 병자호란때에 청병이 대거남한산성을 공위하여 사십오일만에 구화해위한 고사에 관련시켜, 그 당시 청국은 구화조건의 일로서 조선에 대하여, 그 요구가 잇는 즉시로, 대유인(大乳人) 삼천인과 빈마삼천필을, 영고탑에 입송하라는 요구를 하엿음으로, 북변연군에 거주하는 여진유족으로서 이 요구에 응할 계획을 수립한후, 이를 보호하엿고, 현금(現今), 북변연군에 반거하여 일종특수부락을 형성하고잇는, 재가승의 유미(由未)가 여긔서 발족하엿다고 전하는 자가잇다고 하엿다.-동아일보 1935. 12. 03


"신의 외아들 장선징의 처가 병자호란 때에 잡혀갔다가 속환되여 지금은 친정에 있습니다. 예전처럼 부부로서 함께 조상의 제사를 모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인조 16년 신풍부원군 장유


'신이 전에 심양에 갈 때 가족을 속환하기 위해 따라간 양반 가문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만나자 마치 저승에 있는 사람을 만난 듯이 부둥켜안고 통곡하니, 길 가다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돈이 부족해 속환하러 가지못한 부모나 남편들도 차차 가서 속환할 터인데, 만일 이혼해도 된다는 명을 내리면 분명 속환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는 수많은 부녀자를 영원히 다른 나라의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명의 남편은 바란 대로 되겠지만 수많은 집안에서 원망을 품을 것이니 화기를 상하게 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보고 정황을 참작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혼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좌의정 최명길


'청나라 병사들이 돌아갈 때 미모가 매우 빼어난 처녀 하나를 끌고 갔는데, 온갖 방법으로 달래고 협박하였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않다가 사하보에 이르러 굶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청나라 사람들도 감탄해 땅에 묻어주고 떠났습니다. 또 신이 심양의 관사에 있을 때, 처녀 한 사람을 약속한 값을 치르고 속환하기로 돼 있었는데, 청나라 사람이 뒤에 약속을 어기고 값을 더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습니다. 결국 여인의 시체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이 두여인이 제때 속환됐더라면 분명 자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지조를 지켰다 한들 누가 또 알아주겠습니까. 이로 본다면 급박한 전쟁 상황 속에서 몸을 더럽혔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서도 스스로 결백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잡혀간 부녀들이 모두 몸을 더럽혔다고 이렇게 일률적으로 주장해서 안 됩니다.'


전쟁이 끝난뒤 인조는 청나라에 포로 송환을 적극 요청했지만, 포로를 인적 자원으로 인식한 청나라는 속환가를 받아내려 했다. 조선 정부의 송환 노력은 주로 종실, 신료의 가족, 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의 가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빨리 송환하기 위해 몇 배의 웃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결국 속환가가 올라가면서 실제로는 고위 관료층이나 일부 부유층만이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894135/4


정묘년(1627)의 난 때 의주가 함락되자 최효일이 남쪽의 문루에 뛰어 올라가 큰 칼을 휘두르면서 추격해 오는 오랑캐 수십 명을 연달아 베었다. (청 태조의) 둘째 왕자였던 퉁개불이 이를 보고 장하다고 여겨 강홍립으로 하여금 황기(黃旗)로 불러들여 의주의 임시 태수로 삼게 하였다. 병자년(1636)의 난 이후에 (최효일은)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우리나라의 수치를 씻고자 기약하였는데, 일이 박각되어 가족이 몰살당하였다. 숭정 갑신년(1644)에 청나라 사람들이 북경에 들어와서 천하 사람들의 머리를 깍았지만 최효일만은 깍지 않고 있다가 열황제의 빈소 앞에서 죽으니, 중원의 선비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칭송한다. 만일 최효일이 의주의 임시 태수로 죽었더라면 그저 일개 항복한 포로일 뿐이니, 강홍립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최효일은 선조~인조 때의 무관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에 임경업 휘하에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삼전도에서 조정이 청나라에 항복한이후, 복수심을 품고 명나라의 영원으로 건너가 오삼계와 함께 청나라를 습격하려는 모의를 했었지만, 오삼계가 청나라에 항복하여 결국 실패하고 자신은 숭정제의 빈소 앞에서 10일간 통곡하며 단식을 하다가 기력을 다해 죽고 말았다. 조선에서는 최효일에게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려줬으며, 영조와 정조 때에는 그 후손을 찾아 벼슬을 주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http://bangtong36.blog.me/22105684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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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청 나라는 정복지 피지배 인구가 지나치게 많았던 왕조다.

