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는데요.
그냥 기후에 따라 농경이든, 유목이든 하는 거지, 농경민이라고 스텝지역에서도 농사를 짖고, 유목민이라고 농사가 잘되는 환경에서도 유목을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사례나 우리땅에 이주한 유목민들이 정착하지 않고 유랑하는 예가 있지만 이는 소수거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전설같은 이야기 입니다.
부여의 경우 삼국지위지 동이전 내용으론 정주민으로 주변 유목민족과 구분된다고 쓰여있기 때문에 반농반목으로 봐야겠죠. 고구려도 마찬가지고, 여진족도 마찬가지로 반농반목입니다. 한반도의 남부에도 동복같은 유목민 유물이 나오고 문무왕 비문에도 백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농경과 목축이 동시에 언급됩니다. 적어도 삼국시대만 해도 한반도 남부조차 반농반목이란 게 증명됩니다. 일본의 초기 지배민이 기마민족이란 설도 있는데 이도 유물 때문이죠. 이정도면 한국인의 조상이 목축의 비중도 적지 않게 업으로 삼고 있었다고 봐야죠.
흔히 한국인은 농경민이라 여진, 거란 같은 유목민과 이질적 존재로 여기는 프레임으로 접근하기도 하는데 잘못되었습니다. 유명한 맛칼럼리스트인 황교익씨도 이런 잘못된 틀에 갇혀서 우리는 순순농경민이고 과거에 목축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던데, 이건 심하게 단순한 프레임에 갇힌 해석이죠.
거란도 농경을 전혀 안 한건 아닙니다. 주가 유목이고 가옥 등 생활 양식이 유목민인 거죠. 우리의 조상이 농경민이냐 유목민이냐 2분법으로 나누는 건 이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발해의 경우 그 국력이 단순히 유목만으로 설명되기가 힘든데요. 당시에는 지금 보다 평균기온이 높아 농업생산량이 높았을 거라는 설도 있더군요. 중국 한족도 목축을 합니다. 보통 정주민족의 목동은 최하위 직군이긴 합니다. 힘들고 위험하고 가난하니까요. 3d죠.
우리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농경쪽 비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목축은 생산력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다고 봐야 옳은 것 아닌가요? 그리고 벼농사의 관점만으로 한반도가 생산력이 낮다라는 견해도 잘못된 거라고 보는 게 산지의 자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목화 같은 건 주로 산지의 밭에서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민족의 중심지 자체가 남쪽으로 옮겨오다보니 반농반목에서 농경으로 변했다고 봐야 맞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