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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3 22:56
[일본] 일본 근대화 - 일본 교수 시각
 글쓴이 : 솔루나
조회 : 983  

"메이지까지, 아니 18세기 말까지 일본의 대외관계는, 조선통신사나 나가사키(長崎)를 통한 네덜란드가 있긴 했어도, 크게 봐서 주로 중국과의 관계였습니다. 중국으로부터도 '몽골의 침입'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랄 것은 없었고, 에도(江戸) 시대(1603~1868) 이전에는 교통도 꾀나 힘들었는데, 에도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쇄국(鎖國)이었지요. 한반도와의 관계를 차치해 둔다면 외국과의 물리적인 접촉, 특히 인적 교류는 드물었습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12-p13

"오히려 놀라워해야 할 점은 아편전쟁의 배상에 응할 수 있었던 청의 국력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아편전쟁의 결과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일본은 사무라이가 통치하고 있는 '상무'(尙武)의 나라니까 오래도록 존경해 왔던 성인(聖人)의 나라가 오랑캐한테 그토록 무참히 당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지요."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14-p15

"그때 서양인은 일본 해안까지 왔습니다만, 19세기 후반은 일본에게 놀라울 만큼 운이 좋은 시기였습니다. 서양이 일본을 침략할 만한 처지가 못되었던 거죠.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보불전쟁을 치렀고, 미국은 남북전쟁 와중이었으니 그럴 형편이 아니었어요. (중략) 모두들 바빠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은 잠시 접어 두고 있는 틈에 일본은 민첩하게 근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거지요. 하나는 일본인의 반응이 재빨랐다는 것, 또 하나는 상대방이 경황이 없었다는 겁니다. 둘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일본은 구미의 압력에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을 겁니다. 상대방이 바빠서 침략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1904년까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15-p16

"그러나 상대방이 바빴다고 하는 국외 사정은 일본 쪽에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습니다. 일본 쪽의 반응이 민첩했다고 하는 점만 강조하고 말이죠. 일본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해석은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가 본격화 되기 직전에 세계는 서로 전쟁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특히 크림전쟁과 남북전쟁이 결정적이죠. 크림전쟁은 영국·프랑스와 러시아의 차르가 거국적으로 일으킨 대대적인 전쟁이었고 남북전쟁의 사상자 수도 엄청났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할 처지가 못되었던 겁니다. 그 두가지 사정 때문에 일본에 대한 압력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겠죠."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18-p20

"막 생겨난 증기선은 항속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중국과의 중간지점에 연료용 땔감을 보급해줄 항구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개항이 빨라졌다는 사정도 있습니다. 오히려 페리 내앙 이후에 저쪽 사정 때문에 외압이 줄었습니다. 바로 그 사이에 메이지 유신의 기초를 다졌던 거지요. 따라서 일본이 완전히 식민지화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었습니다만, (후략)"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20

"태평양전쟁의 경우도 그렇습니다만, 일본은 패전을 겪으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실로 극적일 정도입니다. 사쓰마·영국 전쟁의 경우에도 졌다고 생각하자 한두 해 사이에 영국으로 유학생을 보냅니다. 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상대국 유학인 거죠."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21

"일본의 근대화에서 '전사'(戰士)인 무사가 지배계급이었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명실상부한 '사대부', 곧 문치(文治) 관료였다면 그런 기민한 반응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중략) 당시의 사무라이는 전체적으로 샐러리맨화되어 있었습니다. 유교의 문치주의 영향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본래 사무라이였던 이들은 사태를 대부분 군사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만 그랬던 게 아니죠. 만약 문치 관료였더라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무라이가 지배했기 대문에 참을 수 없는 굴욕이라고 느꼈던 겁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著, 임성모 譯, p25-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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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책의 저자들은 일본 제국 시기에 태어났고, 그 시대에서 도쿄 제국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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