고려와 조선에서 잡아간 포로는 노예로 삼기위한 이유가 아닌것.

상식적으로 원, 청 국내의 기형적인 계층민족간 인구 불균형을 더 악화시킬 하층민 계급은 필요가 없다.

실제 원, 청 내에서 한족 인구를 줄이기 위해 엄청나게 죽였었다.

퉁개불이 최효일을 소속시킨 황기란 청의 군사편제인 팔기군을 말한다.

청이 조선에서 잡아간 포로들은 조선의 국력약화 혹은 만주족의 군사력 증강을 위한 것으로,

청이 이들에게 원한건 천민이 아닌 백성이 되기을 원했다는것이된다.


만주, 몽골 기반 부족들은 우리 고대왕조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이었다.

그건 우리가 (고)조선과 고구려의 정통을 잇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이 학살하고 탄압한 한족과 몽골이 멸망시킨 나라들에 비교하면 이들의 고려와 조선에 대한 태도는 일반적인 타국과 타민족에 대했던 사례와 맞지않는다.

반도사관으로는 우리역사를 설명할수 없는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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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S 17-07-22 11:48
   
님아 헛소리는 일기장에다 쓰세요.

청이 조선인 포로에 환장한 건 돈벌이가 되서입니다. 무슨 백성을 삼을려고 한다는 헛소리를 하는지 원.

정묘호란이 끝나고 포로를 데려간 청의 장수들이 한몫 잡았던터라 병자호란에는 대놓고 포로사냥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래서 병자호란이 끝나고 엄청난 포로가 청으로 끌려간겁니다. 특히나 이놈들이 사대부 가문이 돈이 된다는 걸 알아서 높은 신분의 포로를 특히나 중요시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부녀자 사냥에도 재미들렸고요.

무슨 이런 놈들이 우호적이었다는 헛소리를 하는지 얼척이 없네요.
     
포미 17-07-22 12:02
   
그렇게 세게 말할 건 아니고.....

정묘호란, 병자호란 전에 농업인구를 늘리기 위해 한인, 조선인을 많이 잡아들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기를 약간 헷갈리신 것.....
     
관심병자 17-07-22 12:53
   
1. 조선이란 나라가 패전이후에도 존재할수 있었다.
2. 항전했던 왕조차 바뀌지 않았다.
3. 한족처럼 대규모 학살이 없었다.
4. 대항해 싸웠던 최효일을 팔기군에 넣고 의주 임시 태수라는 고위직을 줬다.
이것은 당시의 청나라의 방식과는 동떨어진 행동입니다.

5천만명을 죽여 인종학살을 한 청나라
http://blog.daum.net/ysmanian/15292125

마찬가지로 몽골 상인과 사신을 살해한 혐의로 세계 역사에서 사라진 호라즘 왕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사신살해, 다루가치 대규모 살해 혐의가 있던 고려를 대한 몽골의 태도역시 유례가 없을정도로 편파적입니다.

몽골제국의 호라즘 왕국 정복
http://blog.naver.com/53traian/220505236081
          
칼리S 17-07-22 15:13
   
1. 애당초 청은 조선을 지배할려고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 다 짧은 기간이었고, 이는 지배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즉 중원 침공 이전에 후방을 다지려는 의도가 명확한 전쟁이었슴. 그러니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개굴욕을 당한겁니다.

2. 조선의 세자를 잡아갔는데, 왕을 왜 바꿉니까? 애당초 조선에 꼭두각시 왕을 세우기 힘드니 세자를 잡아간 거죠.

3. 학살을 왜 합니까 돈인데. 그러니깐 그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포로를 데려간거 아닙니까? 그리고 중국에서의 학살도 초창기에 저항을 강하게 했던 곳에서나 이루어졌습니다. 그것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라고 여겨지는(만주족임에도) 강희제때에 학살이 심하게 이루어졌던 양주지방(양주십일로 유명한)에 세를 면해 주는등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합니다. 즉 한인에 적대적이었던 몽골의 원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는 이후 오삼계가 주도한 삼번의 난 평정에 한인들이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청 정부에서 이들을 토벌하는데 도울 정도였으니깐요.

4. 소설같은 소리 하네요. 정사에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팔기군에 한족들도 상당수 들어가는 등 팔기군은 입관전에는 꽤 개방적인 체제였습니다. 이는 유목민들의 특성이기도 하고요.
               
관심병자 17-07-22 16:31
   
1. 청은 정복활동이 활발했던 왕조입니다.
지금 현재의 중국영토 대부분은 청대에 이룩한 영토입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멀리있는 땅보다 본거지에 가까운 조선이 더 지배하기에 매력적입니다.
후방 안정을 위해 좋은것은 저항했던 왕과 주변세력을 죽이고 우호적인 새로운 정권을 세우거나 직접 지배하는 겁니다.
청과 조선의 군신관계는 당시 조선에겐 굴욕적인 것이지만,
유교적인 관점을 배제하면 단순히 명에서 청으로 갈아탄것 뿐입니다.
만주족의 근간인 여진과 고려의 관계는
금 건국 이전에는 여진이 고려를 상국으로 여겼고,
금 건국후 관계가 역전되어 고려가 송을 멀리하고 금을 따랐으며,
금 멸망후 다시 고려가 상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후금이 들어서면서 누루하치는 조선과의 분쟁을 꺼리며 여전히 조선을 우대해 줬다가,
그 아들 홍타이지때 임진왜란때 의리로 명을 따랐던 조선과 이익이 충돌하며,
조선과 청의 관계가 다시 역전된겁니다.

2. 보통 왕이 장수에게 잡혔을때 인질을 끌고가는것으로 마무리 되진않습니다.
인질로 전쟁을 마무리 짓는건 아직 저항할수 있는 여력이 있고,
공격군의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마무리 짓기위해 인질을 삼고 전쟁을 끝내는 것입니다.
왕이 잡혔는데 왕자를 인질로 잡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왕을 끌고가면 됩니다.

3. 전쟁포로 개념은 중세 유럽에서는 흔했던 개념이지만,
단순 돈이 목적이면 포로를 끌고가는것보다 죽이고 약탈해 가는게 더 편합니다.
청의 피지배 하층민 노동력은 처치곤란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미 지배한 하층민들도 줄이는 마당에 전쟁으로 하층민을 더 충원할 필요가 없었다는거죠.

4. 퉁개불의 황기(黃旗)란 팔기군중 양황기(鑲黃旗)나 정황기(正黃旗)중 하나를 말한것으로 추정할수 있으며, 두 조직다 상삼기에 속하는 조직으로 황제의 친위대나 황제 직속부대를 말하는것입니다.
태수라는 직책은 상당히 높은 직책입니다.
전쟁포로 출신이, 임시로라도 태수라는 직책을 맡았다는것은 조선인이 중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리S 17-07-22 18:54
   
1. 조선이란 나라를 점령하는게 목적이 아니라니깐 헛소리를 하시네. 조선이라는 나라를 쉽게 정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청 군대가 막강한거 같아도 이게 단기전일때나 그런거고, 조선을 완전히 정복하는건 1-2년으로 마무리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청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중원이고요. 청이 강력한 거 같아도 중원을 도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자성의 난이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청은 중원으로 들어가기도 버거웠을 겁니다.

2. 왕을 잡아가면 새로 왕을 세워서 저항합니다. 이건 예전 금나라가 북송을 쳤을때 발생했습니다. 이는 남송으로 이어졌고요. 그리고, 인조는 항복하기는 했지만, 싸우다가 잡힌게 아니라 지 발로 가서 항복했습니다. 이런데, 잡아가봤자 청은 얻을게 없습니다. 인조 잡아가봤자, 조선은 새로운 왕을 옹립하면 그만이니깐요. 오히려 적대감만 키우는 꼴이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잘 보면 청의 전략은 조선의 점령이 아니라 굴복이었습니다. 즉 대륙진출이 목적이었지 조선이 목표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겁니다. 애당초 인조가 덜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도망다니면서 시간을 지체했으면 청은 알아서 물러났을 겁니다.

3. 약탈은 기본적으로 다 하고, 사람을 잡아가서 속환금도 뜯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항하거나 기분이 상하면 살육도 했습니다. 무슨 조선인들 살육 안할 줄 아시나 ㅋㅋㅋ. 그리고, 중국 한족을 가장 살육한 양주십일이 왜 일어났는지 모릅니까? 바로 양주에서 격렬하게 저항해서 청군이 피해를 입었기에, 그런 살육이 벌어졌습니다. 오삼계처럼 고히 청의 앞잡이 노릇을 한 놈들은 다 대우 잘 받았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청군들은 기본적으로 약탈 살인은 기본이었습니다.

4. 님이 말한 거 자체가 정사에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최효일은 팔기에 속하지도 않았을뿐더라, 골수 반청의사입니다. 헛소리 작작 좀 하세요. 그리고 의주에 무슨 임시로 태수를 둡니까? 그런 이야기는 청이나 우리 정사에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차라리 임경업을 그랬다면 모를까요 ㅋㅋㅋ.

청이 한인들을 살육했다고 하지만, 애당초 그들은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대로 한인들 중에서 자신들에게 굴복한 자들은 잘 이용했습니다. 당연히 몽골, 조선인들도 마찬가지고요. 청이 중원을 차지할 수 있는데 1등 공신은 만주족들 이외에 바로 오삼계 같은 한인들이었습니다. 강희제가 오삼계를 토벌할때에도 한족장수들과 한족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요. 무슨 여진이 한족들을 다 죽이기만 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관심병자 17-07-22 21:26
   
남한산성전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5079&cid=49345&categoryId=49345

숙친왕 호격이 죽자 xx한 조선인 포로출신 복진
http://cafe.naver.com/cdzm/198061

1. 청의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는 비슷한 시기의 임진왜란과,
현대의 6.25 한국전쟁을 참고할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도 차량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북한군, 중공군, 국군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청군 선봉대의 한양도착은 6일 걸렸습니다.
임진왜란, 한국전쟁과 병자호란의 차이는 청군은 수도에 있었던 왕과 왕족, 중앙관리와 그 가족들을 모두 잡고 왕과 조선 중앙군을 항복시켰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끝났다는것이고,
상식적으로 청군이 조선에 요구할 행동은 정전협정이 아닌 패전처리 입니다.
당시 조선이 지방호족이 사병을 거느리던 시대가 아니라서 절대적 명분인 조선임금을 잡고있는 청군에 저항할수 없습니다.

2. 중앙집권화된 조선에서 왕이 잡혔는데도 저항할수 있었다면 일제때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기도 까다로웠을겁니다.

3. 속환금을 받고 돌려줬다는것은 바꿔 말하면 속환금을 지불한 가족들이 포로를 잡을시점에 살아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죽이고 포로를 잡아갔다면 누가 속환금을 지불하겠습니까.
피난이나 숨을때 보통 가족단위로 행동하지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지진 않습니다.

4. 윗글에 적었듯이 황기(黃旗)란 양황기나 정황기를 말한것으로 팔기군입니다.
팔기군은 군사조직 이면서 행정조직 입니다.
최효일이 청에 대한 반역이 들켜 가족이 몰살당했다는것은,
당시 최효일의 가족이 조선의 세력권이 아닌 청의 세력권 안에 있었다는걸 의미합니다.
위 링크글에 조선인 포로 출신중 청왕실의 족보에 올랐다는것은 청에서 조선인의 지위가 낮지 않았다는것입니다.
계급제도가 강했던 청에서 황족의 첩이 한족 출신이면 족보에 올리지 않았고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도 종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에비해 조선인 포로출신인 황씨는 왕실족보에 이름을 남겼고 그녀가 낳은 두아들도 종실작위를 받았습니다.
     
Marauder 17-07-22 19:50
   
기본적으로 처음에는 근거가 아닌 주장으로 주장을 전개해나가시고 별관련없는 근거나 빈약한
 근거로 주장을 펼치시는듯 보입니다만...
1. 번에서는 조선을 지배하기 어렵고 중국이 주관심사였다? 그런데 정작 청나라는 중국마저 지배할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고려는 점령을 못하니까 화친을 한거지 이미 승리했다면 오히려 점령하는게 후반안정화에 기여하죠. 명나라를 지배했다는건 사실 조선도 지배할수 있다는겁니다. 명은 관심있고 조선이 관심없는건 이중잣대로 명의 오삼계가 문을 열어줬어도 한양을 점령하고 왕까지 잡은 조선에 비할바는 못됩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명은 눈앞에있는 떡이고 조선은 입안의 떡인데 눈앞의 떡은 먹고 입안의 떡은 뱉었다는건 같은 조건하에선 말이안되죠.
2. 여기서도 세자를 잡혀갔기 때문에 왕이아닌 세자를 잡혀갔다는 논리를 보여주셨는데... 조선은 생각보다 작은국가이고 왕을 버릴수 있다면 세자는 훨씬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왕잡아가는것도 못믿는다면 세자잡는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항을한다해도 한반도는 좁아서 저항하기도 쉽지 않죠.
3. 같은 조선인 중국인끼리 비교해야지 왜 이중잣대를 펼치시는지. 중국인은 돈이 안되서 죽였습니까? 같은 조건하에서 비교해야하는데 다른 조건하에서 이중잣대를 펼치시는건지
          
촐라롱콘 17-07-24 17:48
   
제1子인 소현세자내외만 잡아간 것이 아니라, 제2子인 봉림대군내외까지 잡아갔습니다.

심지어 소현세자가 볼모생활 와중에 2번정도 국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에도 청나라는 만약을 위해 원손과 인조의 3子인 인평대군을 심양으로 불러들인 뒤에야
세자를 조선으로 보냈습니다. 물론 세자가 돌아오면 원손과 인평대군은 조선으로 복귀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15세기 토목보의 변에서 나타나듯이 당시 명나라황제가 오이라트부에 포로로 잡히자
명나라는 황제의 동생을 황제로 내세워 저항했듯이....
이러한 이전의 역사적 사례들도 당시 청나라에게 학습효과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가 조선전역을 전부 집어삼킨것도 아니고,
조선의 인구와 생산량밀집지역인 삼남지역은 아직 건재했으며...

무엇보다 명나라와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당시 청나라의 전체 가용병력이 20만도 안되는
상황에서 무려 12만 대군으로 조선에 침입한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에...

조선을 청나라의 내지로 삼기보다는 조선이 청나라의 명나라진출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더욱 컸습니다. 따라서 인조가 1월말 항복하고나서 바로 2~3일 뒤인
2월 2일에 청태종은 바로 재빨리 귀국길에 올랐고...
청태종의 이복동생 도르곤이 잔여부대의 철수와 세자와 대군내외를 비롯한
수 십만 조선포로들의 이송을 주관하여 3~4월에 이르러서야 심양에 도착하게 됩니다!
레스토랑스 17-07-22 12:06
   
최종병기 활 보면 조선사람들을 동물처럼 끌고가던데?
     
레스토랑스 17-07-22 12:15
   
그리고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볼모로 잡혔을때 돈주고 조선백성들을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켰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봐서 노예로 끌고간거 맞음
     
관심병자 17-07-22 14:10
   
최종병기 활은 픽션 입니다.
청나라 망구다이?
망구다이는 몽골대 라는 말입니다.
몽골군 이란 얘기죠.
물론 당시 청군에 몽골인이 포함된건 맞고,
그들의 전술이 몽골군의 전술과 관련이 없을수는 없지만,
청나라 군체제는 팔기군입니다.

최종병기 활이란 영화는 저 개인적으로는 안좋게 봅니다.
그 영화가 나오기 전에 아포칼립토란 영화를 3번 정도 봤었기때문에,
최종병기 활에서 조선인을 사로잡는 장면은 아포칼립토에서 마야인이 주인공 부족원을 잡아가는 장면 목을 걸어 끌고가는것 까지 똑같습니다.
이장면은 마야인의 노예 사냥 방식이고,
아포칼립토란 영화역시 픽션 영화 입니다.
결국 미국인 머리속에서 나온 마야인들의 노예사냥 방식입니다.
그장면을 그대로 갖다쓴게 최종병기 활이란 영화구요.
          
sunnylee 17-07-22 20:13
   
망구다이가  몽고에서 유래한 말은 맞는데.
그냥 전술상 기만과 포위술을 포함한...전술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용어 입니다.
.
몽골군의 편제는 호드와 투만 이죠...
그리고 적목에 밧줄걸어 생포하는방식은 초원부족의 기본 전투,사냥 방식은 맞는데.
목에걸고 포로를 끌고가는점 에선
영화 아포칼립토 영향 같다는  점에선 동감 합니다.
전체 스토리상 ,,,요소요소  베낀 흔적이 너무 역력...
               
Marauder 17-07-22 20:21
   
딱히 망구다이 용어를 쓸 필요가 있나요?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쳐라가 아니라 망구다이 포위진을 펼쳐라! 라고 말하면 전술상 이해는 가지만 이상하게 보일거같은데...
                    
sunnylee 17-07-23 06:42
   
아마 영화상 만주어... 지금은 사어가 되다보니..
그냥 차용해온것 같습니다.
뭐! 같은 유목민족끼리 전래되었단 ,,
어디까지나 영화상 설정 이겠죠..
     
Windrider 17-07-22 15:04
   
영화로 역사공부를 하다니 대단하군요.
스나이퍼 17-07-22 22:09
   
청왕조는 분명 여진족의 후예들이라
자신들의 위해 일할 노예들이 부족했음
물론 충성을 받칠 노예들
그런 의미에서 조선 노예들은 집으로 보내준다는 미명하에 부리기 좋은 족속들이었음
     
고독한늑대 17-07-23 15:09
   
뭔가 착각하나 본데.. 조선시대 여진족은 조선에도 많았고..
그들에게 직책도 내려주고 했다는것이고..
여진족도 마찬가지죠..

명나라 주원장이 먼터무를 꼬실때도 먼터무는 자신은 조선의 백성으로 살것이라고 했고요..
이 먼터무가 누르하치 6대조입니다.

결국 분리가 되었지만.. 이성계 휘하 장수 출신이고요..

조선시대 기록들을 봐도 요동사람은 본래 우리나라 사람이다는 기록과..
여진인들은 조선의 자식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조선시대에 후금으로 간 조선인들은 만주족으로 인정받아 살았고요..
예를 들어서 만주족 김씨 박씨 집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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